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하늘 양식-땅 그릇

2012년 7월 8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출애굽기 16:11-1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하고 말하여라.”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이게 무엇이냐?”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당신들은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아멘.

사도행전 2:43-47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아멘.

누가복음서 9:10-17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이야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무리가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가 되었다. 아멘
 
설교문  
  
오늘 우리는 생명의 떡으로 은혜로운 말씀도 읽었고, 찬송도 들었고, 제 말씀도 상고하려고 합니다. 우리교회가 몇 년 전에 작은 책자 하나를 출판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에는 예배순서, 주일마다 하는 시편 교독문,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때 홍기선 장로님이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책의 제목을 <하늘양식-땅 그릇>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그 제목을 고스란히 설교에 가지고 와 여러분과 기적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백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다 자유의 몸이 되어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출애굽기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아마 몇 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출애굽 할 때 광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먹을 음식을 많이 장만해 가지고 가졌습니다. 아마 굉장히 많이 가지고 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둘째 달 보름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배고프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것을 보면 아마 한 달 반 먹으니까 가지고 간 양식이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면서 난리를 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런 확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저녁에는 고기 먹여 주고, 아침에는 빵 먹여 주겠다.” 고기는 메추라기로 대신하고, 빵은 뭔지 모르지만 하얀 가루 같은 것이 아침에 보니까 꽉 집 앞에서 쌓여 있더라, 그걸 먹었더니 배부른 빵이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받아서 자유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백성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해방 받은 것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하고 살아갑니다. 자유를 얻은 거지요. 사백년 속박에서 얻은 자유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혹시 질병에 시달리다가 고침을 받으면 질병에서의 자유, 한 민족이 우리처럼 일제 36년 동안 식민지 치하에 있다가 자유를 얻으면 해방의 자유. 이스라엘 민족은 사백년 식민지에서 해방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자유를 얻어 겠습니까. 출애굽한 자유.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막상 사막에 와보니, 자유는 고마웠습니다. 한 달 반 동안은 잘 지냈는데, 한 달 반이 지나고 나니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는 쓰여 있지 않지만, 백성들의 외침을 제가 대변해 보겠습니다. “자유, 아름다고 숭고하다. 그런데 배고픈 자유, 굶어야 하는 자유, 아니 목마른 자유. 여러분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까?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자유는 고달픕니다. 자유를 얻은 것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보가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들은 차라리 자유를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가 이집트의 속박 속에 지내더라도 실컷 먹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속박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이 하는 고백입니다. “배고픈 자유는 싫다. 목마른 자유도 싫다. 차라리 먹고 마시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먹을 것을 줄 테니 염려하지 말아라. 출애굽 할 때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먹여 살리겠다고...” 지난주 임마누엘 설교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어디서나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언제 어디서나 나의 백성이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집트나, 지금 광야에서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상 배고프고, 목마르니 잊어버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얀 싸라기 같은 떡이 쌓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갑자기 이것이 무슨 일이야?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이냐?’하는 말을 ‘만후’라고 합니다. 만후에서 변형이 되어 ‘만나’가 되었습니다. 만나식당 많지요? 맛있는 음식을 만나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셨다고 확신하시고, 어제도 오늘도 사랑도, 위로도, 은혜도 받으셨다면 그 다음 여러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쓰여 있는데, 이것이 무엇이냐?(만후)하는 표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의문부호로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만후? 어떤 사람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은총을 주십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감탄부호로 감사합니다. 만후! 만후라는 말이 ‘이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어원이지만, 사람마다 표현의 차이는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하고 살면서 은총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질문하시겠습니까? 시니컬하게 비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너무 감격스러워서 만후! 하시겠습니까? 그 말을 성경말씀에서는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아멘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하셔야지요. 있는 그대로 질문하시던지, 비판하시던지, 받으시던지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몫은 아닙니다. 모든 백성이 ‘만후. 만나’ 그랬습니다. 여러분의 만나는 어느 쪽이신가요? 생명의 양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하면서 만나의 표현과 만나의 깊이와 만나의 높이와 만나의 폭은 받은 자신 스스로가 결정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스스로가 결정하십시오. 하나님의 역할은 그저 하늘을 열고, 아침과 저녁에 빵과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는 걸로 끝납니다. 나머지는 여러분 방식대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할 때부터 한 가지를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하나님, 오늘도 보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달 반 될 때 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까지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당신은 확실히 살아계십니다.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자기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제와 오늘까지 살아보니 당신은 확실히 하나님이십니다. 그걸 내가 믿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내일도, 먹을 것 주시나요? 내일도 제 인생이 보장되나요? 내일도 생명이 보장되나요? 이 질문은 어제까지, 오늘까지 받은 사람으로써는 “아 내일도 믿을 수 있는데, 혹시 오늘 만나를 ‘아멘’하는 사람이 아니고 ‘글쎄요, 만나. 이게 뭡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내일이 가능할까요?” 우리 사상사속에 근대 이후의 문명을 소위 포스트모던(post modern)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근대화 시대에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정신과 물질을 가지고, 오늘의 사회를 재단하거나 해석하기 어렵다. 무엇인가 세상이 달라졌다. 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근대의 문명사고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워 졌다. 답이 무엇이냐? 모르겠다. 모르겠다가 어디까지 왔냐면 지금까지 근대 문명 속에 잘 살아왔는데, 내일이 좋을까, 나쁠까? 여러분 세계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 미국, 우리 동북아의 금융위기, 경제위기를 예상이나 했습니까? 좋을지 알았더니, 비극이 싹터 갑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내일을 확신하나요? 근대가 지나고, 초근대, 탈근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탈근대가 좋은데, 단 하나 내일, 미래가 불확실하다. ‘희망이 희미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아무리 잘 살아도,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과거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믿음을 고백했지만 어느 순간 배고픔과 목마름 속에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내일도 우리들의 하나님이십니까? 내일도 먹여 주시나요? 내일의 문제는 미래의 문제입니다. “내일도 희망이 있습니까?”라는 말과 같습니다. 믿음은 희망과 함께 있습니다. 미래의 희망이 보장되지 않는 오늘의 믿음은 미안하지만 괴롭습니다. 오늘의 하나님, 내일의 하나님, 믿음의 하나님, 희망의 하나님, 신앙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모두 같은 분이십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은 같은 분이십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오늘까지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내일도 도와주시겠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의 하나님도, 내일의 하나님이 됩니다. 이 둘을 연결해 주시는 하나님은 본래 인자하셔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도와주십니다.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에 오면 말을 달리 합니다. 제가 사도바울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아주 중요하다. 사랑도 중요하다.” 제가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내일도 지켜주신다는 희망의 믿음이 같이 있다. 그 믿음의, 소망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의 본래 속성은 구약의 ‘인자’하심이 신약에서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사랑은 내일과 오늘을, 미래와 현재를, 희망과 믿음을 함께 연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사랑을 받은 우리는 오늘 “사랑한다.”고 고백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고 사랑 받을 사람은 어제까지 감사합니다. 내일도 믿습니다. 믿음과 소망이 사랑 속에서 함께 움직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만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땅에서 하늘 양식을 마음껏 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늘 양식을 인간이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라. 하늘 양식을 먹을 만큼만 먹어라. 하루 식사로 족하다. 단, 안식일은 일하면 안 되니 안식일이 되기 전 날인 여섯째 날은 이틀 분을 먹어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입니다. 하나님은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 말씀하십니다. “잘 지켜라. 일용할 양식의 백성아, 일용할 양식을 믿고 살아라. 내일은 보장되느니라.” 내일의 불확실성 이라는 말은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포스트모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주 ‘고전적인’ 하나님 이십니다. 아주 ‘초보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같이 계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초보적이고, 원시적이지만 저는 그 하나님이 좋습니다. 사랑 때문에 내일도 보장하시니까요. 오늘 예수께서는 오셔서 빈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서 나누어 주었더니 오천 명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음식을 떨어뜨렸고, 빈들에서 예수님은 다른 방식을 취하십니다. 사람이 가진 물건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더니 사람이 가진 물건이 하늘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속에는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속에 있는 것 가지고 하늘양식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과거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기적이고, 이제는 사람의 것을, 세상의 것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부탁입니다.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 인간의 몸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 우리가 만든 삼라만상이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하늘양식으로 성격변화가 가능한, 축복으로 가능한, 하늘로 변화되는 위대한 가능성의 인간, 가능성의 세계라는 사실입니다. 버리지 마십시오. 질시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고, 하나님 손에 맡기면 하늘양식이 됩니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는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땅에 있는 것을 하늘양식으로 만드신 다음부터는 하나를 추가합니다. 일용할 양식 더하기 ‘열두 광주리’ 입니다. 여기에 방점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보았고, 받았는데, 거기에 열두 광주리가 남는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남는 장사하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장사 는 안 시킵니다. 남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가질 수 없습니다. 가지면 썩습니다. 남는 것은 만나 감사하시고,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우리가 받은 축복을 혼자 갖지 마시고, 나누어 주라고 열두 광주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받는 사람은 또 나누어 주고, 열두 광주리를 계속해서 만들어 갑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번 여름에 하실 캄보디아 봉사는 우리가 열두 광주리 중에 하나를 가지고 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여러분이 주시는 헌금으로, 기도로...가서 꼭 받은 은혜를 만나하는 감동으로 전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도 기적의 역사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것을 가지고 만나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두 광주리를 남겨 두셨습니다. 기적은 예수님만 가능한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바로 기도해 오천 명을 먹였지만, 우리 인간들은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조금 걸립니다.

우리 이주한 집사도 있습니다만, 방송 하나를 몇 명이 나누워서 듣습니까? 오천 명이요? 아니, 수억 명입니다! 여러분 ‘재능봉사’라는 말 아시지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먹을 것은 물론이고 재능도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칩니다. 재능봉사입니다. 배운 학생은 나가서 또 가르칩니다. 세월이 얼마 걸릴지 몰라도 재능봉사 하나만 가지고도 열두 광주리는 물론이지만 수백 광주리가 남는 하나님의 은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시간차만 있을 뿐 땅의 것을 가지고 하늘의 축복을 빌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시간차이는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열두 광주리 받은 사랑하는 여러분, 남는 것을 집에 두고 썩히지 마십시오. 이웃을 위해서 쓰십시오. 투여하십시오. 새로운 세계를 만듭시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이 일을 행하자. 그러면 하늘 양식은, 하늘의 축복은 사람이 갖고 있는 만큼 하나님이 주신다.” 여러분, 혹시 그것이 작다면 일용할 양식으로 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만후, 감사합시다. 열둘은 그만 두고, 한 광주리만 주셔도 ‘만후’하고 베푸십시오. 천 광주리 남으면 만후하고 많이 베푸십시오.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고 질적인 차이입니다. 하늘 양식을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저도 먹고, 이웃도 나누어 먹습니다. 나만 사랑 하는 게 아니고, 이웃도 사랑하고 같이 사랑합시다. 이 사실이 오늘 이 성경 말씀에 있는 만나 이야기,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나, 무슨 말로 하시겠습니까? 감탄사 붙여 보세요. 많은 사람에게 만나가 가서 새로운 만나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 보면 이 말씀을 들은 첫 번째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들입니다. 너무 감격해서, 내일 모레 곧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확신 때문에 재산을 나누고, 또 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원시 공산사회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 가운데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 나누고, 만나를 받은 사람 속에 누가 주인이냐면, 다시 말해 하늘 양식과 땅 끝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인이며, 혹시 체제가 주인이면, 제도가 주인이면, 이념이 주인이면 사도행전에 있는 원시 공산사회가 착취의 공산주의가 됩니다. 착취의 파쇼주의가 됩니다.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눔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청지기 일뿐입니다. 축복의 모든 주인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미래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만나하고 쓰면 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셨는데, 최근의 교회 중에서 사이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사이비라고 나쁜 게 아닙니다. 은혜를 풍성히 주었더니, 은혜의 주인을 교주가 착복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이비가 됩니다. 은혜의 주인은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 모두 청지기로서 협력하면 됩니다. 저는 경동교회 교우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탄사 붙인 만나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열두 광주리가 남았으면 기쁘게 찬송하며 베풀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 양식이 우리 그릇을 통해서 만방에 전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나! 하나님의 사랑 감사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내일도 함께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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