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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좁은문이 생명문, 옳은게 좋은 것

에큐메니칼 설교 2012년 5월 13일, 본문: 히브리서 11:38-12:2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
계절적으로 5월은 봄은 봄인데 이미 초여름을 예고하며 생명의 분출이 한껏 절정에 달하는 가장 좋은 달입니다. 지난주 어린이 날을 지내고, 어버이주일과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등 ‘생명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지혜의 사람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어버이와 스승들은 ‘삶의 지혜’를 저장하고 있는 저수지와 같으며, 지혜는 과거를 기억하는 인간의 자기초월능력에 기초합니다. 기억이란 단순히 기록하여 놓고 돌비에 새겨넣어 굳어진 정보문서같은 것이 아니라, 퇴비같이 삭아져서 오늘의 생명에 밑거름이 되는 활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억이 다 좋거나 창조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5월은 5.16 군사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받았던 아픈 상처가 생각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 두가지 역사적 사건은 각각 발생한지 50년과 30년이 지나갔지만, 우리 한국사회는 과거사의 그 아픈 기억을 창조적 생명거름으로 완전히 삭혀내서 역사적 지혜로서 승화시키지 못하여, 아직도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음도 부인못하는‘불편한 진실’입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오늘을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자양분을 얻으며, 과거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을 확대심화시키면서 ‘생명은 개체이면서 전체요, 개인이면서 공동체이다’는 진실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동시대인들중 나와 다른계층 사람들의 희비애락을 공감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타인의 자리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그사람의 성숙도와 신앙적  영성 수준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대학교 젊은이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말하기를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학교 학생으로 앉을 수 있기 위해서,  불과 30-40년전에 얼마나 많은 여러분들의 직접 선배들이 생명을 바쳤고 희생과 고난을 당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바 있습니다. 민주주의, 인권존중, 학원자유, 그리고 정의와 진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학생, 노동자, 지식인, 언론인, 농민, 그리고 이름없는 사람들이 우리들이 누리는 오늘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는가를 기억하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다운 ‘자기초월능력’의 첫단계인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알수록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진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할수록 동물같은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의 위기는 먹을 양식이 모자라서 오는 위기가 아니고, 인간이란 ‘역사적 존재요 앞선 희생자들의 생명 거름밭을 토대로해서 피어난 꽃’이라는 진실을 부정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모두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되고, 자기자신이 혼자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서 부와 권력을 누린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연대감은 실종되고 정파와 당파와 기업과 살림 모든 영역에서 닫혀진 패거리의식이 우리사회를 지배합니다. 인애(仁愛)의 맘은 없어지고 경쟁과 적대적 비판이 지배하는 사회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걸었던 위대한 족적을 회상시킴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꺽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군대를 물리쳤습니다”(새번역, 히11:33-34) 라고 기억을 되살려 회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하기를, 그들의 영웅적인 삶이 초자연적 보호를 받아서 초능력으로써 쉽게 이뤄진 일이 아니고, 고난과 죽음을 무릅쓴 삶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어떤이들은 고문을 당하고, 조롱을 받기도하고, 채찍으로 맞으며, 결박당하고 옥에 갇히며,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히11:35-37)라고 기억을 회상시킴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히11:38)라고 중요한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성은 아직은 하나님의 도성도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가 다 이뤄진곳아 아니기 때문에, 근본 바닥에 폭력성과 이기성과 불의와 지배욕과 명예욕이 지배하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신앙의 조상들이 모두 믿음으로 살아간 위대한 신앙인이었지만 ‘약속된 것은 받지 못했고, 결승점에 이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히11:40)라고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다시말해서, 지난 1950년이후, 격동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의로운 사람들의 희생과 피와 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세대가 어떤 삶을 사는냐에 그 의미가 살아나든지 무의미한 헛일로 끝나든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어떤 일간신문에 99세를 맞이하신 한국 유기농운동의 선구자 원경선 옹의 삶의 이야기가 소개된바 있습니다. 원경선옹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보통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기독교신앙의 진정성을 교리나 신앙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삶으로서 살으시고 세상에 증언하신 훌륭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원경선 옹은 1970년대부터 화학비료를 전혀쓰지 않는 유기농 운동을 펼치시고 ‘정농회’를 결성하신 선구자이시며,  사업으로서도 ‘풀무원농장’을 개척하여  우리사회에 먹거리 녹색생명운동을 펼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의 아들로서 정계에서 활동하는 원혜영의원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 원경선옹은 자녀들에게  삶의 인생철학을 교육하시되 늘 말씀하시기를 “좋은게 좋은게 아니다. 옳은게 좋은 것이다”라고 늘 가훈으로 말씀하셨다고 회상했습니다.

태종이 된 이방원은 고려충신을 회유하면서 은근히 말하기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넝쿨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라고 노래했다고 전합니다. 세상에 의리와 진실과 옳음과 바름은 상대적인 것이니,  좋은게 좋은 것이요 지조를 굽히고 타협하고 야합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자는 회유책 노래로서 유명하지요. 사람의 인생은 결국 이방원같은 인생철학이냐 원경선같은 인생철학이냐로 갈라짐니다. 독실한 삶으로 신앙이 무엇인지를 증언한 원경선옹의 자녀를 향한 가훈 “좋은게 좋은 게 아니다. 옳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자녀들에게 말해주고 그것을 삶으로서 보여주는 크리스챤 부모들이 많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5.16이나 5.18 군사적 불행사건을 우리가 기억하고 역사를 바르게 서술하자는 목적은, 과거사에 사로잡혀 보복과 원한을 계속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군사정부 시절 가장 잘못된 가치관이 우리사회를 밑바탕에서 병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군사정부의 정치철학은 무엇입니까? “목적이 좋으면 수단방법은 굳이 정도를 따르지 않아도 좋다”는 철학입니다. 거기에서 “좋은게 좋은 것이지, 꼭 옳은게 좋는 것은 아니다”는 야합과 불의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심지어, 요즘 가장 진보적임을 자처하고 가장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정정당당하다고 자처하는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논쟁에서조차, “목적이 좋으면 수단방법은 굳이 정도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탄의 속삭임 소리를 듣는것 같아서 통합진보당의 선전(善戰)을 응원하던 국민들마저도 섬칫한 무서움을 느낌니다.

기독교 신앙인은 목적이 좋아야하고, 방법도 좋아야 합니다.  시작과 과정과 끝이 모두 진실과 옳음으로 관철해야 합니다. 그러한 댓가로 일시적으로 고난과 손해를 입더라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이요, 잘되는 길이요, 번성하고 축복받는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시편제1편).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히12:2)고 권고합니다.

개역성경도 잘된 번역본이지만, 헬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봅시다”(새번역)로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생활이란 어떤 것인지를 앞서서 본을 보여주시고 선도하신 ‘파이어니어’(pioneer)요 신앙인의 온전한 모습을 완성해보이신 '온전하신 완성자'(perfector)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직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7:13-14, 눅13:24). 예수님의 이 말씀을 90평생을 살고 본 원경선 옹의 표현으로 다시 말하자면 “좋은게 좋은 게 아니다. 옳은 게 좋은 것이다”로 표현된다고 말 할수 있지요. 오늘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위기와 특히 기독교계 위기는 예수님의 경고와 원경선옹의 삶의 철학적 신념을 무시하고 부정하는데 있다할 것입니다.    

어버이주일을 기념하는 것은 자녀들의 효도를 받고 효심을 강조하자는 주일이 아니라,  어버이들이 참된 삶의 지혜와 믿음을 자녀들에게 바르게 전해주었는지를 성찰하고, 좁은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옳은것이 좋은 것이라는 진실을 다시한번 모두 회복하자는데에 있는 것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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