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보물을 드려라

2012년 10월 7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58:6-8,10-11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주시며,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아멘.

히브리서 13:14-16
사실,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6:19-23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아멘
 
설교문  
  
우리 모두는 "공동기도" 할 때 여러 가지 간구와 감사를 담아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힘주어서 한 기도 대목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 드릴 테니 들어보십시오.

“하나님 특별히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나고, 추수할 일꾼으로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 위해 일하도록 축복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특별한 절기 예배 때마다 우리 청년들, 젊은이들과 함께 대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그간 한 번도 대예배 때 이와 관련하여 광고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해야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어린이들, 청소년들, 청년들이 오늘 1부 예배 때 함께 했습니다. 설교시간이지만 제가 한번 제안하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 이 자리에서 함께 일어들 나세요.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 자녀들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서 하나님 나라 추수꾼 되라고 우리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격려의 박수 한 번 하고 설교 시작하겠습니다(박수). 이렇게 감사 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인지 깨닫고 경험하면서, 부모님들하고 같이 예배드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행하는 상징적인 행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절에 두 깃발을 단에 세웁니다. 오늘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는 "주님께 감사하십시오"라고 쓴 깃발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감사하러 예배에 오셨습니다. 또 하나는 "주님께 찬양 드립시다"라는 깃발입니다. 이것이 감사절의 두 번째 의미인데, 이 두 가지가 서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양면입니다. 한 동전의 양면처럼, 감사와 찬양은 같이 갑니다. 오늘 성경말씀 세 군대 봉독한 것 들으셨죠.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감사절에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예물도 바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저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추수감사의 예물도, 헌금도 다 받침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바친 이 헌금과 예물을 하나님이 잡수시는가요? 하나님이 필요해서 헌금을 하나님 자신의 삶을 위해 쓰시는가요? 하늘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데서 오셔서 우리 것을 다 가져가시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모든 제물은, 제사까지 합쳐서, 모든 제물은 받으신 하나님이 자기가 보기에 정말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필요로 하는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다시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 하셔서 잘 살게 해주셨고, 우리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예물과 함께 바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좋으셔서, 너무 기뻐서, 받은 예물과 감사의 제물에 하나님 자신의 사랑을 담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담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담아서 다시금 인간에게 베풀어 주심니다. 하나님은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를 못 하는 사람들, 먹을 것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파하는 사람들, 옥에 갇혀서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들, 폭력에 시달려서 하나님께 풀려남을 호소하는 사람들,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로 감사하고 싶지만 감사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드린 감사의 예물을, 감사의 헌금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베풀고 나누어 주십니다.

감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에 감사하여 바치는 감사, 그리고 받으신 하나님이 다시 베풀어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베푸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감사한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그래서 감사를 이렇게 지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 받으신 하나님이 다시 우리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합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찬양!". 항상 감사와 찬양이 우리 삶의 기본적인 두 요소입니다.

이렇게 오늘 감사절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말씀에는 감사와 찬양에 대한 두 가지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첫 번째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일 년 추수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형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니까 농산물을 하나님께 잘 바쳤습니다. 둘째 아들 아벨은 목축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것 잡아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경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형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둘째 아들 아들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요지를 보면, 가인은 제물을 바쳤고, 제물을 바쳐야 할 가인 자기 자신은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분노 하셨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주신 헌금, 헌물도 감사해서 바치고, 동시에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신 자기 자신의 마음도 함께 바쳤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감사를 받으셨습니다. 이 감사의 원형을 오늘 우리들이 지켜야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바치는 제사와 헌물 속에, 헌신 속에, 우리 자신을 담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담으면 하나님이 다시 나누어주실 때 물건을 나누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린 감사의 마음까지 하나님이 받으셔서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을 담아 다시 온 세상에 나누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누어주실 때 나누실 재목이 있어야죠. 물건만 나누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감사의 마음을 주시면,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보태서 다시 우리의 이웃들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에게 다시 나누어주실 때, 사람됨도 나누어 주십니다. 어려운 사람 도와줄 때 돈만 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베프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담아 주지 않습니까. 받는 사람이 물건만 받으면 어떡합니까. 마음도 받아야죠. 그래야 감사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찬양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그걸 시샘한 가인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동생 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아벨 속에 있던 감사의 마음, 감사하는 마음속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입김, 하나님의 호흡, 그것마저 죽인 것입니다. 살인만 한 것이 아니고, ‘살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살인행위를 심판하시지만, 살신행위는 더구나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성서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 모든 일정을 주관하신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입ㄱ심"으로 불어넣었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불어넣은 그 형상을,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심정을, 하나님의 심성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면, 하나님이 없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면, 자꾸 나를 간섭한다고 생각하시면, 하나님을 몰아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귀찮아서 하나님은 없다고 부정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무신론의 한 요인입니다. 무신론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귀찮다고, 싫다고, 그래서 신은 없다고 한 것이 무신론의 일종입니다. 오늘 오셔서 감사하면서, 제가 제 자신을 바치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함께 바칠 텐데, 여러분 속에 있는 그리고 제 속에 있는 하나님이 혹시 귀찮아지셨습니까? 좀 불편해지셨습니까? 안 보고 싶으셨습니까? 괴로웠습니까? 그래서 신은 없다고 하고 싶었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한들, 하나님 형상이 없어지거나 부재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로인해 하나님은 감사를 받는 오늘까지 좀 괴로우셨을 겁니다. 좀 힘들어하셨을 겁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신다는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데, 당신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왜 이 땅은 이렇게 험난합니까. 왜 우리 속에 그리고 제 속에서 부정과 부패가, 폭력이, 살인이, 살신이 이렇게 많습니까. 하나님 뭐하십니까. 당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세상은 악합니까. 왜 저/우리는 이렇게 병들어야 합니까, 왜 제/우리가 이처럼 아파야합니까. 고뇌스러워서 묻게되지요. 하나님 지금 뭐하십니까, 당신은 죽었던지, 아니면 없는 것 아닙니까. 이처럼 너무 분해서 소리치는 무신론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무신론은 아주 진지한 고뇌의 산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뭐하십니까, 어디 계십니까, 왜 이러십니까, 이렇게 항거하며 고백하는 사람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오늘 감사로 받으십니다. 저는 이것을 무신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무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입술로만 겉치레로 말하는 값싼 유신론보다 훨씬 진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뭐하십니까,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절규하는 "무신런적 유신런"이 아닐까요.

옛날 히틀러 나치가 600만 유태인을 살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절망속에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뭐하고 계셨나요, 하나님 어디 계셨나요?" 대답이 없으신데, 하여간 그래서 우리가 당신 못 믿지 않습니까, 뭐하고 계시나요? 하나님이 침묵 속에 하신 대답을 신학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나도 가스실의 죽음속에 함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함께 담고계십니다.: "나도 죽었다. 그러나 나는 생명의 하나님의 호흡이니까 살아나야 한다. 내가 살아나서 죽은 자들도 살려야 한다". 그래서 부활의 하나님이 고난의 하나님을 넘어 우리에게 생명의 하나님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역사 시작부터 알고 있고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고마우시죠? 때로는 분하기도 하시죠? 제/우리 하는 일을 일일이 도와주지 않으신다고 불만이시죠. 그런데 그날그날 하나님은 말로 하시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마다 같이 하셔서 우리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심장이란 이름으로 저희한테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한데 어울려 삽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차라리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께 제/우리가 너무 죄를 지어서 당신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말씀만 여러분의 감사 헌금에, 감사제사에 담아 드립시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셔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본래 창조때 갖고 있던 그 분의 아름다운 사랑과 인자하심을, 악에 대한 분노와 심판을, 죄는 멸하시지만 죄인은 용서하시는 그 분의 위대한 사랑을 이 속에 담아서 모든 인간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찬양합니다. 감사와 찬양이 함께 어울리면 아름다운 세상이 됩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읍니다. "흙"을 히브리 원어로 “아다마”(adamah)라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재화, 물건, 세상의 모든 것이 흙으로 만든 아다마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아다마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형상을 불어넣어서, 호흡을 불어 넣어서, 사람을 만들어놓고 너무 좋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마”를 뺀 “아담”(adam) 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한테 감사드리고 싶은 사람은 아다마로 된 물품만 드리지 말라. 아다마라는 표현 속에 담긴 모든 재화나 물건과 모든 것을 드린 것으로 감사를 제한하지 말라. “아담”도 나한테 바쳐라. 이런 말씀입니다. 요지는 하나입니다. 아다마로 감사합시다. 그리고 아담으로도 감사합시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오늘 감사와 찬양에 담아 예배드림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 두 가지를 합친 것을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보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이 이야기되던 당시 옛날 사람들은 은행이 없어서 보물을 어디에 보관했냐면, 집 안 장롱에 넣어 두었죠, 그러면 도둑이 와서 훔쳐갈 수 있죠. 그래서 남모르게 집안 뜰, 땅 속을 파고 보물을 묻었습니다. 제일 안전하게 잘 묻은 것이 무덤 속 시신 옆에 보물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굴 사건이 많았습니다. 땅을 파고 물건을 많이 훔쳐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태복음 말씀이, 보물을 땅에 두면 위험하다, 집 안에 감추어도 녹이 슨다, 이끼가 낀다, 도둑이 든다. 그러니까 도둑질할 수 없는 곳이 하나 밖에 없는데, 그 곳 이름이 “하늘”이란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인데, 가장 귀한 보물은 땅에도, 무덤 속에도, 집안 장롱 속에도 두지 말고, 도둑이 없는 하늘에 두어라, 하늘은 그대들의 가장 중심에 있느니라. 우리의 마음 속이 하늘입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곳에 보물을 담아 놓으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집 옆에, 땅 속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두는 것이 아니고, 내/우리 "중심" 속에 가장 귀한 것을 담아놓으면,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이 가슴이 있는 곳에 있으므로, 그 속에 담아 놓으면, 누구도 도둑질해가지 못한다. “내가 보호해 주마.” 그런 말씀이십니다.

사람의 가치는 바로 이런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도, 이사야서 말씀도, 마태복음 말씀도 한 가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고 태어 났으므로, 감사하고 싶으면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이 다시 나누어 베푸셨으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다마라 이름하는 모든 물건과 재산과 명예와 권력,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준 것이지, 물건 자체를 예배하고 숭배하라고 그 많은 돈과 권력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권력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하고 감사 찬양할 분은 하나님뿐이고, 나머지는 찬양과 감사의 수단으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라는 말응 영어로 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그 앞에 무엇이 생략되었냐면, 하나님, 곧 God worship= 하나님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지 돈이라는 “맘몬”(mammon)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Mammon worship이 아닙니다. 맘몬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숭배하고 예배하는 대상은 하나님 뿐입니다. “God worship”은 맞고, “Mammon worship”은 아닙니다. 가인의 감사를 왜 하나님이 안 받으셨냐면, 맘몬을 신처럼 생각하고, 맘몬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자신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긴 게 아니라 맘몬을 섬겼습니다. 그런 제물은 하나님이 안 받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여러분, 이렇게 삽시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고, 축복 받은 우리는 진실로 감사하며 삽니다. 사랄고 주신 맘몬에다가 우리 자신까지 얹어서 감사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주시면서, 맘몬은 삶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숭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받으시면 반드시 다시 나누어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웃과 함께 나누며 감사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사람은 그 분의 도움을 받는 모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감사합시다. 정말 베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감사예물을 다시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입니다. 오늘 이 축복과 영광을 여러분이 함께 받으시길 기원합니다니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