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이사야서 26:12-15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성취한 모든 일은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까지는 주님 말고 다른 권세자들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벌하시어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셨으니, 죽은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 민족을 큰 민족으로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나라를 큰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습니다. 이 일로 주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아멘.
골로새서 1:13-20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9:20-25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예수께서 그 지도자의 집에 이르러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물러가거라.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무리를 내보낸 다음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그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아멘.
설교문
제가 알고 있는 시리아 정교회의 주교님으로부터 메일 한통을 받았습니다. 이 주교님은 Matta Roham이라 이름하는 대주교이신데, 이전에 제가 설교할 때 WCC 총회를 유치하는 것과 관련해 대주교님 하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내용은 총회장소를 시리아로 정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정한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던 분입니다. 이 분이 어제 사진과 함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지난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시리아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Dair Al-Zor 라는 ehtl가 있는데, 그 곳에 자신의 교구에 속한 아름다운 수도원 교회가 있답니다. 이 교회가 26일 밤 어느 무슬림의 폭탄테러로 인해 파괴 되었답니다. 메일 제목이 "하나님의 영광이 폭탄을 맞다"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집이 무너졌답니다. 이런 내용으로 해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 중에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헌금, 헌물, 헌신을 다해서 아름다운 성당을 건축했는데, 건축 할 때 걸린 시간이 10년인데, 폭탄테러로 폭발당해 망가진 시간은 1분이었답니다. 그 분의 이야기 입니다. 창조는 10년 걸렸고, 파괴는 1분 걸렸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기도 부탁합니다. 지난 봄에 있었던 리비아와 이집트 등 중동을 휩쓸었던 소위 아랍의 봄, 민주화, 변화에 대한 결과가 지난 10월 26일 있었던 성전폭파 사건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이 글에 아름다운 성전 사진과 파괴된 성전 사진을 찍어서 첨부메일로 보내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과 분노 속에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많은 성도들은 예배할 장소를 잃었읍니다만,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입니다. 중동의 봄, 아랍의 봄, 그것이 무너졌습니다. 하나의 시대의 징조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제는 이 사건을 보면서, 옛날 옛적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 만드셨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날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날 하신 말씀이 “너무 좋다!”입니다. 새들이 지저기고, 나무가 자라고, 과실이 열리고, 짐승이 뛰어 놀고, 물이 맑고, 구름이 높고, 사랑하는 사이인 아담과 하와가 함께 거니는 것을 보시고 참 좋다고 하셨읍니다. 물론 오늘의 일자개념으로 엿새 동안 지어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상징적 숫자입니다. 6년이 걸렸을지, 60년이 걸렸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간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사람까지 만드셔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충만한 은혜로 가득한, 은혜가 풍성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그 세계 이름이 에덴 동산입니다. 사람들이 고고학적으로 어디에 에덴동산이 있었는지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아주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고백의 사실이 중요합니다. 에덴동산의 모습이 어떻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참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지요. 아름다움과 좋음이 얼마나 가득 찼을까요? 하여간 "참 좋다"는 하나님의 찬사입니다.
오늘 골로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참 좋다"는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창조는 "가득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아주 풍성하고 풍만한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찼습니다. 빈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아마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 참 좋다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습니다. 참 좋은 동네가, 은혜로만 가득 찬 동네가 구멍이 납니다. 바람이 샙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참 좋던 에던 동산이 분노와 좌절과, 근심의 동산으로 변합니다. 존 밀턴(John Milton)은 이 에덴동산을 가리켜서 실낙원이라고 말합니다. 뭐라고 이름 했던지 건에 에덴동산의 꽉 찬 은혜가 새나가기 시작합니다. 많이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슴도, 가득 찬 은혜의 가슴에서 아마 구멍 난 가슴으로, 분노와 좌절의 가슴으로 변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 가득 찬 은혜는 창조의 처음부터 있었고, 이 가득 찬 첫 창조의 기쁨은 마지막으로 주님이 재림하셔서 다시 이룰 그날까지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할 것입니다. 그 처음과 마지막 사이는 실낙원이라 이름하는 사이시간 입니다. 마지막 완벽하게 이루어질 풍만한 은총의 동산이 될 때까지 그 사이 시간을 우리는 지금 살아갑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요? 많이 허기져 있고, 파괴되어 있고, 망가졌고, 그래서 하나님이 아직은 참 좋다고 못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마지막 날 참 좋다고 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오늘은 좋다. 하늘의 뜻과 땅의 풍성함이 만나서 사는것을 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 그 분이 좋으시면 우리도 좋죠. 너무 좋으면 하나님께 찬양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좋다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제단에서 말씀드립니다만,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은총이 예배드리는 여러들과 함께 "나는 정말 좋다. 나 기분 좋다. 정말 오늘 좋다"고 그러시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않하시다면, 좋다고 하는 음성을 우리가 못 들으면 오늘 예배는 불행한 예배입니다. 제가 부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 좋다고 하시는 감동의 말씀을 그 분으로 부터 끌어내십시오. 어떻게 끌어 낼 수 있습니까? 예를들어 시리아에서 일어난 폭발은 하나님의 창조 감동을 못 끌어냅니다.
제가 역사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시리아뿐만 아니라 온 역사 가운데 이런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끼리만 살자, 우리만 순혈이고, 우리의 전통만이 좋다. 이런 주장들을 합니다. 우리와 종교를 달리하면 성당도 부스고, 살인도 합니다. 우리끼리 에덴동산 만들자는 사고가, 그런 사고의 실체와 현실이 역사 속에 많았습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자기 진화론을 내놓고, 소위 모든 것은 진화하는데, 진화하는 과정에 적자생존의 법칙이 있어 적자는 살고, 적자가 아닌 것은 죽임을 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고, 부자는 살고, 가난한 자는 죽고, 힘 있는 자는 살고, 병든 자는 죽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생물계를 지배한답니다. 아마 맞는 말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생물학적인 적자생존의 원리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악용해서, 하나님의 에덴동산을 아주 멍들게 한 사건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나치(Nazi)가 대표적입니다. 나치를 만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리안족! 게르만족!",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라안족의 순혈은 너무 아름답다. 우리 피가 아닌 족속은 무능한, 무능한 족속임으로 멸망시켜야 한다.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은 다 잘라내어야 한다. 우리와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잘라내어야 한다. 그렇게 말이죠. 그쪽에서 목표로 설정한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600만을 가스실에서 죽입니다. 그들만 죽인게 아닙니다. 같은 아리안족이지만, 사상적으로, 자기들 순혈을 받은 사상과 다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전부 특별대상으로 삼아 처치했습니다. 독일 민족 가운데 그들만 당한게 아닙니다. 아리안족은 건강해야 한다. 병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서 병자, 정신 박약자, 신체 병든 사람, 모든 병자를 불러다가 가스실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반대가 일상한 된 사람들, 비판자들을 불러다가 전부 죽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자기들이 만든 "아리안 동산" 만이 참으로 아름다운 동산이다라는 착각이 빚어낸 사건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2차 대전까지 일으킨 이들의 작태 속에서 우리는 압니다. 이렇게 세상을 자기끼리만 살 수 있는 "끼리끼리의 에덴동산" 이라 주장하는 것은 큰 죄악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나치의 비극이 그렇게 세계역사의 한 장을 형성했습니다. 지금도 형태는 다르나 수많은 곳에서 에덴동산의 참뜻을 파괴하는 사건들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리켜서 "사회적 다윈주의" 또는 "정치적 다윈주의"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존방식은 무자비한 적자생존의 방식이 아님니다. 적자와 적자 아닌 사람들을 다 살려서 둘이 화합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의 완벽한 세상, 은혜가 풍성한 세상, 하늘과 땅이 만나서 화해되어서 만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려고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막상 오시고 나니까 유대 백성들의 사고 속에 적자생존의 법칙 비슷한 사고의 형태가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형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대백성들은 선민입니다. 사실이죠. 그런데 그들은 장점도 많은데 단점도 많습니다. 선민인데, 유대백성의 순혈을 받아야 하나님의 선민이다. 혹시 순혈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백성이지만 유대신앙을 가지면, 선민의 범주속에 넣어줍니다. 그러면서 "우리 선민"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비록 유대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진노와 벌을 받은 사람이기에 같은 선민 속에 함께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나오는 혈류병 걸린 여자, 어느 지도자의 딸이라고 하는 중병에 걸린 자식도 선택된 사람들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성전에 참여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같은 식구지만 같은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같이 영화 구경도 못갑니다. 아무런 공동체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격리된 파괴된 공동체 일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고 한탄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무너짐이 오늘까지도 심각하구나 하면서. 혈루병 앓는 여자가 찾아옵니다. 찾아와서, 이 세상에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제가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 옷자락만 잡으면 나을지 모른다 하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습니다. 자기 옷자락 잡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십니다. 옷자락 믿음입니다. 예수님만 믿고 믿는 마음으로 옷자락 잡으니까, 예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하십니다. 즉석에서 혈루병 걸린 여자가 나았습니다.
어느 지도자의 딸이 병에 걸려 누워있었읍니다. 그 집에 가봤더니 이 지도자의 딸이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게 아니다. 자고 있다. 소녀야 일어나라!", 그랬더니 살아났습니다. 세상의 윤리가, 도덕이 완전히 격리시켰던 사람들, 사람들을 잘라내어서 파괴시킨 창조의 질서, 예수님이 가셔서 그 파괴된 질서를 살려 내셨습니다. 살려내서, 온당한 질서 속으로 옮겨 주시면서 선언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구하러 왔다. 경전을 고치러 왔다. 배고픈 이를 먹이러 왔다. 함께 모여서, 풍선한 은혜의 동산인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오신 목적이 이렇습니다. 세상은 자르지요. 세상은 버리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자를, 잘림 당한 자를, 발길로 체인 자를, 다시 구원하셔서 온전한 세상사람으로 일으켜 주십니다. 죄지은 자를 죽이지만 않고 회개시켜서 새로운 의인으로 만드시고 온전한 공동체 일원으로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사람의 방식과 예수의 방식은 다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이 예수님은 에덴동산이 만들어 지기 이전부터 계신 분입니다. 이 분은 동시에 앞으로 이루어질 완벽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처음이자 끝이고, 처음부터 끝이시고, 우리는 이 둘 사이에 살고 있는데,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는 예수께서 오늘 이런축복의 말씀을 전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깨어진 창조 질서를 깬 사람이 회복시키지 못합니다. 창조주만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의 힘을 받아서, 예수라 이름 하는 창조주 아들이 와서, 오늘 우리한테 파괴된 질서를 그리고 파괴된 인간을, 갈기갈기 찌어진 우리 사회를 다시 복구 시켜 주십니다. 바라만 보지 마시고, 복구 시켜 주시는, 치유해 주시는,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찾으십시오. 찾는 방법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단 한가지 믿음을 보이시면 됩니다.
제가 설교에서 믿음에 관해서 그동안 몇 번 말씀 드렸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깨진 것 복원시키시는, 회개시켜서 다시 구원 시키시는, 하나님의완벽한 풍성한 은혜를 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을 여세요. 열면 하나님한테서 은혜가 나옵니다. 구원의 은총이 나옵니다. 열면 구원이 나옵니다. 열지 않고 바라다만 보는 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간구하시면 믿음도 커야지요. 진실 된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시면 믿음이 진실해야지요. 가짜열쇠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열쇠로도 열려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진실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열면 그 믿음에 따라서 은혜가 나옵니다. 물론 믿음도 내가 만든 믿음이 아니고, 성령이 오셔서 역사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슴을 열면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서 그 은혜가 깨어진 백성들의 마음을, 사회를, 가정을 다시 복원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참 좋다하신"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믿음의 열쇠가 중요합니다. 오늘 혈루병 걸린 여자의 믿음이 낫게했다고 하십니다. 그녀가 옷자락 잡은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께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호소가 것이 믿음입니다. 고백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의 가슴이 열림니다. 그리고 살리십니다. 감사한 이야기입니다.
믿으면 믿음 만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믿으면 은혜가 열려서 믿음과 은혜가 합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룹니다. 하나님을 깨우세요. 오늘 구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잠자지 못하게 하세요. 넘쳐나는 은혜가 오늘 임하게 하시려면 믿음으로 은혜를 찾으십시오. 예수님도 이런 말씀 하셨지요. 구하라 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구하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찾으라, 찾아 질 것이요. 믿음으로 찾아야 은혜가 찾아 집니다. 문을 두드려라. 믿음으로 문을 두드려야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립니다. 그냥 두드린다고 해서 열리는 게 아닙니다. 그 분의 말씀입니다. 온 세상에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복원시켜 주마. 나는 은혜로 풍성하게 주마. 원래부터 풍성했던 은혜를 다시 살리마. 세상을 살리마. 인간도 살리마. 자연도 살리마. 믿음 다오.
오늘 메시지는 단순 소박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진 인간에게 또 인간의 땅에 오셔서 예수님 자신이 믿음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 분이 오셔서 오늘 우리한테 십자가와 부활의 이야기를 전하십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깨어진 창조 질서의 운명은 결국에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끝도 죽음입니다. 자연의 종말도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어진 창조질서를 스스로 어깨에 지시고,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운명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피조 된 세계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죽음으로 끝나는 창조질서가 아닙니다. 죽은 것을 다시 살려 내서 죽음을 죽이고, 생명을 살려내셔서, 곧 부활하셔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만듭니다. 재창조, 새 창조가 부활의 사건입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예수님만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든 피조물은 예수와 함께 죽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창조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 속에 하나님이 있듯이, 예수믿는 우리 속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듯이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풍성한 은혜가 지배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피조물, 새로운 형상입니다. 여기 앉으신 여러분 모두가 다 오늘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좌절하지 마세요. 다시 사셔야 합니다. 깨진 것 복원하십니다. 회개로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아픔도 다시 치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로 주시는 우리의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오늘 여러분 확신하시고, 여기서 세상으로 나가서 구원의 은혜를 전하십시오. 믿음을 보이십시오. 깊은 믿음을 하나님께 드리면 깊은 은혜가 하나님으로 부터 옵니다. 넓은 믿음을 드리면 넓은 은혜가 옵니다. 믿음만이 참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 되게 삽시다. 심각하게 삽시다. 깊은데서 삽시다. 그리고 진실로 간구하십시다. 하나님의 은총이 기다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