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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성령의 시대

한신대·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 설교
2000. 7.9.
성령의 시대
(호세아 14:1-8, 사도행전 3:1-10)

1. 들어가는 말

성령강림절 이후 '성령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동시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성령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현실이 철저히 거부되고 변혁되는, 하나님의 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평화를 파괴하는 모든 요소들이 척결되고, 새로운 평화가 삶의 구석구석에 깃들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영인 성령은 동시에 해방의 영이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령 강림 사건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막고 있던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국어 소통능력이 발생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던 어떤 음모나 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선포하고 가르쳤던 사랑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감으로써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삶을 삶답게 만드는 사랑의 비밀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판단기준을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평화를 위한 성령의 사역이 어떻게 억눌린 인간을 해방시키는지 증언하는 성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2. 앉은뱅이가 일어서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사도행전이 증언하고 있는 사건은 초대교회가 경험한 첫 번째 기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은 초대교회 선교의 특성을 증언하는 대표적인 치유기적이기도 합니다. 즉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은 바로 '성령의 시대'에 발생한 첫 번 째 기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또한 '성령의 시대'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건의 무대에는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찬란한, 성전 문 곁에서 한 앉은뱅이가 초라한 모습으로 구걸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너무나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나, 그 앉은뱅이는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의 삶은 '성전 문밖'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그나마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성전의 문 앞에까지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는 구걸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서의 증언(행 4:22)에 따르면, 그는 태어나서부터 40여 년을 그렇게 남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의 삶은 삶이 아니라 이미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돈을 구걸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혀져' 있습니다. 그에게는 삶의 의미에 대해는 질문할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전 안으로 들어갈 이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그의 삶에 대하여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늘 다른 사람의 자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지정해 준 그 자리에 앉아서 그는 늘 같은 동작으로 사람들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베드로와 요한이 서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누구입니까? 그들도 실은 앉은뱅이와 다를 바 없는 처량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들로 연명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어부들이란 인간세계의 한복판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라, 삶의 변두리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먹고살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삶의 의미나 세계의 미래 전망 따위와 같은 고상하고 차원 높은 사색에 시간을 '빼앗길 수 없는' 변두리 인생살이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물려받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투사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소."

베드로의 말은 앉은뱅이를 실망시킵니다. 베드로는 연명하기 위해 물질적 도움만을 기대하던 걸인의 관심사를 무효화시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앉은뱅이를 실망시킨 베드로는, 그 걸인이 오래전에 간직했던 꿈을 이제 현실화시킵니다. 앉은뱅이는 두발로 우뚝 일어서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전 문 밖'에서, 그의 고난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이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의 영이 임재한 자리이며, 또한 은총의 능력을 현실화시킨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휘황찬란한 아름다운 '문 밖'에서 이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마침내 베드로와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더 이상 앉은뱅이로서가 아니라 직립보행을 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일원으로서,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는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더 이상 무엇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그는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에게는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갈 때에 비로소, 그 성전 문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문으로 눈에 들어 왔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앉은뱅이가 걸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들이 놀라움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은총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어리둥절했다는 것은 일상적인 가치와 판단기준이 완전히 뒤집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그 앉은뱅이는 아름다운 문 밖에서 구걸이나 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의 가능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앉은뱅이의 고난을 그의 부모나 그 자신의 죄의 값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거나 축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뜻밖의 일이었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사형수 예수의 이름으로 그가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니! 그들의 상식과 종교적, 정치적 판단 기준에 일대 혼란이 발생한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걷게 된 것은 그의 '신앙'이 좋거나 그가 어떤 종교적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전 '문 밖'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즉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공동체 안에 합류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치유 기적은 유대교의 성전 '문 밖'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치유받은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예수의 이름' 외에는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는 베드로가 치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어떤 능력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의 영향력이, 곧 성령이 앉은뱅이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었습니다.

앉은뱅이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한 예수께서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님께서는 그의 삶을 억압하고 있던 사슬들을 풀어 헤치고 그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앉은뱅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여러분들은 교회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은 예배당 문 밖에 머물러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여러분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 하십니다. 일어나시오! 두 발로 우뚝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삶의 기쁨을 누리십시오! 두 발로 걷게 된 앉은뱅이의 환희와 감격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부활한 주님을, 해방시키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남에게만 의존하면서 성전 '문 밖'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모두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그 아름다운 두 발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3. 민족 공동체를 해방시키는 성령의 사역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개인만이 새로운 삶, 곧 구원받은 삶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이 치유받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민중들이 해방을 경험한 사건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처지가 바로 그 앉은뱅이와 같았습니다. 강대국 로마에 의존하여 연명하던 이스라엘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는 식민지였습니다. 지금 앉은뱅이의 치유기적을 통하여 국가공동체인 이스라엘이 해방을 경험한 새로운 삶에 참여하도록 초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호세아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구걸하던 이스라엘이 다시 우뚝 서서 생명력을 꽃피우기를 꿈꾸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다음과 같이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자비롭게 받아 주십시오.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다시는 앗시리아에게 우리를 살려 달라고 호소하지 않겠습니다. 군마를 의지하지도 않겠습니다.
다시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고백하지도 않겠습니다.
고아를 가엽게 여기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호세아 14:2-3)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종교제의에서처럼 동물들을 잡아 바치는 제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강대국이나 이스라엘 자신의 무기에 대한 신뢰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이스라엘 전체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회개란 제사에만 몰두하는 종교적 삶과 강대국과 무기에만 의존하는 정치적 삶, 즉 하나님 대신에 우상과 인간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태도로 방향전환함을 의미합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 전체의 회개를 요청하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역하는 질병에 걸린 이스라엘의 병을 치료하고 사랑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4).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실 뿐만 아니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다.
이스라엘이 나리꽃처럼 피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 나무에서 가지들이 새로 뻗고, 올리브 나무처럼 아름다워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향기롭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다시 내 그늘 밑에 살면서,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거둘 것이다.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질 것이다."(5-7)
호세아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서, 즉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노동의 결실을 스스로 누리게 될 미래를 꿈꾸면서, '회개하라'는 요청으로 그의 예언을 마감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우뚝 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강대국에 대한 의존, 무기들에 대한 의존, 우상숭배, 물질위주의 제사종교 관습에서 찾았습니다. 그것들에서 돌아설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민족의 생명력을 꽃피울 것이라고 꿈꾸었습니다.

4. 한반도에 부는 성령의 바람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을 강대국들에 의존하면서 살았습니다. 20세기 한국의 역사는 일본제국주의의 지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들의 지배 때문에 철저히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서 서로를 향해 원수처럼 대립한 채 세월을 보냈습니다. 호세아가 살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소련이 혹은 미국이 우리를 보호하는 수호천사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았습니다. 먹을 양식을 팔아 쌓아 놓은 무기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길은 서로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키우는 일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우상이 되어 우리의 숨통을 죌 때도, 우리는 그것을 고수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여겼습니다.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에게, 물질을 바치는 양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축복도 커진다고 설교하면서도, 민족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길이라는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바알종교를 모방한 부흥회에 열을 올리면서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경청하려 들지는 않았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그리고 그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로 잡은 손을 높이 쳐든 채 환하게 웃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하더니, 이제는 그 사진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다고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냉전체제를 몰아내고, 한반도를 에워싼 모든 껍떼기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진정으로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영, 해방의 영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얼어붙었던 우리의 가슴에 따스한 피가 다시 흐르고,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고 의존했던 모든 것들이 우상이고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한반도 전체가 앉은뱅이 신세에서 벗어나, 두발로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미래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감지합니다. 이것은 분명 기적입니다. 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던 성령의 기적이 지금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에는 소동이 일어났고,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법정에 세우고 심문하였습니다. 한반도의 이 변화에 대하여 전세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현실화되고 있는 이 변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세력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 세력들은 한반도 밖에만이 아니라, 한반도 안에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세력들이 성령을 거스르는 사악한 세력들임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그러한 세력들과 동조하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세력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 세력들이 힘을 얻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적처럼 다가온 평화의 새로운 바람결에서 성령의 역사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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