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출애굽기 17: 8-16; 사도행전 6:1-7
설교문
오늘은 우리 교회를 목양하실 새 담임 목사님을 뫼시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만남의 교회의 역사에 또 하나의 새 장을 여는 이 뜻 깊은 의식에 참여하게 된 것과 또 부족한 이 사람이 말씀 전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흔히들 하는 말에 의하면,
“교회의 진정한 발전은 교역자와 성도 여러분들이 합심(合心) 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어 갈 때 비로소 바르게 이루 어질 수 있다”
라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 명제는 분명 교회에 대하여 조금만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만큼, 그 만큼 또한, 그것을 어떻게(how) 실행하여야 하느냐 하는 그 how의 문제, 그 어떻게?의 문제는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使役)”은 목회자와 일반 성도가 한꺼번에 다 달라 붙어서 힘쓰고 애쓴다고 하여도, 그렇게 사람들이 애쓰기만 하면 반드시 다 이루어 지는 그런 것은 또한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을 구원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절대 홀로 주도하여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신앙은 신성모독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바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즉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해서 모든 것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 두고 인간은 자신의 구원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방관행위도 또한 죄에 속하다는 것이 성서의 확고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서로 상호충돌을 일으키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 인간 구원의 문제란, 그러므로, 하나님 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하나님께만 맡겨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명쾌한 대답을 하고 있는 성서 본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우리 본문은 우리에게 단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은 어디까지나 그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단순히 “복종으로” 참여하는 자!!로서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주목할만한 점이라 하겠습니다. 이 사실은 성서가 구약성서로부터 신약성서에 이르기 까지 줄 곧 말해 온 성서적 증언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애굽에서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인들이 광야를 경유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던 도중. “르비딤”이라는 한 사막 지역에 이르러서는 “아말렉”이라 이름하는 가나안의 초인적인 거인족(巨人族)과 사생결단의 충돌을 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인들과의 이 싸움은 이스라엘인들이 광야 유랑생활을 할 때 부딪혔던 위기 중 가장 위협적인 위기로서, 소위, 가나안적 위기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었다는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전후후무한 일대 대 격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가나안인들에게 먹히느냐 아니면 가나안의 살육적 위기를 이겨내고 살아 남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가나안 복지로 들어 가게 되느냐 라고 하는 이 사건은 이스라엘 유랑민들이 직면하였던 절대절명의 운명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 이후,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가나안과의 투쟁에서 살아 남느냐 아니면 가나안에 게 잡아 먹혀 흡수되느냐 라고 하는 종말론적 긴장으로 얼룩진 역 사였습니다. 즉 가나안을 지배하고 있는 바알주의!라는 신앙체계는 굶주린 호랑이나 사자를 혼자 심산유곡에서 만난 것 만큼이나 절박 2
한 위험물이었습니다. 오늘 날 온 지구권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핵무기의 위협이라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절대절명의 위험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어떻게 하여야 살아남느냐, 어떻게 하여야 승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선민(選民)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절대절명의 중대사였습니다.
따라서, 이 르비딤에서 일어난 아말렉과의 전쟁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극복하였고 또 그 승리를 어떻게(!) 따 내었느냐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은 특히 구약 신앙역사(信仰歷史)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본문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매우 드라마적으로 그리고 매우 설득력있게,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대답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군사령관인 여호수아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을 독려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이 표현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은 손”이(!) 이 위급한 전쟁상황에서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구원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그런 표현이었습니다.
과연, 모세의 예고대로,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은 그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은 그 모세의 손!!이 그 전쟁 승패의 결정적이고도 유일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이 강조는 그 다음에 계속되는 본문 말씀에서 더욱 더 확실한 말씀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의 그 팔이 피곤하여 모세가 그 팔을 계속 들고 있을 수 없게 되자,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 와서 그 돌 위에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모세의 양편에서 그의 양 쪽 팔을 들어 올려서, 해가 지도록 까지, 3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그 모세의 팔이 아래로 내려 오지 않도록 들고 있었더니!! 저 막강한 적군인 아말렉을 약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이 감히 다 무찔러 격파하고 저 무력한 이스라엘이 오히려 저 아말렉의 대군을 대적하여 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론도 아니고 훌도 아니고, 그리고 군사령관인 여호수아 조차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그 모세의 손이 홀로!! 저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모세의 팔도 피곤하여 땅으로 내려 왔었다고 하는 보도로 미루어 볼 때, 모세의 팔이나 모세 자신으로부터도 또한 그 승리의 힘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단지, 모세의 손에 들리운 그 “하나님의 지팡이!” 만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는 그 무엇보다 먼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거두어 들인 그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홀로! 일구어 낸 것임을 백성 앞에서 선포하고 그 다음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그 하나님의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와 뜻, 즉 “아말렉은 영원히 기억하지 말고 그것은 이스라엘의 뇌리에서 철저히 지워버릴 것”을 당부하는 말씀을 책에 기록하게 한 후, 끝으로 이를 기념하는 제단(祭壇)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의 군기 깃발을 거기에 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록한 성서 기록자는, 모세의 입을 빌려서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아말렉과의 전쟁에 관한 성서적 증언을 모두 끝내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 더불어 영원히! 싸우시리니, 그 러므로, 너희는 너희 안에 아말렉을 영원히! 없이 하여 천하에 서 영원히! 기억조차도 하지 말아라!(출17:16,14)
그렇습니다. 오늘 읽은 구약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영원한! 원수(怨讐)로 삼고 대대(代代)로! 아말렉을 대표로 하는 가나안의 바알주의자들과 영원히! 싸우실 것이니 너 4
희도 저 가나안의 바알주의를 너희의 기억에서부터 영원히! 씻어내도록 노력하여라”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라는 말은 그러므로 이러한 가나안적 바알주의를 영원히 몰아내어 기억조차도 하지 말아라!는 신앙공동체적 구호요 가나안적 바알주의를 격파하는 “하나님 전쟁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라!라는 신의 명령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인간 구원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서는 인간이 이 일을 위하여 어떻게(how) 하여야 하느냐 하는 이 how!의 문제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성서적 증언의 핵심을 듣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메시지는 다음 두 가지의 메시지 만을 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첫째는(1) 아말렉과의 전쟁은 영원히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둘째는(2)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손(팔)을 드는 일만을 하는 것, 말하자면, 아말렉을 영원히 기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아말렉과는 상종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아말렉과는 접촉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 두가지 사실 만을 강력히 증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가나안과의 전쟁, 말하자면, 물질주의/권력지상주의/향락지상주의로 대변하는 가나안주의 또는 바알주의, 즉 가나안의 아말렉을 격파하는 전쟁은 오직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 아말렉과의 전쟁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에 의해서 전적으로 좌우되었다는 것, 즉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잡은 모세의 손이 들리우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 손이 내려지면 이스라엘이 패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아론이 전쟁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귀한 인품과 지도력을 가진 평신도 지도자인 훌이 전쟁하는 것도 또한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군대 총 사령관인 전쟁 영웅 여호수아가 전쟁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세의 그 손이 들리느냐 내려지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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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전쟁은 오직 하나님의 일이며 인간의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수하는 것도 인간의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이나 보복은 인간이 손을 대면 부정 타는 일종의 “타부(taboo)”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고유한 비지니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전쟁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전쟁으로부터는 일체!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쟁을 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이 승리를 믿기만 하고 찬양하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이 뜻에 복종하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협력만! 하라는 것입니다. 신(神)이 아닌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일을 주도하려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려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의 한 일부이지 결코 창조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며(주기도 참조) 단지 그의 뜻의 지시에 복종하며 실천/봉사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인간은 무슨 역할을 하여여 한다는 것입니까? 아론도 아니고 훌도 아니고 군 사령관인 여호수아도 아니고 심지어는 모세 자신도 아니라면, 우리 인간은 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면 무슨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물음에 대한 성서의 대답은 오직 이것입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잡은 손, 그 팔을 들어 올리는 일 만이 우리 인간이 하여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인간은 인간의 일을 함으로서! “아말렉”이라는 가나안주의의 우상, 바알주의의 우상은 반드시 격파 하여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이란 각각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그 둘은 어떻게 구분되고 또 어떻게 조화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매우 중요한 신학적 물음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결코 6
모호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즉 악마를 격파하여 보복하는 전쟁과 그 악마를 추방하고 이기는 그 구원의 승리는 사람의 일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과 인간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즉 하나님의 종의 손에 들리운 하나님의 지팡이(=하나님의 말씀)의 지휘에 따라, 그 지팡이의 오르내림에 따라!! 성실하게 움직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그 대답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승리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은 인본주의적 오만이요 비현실적이고도 무신론적인 환상이며 우리를 멸망에로 빠뜨리는 미로(迷路)일 뿐이라는 그런 말입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만 오는 것이고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만! 오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복종하여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 뿐이라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이라는 사탄을 격파하는 하나님의 전쟁의 그 승리는 “아론”으로부터도 “훌”로부터도 “여호수아”로부터도 심지어는 “모세”로부터도(!) 오는 것이 아니 고 오직 하나님의 종 모세의 손에 들리운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로부터 만!! 올 뿐이라는 말입니다. 아론이 이 지팡이를 대신할 수 없고, 훌이 또한 이 지팡이를 대신할 수 없으며 군대 총사령관인 여호수아도 이 지팡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세도 이 지팡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 지휘하는 아론, 훌, 그리고 여호수아 앞에는 오직 모세의 손에 들리운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 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 이 능력의 지팡이, 이 말씀의 지팡이, 이 지팡이 만을 확고히 손에 잡고 그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그 사명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즉 “지팡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 모세가 들고 있고 그리고 지팡이를 든 모세의 그 “팔”은 아론과 훌이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여호 수아는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의 손의 지시에 따라 백성을 이동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질서가!! 하나님과 지도자 사이의 이 질서가 바르게 수립될 7
때에만!! 아말렉이라는 세상적 악마와의 전쟁에서 “구원/승리”할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 권사, 집사로 호칭되는 “일반 신도의 지도자들”의 역할을, 즉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도 지도자들의 역할을 총괄해서 “아론과 훌, 그리고 여호수아의 역할”에 비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인 목사(신부, 전도사 등등)”의 역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역할에 비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장로, 권사, 집사를 특별히 세워 일반 성도들의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오직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팔을 함께 붙들어 주는 그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일반 신도들과 그 일반 신도의 지도자들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의 팔을 붙들고서 그 팔이 땅으로 내려 오지 않도록 도와 주는 그 일!!에 매진하여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증언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일에만(!) 전력하여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신약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6:1-7의 말씀도 또한!! 이사실을 웅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열두 사도가 교회의 급성장(急成長)에 따른 여러 가지 난해한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기 위하여 취하였던 그 모범적 조치가 바로 그것을 말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즉 그 열 두 사도들은 그들이 제자 훈련을 시켜 온 모든 제자들을 다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우리의 신약본문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인데 이 “말씀 전하는 일”은 제쳐 놓고 [나가서] 접대하는 일에 매이는 것은 마땅하지 아니 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들을 택하여 접대하는 그 일을 맡겨라!! 우리는 오직! 이 말씀 사역(使役)에만!! 힘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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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놀랍습니다. 진실로, 놀랍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사도들의 제안에 따라 그렇게 조치를 취하였더니, 즉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무에 충실하고 평신도 지도자들, 장로, 권사, 집사들은 오직 접대하는 일에 충실하는 것과 하나님의 종을 팔을 들어 올리는 일에 충실하게 하는 그런 선교 전략을 세웠더니, 뜻밖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하여지고! 또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더라!”(행 6: 7)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올바른 양적 부흥은 이렇게 일어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교회들의 중요한 중심과제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즉 목사가, 사도가, 목자가 그의 손에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인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들고서 그 손이 하늘을 향해 대대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완전 승리하는 그 때까지,- 대대로! 뻗어 있게 하여 그 손이 결코 땅으로 내려 오는 일이 없도록 하는 그 일은! 성도들과 그리고 이 성도들을 이끄는 이 일반[平] 신도 지도자들인 아론, 훌, 여호수아가, 즉 장로, 권사, 집사님들이 해야 할 일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사자”(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든 자)가 힘을 잃어, 그의 손에 들고 있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 능력의 지팡이가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하나님의 종의 팔을 붙들어 올리는 일!!, 그것이 온 성도들과 그리고 그 평신도 지도자들인 장로, 권사, 집사님들께서 하셔야 하실 일들인 것입니다.
아론과 훌이 즉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세의 역할에 끼어드는 것은 비효과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입니다. 물론, 이 말은 중세 로마교회에서 처럼 성도들과 그 지도자들은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의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 사실은 누구나 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 일이므로 더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사도행전 기자가 잘 증언하고 있듯이, 제자훈련을 받은 여러 성도님들은 즉 평신도 지도자들은 모름직이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맡은 저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그 전 9
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일, 즉 구제하는 일, 접대하는 일, 등등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의 손이 힘을 잃고 그 손이 땅으로 내려 오는 일이 없도록 돕는 일!이 평신도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의 손이 땅으로 내려 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손이 땅으로 내려 와서는 이스라엘의 전 운명이 곧바로 위태로워지듯이 교회를 섬기는 하나님의 종들이 능력의 말씀을 쥐고 있는 그 손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전(全) 평신도들 모두의 운명도 또한 위태로워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손을 들어 올려라!”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하나님의 종의 손을 들어 올려라!” “능력의 말씀을 손에 들고 있는 하나님의 종의 손을 들어 올려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를 거두는 그 순간 그 때까지 모세의 손, 하나님의 종의 손을 들어 올려라!” 이것은 오늘의 모든 평신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동시에,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서 특별히 “뽑힘”을 받고 “부름”을 받은 자들, 모세의 역할을 맡은 성직자들, 사도들과 목사들과 전도사들에게는 우리의 본래적 직무!!인 말씀선포에 최선을 다하라고 우리의 본문은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말씀”을 높이 들어 올리는 일, “말씀”의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최우선의 기능 보다 “세속 참여”의 봉사 기능 만을 더 우선할 때는 우리의 그 모든 행위들은, 그 모든 힘든 노력과 선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행한 것” “불법행위”에 불과하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 입장이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23절은 이런 의미에서 목사직을 새롭게 부여 받아 새롭게 시작하시는 목사님께서는 더욱 깊이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성서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 10
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 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모세는! 오직 그의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여호와 닛시”만을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아론과 훌은! 모세의 팔을 들어 올리는 그 일을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팔이 지시하는 데로 백성을 이동시키는 일에 성실하여야 합니다. 이 관계질서!!가 확고히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금후 21세기를 이끄는 우리의 최대의 교회선교적 과제가 될 것임이 확실합니다.
“여호와 닛시!”라 하라. “모세의 팔을 들어 올려라!”
이 두 구호 만이 미래의 우리 교회에게 요구하는 성서의 유일한 요구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