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하나님의 지혜의 부요함

2012년 7월 15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로마서 11장 33~36절

설교문

아이들이 많이 읽는 동화책에 보면 까마귀가 신기하게도 지혜로운 동물로 나옵니다. 까마귀의 지혜가 어떠한 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물 한 방울 찾기 힘든 여름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 목이 말라 거의 죽을 지경이된 까마귀 한 마리가 애타게 물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목마름에 물을 찾던 까마귀는 문득 들판 한 가운데서 반짝이는 물건을 발견하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날아갔습니다.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까마귀가 발견한 것은 주동이가 작은 커다란 물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곁에 가서 보니, 병에는 물이 조금밖에 들어있지 않았고 주둥이마저 작아서 도저히 물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물병을 깨뜨리려고도 했고 뒤집으려고도 했지만 큰물병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 물을 먹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하지?” 까마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물을 포기한다면 목이 말라 죽을 수도 있었기에 까마귀는 더욱 필사적으로 궁리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까마귀는 주위의 작은 돌멩이들을 하나씩 입에 물고는 병 속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돌을 계속해서 넣자 병 속의 물은 돌멩이의 부피만큼 점점 위로 올라왔고 마침내 물병 꼭대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까마귀는 너무도 맛있게 물을 먹었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마리의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그 까마귀가 고기 한 점을 물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까마귀 떼들이 고깃덩어리를 빼앗아 먹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까마귀 떼는 고기를 물고 있는 까마귀를 뒤쫓아 오며 부리로 마구 쪼아댔습니다.

견디다 못한 까마귀는 입에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뒤쫓던 까마귀 떼가 부리를 세운 채 일제히 땅으로 떨어진 고기 한 점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뒤쫓던 까마귀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가자 결국 고기를 놓친 까마귀는 넓은 하늘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까마귀는 고기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까마귀 떼를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휴, 살았군. 이제 온 하늘이 내 차지야.” 그 까마귀는 고기 한 덩어리를 버린 대신 하늘을 온통 차지한 것입니다. 이런 까마귀가 어리석은 때도 있었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농가의 창가에 놓여있는 고깃덩어리를 훔쳐서 높은 나무 위로 날아갔습니다. 마침 그 광경을 보게 된 여우는 까마귀의 고깃덩어리를 뺏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여우는 까마귀가 앉아 있는 나무 밑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너처럼 우아하고 멋있는 새는 없을 거야. 너의 균형 잡힌 몸매와 윤기 나는 깃털은 정말 아름다워. 네가 새들의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할 거야. 만약 네가 왕이 될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도 가졌다면 말이지.”

여우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까마귀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새들의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여우에게 들려주고 싶은 까마귀는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까마귀는 입에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가 땅 위로 떨어졌습니다. 여우는 재빨리 고깃덩어리를 움켜잡고 까마귀에게 말했습니다. “까마귀야, 네가 만약 좀 더 현명한 판단력을 가졌더라면 너는 분명히 새들의 왕이 되었을 거야.”
 
동화에 나오는 까마귀나 여우만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 또한 위대하고 놀랍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군부의 장성들 사이에서 알력이 심했습니다. 그 중 가장 성미가 급한 스텐턴 장군이 링컨을 찾아와 화풀이를 했습니다.

대통령은 그에게 “화나는 일을 말로 하지 말고 샅샅이 적어서 내게 가져 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텐턴은 “대통령이 역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구나”하고는 이틀에 걸쳐서 여러 장군들에 대한 비난을 적어 대통령께 가지고 왔습니다. 링컨이 그 종이를 받아들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스텐턴 장군, 내가 이것을 읽기를 바랍니까? 혹시 읽지 않고 이 난로 속에 집어넣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스텐턴 장군은 잠시 대통령을 쳐다보다가 싱긋 웃으며 자기 손으로 그 종이 뭉치를 난로에 넣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요즘 임상심리학자들이 애용하는 방법인데, 이미 130여년 전에 링컨이 사용했습니다. 화가 났을 때 그것을 말로 표현하면 더 화가 나는데, 문자로 그 화를 적어 보면 싱거워집니다. 글로 적으면 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겨 화가 풀어진다고 합니다. 링컨을 포함한 우리 인간이 역사를 통하여 보여준 지혜는 실로 위대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33절)고 감탄했습니다. 바울은 학문적으로 통달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에 감탄하였으니,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이 감히 측량할 수도, 범접할 수도 없이 신비하고 깊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지혜 중 가장 알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당신의 지혜 중 최고의 지혜입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교회하면 떠올려 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교회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상징을 말한다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상징인 마굿간, 예수님의 기적을 상징하는 오병이어,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신 빈 무덤,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는 장면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예수님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하고 다닐 정도로 미화되어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문명사회에서 십자가는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와 같은 형벌이었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가장 악한 죄인들을 매달아 죽이는 형벌과 수치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가 믿는 자들의 신앙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성경의 중심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지식이나 노력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있고,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의 중심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그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 때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계획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 때에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게 될 때에 영적인 세계의 눈이 떠지게 됩니다. 역으로,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기독교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교회를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천국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는 시작 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든 것이 시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는 지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식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그 중 첫 번째는 ‘거리낌’입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가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는 실패의 자리이고, 범죄자가 달려죽는 수치의 자리인데 메시야가 그런 십자가에 달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정복자와 영광된 모습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죄인으로 죽으신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를 어리석게 생각합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지혜를 강조합니다. 합리적인 이성을 강조하는 그리스적인 인간의 지혜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들같이 신비한 체험이나 기적 같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또는 단순히 교회를 나오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행, 깨끗함, 노력,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이 단순한 하나님의 방법을 알지를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십자가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가 용서 되어졌다는 말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이 문명시대에서 십자가는 구식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들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우습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입니다. 

인간의 편에서 볼 때는 철저히 무력한 십자가가 하나님 편에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당신의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우리의 죄가 용서되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의 죄가 용서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일어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나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가장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의 이성과 방법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어리석게 여기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사람들의 강함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이 도저히 판단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강한 것이 죄의 힘입니다. 죽음의 힘입니다. 아무도, 어느 것도 죄를 이길 수 없고,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죄와 죽음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와 죽음을 해결하신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기에 가장 어리석은 방법인 십자가로 우리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무력하게 달려 죽으심으로, 즉, 전능한 하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것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최고로 지혜롭다는 그리스인들에게 이 십자가는 가십거리이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십자가만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1-24).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깊고 오묘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의 이성에서 돌이켜 오직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드려야 합니다.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에 돌이켜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가 이성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온전히 회개할 때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돌이켜 회개할 때만이 이성적으로는 미련하고 무식하고 거리껴지는 십자가가 왜 도무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입니다. 이 지혜로 인해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지혜를 세상에 증거하여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받아들이고 새 생명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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