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눈 뜬 장님의 신앙세계

2012년 8월 12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29:17-24

레바논의 밀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그 기름진 밭이 다시 밀림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주님께서, 곧 야곱 족속의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야곱이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이제 그의 얼굴이 다시는 수모 때문에 창백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야곱이 자기의 자손 곧 그들 가운데서 내가 친히 만들어 준 그 자손을 볼 때, 그들은 내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야곱의 거룩한 분’을 거룩하게 받들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혼미하던 사람이 총명해지고, 거스르던 사람이 교훈을 받을 것이다. 아멘.

사도행전 9:3-9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가“주님,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니,“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아멘.

마가복음서 7:31-37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하셨다.(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아멘.

설교문

오늘은 광복 67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오늘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해방, 자유주심을 감사하여라.”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백성은 감사에 머물지 말고, 감사함을 실천하라십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다음에 부활하셔서 우리한테 새 생명을 주심을 믿습니다. 저희 신앙고백의 기초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셨으며, 자유를 주셨음으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 신학적으로 말하면 율법과 죄악에 빠진 여러분은 십자가의 공로로 해방 받았고, 율법에서 복음으로, 죄악에서 사죄함 받음으로, 옛사람에서 새 생명으로 옮김을 받았습니다. 다시는 옛사람의 올무에 억매이지 말고, 죄악에 억매이지 말고, 속박에 억매이지 말고, 자유한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자유인입니다.

자유인으로 살아야 됩니다. 속박에 짓눌려 살지 마십시오. 속박이 정치적 억압이든, 혹시 경제적 착취든, 문화적 정신적 억압든, 어떤 억압이든 간에 모든 억압은 해방을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다시는 속박에 매이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이런 말일 것입니다. 과거는 그만 두더라도. 일제식민지 속박에 얽매어 있다가 광복절에 해방을 받았으니 다시는 식민지 속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는 다시 받지 마십시오. 이제는 자유한 독립국가로 사십시오. 우리는 그 약속을 67년 전에 받았고, 오늘까지 지켜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 복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유를 얻으면 그걸로 일단 끝났고, 이제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자유를 얻은 사람은 그 얻은 자유를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종노릇하는데 쓰십시오.” 아주 중대한 말씀입니다. 해방 받은 백성은 해방 받았다는 자부심 가지고, 우리는 자유국가요, 자유민이요, 자유로운 신앙인이라고 혼자서만 자기 욕망을 위해서 살지 말고, 아직도 자유가 없는 사람들, 착취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 억압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유인으로서 자발적으로 무릎 끓고 봉사하며 사십시오. 내가 얻은 자유가 귀중하다는 걸 전파하십시오. 그런 말입니다. 일단 자유를 얻었으니 고개 들고 살아야 하지만. 완전히 자유인이 된 사람은 스스로 낮아져서 나아가서 무릎 꿇고 봉사하며 사십시오. 사랑이 있는 자유, 그것이 선진 국가의 자유, 선진 시민의 자유, 선진 신앙인의 자유라는 축복의 내용입니다.

이번 여름 우리 교회는 캄보디아에 가서 의료봉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캄보디아를 식민통치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다문화 가정들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정을 과거에 식민지 통치로 억압한 일이 없습니다. 혹시 그분들이 우리에게 와서 과거 식민통치 회개하느라고 의료봉사하러 왔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그렇게 한적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질병, 죄악, 아픔, 억압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오늘 이 감사한 마음을 당신들에게 와서 질병으로부터 해방,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해방을 전하는 이것이 복된 일인 것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렇게 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사랑의 봉사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자유한 사람은 자유를 스스로 이기적 욕망으로 채우지 않고, 아직 자유가 없는 곳에 가서 자유를 증언하고, 행실로 자유를 증거 해 줍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이 누릴 자유입니다.

살아가면서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면서 제가 느낀 점이 하나있습니다. 과거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분노하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온 대표들은 항상 같이 모입니다.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소위 동창회를 만듭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동안 저도 신나게 같이 했습니다. 하고나면 결론은 항상 이렇합니다. 다시는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에 머리 조아리고 살지 맙시다. 해방합시다. 단결하고, 연대하고 살아갑시다. 그런 결단이죠. 그런데 한 편 마음으로 내가 왜 항상 식민지 연대 동창회 모임에 참여해야 하나. 나는 밝은 미래를 향해서 살수는 없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지금 해방된지 67년이 지났습니다만 오늘 우리나라의 형편, 교회의 형편, 생활, 정치 모든 형편에서 우리는 이미 식민지를 졸업했고, 제 3세계 소속도 졸업했습니다. 가난한 나라, 개발도상국 시절도 졸업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옛날 종의 멍에를 매지 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랑으로 세계에 나아 가서 자발적으로 종노릇하면서 주인 행세 좀 합시다. 사랑하는 주인, 희생하고 봉사하는 주인이 됩시다. 저는 이때가 온 것을 아주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올림픽에서 있었던 한일간의 3/4위전 축구 경기를 보면서 경기하나 이긴 것이 굉장한 것이 아니라, 경기 끝나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한 만세삼창 세레모니를 보고, “저게 광복절 기념식이다.”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는 많은 기쁨을 창출하고 있습니다.체조 금메달을 획득한 양학선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제가 무식했던 것 하나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양학선 선수가 도마에서 뛰어 가지고 삥삥 도는 것을 보고 잘은 하는데 그렇게까지 잘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양선수가 뛰고 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고서도 무엇을 잘했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눈은 떴지만 체조의 진수를 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양학선 선수가 한 건 했다고 칭찬일색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그 이상의 것을 했습니다. 일명 "Yang-1 Formula"(=양학선 기술)라는 공인된 기술을 새로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처음에 몰랐습니다. 시상식을 보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눈은 떴는데, 전문가의 눈이 아니라 그 기술의 진수를 보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보면서 “내가 눈은 떴는데 내 육신의 눈 가지고는 체육 경기에 있는 양학선 선수의 진수를 보지 못하는 구나. 제가 그 순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양선수 미안해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도대체가 이런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67년 전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감사로 끝내지 않겠습니다. 전 세계에 가서 “우리 이렇게 해방 받았습니다. 우리도 한때 어려웠습니다. 우리도 한때 힘들었습니다. 그 때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얼마나 힘 있게 일하고 땀을 흘리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전파하겠습니다라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캄보디아 봉사뿐만 아니라 올림픽, 더 나아가 모든 계기를 통해서 세상에 전파합시다.

저는 오늘 상황을 이렇게 감히 하나님께 보고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 축복 감사합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 매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가서 하나님이 세상에 가서 자유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스스로 사랑을 가지고,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듯이 이웃을 섬기겠습니다. 그러니 능력 주시고, 축복을 주옵소서. 섬기겠습니다라고. 여러분, 우리의 섬김은 굴종이 아닙니다. 우리의 섬김은 자발적 사랑입니다. 아름답지요? 저는 그런 나라를 만들게 하신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고,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칭함 받는 저희들이 자부심 속에 살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이 있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다 못 드리겠지만, 우리가 일제 식민지 가된 것이 1910년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힘들었지요. 식민지 되기 400년 전에 우리나라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임진왜란이 생겨서 우리는 일제 수마에 이미 할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1592년이고, 이성계가 1392년에 즉위했으니, 딱 200년만의 일입니다. 얼마나 우리나라가 약했기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일본의 군대 20만 명이 부산진역에 도착해 한양인 서울까지 내리 올라오는데 21일 밖에 안 걸렸다고 합니다. 군대가 있었지만 서류상의 군대였습니다. 사회전체는 문약했고, 관군도 없어서 다 도망갔습니다. 5월에 한양이 점령이 된 다음 지방에 있던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유생들이 일어나 모이고, 관군에 점차 흡수되고 해서 겨우 일본군대를 몰아냈습니다. 물론 남해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런지 400백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나라는 또 일제 식민지가 되었고. 36년 간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종의 몸이 되는 것이 도대체가 무엇인지 잘 압니다. 힘이 없어서 종의 멍에를 지는 것도 잘 압니다. 67년 전 해방을 맞고 나서 이제 우리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자유를 세상 곳곳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선포하고, 억압이 있는 곳에 자유를 선포하고. 착취가 있는 곳에 정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각사람이 이렇게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함께 미래를 즐깁시다. 이 사실이 광복절에 하나님께 드려야 할 미래지향의 감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를 벗어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씀에 단 하나의 문장으로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날이 오면, 우리가 해방 받아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짓고 다시 하나님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하나님, 우리를 보내서 귀 먹은 사람이 귀가 뚫려서 두루마리에 쓰인 해방과 자유가 무엇인지알고, 두루마리를 읽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읽고 사람들에게 자유와 복음이 무엇인지 전파하는 그날이 오면, 절말 좋겠습니다. 그날 좀 주십시오.” 이 기도를 유대 백성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오셔서 이 날이 이미 왔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한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려고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 수도입니다. 가는 도중에 하늘의 빛을 받고 땅에 쓸어져 삼일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보지 못했던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죽음이후의 세계도 봅니다. 내일부터 벌어질 미래의 환상도 봅니다. 삼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사도바울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도바울이 쓴 전체 서신서에 보면 삼일동안 경험했던 이야기가 여러 모양으로 응축되어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변화를 받았습니다. 빛을 받고, 해방의 빛을 받고, 삼일이 지난 다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 동안에는 백성들을 억압하고, 예수님도 몰랐고, 하나님도 몰랐습니다. 이 땅 이스라엘만 알던 "사울"(Saul)이라는 사람이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변한다음부터 이름을 바꿉니다. 유대인들만 아는 사울은 히브리어 이름입니다. 이제 유대인을 넘어, 헬라말을 사용하는 이방인들,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인들을 위해서 로마자와 헬라어로 이름을 바꾸겠다. 그래서 바뀐 이름이 "바울"(Paul)입니다. 똑같은 사람이고, 뜻도 똑같습니다. 언어의 차이만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바울은 이제 세상을 살았으나, 세상 속에 담긴 하늘 뜻을 몰랐던 사람. 눈을 뜨고 세상을 봤으나 그 세상 속에 담긴 세상 위에 있는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장님이었던 사람, 그랬던 사람 사울이 하늘을 만납니다. 하늘을 봅니다. 깊이를 봅니다. 높이를 봅니다. 넓이를 봅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하늘의 뜻을 보고 제가 이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이름부터 달리 불러 주십시오. 나는 하늘 뜻을 모르는 사울이 아니고 하늘 뜻을 전하는 바울이 되겠습니다.”

제가 부탁하나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해방을 정말로 즐기고 싶습니까? 종의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하는 여러분의 이름이 있으면 이제는 스스로 나아가서 사랑으로 봉사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일에 쓰십시다. 그런 사람이면 이름 좀 바꾸시죠! 지금까지 감사하며 살던 이름에서 앞으로 봉사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해방을 감사하는 사람에서 해방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바뀌면 이름도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눈먼자를 보고, 침을 뱉어서 손을 눈에 대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떠라" 하는 말이 아람어로 “에바다”(Effata), 그랬습니다. 사도바울 이야기에는 이 말이 없는데요. 제가 두 개를 연결시키면 이렇습니다. 사도바울이 눈먼 다음에 삼일 동안 있다가 아나니야라는 선교사에 가서 주님의 복음을 받습니다. 아나니야는 안수 기도를 하고, 주님의 명에 따라 당신이 눈을 뜰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하며 기도했더니 사도바울이 눈을 떴습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집니다. 바울은 먹고, 마시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 아나니야가 뭐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에바다!”, 이랬을 것입니다. 감히 예수님 말씀을 입으로 담지 못했으나 마음으로는 “에바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사울아 열려라. 열려서 이제 바울이 되어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렇게 하십시오. "하나님, 저한테 "에바다!"라 해주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갈때, 살아가는 우리 경험만 가지고 우리의 사상과 문화와 모든 가치를 판단하지 말고,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의 높은 뜻까지 다 파악할 수 있는 하늘을 아는 눈 좀 주십시오. 삶의 깊이를 아는 눈 좀 주십시오. 우리한테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에바다!"라고 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살겠습니다. 우리나라 한국도 새롭게 다시 나고 싶습니다".

한국에 선교사로 온 분의 부인이 쓴 이야기입니다. “억압되어 살면서 식민지 까지 경험했던 한국사람 심리 속에는 엄청난 교육열, 즉 배워야 산다, 배우자, 하몀ㄴ서 많이 배우려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게 기독교가 들어올 때 서양의 신지식, 신문명과 결합하면서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한국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식민지에서 벗어났고, 그 후로는 폭발적 자기확산을 통해서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는 분석입니다. 동의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베플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늘의 은총을 물 부듯 부어주시되, 밑 빠진 독에 물 부듯 부어주시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한테 엄청난 은혜를 주어서 헛되이 되게는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준비된 사람, 가능성을 가진 사람,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져서 내재한 잠재력을 폭발하게 합니다.

저는 우리 한국이 그렇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런 백성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뜨게 해주마, 에바다 라고 해주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하늘을 받겠다고 하는 준비된 사람에게 하늘의 축복을 주마고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여기 있는 우리한테도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조건이 없습니다. 햇빛처럼, 빛처럼 모두에게 내려 주십니다. 하지만 빛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하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받을 그릇도 준비도 하지않으면서 못받았노라고 하나님을 탓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준비된 사람들에게 은총이 옵니다. 받을 준비를 합시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겠다는 결단의 준비가 하나이고, 자유인이 되었음으로 세상에 나아가서 자유와 평화와 정의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산 증인이 되는 솔선수범하는 사랑의 봉사자가 되겠다는 그런 결단 다른 하나입니다. 이 두 결단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결단 속에 풍성히 임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그런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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