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세계와 선교> 총장칼럼 (제196호, 2008년 9월, 2-5쪽)
제6회 한·브·독 공동 국제학술세미나(2008년 8월 18일 - 8월 21일)가 우리 대학교 신학대학원 캠퍼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학술세미나에서는 한국, 브라질, 독일만이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의 신학자들까지 참석하여 학문적인 교류를 나누었다.
특히 이번 주제인 “화해와 치유”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관심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갈등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 더 나아가 인간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화해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화해를 통한 치유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죽음의 세력에 포로가 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화해의 손길은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건네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인과응보의 도식을 깨뜨리고, 심판을 넘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유가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화해를 통한 치유노력은 창조의 첫 아침을 복원하려는, 삶의 영역까지 침범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모든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선교사역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분의 선교사역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청한다. 화해의 가능성은 은총으로 허락되었으나, 화해의 완성을 위해서는 인간의 철저한 변화(회개)가 요청된다. 철저한 방향전환이 없이는 화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방향전환이 없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처럼 큰 착각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신성모독이며 자신에 대한 기만일 뿐이다. 철저한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화해시도는 치유에 이르기는커녕 오히려 화해의 가능성마저 무산시킴으로써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스스로를 죽음의 그늘에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들은 본회퍼의 말대로 하나님의 은총을 너무 값싸게 바겐세일하고 있다. 그리하여 진정한 화해노력이 없이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태계 사이의 화해를 위한 선교사역에 참여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인간 자신의 욕망만을 성취시켜줄 수호신으로 삼으려는 신성모독 행위가 만연되어 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비신앙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근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화해에만 머물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화해를 통한 치유 사역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신앙인들은 골방 안에, 혹은 교회당 안에만 머물 수가 없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른다면, 우리는 변화산 아래로 내려가는 십자가 행진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 행진에 참여함으로써만 우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태계 사이의 화해와 치유를 위해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해와 치유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신앙인으로 내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올해 ‘광복절’ 기념행사가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보다는 이승만 정권의 정부수립에 강조점을 둔 ‘건국절’로 변질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난과 해방에 대한 기억이 실종된다면, 일본과의 진정한 화해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이비 화해는,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므로,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는 이른 바 ‘기독교’ 정권이 대북관계에서는 강경일변도의 정책노선을 고집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정치상황에서도 촛불민심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공권력으로 제압하는 일에만 몰두함으로써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남과 북이 함께 해방을 축하하고 해방의 완성을 위하여 평화통일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야 하는 해방기념일에 정부당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쓸데없는 ‘건국절’ 논란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분열을 심화시키는 계기를 촉발시키고 말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신대학교와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앞장서서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분단체제 아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치유를 통하여 남과 북의 구성원들이 진정한 화해에 이르도록 더욱 힘과 지혜를 모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세계와 인류를 바라보자. 이념 때문에, 혹은 민족이나 인종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심지어 종교를 앞세워서 동료 인간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불행한 현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모든 차별행위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차별적 제도들과 규정들, 그리고 관행들이 철폐되도록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또한 저항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순된 사회현실에서 고난받고 있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신앙인의 사명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서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슬픔으로 직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전쟁이 종식되고 갈등과 증오가 있는 곳에 화해와 치유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기를 갈망하며 정치인들에게 새로운 정책결정을 촉구하여야 한다. 화해와 치유를 위한 기여 가능성 여부, 즉 정의와 평화수립을 위한 의지와 실행능력이 정치지도자들을 선택하는 모든 선거에서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의와 평화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서 이 땅 위에 실현되기를 함께 기도하면서, 이번 국제대회에서 이루어진 소중한 에큐메니칼 대화가 이 땅 위에 평화를 수립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한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