에큐메니칼 기독교계 원로 안재웅 박사의 아들 안준현씨의 특별한 그림 전시회가 열린다.
1975년에 태어난 안씨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유신독재 하에서 헌신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펼친 아버지 안재웅 박사는 어린 아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가택연금과 연행을 두려움으로 지켜보던 아들은 그 충격으로 말문을 닫고 침묵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스케치 작품 ‘인도 달릿 여인’ ⓒ안준현 작가 |
이후 심한 정서불안으로 타인과의 소통마저 어려웠던 그는 어렵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삼년 반 동안 그가 교실에서 한 일이라곤 종합장에 수많은 점을 찍고, 직선을 긋고, 원을 그린 것 뿐이다.
보스톤에 정착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난생 처음 맛보는 가정의 안온함은 누에고치에서 실이 풀려나오듯 시와 그림과 산문을 쏟아내게 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로 보스톤(1989)과 홍콩(1992)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01년에는 시 전문지 <심상>에서 시인 박동규의 추천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유년의 충격을 털어버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되었던 부모를 오히려 위로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안준현 작가는 ‘피고인’, ‘인도 달릿 여인’ 등 인물 스케치와 그 밖의 이미지 작품들을 전시한다. 12월 1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02.2269.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