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그리스도의 선물

2012년 2월 19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로마서 5:12~21

설교문

어떤 노인이 한 푼짜리 엽전을 잘못 다루다가 그만 부러뜨렸습니다. 그래서 땜질을 하는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 때워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땜하는 사람이 “좀 비용이 들겠는데요. 두 푼만 주세요”하고 말했습니다. 한 푼이 부러져서 때우는데 두 푼 주면 이거야말로 손해이지 않겠습니까?

노인은 “그래도 때워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엽전 두 푼을 주고 엽전 한 푼을 때워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러자 아들과 딸들이 그 말을 듣고 “아버지, 무슨 일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한 푼 아끼려고 두 푼을 주시다니요?” 그 때 아버지는 “얘들아, 그런 것이 아니란다. 부러진 그 엽전을 그냥 내버려두면 한 푼은 아주 없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그 부러진 한 푼짜리 엽전을 두 푼 주고라도 때우면 비록 나는 한 푼을 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로 볼 때는 한 푼의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나 혼자만 잘 살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 전쟁이나 경제 위기가 왔다고 하면 나 뿐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는 곧 위기로 치닫게 됩니다. 곧 나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와 세계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공동체 정신이 강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을 개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씨족이나 종족 또는 민족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중심 사상은 호주 원주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름을 물으면 자기 이름을 대지 않고 씨족이나 부족의 이름을 댄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한 개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씨족의 한 멤버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부족이나 씨족의 한 사람이 피해를 입으면 진력을 다해 복수하였습니다. 그 복수를 그들은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 간의 분쟁보다 부족 간의 싸움은 혈전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하나님은 전리품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아간은 그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아간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어서 공격해야 할 곳은 아이성이었습니다. 그곳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 공격은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아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의 죄 때문에 전 민족적으로 죄인으로 낙인 찍히고 하나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아간의 죄는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전 민족의 죄가 되었습니다.

아간의 죄가 인정되고 발견된 다음에는 아간 혼자 처형된 것이 아니라 그의 대가족이 멸족 당했습니다. 아간은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과 한 덩어리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사상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사상은 집단이나 공동체 중심 사상입니다. 개인은 한 집단이나 공동체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사상이 바로 공동체 중심 사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네가 누구의 아들이냐“고 묻습니다. 성경에도 사람의 이름을 말할 때 누구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한 개인은 공동체를 이룰 때에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없이 개인만 존재한다면 열대의 정글과 같이 적자생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스파르타에서 나온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한 이웃나라 군주에게 스파르타의 성벽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군주는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성벽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스파르타 왕에게 “당신이 그렇게 자랑하고 있는 성벽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스파르타 왕은 자기의 휼륭한 군대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들이 이 국가의 성벽이며, 모든 사람들은 이 성벽을 이루는 벽돌들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벽돌 한 장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벽돌이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될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과 의미를 알 때 홀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신령한 집을 지어갈 때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도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혼자 어떤 일을 시도 했을 때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전쟁터에 나가야만 나라를 지키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복음을 전할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신령한 집을 짓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의 한 권속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함께 일하고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공동체 중심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담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인류의 한 부분으로 보았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그 안에서 범죄한 것입니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범죄했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과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가 모든 사람에게 생래적으로 미쳐 그 결과 사망이 전 인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12절).
이것이 바로 원죄론입니다. 원죄론이란 인류의 시조 아담의 죄가 모든 후손들에게 그대로 유전되고 전가되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성향을 띠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가 모든 죄의 원인이요 뿌리인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완전히 타락한 심령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죄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이나 의지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담의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즉, 우리의 노력으로는 우리의 신분이 의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은혜가 필요가 합니다.

우리 인간이 하늘의 영광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신분이 바뀌어야 합니다. 첫째 아담에게서 물려 받은 부패로 찌들고 더러운 타락의 냄새가 깊이 배인 죄의 옷을 입고는 절대로 거룩하고 영광된 천국의 잔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이 죄의 옷 대신에 우리가 입을 은혜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의롭게 되어 하늘의 영광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장자인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과 의의 행동으로 인해 구원의 은혜가 이 세상에 임했고, 그 은혜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풍성히 미쳐 결국 온 인류가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처럼 귀하고 복된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면 의인이 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바로 아담의 범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온 인류에게 임함으로 결국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14절).
여기서 ‘왕 노릇 하다’는 말은 ‘지배하다’ 또는 ‘통치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첫째 아담의 모든 후예들이 사망의 노예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망이란 일차적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육적인 죽음을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모두 사망의 노예요 멸망의 후손이요 진노의 자식입니다(엡2:1-3). 유대인들은 의롭다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사망과 정죄의 쇠사슬을 풀어보려고 율법에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오히려 사망과 정죄의 쇠사슬을 조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20절)고 말합니다.
율법에 의지하는 자들은 사망의 쇠사슬에 더욱 조이는 결과만 초래할 뿐 도무지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곧 사망의 쇠사슬을 영원히 풀 수 있는 영생의 열쇠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치욕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셔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죄의 짐을 다 벗겨 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을 꽁꽁 묶고 있는 사망을 이기고 생명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마음에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인정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성령을 받으면 그때까지 죽어 있던 영이 주님 안에서 살아납니다.

사람이 선행이나 의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가 없는 것은 아무리 자선사업이나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죽어있는 영이 살아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5-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아야 원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살아나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롬1:7). 신학적인 용어로는 이신칭의(以信稱義), 혹은 이신득의(以信得義), 혹은 간략히 칭의(稱義)라고 합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영접해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하여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망에 속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은 생명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명령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영원한 기쁨의 삶이 있습니다. 여기에 생명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성 안토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많은 재산을 상속 받은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성경에서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께 나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안색이 변하고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

성 안토니는 이 말씀이 꼭 자신에게 하신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청년은 얼굴을 붉히고 돌아갔지만 나는 성경에 나와 있는 주님의 명령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누이에게 양보하고 그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아프리카에서 성자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이 세상에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담의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될 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은혜를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의 놀라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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