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회 설교
2000. 8.13.
드라큘라의 진실
(이사야 47:1-15, 요한계시록 18:1-20)
1. 드라큘라의 전설의 거짓과 진실
여름철에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방송사들은 으례 등골이 오싹한 납량특집물들을 내보냅니다. 납량특집에는 한국의 귀신 이야기와 함께 유럽의 드라큘라 이야기가 단골 메뉴로 동원됩니다. 한국의 귀신 이야기가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한 한풀이를 목표로 삼는 반면에, 드라큘라는 흡혈귀들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악의 막강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드라큘라는 험상궂은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품위가 넘치는 백작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의 마음을 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는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면서 피를 찾아 헤맵니다. 드라큘라를 퇴치하는 도구로 동원되는 것은 마늘과 십자가입니다. 흡혈귀의 우두머리격인 드라큘라가 악의 화신이라면, 십자가는 악을 물리치는 신비하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흡혈귀 드라큘라는 영국의 작가 브람 스토커(Bram Stoker, 1847-1912)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가공인물입니다. 그의 소설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사회질서가 지배하던 15세기 영국을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드라큘라를 실은 배가 영국의 항구도시 휘트비에 들어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그의 소설은 런던으로 피를 구하러 가는 드라큘라가 벌이는 흡혈귀 소동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어촌 휘트비에는 소설의 내용을 재현한 '드라큘라 체험관'이 세워져 관광객들을 끌고 있으며, '휘트비 드라큘라 협회'까지 생겼습니다. 드라큘라가 인기를 끌면서 유럽인들의 머리 속에 드라큘라는 피를 마시는 악의 화신으로 각인되고 맙니다.
그러나 스토커가 우연히 그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채택한 드라큘라는 사실은 15세기 루마니아에 실존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루마니아 시민들은 아직도 드라큘라를 민족영웅으로서 그리고 좋은 군주로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유럽에서 드라큘라를 흡혈귀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라고 분노합니다.
실제 인물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에서 '블라드 쩨베쉬'(1431-1476)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의 도시 '시기쇼아라'에서 블라드 드라큘(Vlad Dracul)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동, 서양 교육을 모두 받은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12년 간 루마니아를 통치했는데, 엄격한 통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범죄자들과 적군인 오스만 터어키군을 꼬챙이로 찍어 죽였다고 해서 '쩨베쉬(꼬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어느 나라도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떨치던 제국인 오스만 터어키에 저항하여 외세의 침입을 막았던 유일한 군주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루마니아의 어린이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오스만 터어키와의 전투에서 45세의 나이에 전사하고 맙니다.
루마니아의 드라큘라는 외세와 범죄자들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엄격했으나 국민들의 존경받는 군주였습니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활동하는 독일 상인들을 견제하여 국민경제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거운 세금을 물리기도 했습니다. 독일 상인들은 형벌이 두려워 세금을 내기는 했으나, 블라드에 대해 나쁜 감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유럽에 블라드를 폭군으로 소개하였고, 마침내 흡혈귀로 왜곡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본래 '드라큘'은 불멸을 상징하는 '용'을 의미했으나, 블라드의 정적들은 그의 성을 악마를 의미하는 드락(Drac)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를 악마화하는 데에 한 몫을 거들었습니다. 마침 인쇄술이 발달한 유럽에서 드라큘라의 나쁜 이미지는 널리 확산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루마니아인들은 개방의 물결을 타면서 그들이 흡혈귀의 자손으로 오인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루마니아인들은 우리 한국인들처럼 흡혈귀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흡혈귀에 대해 관심조차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블라드를 흡혈귀로 비하시키는 데에 대하여 거부감과 불쾌감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역사적 인물의 실체를 전하기보다는 외부 세력들에 의하여 왜곡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흡혈귀 드라큘라의 이야기는,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역사는 물론 약소국의 영웅들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끔찍한 것은 흡혈귀 드라큘라의 존재가 아니라, 흡혈귀 드라큘라를 만들어 낸 그 유럽인들이 철저히 역사적 진실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흡혈귀의 존재에 대해 알지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 루마니아를 흡혈귀의 본고장으로 만듦으로써 유럽인들 스스로가 저지르고 있는 흡혈귀적인 범죄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유럽인들의 손에 들려진 십자가는 흡혈귀를 물리치는 마술적인 도구로 변모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 십자가를 들고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초월적인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정한 흡혈귀는 루마니아의 음침한 성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를 들고 세계를 점령한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흡혈귀 드라큘라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700여 편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냥 오락물로만 감상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럽인들이 전세계에서 전개한 침략과 억압과 착취의 범죄를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투쟁한 한 군주에게 투사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음모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악을 추상화함으로써 현실적인 악의 세력인 자신들의 모습을 은폐하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악을 심판하는 십자가의 가르침을 외면하기 위하여, 그들은 십자가를 마술적인 도구로 변신시켰고, 추상적인 절대악을 퇴치하는 마술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범죄 행위는 중세시대의 마녀사냥 및 유대인 박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흡혈귀 드라큘라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그러나 흡혈귀처럼 이웃을 착취하는 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세계에 대하여 흡혈귀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강대국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들은 세계에 대해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 흡혈귀와 같은 삶을 영위하던 강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2. 바빌론 제국은 파멸하고 만다!
이사야 47장은 기원전 6세기에 당시 중동의 초강대국이던 바빌론제국의 멸망을 예고하던 예언 시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 예언자는 전쟁포로로 끌려 온 바빌론 땅에서 그 막강한 제국이 파멸할 것을 선언합니다.
1-4: 땅바닥으로 내려 앉으라!
예언자는 바빌론을 의인화시켜 처녀로 묘사합니다: 너 처녀 바빌론아, 내려와라! 티끌에 앉아라! 의자 없이 땅에 주저앉아라! - 여기에서 예언자는 바빌론 왕국의 몰락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체적 동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처녀 바빌론은 더 이상 '아름다운 여인', '우아한 여인'이 아닙니다.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세련된 자태를 버리고 맷돌질, 즉 비천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신세로 낮아져야 합니다.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얼굴 가리개와 긴 옷자락을 벗어버리고 시녀처럼 치맛자락을 들어올리고(2) 일을 해야합니다.
바빌론이 이렇게 낮아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복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3). 이 하나님은 전쟁포로들의 신, 야훼 하나님입니다. 패전당한, 보잘 것 없는 민족의 신이 거대하고 막강한 대제국 바빌론에게 보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5-7: 하나님은 바빌론을 향해 지배자의 영광과 위세를 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너를 민족들의 여왕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5)! 바빌론이 지배권을 상실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첫 째 이유는, 유다를 멸망시켜서도 아니고, 성전을 파괴해서도 아니고, 포로를 끌고 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넘긴 하나님의 백성을 '가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6).
바빌론이 패망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빌론이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언제까지나 네가 여왕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믿고, 이런 일들(통치권의 상실, 즉 종말)을 네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7) - 이처럼 자신의 권세를 절대화하는 교만과 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는 권력의 영구화와 절대화는 어떤 것 이든 신성모독이었습니다.
8-9: 자식을 잃고 과부가 되리라.
바빌론은 '방탕한 여인'이라고 불립니다. 방탕한 바빌론은 자신의 타락한 권력을 절대시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바빌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나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8)
그러나 하나님은 여인에게 일어날 가장 큰, 두 가지 불행, 즉 보호받지 못하게 되며 미래를 상실한 채 홀로 살게 되는 불행이 동시에 갑자기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심판 앞에서 바빌론의 모든 영적인 능력과 영적인 지식이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9).
10-12:
예언자는 지금 바빌론이 지닌 권력의 절대화와 고도로 발달된 정신문화의 관련성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네 지혜와 네 학문 때문에 스스로 유혹에 빠져 속으로 '나 뿐이다. 나밖에 없다'고 하는구나."(10절, 둠의 번역)
당시에 메소포타미아의 정신적, 종교적 생활은 매우 다양했고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적인 풍부함이 권력을 절대화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술행위와 학문들의 두 가지 주요 기능은 도움과 예방입니다(12). 그러나 그러한 도움과 예방책도 바빌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13-15:
현대의 천문학은 바빌론 점성술의 유산입니다. 그렇게 고도로 발달된 점성술도 바빌론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며, 영광스러운 긴 역사를 통해 발전된 지혜와 학문이 파국의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예언은 적중하였습니다. 결코 멸망할 것 같지 않던 바빌론은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한지 반세기만에 페르샤 제국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페르샤의 유화정책으로 유대인들은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3. 로마제국도 멸망하고야 만다!
요한계시록 18:1-20은 바빌론의 패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이 씌어지던 2세기에 팔레스틴에 세력을 떨치던 세력은 바빌론이 아니라 로마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저자는 로마제국 대신에 바빌론 제국의 패망을 예고하고 있을까요? 우선, 성서에서 바빌론 제국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초강대국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박해가 극심하던 때에 직접 로마 제국의 파멸을 예언한 글을 유포시키는 일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바빌론 제국에 빗대어 로마 제국의 파멸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예언자의 예언이 아니라, 천사의 선포 형태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2) 천사의 선포는 미래형으로 되어 있지 않고 과거에 발생한 일을 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확신을 가지고 예고하기 위하여 필요한 표현형식입니다.
로마가 파멸할 이유는 우상숭배와 음행, 그리고 사치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처럼 여기에서도 바빌론, 즉 로마는 방탕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죄는 하늘에까지 닿았고, 하나님께서는 로마제국의 불의한 행위를 기억하시고(5), 심판하실 것입니다. 12-13절에는 로마가 소비하는 귀금속들과 각종 사치품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노예와 사람의 목숨(13)까지 상품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에는 약 6천명의 노예들이 있었으며, 로마 귀족 한 사람이 몇 백명씩 노예를 거느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로마가 이렇듯 부귀영화와 사치를 누리는 것은 다름 아니라 약소국의 백성들과 자국의 노예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덕분입니다. 즉 로마의 번영과 영광은 당대에 로마가 얼마나 흡혈귀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7절에는 이사야서 47:7-8절의 바빌론제국처럼 스스로를 절대화하고 자만한 로마의 모습이 '여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귀영화와 사치를 누리던 로마제국에는 고통과 슬픔, 굶주림과 죽음이 닥칠 것입니다. 심판은 갑자기 그러나 확실히 임할 것입니다. 장사꾼들의 입을 통해 심판받은 로마 제국의 비참한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화를 입었다. 화를 입었다.
고운 모시 옷과 자주색 옷과 빨간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큰 도시야,
그렇게도 많던 재물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16-17)
그러므로 천사는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떠나거라. 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가담하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4)
로마제국이 심판 받을 때, 로마제국과 함께 음행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세상의 왕들은 가슴을 치면서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장사꾼들도, 무역업을 하는 선장과 선원들도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어 가슴을 치며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기쁨에, 천사들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초청받습니다: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위하여 그 도시를 심판하셨습니다."(20)
그처럼 기세등등 하던 로마, 숱한 사람들을 도살장의 짐승들처럼 학살하고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도 결국에는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계시록의 예언은 성취된 셈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또 다른 바빌론 제국들이 등장했다가 역시 파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새로운 바빌론 제국이 등장하여 파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계시록은 이미 성취된 예언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성취될 예언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4. 미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며
오늘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 55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흡혈귀와 같은 현실적인 악의 세력이었습니다. 그 악의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 해방의 감격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해방의 감격만을 나누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갑갑합니다. 한반도는 해방되자마자 남과 북이 분단되었고, 북한은 소련군대에 의해, 남한은 미국군대에 의해 점령되었던 것입니다. 반세기가 넘게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소련은 패망했으나, 미국은 아직도 호경기를 누리면서 전세계에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러 정보들을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수호천사처럼 숭배하던 미국이 결코 수호천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구원한다던 미군이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며, 전쟁방지 구실을 한다는 이유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의 범죄들로 인한 희생자들의 이야기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군들의 사격연습으로 국토와 민중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으며, 미군들이 버린 오염물질들로 인하여 우리의 산천이 오염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독극물 방출까지 무책임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들으며,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파협정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체결되었는지 확인하면서 우리의 주권의식과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우리의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양키 고우 홈!"이라는 구호가 들리지 않던 남한 땅에서, 이제 비로소 "양키 고우 홈!"이라는 절규가 우리들 가슴속에서 화산처럼 분출하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우리는 누가 우리의 형제자매인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미국 없이, 남북이 함께 한반도를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늘 미국 밖에서 흡혈귀 드라큘라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드라큘라를 박멸하기 위하여 지구 구석구석에서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다는 구실로 그들은 이제 십가가 대신에 핵무기로 무장한 채 세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강한 경제력과 고도의 학문과 첨단 기술이 미국의 영광을 영원히 지속시킬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바빌론제국과 로마제국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머지 않아 미국에도 적용될 것을 내다봅니다. 미국은 바로 바빌론과 로마가 걸었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이 해방절에 우리의 해방의 목표는 미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않고는 진정한 정의와 평화공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흡혈귀 드라큘라는 없습니다. 다만 흡혈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지배 엘리뜨들과 부자들, 파업의사들(!) 그리고 강대국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흡혈귀 드라큘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높이 쳐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흡혈귀 드라큘라와 싸우다가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들의 하수인들에 저항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현실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흡혈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들, 즉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조종하는 자들과 그들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웃에 대하여 흡혈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의 바빌론이 저지르는 범죄들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루마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은 강대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의 명예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드라큘라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반도를 외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를, 그리고 남과 북이 하나되어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함께 기원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