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믿음 위에 새 일을

2012년 9월 16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48:6-11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아라. 네가 인정하지 않겠느냐? 이제 내가 곧 일어날 새 일을 네게 알려 줄 터이니, 이것은 내가 네게 알려 주지 않은 은밀한 일이다. 이것은 이제 내가 창조한 일이다. 옛적에 일어난 것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네가 들어 본 일이 없는 일이다. 네가 전에 이것을 들었더라면 `아, 바로 그 일,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번 일만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알고 있었다. 네가 성실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모태에서부터 반역자라고 불러 마땅한 자로 태어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내가 너를, 듣지도 못하게 하였고, 알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옛적부터 네 귀가 트이지도 못하게 한 것이다. 내 이름 때문에 내가 분노를 참고, 내 영예 때문에 내가 자제하여, 너를 파멸하지 않겠다. 보아라, 내가 너를 단련시켰으나, 은처럼 정련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의 풀무질로 달구어 너를 시험하였다.나를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하여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겠느냐? 내 영광이 남에게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로마서 10:9-12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마태복음서 15:21-28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설교문
  
여러분,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전 세계가 다시 들끓고 있는 장면을 보고, 듣고 계시죠? 중동지역, 북아프리카 지역이 난리가 났고, 동남아시아까지 영향이 미쳤습니다. 지금 살육, 저항, 반미 그리고 반서구에 대한 데모가 한창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이러한 사건을 많이 경험했으며, 앞으로도 더 경험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의 단초는 영화 <무슬림의 무지> 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은 이집트 콥트족에 속한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영화 내용 중에 마호메트를 비난하고, 또 유린한 사건 때문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중앙 및 남부 아프리카는 물론 섬나라인 마다카스카르는 대부분이 천주교와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북아프리카 지역은 거의 이슬람 국가입니다. 이집트 카이로에 역사가 오래된 콥틱교회가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정교회에 속하며, 장로교나 개신교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콥트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다수의 이슬람으로부터 공격과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마 그 중에 속한 한 사람이 자기들이 당한 핍박과 아픔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마호메트 비판으로 그린 것 같습니다.

이 비판을 받은 이슬람 사람들은 과거에 가졌던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 또 유대교와 이슬람의 대결 속에 있었던 수많은 아픔을 기억하게 되고, 집단으로 폭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역사적인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과거의 것을 해결하지 못한채 살아갑니다.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과거에 있었던 사건은 본인의 경험과 기억이라는 매체를 통해 현실로 끌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억은 현재에 폭발력을 가지고, 이 폭발력은 혁명, 저항, 살육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경험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어디에 보관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은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잠재의식이라 이름하는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이 공간 속에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다 담고 있다가 필요하면 대문을 열고 나와 오늘의 현실, 즉 의식세계로 와서 혁명을 일으킵니다. 또 무의식 세계라는 잠재의식보다 더 깊은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 감추어 있던 옛날 사건, 이야기, 감정, 언어 등이 묶여 있다 풀려나와 오늘날 사건을 일으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도, 민족이라는 집단도, 종교라는 집단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개인의식도 있고, 집단의식도 있습니다. 잠재의식과 무의식 속에도 개인의 잠재의식, 집단의 잠재의식. 개인의 무의식, 집단의 무의식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터져 나오면 일이 벌어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설교로 전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도와 고민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또는 여러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자유롭게 고백하며 사는 이 나라, 이 서울 땅에서 이 말씀을 전하는 것과 지금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에서와 같이 종교간의 갈등으로 인해서 아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다를까.

오늘 본문에 나온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가나안(오늘의 아랍) 사람입니다. 인종 간의 갈등이 극심하던 시절, 이 이방여인은 이스라엘 백성의 다윗의 후손인 예수를 찾아와서 말합니다:“우리 딸이 지금 귀신 들려서 미쳐 있습니다. 그러니 이 귀신 좀 쫓아내서 제대로 살게 해주십시오.” 이 말에 예수는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방인여인은 이렇게 간구합니다: “제발, 제발 내 딸에게서 귀신 좀 나가라고 한 말씀만 해주면 낫겠습니다". 나에게는 인종주의가 없습니다. 그냥 내 딸이 낫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귀신 때문에 죽겠습니다. 내 딸이 미쳤습니다. 집안에서 살수가 없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호소입니다. 여러분 이 심정 이해하시겠죠?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내 백성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잃은 양을 찾으러 왔지, 너 같은 이방여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오지 않았다.” 청천벽력에 속하는 예수답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잃은 양 만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잃어버린 양은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반응하셨겠습니까? 제 딸이 아파서 예수한테 찾아 갔더니 저보고 선민이 아닌 그 이외에 속하는 한국 사람에게 나는 관심 없다고 했다 칩시다. 제가 그런 분을 보고 종교지도자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이 여성을 보세요. 그 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예수에게 하소연 합니다. “인종주의 떠나십시오. 다 떠나서 내 딸의 머리에 손만 얹어 주시면 귀신이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내 식구가 앉아서 밥을 먹는데, 내 자식이 먹을 음식을 먹이지 않고 상밑에 있는 개에게 주는 것이 옳으냐?”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너는 개다, 사람이 아니다.” 이 정도면 여인의 분노는 충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여성의 대답입니다: “하물며 개도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 않습니까?"고. 이 말 속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의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헬라어에는 여기서 "개"를 지칭하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키온’(kyon)으로 “사나운, 나쁜, 미친개처럼 사람을 무는 들짐승 같은 개”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집안에서 기르는 강아지, 즉 애완견을 가리키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키나리온’(kynarion)이라고 썼습니다. 키온이라는 단어에 비해서는 많이 봐준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들짐승 같은 개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애완견이라고 보셨습니다. 그렇게 봐줬음에도 불구하고 개는 개입니다. “나는 개에게 은총을 줄 수 없다. 하늘의 복음을 사람에게는 주어도, 개한테는 줄 수 없다"는 말이죠. 이 정도면 인종주의, 분파주의로 극과 극입니다. 그 때 이 여성의 심정은 이랬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딸을 살려야 한다. 철저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내 목적은 내 딸을 살리는 것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예수의 대답입니다. 네 믿음은 분노, 좌절, 소외도 초월하는구나. 인간사회가 갖고 있는 이념, 소위 사람이 만든 인종주의도 초월하는구나. 정치적, 이념적인 것까지 초월하며, 사람이 만든 모든 가로막는 벽을 초월하는구나. 그 말을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다.”고 하십니다. 예수의 대답입니다. “네가 원하는 것처럼 네 소원대로 되어라.” 이 장면은 오늘 종교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 수단 교회에, 이집트 교회에, 중동 교회에 선포하는 경우,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떤 심정을 가지고 예수의 말씀을 선포하며 또 들을까요?

오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먼저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십니다. 믿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큰데 얼마나 크냐 하면, 믿으면 구원을 받을 정도로 크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한 가지 때문에 예수 믿습니다.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여성은 아주 잘 믿어서 예수님 보시기에 “네 믿음이 너무 커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딸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네 믿음이 크다",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의 믿음이 매우 커서 나도 네 믿음에 구원의 은총을 더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자신의 믿음 만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인이 믿었다고 딸이 나은 게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의 믿음 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면 구원은 여러분이 만드는 거 아닙니까? 사람이 믿어서 구원 받는다고 하면 사람이 구원을 창조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 때문에 신이 필요합니까? 믿음은 무엇이냐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는 믿음, 곧 일반통행식의 믿음이 아니고, 쌍방통행식의 그것입니다. 적어도 믿음이 구원을 가져온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믿어 주신다는, 쌍방통행식의 "믿음"과 "믿어주심"의 합력 없이 구원 받을 생각 마십시오. 나 혼자만의 계획을 가지고 구원도 받고, 믿음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나/우리를 믿어 주셔서, 곧 이 두 믿음이 합쳐져서 이루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믿어 주십니까? 성경말씀에 보면 우리가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했고, 하나님이 믿어 주시는 것은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결단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해져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 어머니의 "믿음"에 구원을 베푸는 예수님의 "은총"을 합하여 선언하십니다: "마귀야 물러가라.” 그래서 구원이 생겼습니다.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믿으면 질병도 났습니다. 믿으면 고난에서 기쁨으로 바뀝니다. 믿으면 세상이 바뀝니다. 하지만 그 믿음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움직여서, 하나님을 열어서,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의 은혜가 합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십시다.

두 번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인의 항변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십니다. 여인은 이 땅에 있는 인간들 중에 유태인들만, 아니 이스라엘 백성만 음식을 먹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은 부스러기만 먹어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은 말합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는 거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것을 저에게도 주십시오. 저는 가나안 여인이고, 이방여인이지만 저도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저를 만들었을 때는 나에게 주실 창조주의 분깃이 있습니다. 그것만 주십시오. 남의 음식의 부스러기는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피조물인 저에게 준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이 있으니, 그것을 주십시오라고.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신분, 인종, 주의, 지성, 기능, 예술 다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가장 작은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확신가지십시요: “내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이상, 나를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 섭리를 받는 것으로 나는 족하다.” 그래서 유형은 다르지만,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은 피조물 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 버리면, 사람이 만든 피조 세계도 강자의 논리로 짓밟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받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다양하고, 차이가 있지만, 창조주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귀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깨닫고 예수 믿으십시오.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여인보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 나았지. 이제는 "네 소원대로 되어라!” 여인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어머니의 소원은 분명합니다. 미친 딸이 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나가고 하늘의 성령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비상식적으로 사는 세상에서 상식을 따라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딸과 함께 앉아서 아픔도, 기쁨도 오순도순 이야기 하면서 아주 정상적으로 피조물답게 사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소원대로 되어라"는 말씀은 “그것도 옳다. 그러나 또 다른 소원이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소원, 이것이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기업하시는 분들, 집단 운영하시는 분들한테 요즘에 화두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무슨 일을 해낼까. 회사가 생존하는 목적입니다. 집단이 있고, 회사가 있고, 정당이 있고, 가정이 있습니다. 존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회사는 상품을 잘 생산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을 줍니다. 이것이 모든 집단과 개개인의 목적입니다. 사는 의미, 사는 목적을 ‘미션’(mission)이라고 합니다. 선교에도 미션이 있습니다. 이방여인의 미션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딸은 살아야 하고 귀신은 나가야 한다.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네 소원대로 되어라. 네 미션을 완성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미션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미션은 무엇입니까? 신앙인들의 미션은 무엇입니까? 왜 살아야 합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여러분이 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소원대로 되어라.”는 말씀에 또 다른 하나의 의미를 더해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파 병실에 누어있을 때 “제가 아팠다가 병이 나으면, 하나님 저 살려주시면, 더 좋은 목회 하겠습니다. 저를 질병에서 낫게만 해주시면, 제가 건강해지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겠습니다”라고 애원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생각해 볼까요? 민족의 통일은 우리의 민족의 미션입니다. 그렇게 통일만 하면 끝입니까?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통일하면 이 한반도에, 온 세상에, 온 우주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성으로서 진정한 평화를 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미션"이고, 통일동산이 평화의 공동체가 되고, 평화의 땅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비전’(vision)이고, 이상입니다. 사람마다 미션이 있고, 회사마다 미션이 있고, 또 하나, 비전이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제가 아파서 나으면, 미션이 완성되면, 저는 훌륭한 일을 하고, 좋은 사람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동산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러니 통일 주십시오. 평화의 공동체 만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방여인의 딸은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저를 낫게 해주시면 어머니를 통해 배우겠습니다. 제 어머니의 믿음을 보시고, 저를 고쳐주시면 저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서 떳떳하게 질병에서 낫은 백성의 기쁨을 전하겠습니다. 건강한 사회의 이상을 전하겠습니다. 차별이 없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 비전을 성경말씀에서는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면, 아팠던 자가 나으면서 하늘의 시민으로 바뀝니다. 슬픔의 사람이 기쁨의 말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 비전을 오늘 이 여성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차별이 없습니다. 미션은 완성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하나님 나라 아름답게 만드시죠. 비전을 갖고 사십시오.” 오늘 이사야는 이 미션과 비전을 이렇게 말합니다: “창조주인 나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내 자존심 때문에 믿음을 주어서, 감동을 주어서, 은혜를 베풀어서, 내 피조물을 회개시키고 내가 창조한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기를 원한다.” 이런 구원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주적 자존심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바꿔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창조주는 자기 자존심과 목적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표현합니다. 단,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여 달라하십니다. 믿음의 구원 속에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담아 주실 것인데,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달라, 그러면 은혜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새 일, 새 역사는 이렇게 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새 역사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는 그릇 속에 담긴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주의 말씀이 “네 믿음이 너무 크다. 큰 은총을 담아 주마. 너 자신을 지배해라. 세계를 지배해라.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 하십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함께 공유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만 다오! 큰 믿음, 진실 된 믿음, 깊은 믿음, 그리고 순박하고 아름다운 믿음", "나는 은혜를 주마"고. 여러분,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아멘으로 응답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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