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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 칼럼] 성적 기호에 담겨 있는 성의 상징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지난 칼럼에 이어서 성적 기호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 성적 기호의 두드러진 근원은 만 3~5세에 해당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유치원에 다니는 시기이다. 그렇다고 유치원 아이들이 이성에 눈을 뜬 시기는 아니지 않은가? 성적 기호는 물론 사춘기를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기초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가장 기초적인 나이인 만 3~5세를 성적 기호의 출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그런데, 성적 기호는 사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 비유를 들어보자. 어떤 아이가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머리가 좋아야 한다. 둘째, 산수 기초를 잘 배웠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 수학 실력을 키워야 한다. 성적 기호가 수학이라고 한다면 그 전에 두 단계의 시기가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기반은 만 0~1세의 시기에서 세워지는 것으로, ‘의존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핵심이 된다. 두 번째 기반은 만 1~3세의 시기에서 세워지는 것으로, ‘지배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핵심이 된다. 종합하여 단순하게 도식화 하자면 우리의 성적기호는 ‘남녀차별성+지배성+의존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 매혹된다고 할 때 그 부분은 이 세 가지의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특정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는 한다. 내가 동성애라고 해서 모든 동성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내가 이성애라고 해서 이성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상대를 정할 것이고 어떤 이는 남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판단에 근거하여 상대를 정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의존심을 만족시켜줄 상대를 선호하는 반면, 남성은 자기 지배성을 성취할 상대를 선호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성향과 다르게 지배성을 중시하는 여성을 남성적인 여성이라고 부르고, 의존심을 중시하는 남성을 여성적인 남성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것은 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의존적 혹은 지배적이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게 더 맞다. 점차로 남성과 여성을 어떤 틀로 획일화시키는 것에서 벗어나는 시대 흐름에 따르다보니 요즘은 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는 개념 설정이 모호해졌다.

성에 ‘눈을 뜬다’는 표현처럼 성적 기호는 순차적으로 아는 것과 다르게 어느 순간 갑자기 느껴지거나 깨닫는 기회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이 보통 자기를 이해해온 것과 다를 때 사람들은 스스로 당황하게 된다. 그 갈등을 비교적 잘 처리해야 빨리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현모양처로 통하는 단아하고 순응적인 여성을 선호해오다가 막상 연애를 하는 시기에 강렬하고 화려한 성적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럴 때 그의 ‘눈 뜸’은 과연 예고된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중대한 경험이 그 사람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 것일까? 각자마다 다를 것이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는 예고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 예고라는 것이 가장 단순하게는 의존심과 지배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여성 내담자가 필자에게 상담을 왔다. 그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성을 대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었다. 선을 지킬 줄 알고 서로를 존중하는 상호협조의 견지를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자기 스스로도 예상을 못한 문제가 나타났다. 상대를 지나치게 의심하는 것이 나타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연애만 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다. 단, 그는 연애를 하면 의부증 환자가 되는 기질이 있는 것이다. 그런 기질이 있었다면 굳이 연애를 하기 전에라도 남성과의 관계에서 방어적이거나 경계심이 다소 높거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하진 않았다. 그러니 지금의 이런 상황이 스스로도 난처하여 상담을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자주 다투던 것을 보며 자라온 그였기에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지내온 그였지만, 덕분에 이성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 더 빨리 터득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렵지 않으리라 자부했지만 그의 어린 시절 경험에 의한 ‘의존심의 균열’은 생각보다 깊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관계에서는 그나마 유지했던 그의 안정감이 깊은 관계에서는 지속되지 못하고 의심의 상태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상담자로서 나는 그가 이미 적절한 추정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다소 막연하고 혼란스러워 하긴 해도 잘 감당하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만 격려하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새로운 요령을 터득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이 문제가 그래서 완전히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취약성은 연애를 하기 전 무난한 시점에도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취약성은 밑바닥 어디에서 웅크린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물론 그 부분이 점차 작아지도록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남성에게서 성은 일차적인 쾌락에 치중하는 경향이 높은 반면 여성은 의존심에 치중하는 경향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남성은 어떤 여성이라도 비슷한 스타일의 호감도를 가지면 그러한 다수의 매력에 끌리는 데 반하여, 여성은 비록 비슷한 스타일의 상대들이 있더라도 한 상대를 선택하면 그 상대에게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도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되긴 했다. 그런데 남성의 경우를 잘 생각해보면 단순히 성호르몬이 충만해지는 성적 자극에 의한 흥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지배성이 꽤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게 된다. 남성을 유혹하는 대부분의 음란물은 단순히 성적 자극을 위한 매력 있는 여성의 몸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남성에게 굴복당하고 그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여성의 반응을 담아내고 있다. 변태성욕적인 음란물 중엔 다른 남성에게 속한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 또한 ‘갈취’ 즉, 지배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성이 좋다 혹은 동성이 좋다고 성적 기호를 양분하는 건 너무나 단순한 방식이다. 그가 말한 ‘남성, 남성적’ 혹은 ‘여성, 여성적’이라는 의미를 좀 더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 의존심과 지배성이라는 표현으로 좀 더 세분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이러한 의존심과 지배성이 이성의 상대에게서 잘 얻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의 의존심과 남성의 지배성이 비교적 잘 맞아서였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성의 역할이 해체되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동성애의 가능성이 좀 더 확대되는 것이다.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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