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생명이 이겼다

2012년 4월 8일 부활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사무엘기상 2:6-9
주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지켜 주시며, 악인들을 어둠 속에서 멸망시키신다. 사람이 힘으로 이길 수가 없다. 아멘.

고린도전서 15:16-20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20:11-18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아멘.

설교문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역사의 처음이시기 때문에 알파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마지막으로 정리하시기 때문에 오메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지금 우리는 시작과 끝 사이에 죽는 어느 지점에 서 있습니다. 2012년은 어디쯤 될까요? 왜 우리는 오늘 부활절 예배라고 특별히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특별 예배를 드립니까? 부활이 무엇 이길래요?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살피기는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 인간의 언어로 표출하기엔 너무 제한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의 경험, 체험, 사고방식의 테두리 안에서 표현하기에도 너무 제한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가지고, 이미 경험한 선조들의 말씀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고, 재생하고, 그에 대해 감사드리고, 마음에 새기며 그러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더구나 부활은 많은 사람들이 부활했겠지만 부활했던 사람이 직접 우리에게 와서 증언한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부활하셨다는 예수님만 오셔서 우리들에게 부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감사해 오늘 주님의 부활을 송축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세계를 만드셨고, 우주 만물을 만드셨고, 하나님은 이 모든 만든 것에 대해 책임지시겠다고 합니다.

우주만물은 언젠가는 다 구원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인간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으므로, 시작을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삶 또한 마지막에 구원하십니다. 언제 구원하십니까?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무슨 방법으로 구원하십니까? 이것이 오늘 부활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간의 언어와 경험으로 세 종류의 부활을 경험하며 산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 역사를 정리하실 때, 우주만물의 최종단계를 결정하실 때,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실 때,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이 이제는 하나님 나라라고 말 할 수 있을 그때가 종말이고, 마지막 때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때에는 예수님이 구름타고 재림하고, 천군천사들 다 데리고 와서 나팔 불고, 이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를 삼키는 방식으로 세상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이 때 이미 죽었던 자들은 깨어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를 받고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역사의 완성, 인간의 완성, 모든 것의 완성입니다. 그때까지 미루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걸 통해 완성 됩니다. 우리는 이 역사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그 역사를 기다리며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만드신 온 우주역사가 마지막 때에 완전히 변해 하나님 나라로 바뀌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가슴속서 새로운 백성이 되는 그 날, 그날이 바로 부활의 날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완성이요, 우주의 완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 일을 해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유대백성은 믿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도 그 전통을 따라 마지막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부활의 나라로 기다립니다. 유대백성들이 믿는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있었습니다. 또 하나,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 중에 중요한 사고방식을 가진 문화가 있었습니다. 헬라문화입니다. 헬라문화에서는 ‘온 우주 역사가 마지막 종말에 완성이 되고, 세상이 변한다.’는 말을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헬라문화의 관심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닙니다. 육신은 땅에 묻히고, 그 동안 육신 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영원불변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그것이 부활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헬라철학이 말하는 부활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원이 육에서 빠져나가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부활은 믿겠는데, 온 우주가 뒤바껴 부활되고,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두 문화권, 사상권이 완전히 다른 부활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두 부활관 모두를 수정보완하십니다. 먼저, 온 세상이 마감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한 번 시작한 역사는 창조하신 그 분이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을 시작인 알파요, 마지막 완성인 오메가라고 이름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은 믿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도 믿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유대백성이나 우리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하나님이 완성하신다고 믿습니다. 사람의 뜻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보면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게 아니라 예수라는 중간 매개자를 보내 복음을 전파하고, 그를 믿는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마지막 정리하실 때 믿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갑니다.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서 완성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으시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이 언제일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의 시간으로는 계산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세상이 마지막에 간다고 해서 우리 인간도 똑같이 마지막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내일, 모레의 역사는 계속되겠지만 저에게는 세상의 종말입니다. 인간의 종말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 모든 인간관계, 모든 하는 일을 포함한 역사의 종말입니다. 곧 우주의 종말은 제가 죽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다.

헬라사람들은 몸이 죽으면 몸은 땅 속에 들어가 썩어 없어지고, 그 동안 감옥살이 하느라 고생했던 혼은 전(全)우주를 돌면서 영원불변하는 세계를 삽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그런 부활도 전해줍니다. 인간이 죽으면 시신은 땅에 묻고, 아니면 화장해 바다에 뿌리고, 산에 뿌려집니다. 몸은 없고, 혼만 덜렁 나가 돌아다닙니까? 그 혼을 가지고 사람 물체를 만들어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하는 영화 속 존비 입니까? 그런 현상을 부활이라고 보십니까? 예수님 말씀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몸도, 혼도 가지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셨느냐하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도, 혼도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죽습니다. 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혼도 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하나님은 썩을 육 대신 썩지 않을 육으로 바꿔주시고, 썩을 영 대신 썩지 않을 영으로 바꿔 주셔서 사람을 통째로 변화시켜서 부활시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전에 보던 눈, 코, 귀가 있던 예수님은 아는데, 전체가 바뀐 예수는 처음에 몰라 봤습니다. 살아나신 것은 예수님의 몸, 혼이 합일 된 채로, 그러나 썩을 몸이 아닌 안 썩을 몸, 그 몸으로 즉각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자신의 세상 역사는 끝이지만 그것은 사람의 끝이고, 하나님에게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사람의 죽음의 역사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이렇게 읊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그가 아들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세력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역사에서는 죽음이 단절 시킬 수도, 끝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하나님 역사 속에 한 과정, 생명으로 변화시켜서 죽지 않는 역사로 바꿔 주십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부활을 은총으로 받습니다. ‘기꺼이 죽읍시다.’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으면 그 분이 죽지 않을 몸으로 살려 주신답니다. ‘고난을 받읍시다.’ 나아짐을 받는 다고 합니다.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아 생명의 역사로 바꿔 주신다는 역사를 경험하십시다.” 이것이 두 번째 경험입니다. 마지막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죽은 다음에 있을 부활의 나라를 갈구 하고 사시렵니까? 예수님 말씀은 그게 아닙니다. “지금 살아 있는 순간이 부활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죄악이 많은 곳에 은혜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죽음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는 게 아니라 죽음이 있는 곳에 부활의 생명이 싹튼다. 살아 있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죽음이라는 순간에 부활을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고난을 받고, 힘들 때, 작은 부활을 달라고, 그러면 저에게 변화가 생겨 기쁨의, 승리의 경험을 하며 생활 속에 작은 부활을 경험합니다. 고난을 뚫고, 죽음을 뚫고, 간난고초를 뚫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부활의 경험이 죽은 다음이 아니고, 죽기 이전 오늘도, 내일도 작지만 아름답게 맛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경험입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모든 부활이 완전하지 않지만 마지막 완전하게 될 때까지 항상 부활을 경험하고, 끌어안고 살아갑시다.” 여러분 아프면 치료 받으시죠? 저도 치료 받았습니다. 이렇게 애지중지 하는 몸을 죽었다고 땅 속에 버리는 겁니까? 배반하는 겁니까? 쓰레기처럼 그냥 버리는 겁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몸은 그런 몸이 아닙니다. 썩을 몸으로 만들었지만 몸이 죽음과 함께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혼을 빼는 몸이 아니고, 혼을 다시 합친 총체적인 인간,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가 있는 인간으로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온 역사도, 사람도, 하늘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경말씀이고, 증언입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분께 권고 드립니다. 우리가 죽는 날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세상이 부활하는 것 또한 맡깁시다. 그날이 있기까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순간순간을 죽음한테 지지 말고, 새로운 변화를 맛보는 생명과 부활의 순간으로 한 번 바꿔 살아 봅시다. 그리고 감사하며 살아 봅시다. 영원한 나라도 보장이 되어 있지만 한 순간순간의 역사적 순간들도 우리 부활의 수간으로 살고 경험하십시다. 그래서 기도하고, 그래서 찬양하고, 그래서 사는 거 아닙니까? 신앙은 지금도 살아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죽음 속에서도 살아계시고, 죽음 이후에도 부활하셔서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단절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단절을 경험할 뿐입니다. 그 단절은 하나님이 메꾸어 이어 주십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우리를 끊지 않습니다. 죽음도 못 끊습니다. 고난도 못 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귀합니다. 그 사랑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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