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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기독교’ 정당의 창당, 과연 기독교적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집단일 뿐”


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 <바로가기 클릭>


1. 정치와 종교

모든 인간은 정치적인 존재이다. 정치의 핵심에는 재화와 권력의 분배를 위한 의사 결정과 정책 수행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정치는 모두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설령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실제로는 정치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지배세력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지배세력에 동조하거나 지원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정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정치적 기능은 기존 지배질서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성서적 전통은 일반 종교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성서에서는 왕의 직무와 대제사장의 직무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으며, 예언자들은 지배자들에 대하여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배자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방향 전환 촉구로 일관하고 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도 로마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성서의 신앙 전통은 기존의 정치 지배 질서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곳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서가 지니는 정치적 기능은 비판과 방향 전환의 촉구, 그리고 대안 제시를 통하여 현실 변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2. 기독교 역사에서 얻은 교훈

기독교가 제 기능을 담당할 때에 그리스도인은 예수처럼 정치범으로 몰려서 십자가에 처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 세력이 확대되어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기독교는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논리체계를 개발하였고, 따라서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기는 ‘암흑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처럼 타락한 기독교에 대하여 자기 변혁을 시도한 것이었다. 개신교(프로테스탄트!)는 바로 이러한 저항 전통에 서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국가에서도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거듭 중세 가톨릭이 걸었던 길을 걷고는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치 독일 치하에서 독일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히틀러의 통치에 동조하여 유대인 박해에 참여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거듭 기성 정치세력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검토하고 스스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3. ‘기독교’ 정당의 불가능성

독일에는 기독교 정당으로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이 있다. 두 정당 모두 우파 보수 정당들이다. 문제는 이 정당들이 표방하는 정치 이념과 정책들이 모두 “기독교적”인 가치와 지향성에 따라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름에는 “기독교”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 정치에서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도대체 기독교적 정치란 존재할 수 있는가?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합의된 기독교적 판단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가?”

사실상 합의된 기독교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견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한 입장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규정할 경우에,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특정 정치 세력의 입장에 서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집단을 위한 선택일 경우가 많다. 그 경우에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특정 집단의 견해나 입장이 정당화되고 합법화됨으로써 다른 견해나 입장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되고 심판받게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정당의 이름에 “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허락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당은 일단 형성되면 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동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들로만 이루어진 정당이라도 정당은 다만 정치적인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서 형성된 집단일 뿐이다. 그 집단에 대하여 어떻게 기독교적 가치 실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집단이 어떻게 감히 자신들의 견해와 입장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권리를 갖는다는 말인가?

만일 그리스도인이 중심이 된 정당이 탄생한다면 지향하는 가치를 한마디로 압축한 어휘를 정당 이름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합당한 일이다. “기독교” 정당도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치집단일 뿐이므로, 그 명칭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성서적인 기독교 전통을 모독하는 행위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4.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를 위한 제언

개신교 장로가 대통령 당선자라는 사실은 기독교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가 정치적 기득권을 획득함으로써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마침내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 상황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기독교의 정치 참여는 기득권을 상실한 사람들 편에 서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늘 재야 세력으로서 건설적인 비판을 통하여 기득권 세력이 탈선하지 않도록 감시․견제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권력과 물질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주변부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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