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평화를 만드는 사람

2012년 8월 26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로마서 12장 17~18절

설교문

어떤 단란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이 거칠어져서 그만 싸우다가 서로 헤어지자고 해서 가라서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혼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이 이혼을 하고 보니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연히 이혼을 했군. 혼자 살자니 이거 적적해서 안 되겠군.”

그러나 그는 과거의 아내에게 ‘다시 살자’고 할 수는 없고 해서 아내가 다시 살자고 찾아오면 그때 마지못해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추석이 되었습니다. 그 때 남편은 자라다가 죽은 아이의 무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그 아이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무덤 앞에서 생을 누리지도 못하고 일찍 죽은 아이의 인생이 불쌍해 슬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혼한 아내도 죽은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내도아이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아내가 아이의 무덤을 멀리서 보니 무덤 앞에 웬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뒷모습을 자세히 보니 전 남편이었습니다. 돌아갈까 하다가 기왕에 왔으니 그냥 갈수는 없고 해서 멀리 서 있기만 했습니다.

남편이 한참 울고 나서 돌아서 보니 자신의 과거의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그 때 남편이 “내가 그저 잘못 했어요. 내가 성질이 못돼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라고 하자 아내는 “아니예요. 내 성격이 못 됐지요”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부부는 죽은 아이의 무덤에서 다시 화해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이들 부부는 다시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 말을 못해서 우리가 화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사회가 근본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그 여파로 심각한 갈등에 처한 가정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1위라고 하는 부끄러운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좋은 것으로 1등을 해야 하는데, 이혼을 비롯해서 술소비, 교통사고 사망률, 자살률 등에서 세계 1등 아니면 2등이니, 하나님 앞에서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가정을 포함해서 사회가 갈등이 심해지면 인간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안에서 갈등에 처한 인간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7절).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야만적인 보복행위입니다. 지난 2001년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준 9.11사태는 아랍 국가를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알카에다 총수 빈 라덴의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진 대참사입니다.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부호의 아들이었기에 자신은 얼마든지 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적대감정을 가지고 그런 엄청난 참사를 일으켜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에 엄청난 충격과 불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는 미국이 자신의 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부와 공모하여 자원을 약탈하고, 석유권을 확보하는 등 자신의 민족을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자신의 조국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이슬람권 전체에 걸친 현상이라고 보고 이슬람 전체에 걸쳐 해방전선을 형성하고 게릴라 조직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투쟁하게 되었습니다.

빈 라덴의 이런 게릴라 운동은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기는 하나 9.11 사태와 같이 폭력으로 일관된 그들 조직은 결국 엄청난 참화만 가져올 뿐입니다. 저는 빈 라덴의 이런 폭력적인 무장해방운동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아무리 사회악이 있다손 치더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미국의 흑인 목사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서슴치 않는 미국 사회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강력하게 저항하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폭력은 비현실적이고 비양심적입니다. 폭력은 악순환의 연속이자 파멸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모욕과 수치를 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것은 비양심적입니다. 폭력은 사랑보다는 미움을 퍼뜨리기 때문에 비양심적입니다. 폭력은 폭력으로서 끝이 납니다. 파괴자에겐 잔인함을 남기고, 생존자에겐 고통만을 남깁니다.”

이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무모한 것 같지만 결국 그가 떠난 지 40여년 만에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출현했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악하다 하더라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불의한 세력들 즉 로마 권력과 헤롯의 권력과 유대 종교권력이 연합하여 진리이신 당신을 제거하려고 하는데도 전혀 대항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불의에게 진리가 패배한 것처럼 빌라도와 헤롯과 종교 권력이 축배를 마시고 있을 때, 주님은 부활하셔서 진리가 결국에는 이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진리가 결국에는 이깁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악의 권세에 의해 한치 앞을 볼 수가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진리의 길로만 가야 합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16대 링컨 대통령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훌륭한 것은 노예를 해방시켰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남북전쟁 후에 국가적인 일을 매우 잘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한 기자가 링컨에게 “미연방을 반대하고 이탈한 남부인들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기자는 링컨이 나라를 둘로 나누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대혼란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엄청난 보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나는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는 형제처럼 그들을 대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제 공격을 했던 남군이 패배하고 북군이 승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남부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우리는 서로 한 형제이고 동포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감싸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남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리’장군에 대해서도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에 워싱턴대학 총장으로 명예로운 삶을 살게 도와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며 통일 대통령으로서 모든 일을 너그럽게 처리하였습니다. 이것이 링컨이 예수님에게 배운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7절).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고 해를 일삼는 악인들에게 단지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소극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요셉은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결국 애굽 왕의 시위대장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위대장의 아내가 요셉을 연모하자 그가 그것을 거절했는데, 도리어 그녀는 그를 강간범으로 몰아 감옥에 들어가 죄수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해준 것 때문에 왕의 꿈을 해몽하고 결국 그 나라의 총리대신으로 출세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형들이 곡물을 사러 와서 다시 만나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마저 돌보아 주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적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원수인 형들에게 자신을 밝히면서 그들을 다 마음으로 품어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4-8).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하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우리에게 잘못하는 이를 마음으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또 오늘 본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8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최선을 다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18절 말씀은 상대방이 평화를 지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평화를 만들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작은 말 한마디로도 이런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있은 일입니다. 두 나라가 서로 싸웁니다. 가만히 보니 더 싸우다가는 두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을 알고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중간에 나타나 가지고 이쪽 나라에 가서 왕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유해 말하건대 이 나라는 보름달 같고 저 나라는 초생달 같습니다. 큰 나라가 되어서 굳이 조그마한 나라를 왜 치려고 하십니까?”

듣자니 왕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 “아, 그러면 그만두지 뭐...”하고는 전쟁을 그만두게 되는데, 이 사람이 이번에는 저쪽 나라에 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 사람을 보더니 “뭐라고? 그 나라는 보름달이고 우리는 초생달이라고? 이 사람이 우리를 영 무시하는구만!”하고 대듭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보름달은 이제부터 기울 것이고 초생달은 이제부터 커질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내가 당신네를 무시한 것입니까.” “오, 그렇구만!” 그래서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이 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로 평화가 이루어지고 화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만 주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듯 대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요구됩니다. 2010년 4월에 호주인 낸시 밀리센트 휴머스톤씨의 유해가 한국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었습니다.

1947년 호주 알렉산더병원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2차대전이 끝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특수부대 장교였던 케네스 존 휴머스톤을 만나 3년의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린지 3주 만에 남편은 한국전쟁에 파병됐고,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낸시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이 아니라, 한통의 전사 통지서였습니다.

낸시 여사는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후 일본에서 호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군에 입대하였고, 남편을 그리는 마음으로 평생을 봉사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는 유언이 받아드려져서 부산 대연동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남편과 함께 안장되었습니다.

3주간의 짧은 결혼생활, 60년간의 긴 이별 이후 휴머스톤 부부는 비로소 영원히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3주간의 짧은 결혼생활과 60년간의 긴 이별이라는 아픈 경험이 있는 휴머스톤 부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한 사람들을 반드시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을 신앙적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매년 육군사관학교졸업식에는 이색적인 이벤트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소위 계급장을 단 졸업생들이 고 강재구 소령 동상을 향해 일제히 달려가 꽃다발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또 매주 금요일이면 예복을 갖춰 입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화랑의식을 실시합니다. 연대장 생도의 힘찬 구령과 함께 진행되는 화랑의식은 한 주의 성과를 돌아보고 다음 한 주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입니다.

이 화랑의식이 끝나게 되면 사관생도들은 고 강재구 소령 동상을 지나는 분열 퍼레이드를 실시하는데, 부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 강재구 소령 동상 앞에서 ‘내 생명 조국을 위해’ 기꺼이 바치겠다는 호국충정의 의지를 결의하면서 ‘받들어 총, 충성’을 우렁차게 외치며 행진을 한다고 합니다.

강재구(1937~1965.10.4) 소령은 인천 출생으로 1960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6기생으로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습니다. 수도사단에 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 파병이 결정되자 자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이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10월 4일 홍천 부근에서 훈련하던 중 한 중대원의 실수로 많은 부하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순간 스스로 몸을 던져 수류탄을 덮쳐 사랑하는 부하들을 구하고 28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순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는 이런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평화를 이룩하는데 어떤 때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어떤 때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안타깝게도 희생되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피스메이커’ 즉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셨듯이, 우리 또한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서 동서가 합치고, 남북이 합치고, 나 하나의 희생으로 인하여 서로가 하나되는 역사가 있을 때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평화를 만들고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겸손과 사랑에서 화목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역사는 교만과 우월감 또는 열등감과 자기비하의 감정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그런데 평화와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의 본질을 훼손시키거나 성결한 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부득불 평화와 화목을 이루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가령 부부간에 언제나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 양보하고 관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손상을 가져오는 일, 곧 주일을 범하든지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양보하고 관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노하시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양심을 거스르면서까지 타협하면 안 됩니다. 잠언 16장 7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사람과 화목하는 길이기에,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십자가를 통해 평화를 주셨듯이, 우리 또한 이 세상에 평화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평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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