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미가서 5:2-5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아멘.
디도서 3:4-7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거듭나게 씻어주심과 성령으로 새롭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1:1,14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아멘.
설교문
크리스마스에 찬양으로서 너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찬양과 함께 여섯 아이들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나이 드신 목사님들하고 잠깐 모임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주로 충청남도 금산에 계시는 분들인데 이 분들이 모여서 하는 말씀을 듣고 평소에 알기는 알았으나 깜짝 놀란 게 하나 있습니다. 금산 지역에 우리 교회가 아마 쉰 개가 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쉰 개가 넘는 교회 중에 주일교회가 있는 교회가 다섯 교회가 안 된답니다. 그 중에 네 교회는 열명 이하 주일학교가 있고, 한 교회만 조금 많은가 봐요. 왜 그런가 했더니 요즘에 농촌에서 흔히 있는 대로 아기 울음소리가 없어졌습니다. 금산까지 그런가봐요. 그러면서 아기 세례 좀 베풀어 봤으면 하는 것이 목사님들의 소원이고, “저는 12월 25일 날 여섯사람하는데요 그랬더니, 행복하여라”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오늘 저 행복합니다. 그런데 세례를 베풀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세례가 참 좋은 건데 얼마나 좋으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우리 하나님의 기쁨이나, 하나님의 아들과 똑같은 아들과 딸을 낳게 된 부모님의 기쁨이나 이 어린이들을 우리의 아이들로 맞아 드릴 수 있는 기쁨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나이 드신 목사님이 그래요. 옛날에 목회자들이 교회에 부임해서 갈 때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도 먹고 살기 힘들 테니까 아마 사례금도 적고, 주로 먹는 걸로 사례를 주신 모양인 데, 아이를 둘 까지 가졌으면 괜찮고, 둘 이상 가졌으면 쌀 더 드려야 하니까. 목사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해야 그랬더니? 일단 가서 많이 나면 되고, 갈 때는 적게 하고. 제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희 아버님, 어머님이 처음 목회지를 가셨을 때가 저하고, 제 동생하고 둘이 있을 때 입니다. 6.25전쟁의 중간쯤 있을 때 인데, 아기 둘이어서 받아서 가셨구나. 저희 아버님, 어머님 그 다음에 네 명을 더 낳았어요. 교회가 뭐라고 했을까 생각을 하는데. 지금 보니까 옛날 옛적은 그랬고. 지금은 아기가 많이 나서 울음소리도 많이 나고, 하나님도 기뻐하고, 우리 또 얼마나 좋을까.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어린자녀가 낳을 때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아름다운 생명을 유지하고, 마지막에는 부모님께 여쭤보겠습니다. 내가 낳은 우리가 낳은 자식이 마지막에 죽지 않고 살아서 영원한 생명까지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여러분도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뜻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달린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희망을 가지고 지금도 살아갑니다.
우리 성경이 두 개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하고, 신약하고. 오늘 구약의 말씀도 읽었고, 신약의 말씀도 읽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쓴 사람들은 어떻게 말씀을 기록으로 남겼을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해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했느냐하면 우리가 이집트에서 사백년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셔서 우리를 구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우리를 구한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진실 된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은 말로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행동으로 보이시는 하나님이고, 구원은 진실이다. 구원은 우리 몸으로, 마음으로, 영으로, 혼으로 다 느끼고 경험한다. 그래서 너무 감사해서 출애굽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감격한 눈으로 우리 역사를 기록하자.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다 기록에 남기자. 하나님의 말씀도 기록에 남기자. 남기다 보니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에 어떻게 만드셨는지부터 처음부터 시작해서 기록에 남기자. 그래서 창세기부터 말라기 까지 기록했습니다. 기록한 초점은 하나님은 우리를 실제로 말과 행동으로 구원해 주신 분이다. 신약성경은 이렇게 쓰였습니다. 신약은 베드로가 있었고, 요한이 있어서 쓰여진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려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죄를 다 사해 주셨다. 그리고 나서 부활하셔서 우리보고 하신 약속이 죽어도 산다. 나와 함께 구원 받으면 이 땅에서만 받는 구원이 아니라 죽음 이후까지도 계속되는 영원한 구원을 너희한테 약속하마. 이 사실을 부활절 아침에 경험했습니다. 이 분의 말은 진실하다. 실제 사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셨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이 감격과 신앙고백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 썼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간 사도들의 기록도 성경말씀으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신약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 하면 오늘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 성탄절 이야기가요 아주 신비스럽게 쓰여져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한테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예수께서 태어날 때 이름도 모르는 저 동방의 박사 세 사람이 와서 경배하고, 신비스런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말씀이요, 아기가 태어난 걸 먼저 쓰고 십자가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신앙고백과 그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이 분이 말씀하신 것을 다 역사 안에서 성경에 기록한 겁니다. 그러면 이 모든 말씀이 사실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예수님 믿으면 안 되고요.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서 시작해서 거꾸로 태어난 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조금 후에 찬송도 부르겠습니다만 예수님이 태어날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왔다고 했습니다. 동방이 어디냐 하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먼 동쪽에 있는 나라 그 나라가 여러 있었습니다. 앗시리아가 있었고, 지금의 이라크인 바벨론이 있었고, 바벨론을 다 지난 다음에 페르시아란 나라가 있었고, 그 다음에 헬라가 있었고, 로마까지 옵니다. 오늘 제목은 페르시아가 통치하던 시절, 모든 페르시아에 있는 제국주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학문과 정치와 이념과 경제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었습니다. 선진국에 있는 나라에 왕이 있었고, 그 나라에도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 왕이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을 뽑아가지고, 왕의 외교 고문, 국방고문, 경제고문, 영적고문으로 삼았습니다. 이 고문관 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뭐냐? 본래말 단수로 마구스(Magus)라고 합니다. 복수로는 마기(Magi). 말하자면 고문들, 점성가들, 도사들 그런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페르시아 왕의 명을 받아서 전체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동방 박사라는 말은 세 사람입니다. 마기 세 사람이 예수께 왔습니다. 페르시아에 있던 사람들이 왔습니다. 이 사람들의 연구는 어디선가 별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구세주라는 사람이 태어난다고 하더라. 그분은 모든 왕 중의 왕,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 신과 같은 존재, 모든 질병을 고쳐주는 사람 치유의 왕. 세 가지입니다. 왕중의 왕, 신과 같은 사람, 모든 질병 죽음까지도 고쳐주시는 분, 치유자. 오늘 동방박사들이 와서 예수께 세 가지 선물을 했습니다. 황금-왕중의 왕을 상징하는 선물, 유황-이것은 인간이 아닌 신과 같은 존재, 몰약-모든 질병과 죽음까지도 치유해 주시는 분. 황금, 유황 그리고 몰약을 바치고 예수한테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태어나심을 보고 동방의 박사들이 왔습니다. 이 동방의 박사들이 가졌던 종교의 이름이요, 조로아스터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페르시아에 있는 종교입니다. 이 조로아스터라는 종교는 헬라말이고요, 본래 페리시아 말로는 짜라투스트라입니다. 혹시 이 말 기억하십니까? 허무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기독교 신앙에는 희망이 없다. 내가 찾는 한 종교를 찾아가 봐야 겠다해서 페르시아에 가서 짜라투스트라고 하는 예언자가 만든 종교의 원조입니다. 짜라투스트라의 말씀을 찾다가 이 분의 말씀이 진짜다. 그래서 기록한 책이 자기의 철학적 고백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라는 책입니다. 재밌는 이야기죠? 짜라투스트라는 말은 페르시아 말이고, 헬라말로 바꾼 것이 조로아스터라는 종교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짜라투스트라의 종교에 소위 대변자들이 동방박사들입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무슨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의 탄생을 보고 여기에 왕이 나셨고, 신이 나셨고, 또 치유자가 태어났습니다. 이 셋을 합한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하필 동방박사를 통해서 그것은 사람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진실을 보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최고의 학자와 인물들이 예수를 이렇게 모십니다. 베들레헴 아주 말구유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구해주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오늘은 태어나신 주님의 시작을 말하는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즐겁습니까?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부활절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복됩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없으면 예수가 베들레헴이 태어났던 동방박사가 왔던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주었던, 주지 않았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역사 기록들은 저한테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눈으로 보니 아름다운 탄생, 복된 탄생 그 탄생이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 그런 탄생을 가지고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복되다 이름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제가 또 다른 분의 이야기를 인용해야겠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복된 것은 인생에 마지막을 인생의 출발과 연결시켜서 사는 삶입니다. 괴테라는 사람이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걸 읽어보고요, 정말 복된 말씀이다. 인생의 마지막 정리를, 삶의 마지막 정리를 처음과 연결시켜서 처음과 마지막에 같게 사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의 말구유간 태어나심은 어디 태어난다는 것이 중요 한 게 아니라 십자가 달렸다가 부활하셔서 영생의 주가 되신 그 분이 자기의 첫 역사를 말구유에 가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위대합니다. 말구유간이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부활이 위대하다보니 말구유간 시작이 위대합니다. 이 사실이 뭘 가르쳐 주느냐 하면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최후가 저희들한테는 너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으면, 마지막을 만들어 놓은 과정도 아름답고, 출발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저는 장례식을 자주 치릅니다. 장식 때마다 생명의 관한 이야기를 말씀합니다. 혹시 여러분 장례식 치루면서, 오늘도 유가족 두 가정 있습니다만 과거의 치르신 가족 한 번 생각해 보시죠. 먼저가신 우리 부모님, 우리 선조나, 다른 분을 보고 뭐라고 인사하셨습니까? 마음속으로. 안녕히 가세요. 최대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보다 더 좋은 인사가 있습니다. 다시 만나요. 자신 있으세요? 다시 만날 자신 있으세요? 진심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믿고 하셨어요? 아니면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바꾼 것뿐입니까. 저는 이렇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제가 사랑하던 사람이 먼저가면, 안녕히가세요는 인간적인 이야기고, 제 진실 된 희망은 우리 다시 만나요. 그러나 만나는 장소는 죽음의 장소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의 공동체에서 제가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질병에 허덕이는 질병 앓는 사람들이 만나는 아픈 곳에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눈물이 없는 곳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즐거운 찬송이 있는 곳에서 만나고 싶지 괴로운 곳에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없습니다. 뭐라고 해도 되요. 여러분도 그러시죠. 예수 말씀이 나는 십자가에서 죽어서 함께 죽지만, 죄를 다 사한다음에 나는 살아나야 한다. 죽임을 이기고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 말씀이 나와 함께 죽으면 영원히 산다. 나와 함께 태어나면 고통을 당하겠지만, 힘들겠지만 그래도 죽었다가 산다. 혹시 장례식때 이런 말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확신가지고 먼저가신 분들한테 “이 다음에 만나요” 함으로써 메리크리스마스. 말이 됩니까? 말은 안 될지 모르나, 뜻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도 내일도 메리크리스마스. 사람이 살면서 많은 걱정과 아픔을 겪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아름다움으로 마감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감은 아름다운 탄생을 만들어 냅니다. 옛날부터 역사 속에요, 위대한 사람이 죽으면 미라를 만들어 가지고 썩지 않은 방부제 넣어 가지고 오래 보호합니다. 왕들이 그랬고, 예술가들이 다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북쪽에서도 두 사람, 주석은 영원하다. 우리 장군님은 영생하신다. 아니 그냥 죽으면 됐지 왜 영생을 갖다 붙이는지 제가 보고 놀랐습니다. 세상 인간은 모든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끝이 아직 아니다. 영생한다. 제가 오늘 성경말씀 보면서 세계 어느 나라가 되었던지 북쪽을 포함하여 남쪽 할 것 없이 영생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글을 쓰고, 이념으로 표현하고, 결정해서 영생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시켰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태어납니다. 일합니다. 끝냅니다. 다시 태어납니다. 모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것은 우리한테 영원한 생명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 합시다. 내가 태어난 게 아니고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아이가, 아들과 딸과, 손자 손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너무 위대합니다. 처음에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누구라고 표현했냐면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다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요, 우리가 쓰는 언어 이 말이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말을 써도, 제가 쓰는 말, 제가 알고 있는 말로 어떻게 하나님의 오묘한 진실을 다 표현할 수 있습니까? 제 생각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뜻을 어떻게 표출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다고 그러면 제가 구원과 하나님을 생각으로 말로 만드는 거지요. 그런 게 아니고요.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삶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존재자체이지, 쓰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를 그냥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 요한복음에 보면 그 말씀은 말이 아니고, 귀신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은 인간의 몸을 입은 산 생명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고달프지만, 위로를 주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믿으시죠? 아들 예수그리스도 믿으시죠? 성령 믿으시죠? 하나님은 배고파하십니다. 말씀이 되신, 육신이 되신 하나님은 우리가 배고플 때 함께 배고파하십니다. 육신이 안 된 하나님은 배고픔 모릅니다. 하나님은 고통 아시나요? 슬픔 아시나요? 목마름 아시나요? 압니다. 육신이 되었기에. 그리고 나서 육신의 짊을 벗어난 영혼 한 생명까지도 보장해 주십니다. 저는 그렇게 하기에 이 하나님이 좋고, 고맙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 너무 아름다고, 훌륭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찬양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속에 영원하신 분, 영원하시기에 오늘 살아갈 보람이 있는 삶을 주신 하나님 너무 고맙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는 이다음에 하시고, 메리크리스마스는 오늘도 하시고, 메리크리스마스는 어제도 하셨어야 됩니다. 항상 하나님이 주신 삶 감사합니다. 함께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감사한 삶을 오늘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내일도 사십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