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아카이브

[윤응진] 하나님의 후회

한신대·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 설교
2000.9.10.
하나님의 후회
(창세기 6:5-7, 요한계시록 21:1-5)

1. 농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지난 주일 날, 주말농장에 올라가 보니 참담하였습니다. 애써서 고랑을 내고 씨를 뿌렸는데 가을 장마 때문에 그 모든게 헛수고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밭에는 무나 배추 싹은 보이지 않고 잡초들만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농부들의 절망을 가슴으로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일년 농사를 망친 농부들의 아픔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추석이 추석으로 느껴질리 없습니다. 애쓴 수고가 헛되었다는 절망감을 보상받을 길이 없으니 명절이 기쁨으로 와 닿을리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창조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저는 이 시간, 농사를 망친 농부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느껴보려고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였을 때, 하나님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세상은 우리의 망쳐진 주말농장 같지나 않을까요? 하나님은 지금 농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계시지나 않을까요?

2. 후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천지창조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꿈을 현실화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참 좋다"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들에 대한 관리를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으로 선악과를 따먹었고, 결국 태초의 유토피아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의 역사는 점점 더 개선되고 발전하는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폭력과 살인, 구조적인 부정의와 평화부재 등으로 인하여 점점 더 타락하고 쇠퇴해 가는 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축복에 시샘하여 죄 없는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였는가 하면,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자신을 해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흔일곱 갑절'(4:24)의 보복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인간세상은 점점 더 사악해져만 갔습니다. 창세기 첫 부분은 이처럼 인간의 죄가 증대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2절 이하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았고, 그들이 "옛날에 있던 용사들로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의 육신의 아들들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신적인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적인 존재들이 사람의 아내들과 결합하여 반신들 또는 용사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많은 민족들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성서 기자가 이런 이교도들의 신화를 소재로 이용하여 전하려는 메시지는,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다만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영웅들의 탄생은 신적인 존재와 인간 사이의 결합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신화가 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웅들은 스스로를 신적인 존재로 착각하여 절대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런 존재들에게도 제한된 기간 동안에만 생기를 허락하심으로써 수명을 제한시키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어떤 영웅적인 인간이라도 그들이 초인적 존재로 되려는 시도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스스로를 신적인 존재로 영웅시하며 자기한계를 모르는 강자들에 의하여 파괴되고 왜곡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하여 세계는 구조악의 포로가 되고 악은 합법화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 뿐"임을 보셨습니다(6:5). 구약성서적 견해에 의하면, '마음'은 단순히 감정의 자리가 아니라, '지성'과 '의지'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판단은 인간 내면의 삶 전체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6)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을 창조한 것까지도 "후회"(7)하셨습니다. 야훼께서 '후회하셨다' - 이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성과 절대성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씨뿌린 것을 후회하는 농부들은 이 하나님의 '후회'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말농장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성서기자는 인간으로 인하여 천지창조의 아름다운 꿈이 파괴된 데에 대하여, 그리고 죄로 각인된 세계 현실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마치 자식에게 실망한 아버지처럼 인간을 만들어낸 것을 후회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대한 후회 때문에 홍수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를 근본적으로 멸절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의 씨를 보존하셨습니다. 홍수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그래도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타락한 세계를 영원히 폐기처분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려는 데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과 뜻에 의해 유지되고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잔인한 초월자가 아니라, 은총의 하나님이십니다.

* 이사야서 65:17-19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철저한 인식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의 이 후회가 새로운 희망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류와 세계의 타락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후회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참으로 새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새 창조를 꿈꾸는 하나님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때는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철저히 파괴된 이후입니다. 로마 제국주의가 승리하였고, 약자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되어 유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요한은, 저 이사야의 예언전승 맥락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파괴시킨 예루살렘대신에 '새 예루살렘'이 지상에 실현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 강자들의 폭력에 희생되어 살해당하는 사람들,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에 사로잡힌 약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 한복판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은 로마를 파멸시키는 심판주로서, 희생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자와 구원자로서 임하십니다.

새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을 파멸시킨 로마제국에 대한 저항 및 심판의 표식이며,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정치적 구체성의 표현입니다. 지금 요한은 약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역사를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현실화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계 21:5)

요한은 로마제국의 폭군 도미시안 황제가 통치하던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새 창조의 약속을 경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받고 순교당하던 그 시대에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가 자포자기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스스로를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하나님,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이 만났던 이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세상 한복판에서 누룩처럼, 빛처럼, 소금처럼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새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하였습니다.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보도된, 인간으로 인한 '하나님의 후회'는 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창조의 약속'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과 세계의 파멸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희망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은 세상이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오염된 것을 예리하게 감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려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구제불능인 세상에 대하여 절망하고 체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세계를 떠나서 영원한 세계인 내세를 갈망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현실도피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 대신에, 죽음 이후에 인간들의 영혼을 심판하거나 구원으로 인도하는 초월자를 기대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종교인들처럼 현실세계에 절망한 나머지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에 동참하기보다는, 다만 인간 영혼들이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도록 돕기 위한 피난처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경우에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성서의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지니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종교인들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갇혀서 제물만 받아먹고 만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후회하시되 세상을 버리시지 않고 재탈환하려 지금도 세상 한복판에서, '삶의 한가운데'에서 일하시는 분으로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4. 새 창조의 사역에 참여하는 삶

새 천년을 맞으면서 사람들은 흔히 여러 가지 장밋빛 꿈들을 꿉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하여 수명을 마음대로 연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닮은 복제 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유전자 조작으로 여러 가지 생명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에 도취하여 스스로를 창조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과학기술 문명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 문명은 20세기의 숱한 전쟁에서 인간들을 무차별 대량학살하는 무기를 생산하였고,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새 천넌이 그들의 과학기술에 의해 무한히 발전하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인간이 너무나 나약하고 무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너무나 강하고 영리해서 발생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데에서 인류와 지구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최근(2000.9.5.) 환경부가 발표한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생태계에서 환경호르몬이자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의 대기중 농도가 일본보다 2.5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3월에 발표된 식품의약품 안정청의 '99년도 환경호르몬 조사결과'에 따르면, 산모의 초유에서 다이옥신이 하루 섭취허용량의 24-48배 가량 검출되었습니다. (초유는 신생아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초유에는 신생아가 세상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성분들이 들어있습니다. 생명을 보존하고 키우기 위한 초유에 죽음을 초래하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 기성세대가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환경을 파괴한 댓가라는 사실이 슬픈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삼천리 금수강산은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개발 결과 각종 오염물질에 의해 파괴되고 있으며, 그 영향은 곧 바로 인간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철저히 반성하고 새로워지지 않고는 우리는 생태계를 창조의 첫 아침처럼 되돌려 놓을 수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점점 더 사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생태계만이 아닙니다. 인간 사회도 21세기가 되었다고 저절로 더 밝아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폭력과 부정부패, 탐욕과 부정의, 불신과 갈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절을 맞으면서 먼저 하나님의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탄식에 참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탄식을 초래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리하고 비판적인 역사의식으로 무장하고 세계를 그리고 우리의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탄식을 초래하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탐욕과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인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새로운 시간들마저도 오염시켜 버릴 것입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역사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인류의 새 미래가 열릴 것임을 확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철저히 비판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철저히 비판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버리기 위해 세상을 비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심판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낡은 역사를 심판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 건설에 참여하는 역군으로서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일 매일 새롭게 창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의 사역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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