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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의 자살예방 칼럼] 상실을 나누는 사람들 (1)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지난 두 번의 칼럼을 통해 자살예방 지킴이(Gatekeeper)에 대한 설명을 했다. 필자가 ‘생명의 친구’라는 단어를 들을 때 다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이 단어를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자가 다른 의미로 듣는 단어가 있는데, ‘자유지대’와 ‘자작나무’이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 이 단어를 생각하는지 먼저 떠올려보기 바란다.

필자는 이 두 단어를 자살유가족의 의미에서 듣는다. 자유지대는 ‘자살 유가족 지원 연대’의 첫 자들을 따서 만든 단어이다. 국내에 여러 자살유가족 지원 모임이 있다. 각자 나름의 고충과 보람을 느끼며 현재에 이르는데, 자유지대는 이들의 유기적인 협조와 지원을 위해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만든 모임이다. 자작나무는 서울시자살예방센터와 강원도광역정신보건센터의 자살유족 자조모임 명칭이다. “자살유족의 작은 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자살유가족이라는 용어 대신 자살유족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혈연의 가족이 아닌 자살자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던 사람도 포함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의도가 그렇다면 더더욱 자살유가족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끈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인 2월 16일에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예배가 목회사회학연구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크리스천라이프센터의 공동주관으로 아현감리교회 예배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위로예배의 주제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였다. 예배 전에는 관계자들이 뜻을 같이 하여 기독교 자살예방센터를 세우기로 했고, 현재 활동 중이다. 필자도 자유지대의 일원으로서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예배에 참석했다. 필자가 올 해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 개발로 참여하고 있는 영역이 자살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이러한 예배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점차로 구체화하고 가시화하고 있다. 바로 ‘예식(Ritual)’에 관한 것이다.

예식은 선진들이 대를 전해가며 전수해온 문화 산물이다. 예식은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거치게 되는 다양한 심리적인 과정과 대인관계 기타 사회문화의 요건들을 비교적 단 기간에 조율하고 응축시키는 효과를 가진 오랜 경험의 축적물이다. 결혼식, 졸업식, 장례식, 제사 등의 전통은 그러한 의미와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예식의 대표적인 예들이며 예배도 예식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예식은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감정을 억제시키기도 하는 이중의 기능을 한다. 장례식장을 생각해보자. 장례식장의 숙연한 분위기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어떤 이는 곡을 하면서 감정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끌어올리는 것만 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감정의 정화를 느끼기도 하고 격한 감정을 억제해주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장례식의 절차를 통해 우리는 몇 달 걸리는 다양한 반응들을 며칠 안에 응축하여 보내며, 그로 인해 혹 여러 달을 보내며 마음앓이를 했을지도 모를 상황을 비교적 순조롭게 지나가게 된다. 모든 예식이 그러하듯이, 예식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다. 장례식의 경우 고인만을 위한 자리가 절대 아니며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방문하는 모든 조문객을 위한 자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자살자에 대해서는 충분한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가족은 이로 인해 문화의 유산인 예식, 즉 ‘정리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교회 중에는 자살이 죄이기 때문에 자살자에 대한 장례예배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장례예배를 드릴 때 죽음의 이유를 죄라고 하여서 장례예배를 거부하는 다른 주제가 있는가? 좀 더 과한 반문으로,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면 장례예배는 하면 안 되는가? 장례식이 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생각해도 이러한 부담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또한 모든 경우에서 고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위험한 발상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관행들은 고인을 정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의 가족들을 정죄하는 수준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인데, 그 입장이 되면 본인들만 죄인이고 다른 모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누가 그들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는지 자성해야 하겠다. 그리고 다른 것 다 벗어 던지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교회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식은 나눔이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는 최상의 자리이다. 그래서 예배의 예식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표적을 보이신 것도 이러한 의미를 같이 담고 있다. 그렇다면 자살유가족은 누구와 나누는가? 자살유가족 자조모임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양극성을 보인다. 자살로 먼저 떠난 이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의 상위권에 들고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의 상위권에도 드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와 함께 함은 가장 큰 힘이 된다. 반면 가까운 사람들의 무관심과 그릇된 반응은 가장 큰 상처가 된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자신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나게 되고 자조 모임을 통해서 그 부분을 해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조 모임은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가져야만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가 좀 더 자살유가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는 자세를 배워야 할 것이다. 생명의 친구가 자살예방을 위해 기본적인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자살유가족과 함께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에 상응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좀 더 논의하기로 하자.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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