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1-19)
설교문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누가복음 17장 11절로 19절의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오늘날 우리는 감사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들리는 소식들이 원망과 불평과 부정적인 소식들입니다.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문제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있고, 이웃에게 있고, 이 사회에 있고, 모든 불평을 쏟아내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이 혹시 그렇게 살지 몰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만은 예수 믿고 나서 한평생 감사, 절대 감사, 무조건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감사하지 않고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어요. 그 삶의 모습을 볼 때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문제를 만나도 어려움을 당해도 몸이 아파도 감사를 드리면, ‘야 저 사람 예수 잘 믿는 사람이구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똑같이 불평하고 똑같이 원망하고 똑같이 욕하고 똑같이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가 모든 환란을 믿음으로 극복하게 하고 그 삶을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를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병 고침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를 했어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10명의 나병환자
첫째로 열명의 나병환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17장 12절을 보니까,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서 이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마을 입구에 저 멀리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서 있다가 예수님을 향해 소리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병환자로서 일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에 멀리 서서 예수님께 외쳤던 것입니다. 만약 일반 사람들이 나병환자인 걸 모르고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쳐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그들을 막아야 했습니다.
레위기 13장 45절 46절에 보면요,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늘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부정하다고 외쳤고 사람들과 격리되어서 성 밖에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서 그런 병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병에 걸리면 더 이상 가족과 함께 살 수가 없어요. 이 병에 걸리면 가족도 잃고, 직장도 잃고, 친구도 잃고, 집도 잃고, 그저 모든 것을 다 버려둔채 떠나서 성 밖에서 격리되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지침에 의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소한 백 보, 백 걸음 이상 떨어져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돌을 던져서 맞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왜? 전염이 될까봐.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씨가 1897년 이 균을 발견해내서 그 다음 치료약을 발견해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병에 걸려서 죽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치료약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단 나병이 걸리면 이 피부 말초 신경들이 죽어서 감각을 잃게 됩니다. 감각을 잃게 되니까 머리털이 빠져도, 손가락이 닳아도, 귀가 떨어져 나가도, 세수하다가 코가 문드러져도 아픈 걸 몰라요. 얼마나 이것이 끔찍한 병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옛날에 약도 없고 그렇게 죽어가니 격리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어느 목사님이 이 나환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겨울 저녁에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화로에 밤을 굽더랍니다. 밤을. 밤을 갖다 집어넣는데, 깜짝 놀란 것은 막 불이 붙어 올라오는데 밤을 뒤집느라고 손을 집어 넣어서 뒤집더래요. 왜? 감각이 없으니까 손을 넣어서 손이 지직지직 타는 소리가 나도 아픈 걸 모르는 거예요. 그걸 보며 그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참 우리가 고난당한 것, 고난은 고통을 당하고 우리가 아픔을 느끼는 것, 참 감사할 일이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여러분, 우리가 고통을 당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감사해야 돼요. 왜? 그 고통을 느낄 수가 있으니까. 이 나병환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해요. 그것이 고통이예요. 그러니까 고통당하는 것도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만난 것도 유익이예요. 왜?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픈 거예요.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환란 중의 감사가 진짜 감사인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는 죄 짓고 불의하여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감각이 마비되고 죄로 인해 썩어져 들어가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죄와 절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영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면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몸이 다 썩어져서 완전히 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냥 죄를 먹고 마시고 살아가고 있어요. 얼마나 불쌍한 모습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그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십자가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죄를 지었고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질병이 있고 환란이 있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거기에 치료가 있고, 용서가 있고, 은혜가 있고,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해야 돼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고 언제나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2. 나병환자들의 부르짖음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기억해야 될 것은 나병환자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저희들이 어떻게 부르짖었습니까?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 번 따라하세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7장 13절에,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여러분, 예수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돼요.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놀다가 넘어져갖고 무릎이 조금 까져 피가 나면 사람들, 특별히 엄마가 보라고 ‘앙’ 하고 안 울다가도 엄마가 오면은 ‘앙’ 울어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여기 보라고 아프다고. 날 좀 불쌍히 보세요. 내가 아파요. 아무도 안 보면 툭툭 일어나서 걸어가는 거예요. 누가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가 큰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사람 앞에 불쌍히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불쌍히 보여야 돼요.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가 죄로 인해서 온 몸이 문드러졌습니다. 내가 죄와 절망 가운데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크게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왜? 저들이 소식을 들었어요. 예수님께로만 나가면 무슨 병이든 고침을 받는다. 가까이 나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멀리서 소리를 쳤습니다. 외쳤습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와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면,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의 때에 응답해 주시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할 때 저들은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부르짖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부르짖으면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간절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그러는데도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내게로 오게 하라.” 그리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불쌍히 보시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고 하는 책을 쓴 레나 마리아라고 하는 분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 하보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웬일입니까? 부모님은 정상인데 태어난 이 아이를 보니까 두 팔이 없어요. 그리고 한 쪽 다리가 짧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이 아이는 특수기관에서 맡아서 돌봐야 되겠습니다. 그 때 부모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므로 저희들이 정성껏 잘 양육하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도하면서 이 아이를 정상인과 똑같이 잘 아이를 길렀는데. 세 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가지고요, 스웨덴 대표로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네 번의 금메달을, 네 개의 금메달을 땄어요. 네 번 우승해가지구요. 88년 서울 파라 올림픽, 즉 장애인 올림픽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구요.
어릴 때부터 고운 목소리로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을 하고, 고등학교에 와서 음악을 전공하기 시작해서 스톡홀름 음악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졸업한 다음 또 미국에 건너가서 가스펠을 공부하고 지금은 찬양사역자가 되었어요. 그분이 쓴 책은 세계 9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서 많은 분들에게 읽혀지고 있고요. 일본에 매해마다 가서 찬양을 통해서 간증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려서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늘이 낳은 소리라고 그래요. 근데 이 레나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날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쁩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감사를 드립니다.“
야, 우리가 부끄럽지요? 여기서 두 팔 한 다리 짧은 분 있으면 한 번 일어나 보세요. 없잖아요. 얼마나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어요. 지금 이렇게 몸이 불편한데도 감사하구요. 그 발 하나 가지고요 수도 놓는데요. 요리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운전도 하고 성가대 지휘도 한다고 그러네요. 참 오른 발 하나 갖고 못 하는 게 없어요. 한 번도 자신의 장애를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히려 장애가 저를 믿음으로 살게 했고, 오늘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이 다를 뿐 장애는 더 이상 저를 제한하지 못합니다. 제 인생은 언제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결심하셔야 되요. 하나님 이제부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절망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 저들이 나와 예수님께 크게 외쳤을 때 주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4절에,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이 나병환자 정결법에 따르면 레위기 14장에 나오는데요, 이 나병에서 나음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제사장에게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받았다는 그 확인을 받은 다음에 가정에 돌아갈 수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사장이 확인을 하고 정결의식을 행한 다음 이제 가정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는 말은 너희들의 몸이 나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 듣고 너무 기뻐서 달려가다 보니까 어! 코가 나오고, 머리털이 나고, 손과 발이 정상이 되었어요. 너무 기뻐가지고 막 뛰어 달려가는데, 너무 기쁘지 않습니까?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병이 고침을 받았으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할 일이예요.
그래서 제사장에게 막 달려가는 데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다보니까, “아! 이제 나는 제사장을 만나고 가족에게 돌아갈 텐데 먼저 가족에게 가기 전에 제사장에게 보이기 전에 예수님께 가서 감사드려야지.” 하고 달려 들어와서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몇 명이 고침을 받았지요? 열 명. 돌아온 사람은? 한 명. 아이참. 그 아홉 사름들 참 문제 많지요? 근데 그 아홉 사람이 우리, 예수 믿고 감사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에요. 열 명이 다 나았잖아요. 우리 다 구원받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넘치는 감사로 살고 있느냐! 조금만 문제를 당해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섭섭해 하고. 여러분 감사해야 되요. 감사, 또 감사, 또 감사. 감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지 못해요.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 믿고도 많은 사람들이 감사부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복 주신 날,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몸 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북녘 땅에 있는 2천만에 가까운 우리 동포들은 주일 날 예배드릴 교회도 없고 마음껏 예배도 못 드리는데 이렇게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게 되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너무 너무 감사할 것 밖에 없어요. 여러분, 넘치는 감사로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감사를 돌린 사마리아인
세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 사마리아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한 사람 돌아온 사람이 당시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5절, 16절을 보니까,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원래 사마리아 사람은 같은 이스라엘 족속인데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난 다음 이방사람들하고 많이 저들이 결혼하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주전 922년에 남북으로 나뉘었고요, 주전 722년에 북왕국이 멸망을 하는데, 멸망당하고 난 다음에 이방인하고 저들이 많이 결혼을 했는데 이 남쪽에 살던 이 유다지역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그래서 아주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멸시를 했어요.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양반, 상놈이라는 제도가 있어가지고 상놈이라고 하는 것은 천한 신분이라 생각해서 아예 태어날 때부터 멸시를 받았어요. 똑같은 사람인데, 그래서 아주 우리나라와 아주 비슷한 그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멸시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 와서 감사한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무시하고, 가진 것이 없다고, 배운 것이 없다고, 세상적으로 어떠한 힘이 없다고 절대로 그를 업신여기면 안돼요. 오히려 그들이 더 큰 믿음을 갖고 주 앞에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누가복음 17장 17절, 1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갚을래야 갚을 수 없는 그 큰 은혜를 받고도 우리가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삶에 끝없이 많은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면 모든 걸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데 감사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문제를 낳고 어려움이 어려움을 만들고 여러분을 그 어려움이 둘러싸서 여러분을 절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감사는 믿음의 사람들만 하나님 앞에 드릴 수가 있어요.
보세요.
누가복음 17장 17절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절망 중에도 감사하는 믿음, 문제 가운데에도 감사하는 믿음. 그 믿음을 보고 주님이 그 모든 병을 완전히 치료해 주셔서 마음의 병, 육신의 병, 환경의 병이 완전히 치료함을 받고 새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떠한 절망의 자리에 처했든지 간에 감사로 나가면 주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믿음으로 나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절망의 자리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문제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희망의 내일을 향하여 나가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감사하는 믿음. 어떤 문제 가운데서도 절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그 믿음.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그 믿음. 그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가 바로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9.11테러 10주년을 우리가 지냈는데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테러로 인해서 목숨을 잃었지요. 그 중에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인 강성순씨가 아들 강준구군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인데, 이 아들을 기념해서 ''준구메모리얼 스쿨''을 중남미의 최빈국중 하나인 도미니카 공화국에 학교를 세워서 운영하고 있는데요. 2001년 9월11일 아들 강준구씨는 뉴욕 맨하튼에 월드트레이드 센터 104층에 있었습니다. 그의 투자회사 캔터피츠제널드라고 하는 회사에 재정파트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어요. 아주 월스트리트에서, 금융가에서 잘 나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감기 몸살기가 있어서 좀 쉬고 싶은데 본인이 그 파트의 책임자이니까 쉴 수가 없어서 그 날 나갔는데 그 회사가 104층부터 109층까지 직원 7백 명이 함께 있는 회사인데요, 그 날 비행기가 와서 이 빌딩을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7백 명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어요. 그 전 날 부모님을 알래스카 효도관광을 시켜드리고 오는 부모님을 모시고 들어와서 부모님께 “편히 쉬세요.” 한 게 마지막 인사예요.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들인데. 그런데 그 아들을 잃고 나니까 눈만 감으면 아들 생각나고, 마음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얼마나 마음이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처음 한 2년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겠더래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차차 아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아들의 죽음을 의미 있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아들도 아주 신앙이 좋았어요. 그렇기에 아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아주 좋아한 아들 준구는 교회학교에서 영어 성경을 가르치고 수요일마다 금식을 하는 등 신앙심이 아주 돈독했어요. 준구는 나중에 돈을 벌어 자비로 선교활동을 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뉴욕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고나서 경영학과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젊어서 선교비용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는 의과대학을 가지 않고 MBA코스를 해가지고 경영학을 해서 금융가로 진출한 거예요. 왜, 돈을 많이 벌어서 선교하려고. 그래서 그 아들 뜻을 기리기 위해서 그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 가장 열악한 지역, 주로 교도소를 갔다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 2천 가구가 살고 있는 곳인데 판잣집 수준의 가구들이 살고 있고요. 마약과 범죄로 뒤덥힌 동네예요.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밖에 물이 안 나옵니다. 밤에는 총소리까지 들리는 치안이 불안한 지역입니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가 없이 늘 길거리에서 놀고, 남의 것을 가져오는 그러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이 학교 건립을 위해서 주택 여섯 채를 지을 수 있는 땅값인 6만 달러를 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이 힘을 함해서 15만 불을 모아가지고 2009년에 ‘준구메모리얼스쿨’을 개교합니다. 현재 150명이 유치원과 1학년부터 5학년까지 과정에 다니고 있는데요. 컨테이너 형태로 6개 건물을 짓고 학교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지역에 이 분이 가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니까 도미니카 교육 당국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강성순씨가 이렇게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들을 먼저 천국에 보내야 하는 아픔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아직도 9.11테러가 있었던 9월이 오면 마음이 아주 아픕니다. 처음에는 ‘왜 나를?’ 왜 하필 내 아들을? 왜 내가 당해야 합니까? 라며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준구메모리얼스쿨’에서 교복을 입고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 150명을 보면 우리 아들 준구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은 뒤 열매를 맺게 됨을 실감합니다. 한 번은 학교에 가서 어린 아이들의 발을 씻겨주는데 아이들이 부모에게서도 체험하지 못한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아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곁으로 갔지만 ‘준구메모리얼스쿨’에 입학한 어린 학생들이 배우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는 슬프지 않아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 아들은 천국에 갔지만 그 죽음이 헛되지 아니하고 150명의 어린 아이들을 예수의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사는 삶이 과연 어떠한 삶입니까? 이렇게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까? 아니면 지금도 내 주위에 둘러져있는 문제를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섭섭하다 하면서 상처를 받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제 눈을 좀 높이 들어서 주님을 바라봐야 되요.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도록, 사랑을 실천하도록, 지금도 변함없이 은혜를 부어주시고 있는 우리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범사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것은 그 받은 바 은혜를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받는 그릇입니다. 감사가 커질수록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도 아직 감사가 없어가지고 그냥 감사 그릇이 간장종지 보다 더 작아가지고 잘 보이지도 않아요. 그리고 불평 그릇은 이 만큼 다라처럼 커가지고. 그러니 뭐가 되겠습니까? 믿고 나서 늘 문제가 첩첩 산중이에요. 여러분 오늘부터 결심하고 여러분의 넘치는 감사가 주님 앞에 드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세요. 감사함으로 여러분의 환경을 바꾸세요. 감사함으로 여러분의 일생이 주님 앞에서 복 받은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넘치는 감사를 통하여 우리 주위에 불쌍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문제 있고, 어려움 당한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