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을 제쳐두고, 한국적 신학 연구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다름 아닐 것이다. 70, 80년대 독재정권 시절에 현영학, 서남동, 안병무, 서광선 등이 함께 연구하여 창안해 낸 ‘민중신학’이 당대 시대적 과제였던 민주화 운동에 적절한 역할을 해내며 한국적 신학 연구에 불을 붙였다는 점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때문에 오늘날 신학 연구의 지형에서 ‘민중신학’의 지정학적 위치를 짚어내는 것은 한국적 신학 연구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보수 신학계에서 ‘민중신학’에 내놓은 최근의 비평을 살펴볼 때, 안타깝게도 ‘민중신학’은 하나의 신학적 체계이기 보다 하나의 정치신학적 운동 정도로 인식되는데 그치고 있다.
▲김영한 박사. |
국내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김영한 박사(숭실대 기독교학과, 전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는 얼마 전 있었던 어느 세미나에서 ‘민중신학’을 비판했는데 ‘민중신학’이 신론, 그리스도론, 교회론, 성령론 등 그리스도교의 뼈대를 이루는 교리 전반에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민중신학 창시자 서남동이 ‘하느님은 항상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하느님’, ‘역사의 진행 자체가 하느님’이라고 서술한 것 등을 근거로 "서남동은 민중의 소리가 곧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범신론적 입장’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서남동이 ‘예수가 민중이요 민중이 곧 메시아’라고 주장한 점에 대해서는 ‘신인동일사상’이라고 비판했으며, 특히 ‘민중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을 동일시 하려는 ‘민중신학’의 시도에는 "민중의 고난은 억울한 고난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스스로의 무지와 불법에 의하여 자초된 고난인 데 비해, 예수의 고난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대속을 위하여 스스로 선택한 대속의 고난"이라고 말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지한 민중마저 지나치게 미화시키려 했다는 비판이었다.
이 밖에 김 박사는 ‘민중신학’이 ▲‘사회정치적 구조의 모순이 바로 죄’라고 봄으로써 죄인, 즉 사회정치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계층에 대한 정죄가 없다. 오히려 죄인은 당당하며 회개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구속사와 일반사를 혼동하고 있다 ▲성경의 묵시록적 종말론을 정치적 내재적 사회경제사적 종말론으로 왜곡했다 ▲정의, 평화, 구원, 연합과 일치 개념이 세속화돼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민중신학의 공헌으로 ▲외세의 억압과 정권의 억압으로 축적되어 온 민중의 한(恨)을 주제화하고 해방을 위한 민중운동의 원동력으로 역동화시켰다 ▲한국의 보수신학이 사회적으로 무관심하고 영혼구원 일변도인 입장을 반성하고 기독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자극제의 역할을 했다 ▲한국신학의 하나의 흐름을 해외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등을 짧게나마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진보 신학계에서는 제2세대 민중 신학자들에 의해서 ‘민중신학’ 연구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민중신학회의 활동을 비롯해 민중신학의 본산인 한신대학교(총장 채수일)에서도 비록 정규 과목으로 개설되지는 않았으나, ‘민중신학’에 대한 별도의 연구모임·동아리 활동이 신대원생들과 몇몇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때문인지 ‘민중신학’과 관련된 연구 논문들은 철마다 간행되는 학술지에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계속 게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신대원생들 중에 ‘민중신학’ 연구를 자신의 학위 논문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다는 점은 제3세대 민중 신학자들의 멘토 역할을 자임해야 할 제2세대 민중 신학자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이자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