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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윤응진·한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한신대학교 <세계와 선교> 제190호 (2006년 4월 1일), 2-4쪽

초봄에 피는 봄꽃들은 푸른 이파리들이 돋기도 전에 앞 다투며 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의 위세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봄의 정취에 취하여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봄에 피는 꽃들은 이미 도래한 봄을 만끽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다가오는 봄을 재촉하는 전령들 같다.

봄에 우리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한다. 예수는 역사의 새봄을 연 봄꽃이었다. 아직 로마 제국주의의 서슬 시퍼런 위세가 꺾이기도 전에 서둘러 핀 꽃이었다. 그는 역사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봄을 부르기 위하여 피어난 꽃이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진 자리에는 상처대신에 새순이 돋고 푸른 이파리들이 돋아나 세상을 생명빛깔로 물들인다. 꽃의 희생을 밟으며 봄이 그렇게 다가와 우리를 감싼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살해당했으나, 그의 믿음과 그의 꿈은 제자들의 믿음과 꿈으로 부활하였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새 역사를 여는 숱한 푸른 이파리들로 부활하였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세상이 변화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물론 이 새로움은 계절의 변화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봄에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은 자연의 반복되는 순환과는 전혀 무관한 하나님의 역사 개입과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봄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는 계절로 정한 것은 깊은 뜻을 담고 있겠지만, 또한 의미를 왜곡할 위험도 있다. 봄은 우리의 도움 없이 자연히 다가오지만 예수의 고난과 부활은 결코 자명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봄의 혜택을 누리는 데에는 빚진 마음이 필요하지 않으나 예수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역사에 참여하는 은총을 누리는 사람은 빚진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 새로운 역사에 무임승차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은 새 의복으로 갈아입고 새 역사를 계승하여야 할 의무감을 느껴야만 한다.

지난 2월 14-23일 사이에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9차 총회 주제는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이다.  

아마도 지난 20세기에 발생한 교회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을 하나 든다면, 세계교회협의회의 탄생을 말해야 할 것이다. 분열만 거듭하던 교회들이 하나가 되려는 오래된 꿈이 실현된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창립된 이래 거의 60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교회협의회는 한편으로는 교회일치운동을 확대하는 일에 몰두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변혁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결국 세계교회협의회가 추구한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연대하여 사회변혁운동에 헌신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교회일치운동은 세계의 정의와 평화 수립을 위한 투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8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되었던 제6차 총회에서는 향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연대하여 헌신해야 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과제로서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을 제시하였고, 이 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국제대회가 1990년 3월 서울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에 21세기에 처음 열리는 총회의 주제가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라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것이다. 이 주제는 세계교회협의회 역사의 긴 학습과정에서 깨달은 복음의 핵심과 교회의 존재 이유,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의식을 기도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주제는 우리의 존재이유와 사명감이 담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30년 전에 에리히 프롬은 산업사회가 선전하는 ‘무한한 발전’이라는 약속은 실현불가능하다고 경고하였다. 산업사회는 이 약속을 이행하는 데에 실패하였고, 오히려 빈부격차의 확대, 생태계 파괴, 소비문화로 인한 인간성 파괴를 초래하여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철저한 인간변혁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때에만 인류가 지구상에서 존속할 수 있다고 호소하였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인류의 육체적 생존이 인간심성의 극단적 변화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변화는 경제적 사회적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사회가 변해야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으나, 반대로 인간변혁은 사회변혁을 초래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 -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시도하고 계신 일이며, 교회들이 참여해야 하는 과제이다.

모든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파멸을 향해 가고 있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오늘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과 연대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므로 세상의 현실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기만 하려는 것도 비기독교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변화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굳게 무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행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의 봄은 새 역사를 열기 위해 희생된 숱한 ‘봄꽃’들을 가슴에 안고 있다. 3.1절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사람들, 4.19혁명에 참여하였던 젊은 넋들, 그리고 5.18 민주항쟁에서 스러져간 무죄한 사람들.... 우리는 ‘십자가’에 달렸던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들의 희생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투쟁이었다. 그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청년 ‘예수’를 바라본다.
세계교회와 함께 우리는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라고 기도한다.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 신은 우상일 뿐이며,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은 우상숭배자들일 뿐이다. 다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에만, 우리는 살아계신 야훼 하나님을 부를 수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

한신신학의 진보성은 다름 아니라 유대인 예수와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관심과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제가 우리에게 진보성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각오와 결단의 계기를 제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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