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의헌 칼럼] 성의 어두운 면과 그 허용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이번에 통과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차별금지 항목으로 ‘성적 지향’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둘러싸고 논란이 상당하다. 반대를 표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우려는 이번 조례가 동성애를 인정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범법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조항을 접했다고 할 때 범법자를 인정하고 조장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을텐데 성적 지향에 있어서는 왜 그렇게 의견이 분분할까?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범법자를 차별하지 말자’와 ‘범죄를 차별하지 말자’는 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성적 지향을 범법자의 뉘앙스가 아니라 범법의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성적 지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자가 범법자라는 비유를 든 것에 흥분할 수도 있다. 비교적 완곡하게 접근했다고 해도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가 은근히 들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하다가 필자는 양쪽에서 돌을 다 맞게 생겼다.

동성애는 환상이든 실제든 섹스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이성간의 사랑에는 풋사랑, 짝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순수한 사랑, 플라토닉 사랑 등등 사랑의 종류도 많고 거기에는 섹스가 상당히 억압되어 있다. 동성 간에도 그러한 사랑이 물론 존재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랑의 범주 모두를 동성애에 포함시키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시각 또한 편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AIDS를 동성애자들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는 동성애의 어두운 성적 일탈을 고발식으로 올린 글도 있다. 필자는 그러한 글들을 접할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동성애의 음지와 저주를 논한다고 하면, 이성애는 얼마나 떳떳하단 말인가? 이성애는 음지가 없는가? 양으로만 비교한다면 이성애 쪽이 훨씬 크지 않겠는가? 매매춘의 역사가 이성, 동성을 가리지 않는다.

많은 이가 동성애를 성경의 잣대를 들어 판단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허용되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다가는 시대에 맞지 않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레위기에는 나병(한센병)을 부정하게 언급한 대목이 있는데, 그러한 한센병의 부정함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책은 격리였다. 성경에서 그렇게 언급할 정도면 한센병 환자는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겠는가? 이러한 수모를 해결한 것이 신앙이면 좋았겠지만 실제로는 미생물학의 발전에 따른 의학적 진보가 이를 해결했다. 자칫하다가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질병을 저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약에서 금하는 음식이나,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 노예를 인정한 것, 여자가 머리를 가리거나 긴 머리를 가져야 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머리를 기르면 안 되는 것 등의 내용은 지금은 지켜지지 않는다. 또 이러한 규율이 아직까지 유지되어야 한다고 해도 이것을 어긴 사람에 대해 우리가 함부로 정죄할 권한은 없다. 성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나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이 문제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신앙생활을 잘 해왔던 부부의 자녀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음이 드러났다. 이들 부부는 자식의 문제를 신앙의 기준에서 해석하고 무조건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생각을 대놓고 표출하면서 자기 자식을 궁지에 몰아간 건 아니었다. 그 반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감히 자식에게 말할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자식을 생각할 때는 가슴이 아프고, 교회에서 사실이 알려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판과 관여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이 심정이야말로 이 상황에 실제로 놓인 사람들의 심정인 것이다.

어거스틴이 언급한 원죄 개념에는 죄가 계속적으로 후손들에게 임신과 분만을 통하여 유전된다는 이른바 ‘유전죄’의 개념이 담겨 있다.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섹스 자체가 죄이고 섹스를 거친 산물은 죄의 산물이라는 뜻이 된다.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나셨으니 죄가 없다는 식으로 보조 설명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견해는 이제는 신학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데, 시험관 아기처럼 이제는 섹스가 없이도 아이가 생기는 시대가 되었고 그들에게 원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죄 개념에 신학적인 허점이 있다고 해도 심리학적인 그리고 어거스틴의 개인적인 고백과 연결해볼 때에는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어거스틴은 개인의 경험을 통해 섹스가 얼마나 악한 지 깨달았을 것이다. 부부간의 건전한 섹스라고 해도 그 밑바탕에서 올라오는 죄의식이 있다. 태어난 아이가 천진난만한 해맑은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 있는 악한 면모를 성인이 된 우리는 어느 정도 짐작하게도 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더하자면, 비록 아이는 원죄를 품은 악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섹스라는 죄의식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는 섹스의 죄의식을 해소 혹은 상쇄하는 기능도 가진다.

출산을 담보로 하는 섹스는 종족 번식을 위한 동물적인 섹스이지만 이는 오히려 출산을 담보로 하지 않는 섹스보다 더 숭고하다. 성이 출산을 위하고 가정을 위할 때 가장 문제의 소지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의 섹스가 출산과 상관 없는 섹스라고 해서 더 정죄를 받을 만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록 출산을 위한 섹스라고 해도 임신이 되지 않는 불임 부부를 생각해보라. 그들의 섹스를 아이가 없다고 해서 누가 정죄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동성애의 섹스는 한계가 있는 섹스라고 해서 그들의 기대와 갈망을 쉽게 질타할 수 있겠는가? 도토리 키 재기 같은 비교는 이 정도로 해두자.

성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동성애든 이성애든 어느 누구도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러한 성을 자꾸 덮어 두고 음지의 영역으로 삼으려 한다면 성의 본래 이중적인 특성에 따라 너무나도 쉽게 변질되고 타락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보자면 세리는 죄인임을 기도하되 감히 얼굴을 들지도 못했다. 동성애만 아니라 모든 성의 고백은 다 세리의 고백과 흡사한 심정을 안겨 준다. 주께서 죄인을 세우시고 그의 얼굴을 들게 하시며, 주님은 당신의 얼굴빛을 비추신다.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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