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이사야서 55:1-4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아멘.
고린도전서 9:19-23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14:16-2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잔치 시간이 되어, 그는 자기 종을 보내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십시오’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은 그에게 말하기를‘내가 밭을 샀는데, 가서 보아야 하겠소.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하였다. 다른 사람은‘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하고 말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내가 장가를 들어서, 아내를 맞이하였소. 그러니 가지 못하겠소’하고 말하였다. 그 종이 돌아와서, 이것을 그대로 자기 주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더러 말하기를‘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다. 그렇게 한 뒤에 종이 말하였다.‘주인님, 분부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다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아멘.
설교문
우리 삶은 아름다운 찬양이 많은가하면 서글픈 현실도 많습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뉴스를 접하다보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어두워졌나 싶을 정도로 힘든 이야기, 서글픈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희망이 없을까 하고 찾아봤습니다. 신문기사는 아니고, 어느 책자에 소개된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여성은 이름이 김해영 씨(47세)로 현재 국제사회복지사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여성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폭음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아들을 기대했는데 딸이 태어 난 것에 화가 난 아버지는 아이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쳤고, 이로 인해 아이의 척추 뼈가 상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성은 마흔 일곱 살인데도 지금 키가 134cm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정신병에 걸려 집을 나갔습니다. 이 여성이 14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기에 어느 한방 병원 원장님 댁의 식모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당시 월 3만원을 받았습니다.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원장님 사모님이 기특하게 봐주셔서 천자문도 가르쳐 주고, 우리말로 번역 된 사서삼경도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편물학원에 등록했습니다. 한남동 큰 고가 밑에 한남직업전문학교가 있는데, 그곳에서 공부한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5년 동안 편물공부도 하고,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공부도 많이 해 검정고시도 합격했습니다. 20살이 되던 해에는 세계장애인 기능대회에서 편물짜기로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대단한 여성입니다.
이 여성이 이렇게 고백 합니다. “편물학원 다닐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 예수 믿으면 착실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등록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아프리카 보스아나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선교사를 모집했고, 거기에 응시해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이후 무려 14년 동안 우열곡절을 겪으면서 보스아나에서 열심히 일해 많은 학생들과 제자들을 길러 냈습니다. 39살이 됐을 때 뉴욕에 있는 선교본부의 주선으로 뉴욕 나이약(Nyack) 대학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이후 자력으로 공부해 콜럼비아(Columbia)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의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이것이 이 여성이력의 전부입니다. 이 여성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물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지금 앞에 놓여 있는 "오늘"에만, 곧 장애물만 생각하고 절망에 빠져 있으면, 그것은 너무 인생을 공짜로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에게 말도 안 걸어보고, 앞으로 살아 볼 인생에게 기대도 안 해보고 제 값을 받으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자기 앞에 놓인 무수한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을 자기 탓으로, 부모님 탓으로, 사회 탓으로 알고 돌리지 마시고, 나는 가장 나답게 살아야 한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결심하고 장애물을 한 번 뛰어 넘어 봅시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자기 좌우명으로 3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자서, 자애, 자신”입니다. 자서(自恕)는 나 자신을 미워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해 주고, 자애(自愛)는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자신(自信)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자기믿음입니다.
이 여성의 이야기 가운데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여성이 평생 살아오면서 세상으로부터 훌륭하다고, 아름답다고 칭찬 받았을 때가 아프리카 이었습니다. “자신들을 잘 도와주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키 작고 볼품도 없는 자기를 향해 “정말 아름답다(You are so beautiful!)”고 고백합니다. 이 한마디가 나를 완전히 살려줬습니다.” 세상이 날 보고 언제 한번이나 아름답다고 했습니까?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저는 이 여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는 가정폭력의 희생자, 그러나 그 역경을 이기고 세상의 많은 장애인들을 위한 헌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는 모든 자학, 아픔, 고난에서 해방 받았다. 나는 자유하다. 나는 자유인이다. 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까?" 하며 고민했을 것입니다. 아마 이 여성은 이 자유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사랑으로 봉사하는 걸로 사용했다고 믿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다. 목마른 사람 있으면 와서 내가 주는 물을 그냥 마셔라. 돈 없는 사람도 와서 값없이 마셔라. 내가 주는 포도주와 젖을 마셔라.” 이 말은 이 땅이 주는 모든 축복을 은혜로 줄 테니 지불하지 말고 그냥 받아먹고 마셔라. 그러면 네 안에 있는 영혼이 살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몸은 죽고, 혼이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격이 살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살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네 안에서 살아 너를 살찌게 할 것이다. 그러니 와서 먹고 마셔라. 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의 이야기 이고, 아까 말씀드린 김해영이라는 여성분은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까, 세상이 그렇게 말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전 감히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보고 당신들 참 아름답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셨습니까? 일을 하던, 노래를 하던, 잠을 자던, 무엇을 하던 하나님은 우리보고 "정말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잘 사는 나라들의 연합체입니다. 이 기구에 한국도 가입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소득 2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을 가진 나라라는 의미의 “20-50 클럽”에 7번째 나라로 가입했습니다. 이 클럽에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일본 그리고 그 다음이 우리나라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언제 우리나라가 이렇게 까지 성장했는가 싶어 참 감격스럽습니다. 그런데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물었더니 한국인은 36 국민만이 행복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에 꼴찌에서 첫 번째입니다. OECD평균인 59에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미국인은 얼마나 행복하냐는 질문에 국민의 70가 행복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국은 개인주의가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입니다. 개인의 권리, 자유 그래서 개인주의 지수가 91점으로 제일 높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공동체가 강한 나라로 개인주의가 18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을 요청할 친구가 많은지 물어 봤더니 한국이 OECD 국가 중에 꼴찌입니다. 개인주의의 대한 수치가 제일 낮은데도 막상 도움을 요청할 친구나 가까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공동체주의 속에 살면서도 도움 요청할 친구도 많지 않습니다. 개인주의가 제일 높은 미국인이 도움을 요청할 친구가 있느냐는 물음에서도 대답이 제일 높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개인주의가 발달된 나라는 도움을 요청할 친구도 많고, 개인주의가 발달되지 않은 나라는 도움을 요청할 친구가 많지 않답니다. 이 통계를 통해 한국이 행복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받기만 하고, 남을 돕는 것이 적은 나라는 행복하지 않다. 받고 남을 돕기를 즐겨하는 나라의 국민은 행복하다.” 이게 바로 결론입니다.
또 하나의 통계는 이렇습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랑의 봉사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십니까 하고 물어 봤더니 OECD평균은 4분인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은 1분이고, 미국인은 8분입니다. 이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저는 남을 돕는 나라 사람이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받는 나라가 행복한 게 아니고, 돕는 나라가 행복합니다. 축복을 받는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고, 받을 축복에 감사하여 이웃을 돕는 나라 사람이 행복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어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한테 축복주심을 감사해야 합니까? 개인주의가 발달되었지만 도와줄 사람이 많은 나라와 개인주의는 아닌데도 도와줄 사람이 많지 않은 나라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한 가지 결단했습니다. 나는 본래 자유한 사람이지만, 자유 없는 사람을 위해서 내 자유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유대인 사람을 위해서 유대인처럼 살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처럼 살고, 죄지은 사람을 위해서는 내가 의인이지만 죄지은 사람처럼 삽니다"라고. 죄 없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를 같이 지시고 우리와 함께 죗값을 치루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진실입니다. 죗값을 치루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죗값을 치룬 다음에는 모두를 다 살려서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죗값을 치르려고 죄인이 되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병자를 고치려고 같이 아픕니다. 이것이 자유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소록도에 가면 문둥병 환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과거 6·25전쟁 이후 문둥병환자(한센병환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의사 한분이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소록도에 갔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의 마음도 얻고, 병도 고치기 위해 스스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의사의 손가락이 짤려습니다. 집물이 났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선택해 많은 사람은 고쳤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화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의 하나입니다. 말씀드렸던 김해영이라는 여성이 보스니아 가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은 아름다운 봉사를 많이 합니다. 하나님은 오셔서 죄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죄를 자기 몸에 지시고, 기꺼이 죗값을 받으시고, 함께 죽으시고, 이를 통해 모든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하고, 해방을 받아서 자유인이 됩니다. 봉사는 자발적으로 자유로 하는 것이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본래 자유인이지만 자유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자유를 포기합니다.” 저에게도 자유가 너무 귀한 축복입니다. 저도 자유를 제일 좋아합니다. 저는 묶이는 거 싫어합니다. 강요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잔소리도 싫어합니다. 저는 자유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유가 무엇입니까? 정치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자유란”하고 정의가 많습니다.
제가 오늘 성경말씀이 정의하는 자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모든 죄악의 올무에서 해방시켜서 자유케 하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 5:1) 하시는 해방 된 자유입니다. 죄악에서, 잘못에서, 아픔에서, 질곡에서 다 벗어났으니 여러분은 자유 합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신앙이 말하는 자유입니다. 제가 자유인이 될 때 제 앞에 폭력을 휘두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저는 자유 합니다.”라고 선언할때, 저는 폭력의 노예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억압자 앞에 서서 저는 자유 합니다. 저는 상대방의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억압에 순응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웃과 함께 서 있는 곳은 하나님 가슴 속입니다. 그 안에서 저는 이웃인 압제자와 함께 서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누구로 부터도, 무엇으로부터도 자유 합니다. 자유인으로 부름받은 축복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자유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자유함을 얻습니다. 절대로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구차하게 굴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자유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자유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3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함을 얻었으니 이 자유를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종노릇하는데 쓰십시오.” 진실로 자유한 사람은 자유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사랑의 정신으로 봉사하는 방식으로, 종살이 하는 방식으로 자유를 행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키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유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보면 멍에에서 해방 받는 자유가 있고, 동시에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두 자유 어느 것도 없애 버리면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배고픈 형제자매 앞에서 나는 자유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랑으로 먹을 것을 주어야지요. 사랑으로 베프는 자유입니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사람 앞에서 나는 자유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마실 물 주어야지요. 사랑으로 베프는 자유이지요.
오늘 예수께서는 잔치를 베푸십니다. 제자들한테 말합니다. “잔치가 있으니 초청장을 보내라". 많은 사람에게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땅을 사서 못 가겠다고, 장가들었으니 못 가겠다고, 소를 샀으니 못가겠다고 사람들은 저마다 핑계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는 일단 자리를 채워야 하니 길가에 가서 거지, 병자, 앉은뱅이 다 데려다가 억지로라도 이 천국을 채워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채웠습니다. 예수님이 그 전에 무엇이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자유 함을 얻은 사람은 많은 사람을 초청할 수 있지만, 단 배부르고, 잘났고, 여러분에게 초청 받은 다음에 값아 줄 사람은 초청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소를 베풀었는데 소를 다시 받을 거니까요. 그런 초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도와 줘야 하는가면 내가 아무리 도와줘도, 초청해도 그 다음에 초청해 줄 만큼 부자도 아니고, 힘도 없고, 가난한 사람을 초청하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도움을 되돌리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도움은,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습니다. 세상에서 한 푼 주고 한 푼 받는 축복은 축복이 아닙니다. 저는 이 말씀을 다시 보면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리가 베풀어도 우리를 도로 도와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이 진실 된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아무리 높지만 낮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낮은 곳에 가서 베풀마. 나한테 갚을 필요 없다. 돈을 주고 은혜를 살 필요 없다. 하나님이 대신 갚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경동교회 교우 여러분, 남에게 도움을 베풉시다. 자유인으로 베풀되 보상은 바라지 말고 베풉시다. 베풀 수 있는 사람에게는 베풀지 마시고, 되돌려 베플지 못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아픔과 고난과 질병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까. 해방시킬 테니 어서 주님께 돌아 오세요. 그가 우리의 짐을 함께 받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나한테 오세요. 빨리 오세요. 내가 짐을 함께 짊어지겠습니다. 당신의 무거운 짐 내가 놓아 드리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서 그 분께 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면 그가 엄청난 교회를 지어주시고, 엄청난 궁궐을 지어서 여기서 장생복락하려고 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자유를 얻었으니, 축복을 얻었으니 나와 함께 손잡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자고 하십니다. 가장 험한 곳에, 밑바닥에, 낮은 곳에 가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구원의 역사 이루자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낮은 곳에 갑니다. 어서 오세요. 주님과 함께 그 분이 계시는 작은 곳에 가셔서 사랑의 복음을 전합시다. 그래서 이 땅에 받은 자유의 축복, 봉사하는 사랑으로 베프는 자유의 축복을 같이 나눕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찬양 받으십니다. 구원이 만민에게 임하십니다. 이 구원을 하나님은 오랜 전에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도 구원의 작은 부문이지만 받은 구원의 감격을 이웃에게 베푸는 일에 함께 하십시다. 자유로, 은혜로, 축복하며 하십시다. 어서 오세요. 해방 받읍시다. 어서 갑시다. 해방하러 갑시다. 자유인으로 오세요. 자유의 신앙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나아 갑시다. 사랑으로 이 자유를 전합시다. 많은 사람이 기다립니다.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구원이 기다립니다. 구원 받은자 함께 모여 찬양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