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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칼럼] 브로커가 없어야 산다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예수가 살았던 로마 사회는 브로커(중개인) 사회였다. 황제를 정점으로 권력과 부를 중개하는 브로커들이 복잡한 위계질서를 이루며 로마 세계를 지배했다. 로마의 권력과 부를 맛보고 누리려면 이들을 통해야 했다. 로마제국의 브로커체제는 소수에게 권력과 부를 나누어주고 이들을 통해서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체제였다.

정치만이 아니라 종교도 브로커들이 지배했다. 대사제를 중심으로 사제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종교를 지배했다. 이들은 하나님과 민중 사이를 중개하는 브로커였다.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종교행사에 참여할 수 없고 종교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이 지배한 예루살렘 성전 종교는 민중을 수탈하여 엄청난 부와 사치를 누렸다. 또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성경해석을 민중에게 강요함으로써 민중을 소외시키고 억압했다. 

정치·종교의 브로커들에게 짓눌리고 수탈당한 민중은 굶주림 속에서 온갖 질병을 앓으면서 죄인 취급을 당했다. 예수는 민중에게 하나님 나라(하늘나라)를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는 한 마디로 브로커 없는 나라였다. 민중과 하나님이 직접 만나고 하나님 품에서 서로 사귀는 공동체의 나라를 예수는 열었다. 예수가 선포한 브로커 없는 나라는 하나님을 모시는 민중생활자치 공동체였다.

화물연대노조가 총파업을 벌였다가 운임 10% 인상을 합의하고 파업을 중지했다. 화물노조가 파업을 벌인 이유를 살펴보니 문제의 핵심은 브로커 체제에 있었다. 대형운송회사와 알선 업체가 운임의 37%를 떼고 기름 값과 통행세 등을 내고 나면 화물차를 사서 끌고 다니는 노동자의 월수입은 150만원 안팎이다. 무슨 소개비가 37%나 되는가? 어떤 경우에도 소개비는 5%가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산재보험도 들지 못했는데 갈수록 수입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운송회사들의 수입은 크게 늘고 노동자의 수입은 줄어서 올해는 월수입이 100만원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불의하고 부당한 일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체제가 어디 있는가? 대형운송회사와 알선업체로 이루어진 브로커체제를 없애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축소하면 일자리도 크게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수입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왜 정치인들과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도 정치인들과 정부가 노동자들의 법적 보호를 약속했다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2008년 이명박 정부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 변화도 없다. 이렇다보니 국민이 정치권을 불신하는 것이다. 왜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안철수를 지지하는지 알 것 같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브로커체제를 뜯어고치지 못하는 것은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예수가 브로커 없는 세상을 선언한지 2천년이 지났건만 도대체 변한 것이 없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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