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루터라면 ‘신자유주의’ 바벨론 포로된 교회 비판할 것”

신자유주의와 교회의 관계를 묻다(하)- 김경재 편

‘이익’이란 잉여가치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재단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이념인 신자유주의를 종교는, 특히 교회는 ‘대안 부재’란 핑계로 그것에 순응하며, 나아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선전 기지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설사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될지언정 복음적 가치와 위배된다고 선언하며 그것에 대한 저항의 기지로서 자리 매김 할 것인가. 숨밭 김경재 박사는 신자유주의라는 휘황찬란한 이데올로기 안에서 벌이지고 있는 반복음적인, 비복음적인, 반생명적인 현실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존재 양태를 비판하며, 한국 기독교가 갈릴리 예수의 복음과 사돈에 팔촌이라도 관계가 있는지를 의심했다. 역사적으로 흘러내려오는 종교 사업에 가깝게 보인다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 신앙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소위 신자유주의란 체제 앞에 신앙인들은 어떤 결단을 해야 옳을까요.

“문화 중에 문화의 실체인 종교는 현실에 매몰되어선 안 되고, 오히려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그것을 창조적으로 변혁시키는 일을 힘들지만 해야 한다. 겉으로 잘 사는 행복한 사람들의 눈에 비친 현실 진단과는 달리 그런 현실 뒤에 숨은 어둠, 즉 고통당하는 것, 비인간화된 것, 황폐화된 것 등을 끊임없이 회상시키면서 "여기 머무를 수 없다"고, "다른 길이 있다"고 (인간 사회에)말을 해야 한다. 성경 예수 표현을 빌리자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어서 쉽고 사람이 많이 찾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험해서 찾는 사람이 적을 뿐이지 그런 길이 있기에 그 길을 가야한다고 말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목회 일념이라고 해서 작은 교회 공동체를 성실하게 목회하는 목회자를 험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를 땅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인지, 그리스도의 목적인지 한번만 더 물어보면 분명해 질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을 덮고 있는 거대한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휘황찬란한 이데올로기 안에 벌어지고 있는 반복음적인, 비복음적인, 반생명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느게 과연 옳으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 더 나은 세계로 변혁시켜 나가는 데 힘을 모으자고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심지어 그런 쪽으로 가면 자연히 자본주의적 사회 경제 원리 근본에 대한 재성찰을 요구하는데 그와 관련된 발언들이 나올라치면 빨갱이네, 종북이네, 좌북이네 하니 한국 기독교가 과연 갈릴리 예수의 복음하고 사돈에 팔촌이라도 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그보다는 역사적으로 흘러 내려오는 종교 사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 그 만큼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 스스로 반성하고 회개해서 가던 길을 바꾸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거의 어려웠지 않나 싶다. 역사적 큰 전쟁이랄지 문명의 붕괴랄지 혹은 자연의 거대한 재난 등 기후변동이라는 엄청난 충격을 당하고서야 순간이나마 ‘아차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어왔으니 가던 길을, 방향을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정도가 아닐까.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인간은 죄인에 다름아닌데 그것이 듣기는 싫어도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부흥성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에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메시지를 생산하는 것이 그런 교회의 관심사와 모순관계에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교회 자체가 부흥성장하는 것과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는 것은 충분히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명론의 지론에 해당하는데 폴틸리히 식으로는 형태와 역동성을 나는 꽁깍지와 콩알로 비유한다.

콩알은 크게 보면 꽁깍지 안에 들어있지만, 전체로서 보면 콩깍지가 마지막에 봉사하는 것은 콩알을 보호하고, 지켜서 콩알이 영글어 지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추수 끝날 적에 콩알은 끄집어 내서 알곡간에 넣고, 콩깍지는 소죽이나 불 때는 곳에 쓰이듯이 말이다. 그러면 콩깍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당, 총회, 노회 등 교회조직 구조를 비롯하여 신학교는 물론이거니와 교인 머리수까지도 전부 이 콩깍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있어야 하나님 백성들 가슴 속에 자라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실재가 영글어지고 내실화 되기에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나도 제도적 교회 목사로 머물고 있는 것이다. 비록 주일마다 모이는 예배가 아무리 형식적인 면을 띠고 있더라도 말이다. 또 이런 이유로 소위 말하는 무교회주의 같은 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일깨워준 장공 선생을 비롯해 교회의 참 어른들은 콩깍지와 콩알은 같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 둘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할 때, 질을 택하고 양에 유혹당하지 말라고 일러주셨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콩알보다 콩깍지에 우선성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내가 교인 머리수까지 콩깍지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인 머리 숫자는 콩깍지이고, 개인적 혹은 공동체 속에 영적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가 되는 생명의 실재야말로 콩알에 해당되는 것이다. 만약 콩알이 신도수였다면, 독일 히틀러가 나올 때 독일 국가 교회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크리스천은 왜 히틀러를 막지 못했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콩깍지에 해당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교인 머리수’가 많아지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가 발전하는 것과 등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이고, 착각이다.”

- 신자유주의를 지속 가능한 체제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물리적으로 그것이 불가하다는 말을 한다. 기초 자체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구 자체의 재원이나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과 기후 붕괴 등 자연 재난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시사하는 바는 신자유주의란 경제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작동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신앙인들에게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평가 되어야 옳을까요.

“예수의 아흔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나가는 비유를 보더라도 지금 신자유주의가 펴고 있는, 하나를 위해서 아흔아홉을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논리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어려운 논리가 아닌 것 같다. 성서는 분명하게 아흔아홉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혹은 성서의 뜻, 복음이 바라는 세상은 전진이 좀 늦더라도 즉, 3만불까지 못가더라도 아니 설혹 2만불 보다 적은 1만 5천불로 내려가더라도 1천 5백불에 머무는 동료 인간을 찾아서 데리고 와 함께 어깨 동무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윤리이고, 예수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전에서 보면 아무리 미사여구로 자기를 정당화한다고 하더라도 신자유주의가 뿌리 내리고 있는 철학과 실재관과 신념체계에 기독교 복음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본다.

루터의 종교개혁 단편 저작 중 교회의 바벨론 포로가 있다. 당시 루터의 바벨론 포로는 로마의 교황권에 교회 전체가 속박되어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만약 지금 여기에 루터가 와 있다면 글자 그대로 교황 정도가 아니라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교회의 바벨론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제국에 속박된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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