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신명기 6:4-9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또 당신들은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아멘.
에베소서 6:1-4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하신 약속입니다.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아멘.
마태복음서 12:46-50
예수께서 아직도 무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와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선생님과 말을 하겠다고 바깥에 서 있습니다."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고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아멘.
설교문
여러분 찬양을 부를 때 즐거우신가요? 기독교가 복음을 전파할 때 받는 측에서 큰 감동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찬송이었습니다.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복음에 들어오기 전 복음이 중국에 먼저 전파됐습니다. 중국에 복음이 전해지고, 신앙을 갖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 졌습니다. 많아진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찬송을 듣고 찬송의 곡을 즐기고 가사를 음미하면서 주님을 받아드린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가는 곳곳마다 찬송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찬송도 있습니다. 중국인의 애창곡이며, 제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모두 찬송가 가지고 계시죠? 한 번 찾아보실래요? 563장입니다. 어린이 주일 때 부르는 찬송입니다. “예수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중국인들이 이 찬송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이 찬송만 부를면 예수 믿는 모든 중국인들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나라 찬송가 중에서 서양 사람들이 쓴 가사와 곡을 번역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국내에 작곡·작사가를 선택해서 우리 찬송가에 많이 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찬송가에 중국 찬송가에서 직접 번역한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곡이 바로 563장의 <예수 사랑하심을>입니다. 이 찬송을 통해 우리는 중국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그 분은 나를 사랑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한다.” 이 이야기가 중국 전체를 휘감싸 안았습니다. 563장 맨 위쪽에 보시면 `CHINA`로 쓰여져 있습니다. 중국식 곡조에 따라서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식 곡조에 따라 부르니까 있는 그대로 중국 가락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곡을 쓴 사람은 W. B. Bradbury 입니다만 이 분 자신도 중국인들이 너무 잘 부르니까 CHINA하고 그대로 리듬을 써놨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보시면 영어로 된 원제목은 “예수님은 나를 사랑합시니다. 그 사실을 내가 압니다.” . 이 원제목에 중국어로 제목을 바꿔 달았는데 중국어로 이렇게 됩니다. 중국어로 예수가 ‘야수’입니다. 그 다음 사랑합니다는 뜻은 사랑 `애(愛)`자를 쓰고, 마지막 자기는 자기 `아(我)`자를 씁니다. 합치면 “야수 애 아”입니다. 제가 발음을 맞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주 예수 아이 워. 나는 사랑합니다. 아이 워.”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이 예배 시간에 우리가 믿는 이 예수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확신하십니까? 예수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심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확신이 없다면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없으시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확신이 있으시면 축복송을 부르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 사백년 식민생활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광야에 왔습니다. 사십년이 지나갑니다. 어느 날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 십계명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십계명을 지켜라."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를 다시 부릅니다. “지금 너희들이 있는 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모든 백성이 언덕까지 올라가 저 강 너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봅니다. 가나안을 보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 땅을 통해 축복을 받고 싶으면 내 말을 듣고 지켜라.” 여러분 광야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그 엄청난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보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선포하십니다. 모세가 이렇게 합니다. 군중들을 앞에 놓고,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잘 들어 보세요. 실제로 어떻게 표현하였냐면 “이스라엘아 들어 보아라.” 히브리어로는 “쉐마(들어보아라), 이스라엘!”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신명기 6장 4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님의 복음대로 사는 학교, 가정, 개인의 윤리, 교육, 도덕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합친 윤리헌장, 도덕헌장, 사랑헌장을 한 마디로 합쳐서 ‘쉐마’, ‘들어 보아라’라고 합니다. 오늘 쉐마는 여러분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들어 보아라. 경동교회 참석하신 사랑하는 여러분, 들어 보세요!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가정을 꾸미고, 복 받고, 장수하며 살 수 있는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이 말대로 하라. 주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라. 그 분은 한 분이시다. 그것이 여러분과 무슨 상관있습니까? 모세를 통해서 여러분께 말씀 드렸습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나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다른 것은 섬기지 마라. 이것만 지키면 내가 복을 주마. 똑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한 분, 살아계신 주님은 한 분, 그 분만 섬겨라.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고, 머리에 띠를 하고, 잘 때나, 나갈 때나 나는 주님 한 분만 믿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오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그 말씀을 받아서 "사랑하는 부모 되는 여러분 자식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자식 되는 여러분, 보무님 공경하십시오. 아내와 남편은 서로 사랑하십시오." 시간적인 제약으로 제가 오늘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드려야 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화평하십니까? 부모와 자식 간에 불화가 있습니까?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불화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가 말하는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내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다른 말로 내 뜻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나는 분노합니다. 아내는 남편한테, 남편은 아내한테. 자식은 부모한테, 부모는 자식한테 서로서로 분노합니다. 결국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은 ‘힘의 갈등’입니다. 내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힘이 있어야 평정이 되는데, 왜 내 힘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소위 권력투쟁(power struggle)입니다. 힘의 경쟁이 없으면 그 가정은 평온할 것입니다. 싸움 하실 때 서로 기 싸움 하시는 것 아닙니까? 누가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내 맘대로, 내 말이 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모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절대적인 힘은 한 사람 밖에 없다.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이 집의 주인인 ‘여호와 하나님’만 절대자다. 이분이 주인이시다. 주인인 하나님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주님이 왜 이 말씀을 하시냐면 주님을 모시는 가정이라는 말은 주님이 힘을 원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유일한 힘이시면, 그 외의 모든 사람은 서로 절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공경하고, 나누고 사는 것이 가정이 행복한 비결입니다. ‘주님만이 이 집의 주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아내와 남편은 행복합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그 분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가정은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사는 가정은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이 흘러넘칩니다. ‘내가 주인이다’라고 하는 가정은 고뇌와 분란이 끊임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유일한 주님이라는 말은 여러분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지, 절대자가 아닙니다. 신은 주님 혼자이며, 그 외의 모두는 인간입니다. 신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또한 신인척 하지 마십시오. 신의 고뇌를 주장하지 마십시오. 사람인 그대로 삽시다. 예수님 말씀이 나 신은,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어떻게 절대자인가 하면 나와 함께 사는 그대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어려움을 내가 스스로 짊어진다. 그대들이 죄를 지어 죽을 운명에 빠지면 죽음까지도 내가 대신 짊어지마. 나는 높이 된 신이 아니고,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는 신이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신은 절대적입니다. 여러분 이런 신 보셨나요? 우리가 믿는 신은 그런 신입니다. 가장 헌신하는 신, 자기 몸을 대신 드릴 줄 아는 사랑의 신이 우리들이 모시고 싶은 유일하신 한분이십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죽기까지 사랑하고 헌신하면, 주님 닮은 것입니다. 자기 주장에 앞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면 복된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된 여러분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세요. 절대자는 부모님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오직 주님뿐입니다. 그 주님 안에서 공경하세요. 공경은 사랑의 다른 말입니다. 위로 올라갈 것에는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부모에게는 공경, 하나님에게는 예배, 내리사랑에는 사랑, 우애,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주 안에서, 절대자 하나님 안에서입니다. 그 절대자는 죽음가지도, 아픔까지도 모든 것을 짊어지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절대자이십니다. 행복하지 않으십니까? 누가 몸을, 목숨을 바쳐 이렇게 허신의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님만 가능하십니다. 어느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 사는 가정에 부모하고 갈등이 있고, 절망이 있고, 아픔이 있을 때 그걸 그대로 두면 그 안에 속한 사람은, 가정은 조금씩 조금씩 늙어가고 죽어갑니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내일의 희망을 찾고 주님을 따라서 웃음을 찾는 가정은 조금씩 조금씩 젊어지고, 생명을 유지해 갑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희망은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두는 항상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아플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에 빠지면 희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독일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라는 신학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전체가 절망에 빠졌을 때 본회퍼는 이것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마치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때 너무 비참하게 힘없이 죽어갔다. 하나님의 아들이 저렇게 힘없이 죽어 갈 수 있나...” 그렇게 죽어간 하나님을, 예수님을 보고 본회퍼는 “정말 무력한 신, 조금 있다가 죽음을 이기고 예수가 부활하셨고, 하나님이 그를 살려 내셨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활의 힘. 무력함 속에 있는 힘. 그 힘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독일 사람이라서 독일 말로 재미있는 말을 했기에 제가 인용하겠습니다. 무력함 속에 있는 힘. 재미있는 표현인데요. Macht in die Ohnmacht. 영어로 바꾸면 powerful in the powerlessness. 힘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서 드러나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 하나님은 힘이 있어서 신이지만 힘없는 인간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부활의 힘, 생명의 힘. 이 힘이 여러분 가정에 주인이 되어라. 그것이 주님의 축복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왔습니다. 어머니하고 형제들이 보러 왔는데 예수님 말씀이 절망 속에서의 희망의 힘은 나와 천륜을 나눈 사람만 가정이 아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형제이며, 자매이고 어머니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장로 임직하셨지요, 집사시죠, 권사시죠, 신도시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시기만 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어디든지 성립합니다. 그곳에는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 축복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를 살아서도 잘 섬기고, 죽어서도 잘 섬기면, 부모가 자식을 살아서도 사랑하고 죽어서도 사랑하면 이 땅에서 오래 살고 영원히 잘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이가 길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얼마를 살든지 자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의 가정이 끝없이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 축복 원하시지요? 교회도, 가정도, 이 사회도 하나님이 주인이시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게 속박 당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믿으면 그 분은 저를 해방시키십니다. 저보고 신이 되라고 하지 않고, 남편이 되라고 하십니다. 남편은 제 아내가 답습할 권한이 없습니다. 저 혼자만 가진 유일한 권한입니다. 제 주인이 하나님일 때만 제가 남편일 수 있습니다. 제 주인이 하나님일 때 제가 아내일 수 있습니다. 제 주인이 진정한 하나님이면 저는 진실 된 그리고 아주 힘센 아들이고 딸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을 만드십시오. 각자 맡은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해방시켜서 사랑으로 한 가정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의 가정 이루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마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도 사랑의 공동체 만듭시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