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하나님 나라 맛보기

2012년 11월 11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욥기 14:1-6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사는 날이 짧은데다가, 그 생애마저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 같이, 사라져서 멈추어 서지를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미미한 것을 눈여겨 살피시겠다는 겁니까? 더욱이 저와 같은 것을 심판대로 데리고 가셔서, 심판하시겠다는 겁니까? 그 누가 불결한 것에서, 정결한 것이 나오게 할 수 있겠습니가?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살아갈 날 수는 미리 정해져 있고, 그 달 수도 주님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셔서 그가 숨을 좀 돌리게 하시고, 자기가 살 남은 시간을 품꾼만큼이라도 한 번 마음껏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데살로니가전서 5:1-6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아멘.

누가복음서 17:20-24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 할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더러 말하기를 ‘보아라, 저기에 계신다’, 또는 ‘보아라, 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따라 나서지도 말고, 찾아다니지도 말아라. 마치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아멘.
 
설교문  
  
신앙에는 항상 두 방향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다시 하늘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성가대 찬양도 그렇게 했습니다. 언제가 제가 여러분에게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신학자 한 분 가운데 칼 바르트(Karl Barth)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고백서에 보면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찬송을 부를까? 확신하기로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작곡한 찬송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천사들이 재밌게 놀고 마시고, 에덴동산을 즐길 때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확신하건데,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저는 이 분이 노래 이야기만 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더 깊은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가 부르는 찬송, 드리는 기도, 또 선포하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감사하여 우리가 드리는 대답 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신 하나님도 감사하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하는 노래도 들으셔서 하늘에서도 똑같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늘과 땅은 통합니다. 통함이 없는 하늘과 땅은 의미가 없습니다. 찬양만 해도 그렇습니다. 찬양은 우리가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지만 하늘도 우리의 찬양을 받고서 똑같은 찬양을 부릅니다. 놀라운 생각 아닌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간구와 찬양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받으시는 것을 하나님은 즐겨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만나서 행복한 것만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서 행복해 하십니다. 하늘도 땅도 만나야지요. 찬양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만나고, 통하는 이것이 신앙의 양면성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생각, 기도, 음성 속에 사람의 음성만 담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 음성 속에 하늘이 내려와 있다고 확신하고, 하늘의 음성을 바래 보십시오. 하늘이 함께 계셔서 내가 역사를 만든다고 확신해 보십시오. 하늘 은혜 때문에 내가 찬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렇게나 할 수 없지요.

사람이 태어날 때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부어 주셨다고 그랬습니다. 사람 얼굴만이 형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방식 속에, 음성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하나 속에 하늘의 움직임이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시면, 우리가 하는 표정이나, 일 속에 하늘이 함께 역사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요,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 모든 삶 속에 하늘의 은혜를 진심으로 담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음성과 호소를 똑같이 받으십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듯이, 하나님 속에도 우리 사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인간 창조의 핵심이고, 비밀입니다. 우리 경동교회 교우 여러분은 무슨 일이 생겨도 호들갑 떨지 않고, 아주 조용하고, 침착합니다. “아멘” 소리도 아무 때나 하지 않고, 감동 될 때만 합니다. 우리는 세 본문을 통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서, 사도들의 말씀인 데살로니가 전서, 아주 비참한 경험을 한 욥의 고백인 욥기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말씀을 봉독하는 것을 들어 봤는데, 1부 때와 2부 때 똑같은 현상을 알았습니다. 욥기서를 읽을 때 여러분들이 아멘을 가장 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의 목소리를 좋아하는구나, 동변상련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건강 빼앗아가고, 재산도 빼앗아가고, 가족도 빼앗아 가셔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항의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한 가지만 바란다. 내가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만이라도 당신이 내게 베푸신 생명, 사랑, 진실, 기쁨 이 모든 축복을 내 멋대로 누리게 허락해 주십시오.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골치 아프게 하십니까. 한 순간만 부탁합니다. 다른 순간 필요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칭송받던 욥이 이렇게 고백 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비슷하신가요? 인간의 있는 대로의 고백이 여러분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저는 이 고백이 하나님의 가슴을 똑같이 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통하니까요. 우리가 하늘에 호소하는데, 하늘이 그냥 있을 수가 없지요.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욥이 생각하기에 하나님 나라는 정말 힘든 나라입니다, 고생이 많습니다. 너무 경험을 못해서, 한 가지만 부탁합니다. 한 순간만이라도 하늘나라 축복을 주십시오. 내 마음껏, 내가 생각하는 사고와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다 포함해서 마음껏 한 번 살게 해 주십시오. 그게 천국 아닙니까? 여러분 데살로니가전서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나라는 영원 무궁한 나라입니다. 죽는 것도 없는 영원무궁한 나라인데, 굉장히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도둑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 원하시지요? 저도 원합니다. 영원히 살 나라 원하시지요? 제가 어느 집회에 갔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어느 여성 권사님 한 분이 아들의 결혼을 위해 며느리를 맞아야 하는데 그 며느리가 믿지 않는 아가씨여서 걱정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부탁했답니다. 다른 것은 다 받아 드릴텐데, 우리 집이 기독교 가정이니, 우리와 같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을 가졌으면 한다. 그것만 지키면 결혼을 허락 하겠다. 그래서 이 아가씨는 결혼해 와서 잘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집사까지 되었고 시어머니는 너무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와서 저 다음 주부터 교회 나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시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더니 설교 때 마다 하나님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 나라는 영원무궁하고, 그 하나님 나라에 어머니도 가시고, 저도 간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 짧은 세상 시어머니와 살기도 힘든데, 영원무궁한 나라가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니까 그 나라 안가겠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 나라 좋고, 영원무궁한 일입니다. 여러분 사는 이 상태에서 영원무궁하게 하늘나라는 지속된답니다. 영원무궁하게 이 상태로 살고 싶으세요. 아니면 바꿔서 살고 싶으세요. 그 나라가 올 때는 도둑처럼 갑자기 온다고 했지만, 그 나라가 오면 그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그 나라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정말 길게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욥처럼 나 그 나라는 모르겠고요, 지금 이 땅에서 한 순간이라도 정말 마음껏 하나님 나라 시민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입니까. 여러분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제가 얼마 전 우연히 EBS방송에서 하는 사람의 생명에 관한 강의를 시청했습니다. 강사는 역사학교수이었습니다. 강의의 내용은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과 영국 왕들의 평균수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27분의 왕이 계셨는데, 그 분들의 평균수명이 46.5세라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꽤 올라 사셨죠. 60세 환갑 이상을 사신분이 15명인데, 가장 오래 사신 분이 영조대왕으로 82세를 사셨고, 그 다음에는 태조, 고종, 광해군인데 이 세분은 80을 사셨습니다. 당시의 우리 조선의 보통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32~35살이었다고 하니까. 왕들의 평균 수명이 보통사람보다 10~15세 정도 길었습니다. 아마 식사가 좋았고, 건강식품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영국은 26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 분들의 평균수명은 52세로, 우리보다 5~6살 정도를 더 사셨습니다. 이 분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조선의 왕들은 보통사람들보다 많이 살았는데, 그 만큼 행복했을까? 욥은 왕들 편이었을까, 아니면 일반 사람들 편이었을까?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었을까, 아니면 일반 사람들이 행복했을까? 왕이 행복했을까? 제가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행복이라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왕들이 더 많은 수명을 누렸다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가 생각보다 정밀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그대들에게 주겠다. 약속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 장소는 지칭하지 않았으나,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들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늘에는 없느냐, 그 뜻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나라는 관여하지 말라. 그 나라가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왔지 않느냐, 왔으면 내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약속한 것처럼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에 맞게 변형시켜라. 하나님 나라에 맞게 만들어라. 가정이 세상이라면 가정을 하나님 나라답게 만들어 살아라. 나라를, 역사를, 사회를 우리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답게 바꾸어서 만들어라. 그러면 그 속에서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진 무궁무진한 지혜와 기쁨을 이 나라에서 맛 볼수 있다. 그것을 맛보는 사람이 나중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차지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너희 가운데서 구하라. 철학자든, 신학자든, 사회과학자든, 자연과학자든 그들은 우리에게 이 세상 말고, 또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고 하며 그 세상을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규명하며 많은 글을 냈습니다. 이상향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따라서 살고 싶고, 추구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찾기 운동,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저는 책을 읽을 때마다 이것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이상적인 세상을 간구하면서 평소에 개인적으로 아름답게 살았으니 그것을 연장해서 정말 꿈같은 나라를 이상향으로 그립니다. 또 다른 사람은 오늘의 욥의 이야기처럼 도대체가 이것은 삶이 아니다. 하늘나라라 이름 하는 이상세계는 이것이 없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그립니다. 그래서 그것을 읽는 사람은 자기가 처해진 상황에 따라 공감을 하고, 또한 공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니라는 예수님말씀처럼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세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때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하고 주기도문으로 고백합니다. 공간을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동체도 무한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 하나는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의 가장 작은 형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음이 작지만 제가 보기에는 마음속에 우주 공간을 다 품고 삽니다. 가족을, 나라를 품고 살아갑니다. 가장 작은 공간이 엄청나게 큰 공간. 작은 공간이 아주 깊은 공간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 없이 제가 어떻게 제가 사는 이 나라에 하나님 나라 이룰 수 있습니까. 제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 없이 제가 어떻게 하늘의 있는 나라를 강구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에 가장 위대한 하나님 나라는 가장 깊은 그대들의 마음속에 있느니라, 깊음 속에 있느니라. 마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마음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라 그랬습니다. 경험을 해보고, 이 나라가 마음속으로 경험하는 나라가 영원무궁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정말 강구하시면, 가장 작지만 깊고 넓은 우리의 심정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 나라 찾으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찾아서 하나님 나라 만드십시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 모습을 주로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독 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사람이 무엇이냐, 인생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사람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어둠이 사람이 살아갈 공간이 아니다. 어둠 대신 빛으로, 죽음대신 생명이다. 우리가 입을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나라이지 죽음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면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합니까, 죽음은 운명입니까. 사람의 운명입니다. 그 세계에 어떻게 하나님 나라 이루라고요, 사람에게 주어진 죽음이 인생의 끝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끝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끝은 아닙니다. 죽음은 반드시 죽여져야하고, 죽음은 끝나야 하고, 죽음은 극복되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믿는 사람의 생명은, 세계는 죽음이 극복된 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죽음을 극복한 부활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부활한 생명이 여러분이 받아야 할 하나님 나라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십자가 바라보면서 십자가의 담긴 부활의 생명을 저희들이 간구하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이를 위해서 내가 왔노라. 하늘의 음성을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의 담긴 부활을 통해서 우리들이 축하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신학적 핵심은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이루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마 전통을 가진 교회입니다. 이 전체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완벽한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맛봐야 한다. 서쪽에 있는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달리 동방의 정교회 분들은 또 다른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는 것이지만, 그걸로 구원이 끝나지 않는다. 십자가 공로로 구원 받은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주셨던 형상, 하나님의 신적인 성품을 부여 받는다. 하나님이 오셨지만, 구원받은 인간은 다시 하나님나라로 가면서 본래 가졌던 신적인 성품을 부여 받습니다. 서쪽에 있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등한시 했던 신앙고백의 하나를 동쪽에 있는 정교회가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나 개신교의 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동방교회가 우리에게 가리켜 준 것은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신의 성품을 부여 받는다. 그것이 부활의 동참하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본래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신의 성품을 타고난 인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만 은혜 받은 인간 속에 신적인 성품을 발휘해서 하나님 나라 시민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이 아름다운 노래를 하나님도 지금 하늘나라에서 부르고 계신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축복을 지금 이 땅에서 맛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살아가는 하늘나라 축복의 고백을 하나님도 받아서 함께 기뻐하신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함께 만나는 것 아닙니까. 이 만남의 진실은 영원무궁한 하나님 나라 일뿐만 아니라 아주 유한한, 그러나 생명으로 죽음을 극복해 주시는 이 땅에서도 순간순간마다, 긴 역사마다, 온 우주마다, 자연과 인간 속에서 참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은 시간 길이로 재지 마시고, 기쁨으로, 질로 재어 보십시오. 기쁨이 영원한 세계, 참 진실이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 참 인간성이 신의 성품을 닮아서 아름답게 칭송받는 시대 그것이 영원의 실질적 뜻입니다. 시간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의 질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나라 경험을 맛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진실을 담는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사회가 하나님 나라의 진면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맛보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이 나라, 여러분 축복으로 받으시지요. 은혜로 받으시지요. 만드십시오. 이루십시오. 그리고 함께 감사하면 사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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