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예레미야서 23:5-8
내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하나 돋아나게 할 그 날이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는 왕이 되어 슬기롭게 통치하면서,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지금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자손이 쫓겨 가서 살던 북녘 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고향 땅에서 살 것이다.” 아멘.
로마서 13:11-14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아멘.
누가복음서 1:67-79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능력 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예로부터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이니,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아멘.
설교문
오늘 우리교회가 67주년을 맞았습니다. 67년 전, 첫 번 대림절 예배 때 우리교회가 창립된 날 설교의 성경본문이 어떤 것이지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대림절 첫 주일에 창립했음으로 여러 본문 가운데서 특별히 오늘 사가랴가 예언한 누가복음 1장의 말씀이 언급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가랴가 예언 한 것처럼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메시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교회가 되겠습니다.”라고 선포하며, 결단하고 창립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1년에 한 번씩 사람들이 모여서 순례를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전에 제상장이 많았는데 대사장을 포함해24분의 제사장이 봉직했습니다. 제사장 모두 결혼한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24가정이 제사장 가정입니다. 그 중에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제사장직분을 맡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24명의 제사장들은 일 년에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두 차례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예전을 집전하고, 그 후 8일 동안 성전봉직을 하고 고향에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가랴 제사장과 아내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은 노인 분들이었고, 또 엘리사벳은 불임증으로 고난 받았던 사람입니다. 불임증에 나이도 많았기 때문에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이분 가운데 세례요한이라 이름 하는 아들을 주셨을까? 인간적으로 말하면 전혀 불가능한데 아기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사가랴 제사장과 아내 엘리사벳은 너무 고마워서 하나님의 축복을 찬양합니다. 이 축복이 너무 고맙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오늘 누가복음 본문은 기도와 감사로 읽는 시 한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사와 축제를 드립시다. 오늘 본문을 베네딕투스라고 이름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우리 성가대도 찬양하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베네딕투스라고 이름하는 사가랴 말씀을 봉독합니다.
사람들은 자손이 없으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자녀를 낳지 못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제사장이 아기를 갖지 못하면 인간으로 받는 지탄에 더해 성직자로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지탄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실 사가랴 제사장이 활동했던 사회는 성직자 가정은 세습을 통해 자녀가 성직을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 제사장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성직이 완전히 끊어 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의 천사가 나타나 축복을 주십니다. 천사가 하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할 것이다.” 이 한마디가 두 부부에게 엄청난 기적입니다. 감격스러운 기적도 되겠지만, 두려운 기적도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늙은 나이의 불임증 아내가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백 년 동안 기다리던 메시아를 맞이하고, 그 길을 예비하는 예언자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말씀을 남의 이야기로 보지 마시고, 내 이야기로 읽어 봅시다. 불임에 나이도 많고 이제 인생을 마감해야 할 나이에 하나님이 오셔서 자녀를 주시고, 메시아를 예비할 사람으로 책봉하여 주셨다. 감격, 두려움, 경외심,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 임심을 했습니다. 아마도 제사장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은 이런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입는 옷은 시간이 지나면 해어집니다. 보관했던 그리고 읽었던 책들도 오래되면 낡아집니다. 건물도, 사람도 늙어 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싱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기를 달라고, 주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성원했던 기도는 끊이지 않고, 결국 하나님이 마지막에 응답을 해 주십니다. 기도는 살아 있습니다. 기도는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 본문에 나온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기도는 시들지 않습니다. 진실 된 기도는 하늘이 응답합니다. 그리고 때만 기다리면 됩니다. 메시아가 오심을 오래 기다렸습니다. 엘리사벳은 오신다고 하신 메시아를 예비하는 사람을 잉태합니다.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기를 낳기 다섯 달 전부터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가 벙어리가 됩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의도적입니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들어 날 때 까지는 침묵해라. 왜 그랬을까? 해석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냥 받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이 아니고, 은총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은총을 실현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그래서 은총을 준비한 다음에 밝혀야 한다. 자격을 갖춰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다섯 달 동안 벙어리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은 다섯 달 동안 사가랴에게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숨어계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안 보이는 형식으로 숨어계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준비 없이 출생해서 세례요한을 기를 수가 없느니라. 숨어계신 하나님은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요한이 태어났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으러 갑니다. 할례 받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데, 사가랴 2세라고 이름을 지을 것이 확실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의 명령은 다릅니다. 요한이라고 하여라. 가계를 잇는 아들이 아니고, 메시아를 맞이하는 사람이라고 하여라. 그래서 요한이라는 이름을 갖습니다, 모든 것이 청천병력이고, 인간의 계획과 다릅니다. 다섯 달 동안 벙어리 되었던 아버지가 말이 트였습니다.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소화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이제 요한과 함께 세상에 등장합니다.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받고나서 바로 왕으로 취임 한 게 아닙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기름부음 받은 왕 사울은 준비를 위해서 짐짝사이에서 수십 일을 보냈습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로 부름 받고 나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광야에 나가서 예언자로써 기도하면 준비합니다. 숨어계신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빛을 받고 쓸어졌습니다. 3일 동안 보지 못했고, 먹지 못했습니다. 사도바울도 바로 선교에 나선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사도로써 준비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를 시작하기 전에 사막에 가서 사십일 동안 준비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비로써 그 이후에 설교를 하셨습니다. 성경말씀 전체를 보면 왜 하나님은 숨어계신 하나님 이셨을까? 메시아가 올 때 준비 없는 마음으로 메시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준비하세요. 깨어서 준비하세요. 하나님이 주실 은총은 준비 없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다 믿지만. 그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모습으로 준비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축복을 줍니다. 오늘 이 사실을 베네딕투스라고 이름 하는 찬가를 통해서 사가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수백 년 동안 꿈꾸왔던 꿈을 똑같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온다는 꿈입니다. 성탄절이 가까 오면 “메시아” 찬양을 들으시죠. 메시아라는 이름이 사방에서 울려 퍼집니다. 메시아가 무슨 뜻입니까? 메시아는 다른 뜻이 아니고,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유대 땅에서는 왕이 등극할 때 선지자가 와서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왕 취임식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제자로써, 사도로써 이제 공식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는 다는 말을 메시아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메시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기름부음 받는 행위 자체 일 수도 있습니다.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이 북과 남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그 당시 대국인 앗시리아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 말은 다윗 임금이 나라를 통일 시켰고, 통일 된 나라를 솔로몬이 엄청난 문화 대국으로 만들었고, 솔로몬이 죽자 아들들이 궁전반란을 일으켜 싸우는 가운데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습니다. 우리 남북과 같습니다. 나라가 갈라지면 망합니다. 북왕국이 먼저 망합니다. 앗시리아에게 망한 해가 서기전 722년 입니다. 이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야 할 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옹립할 수 없었습니다. 식민지 사회에서 모두가 다 고민했습니다. 기름부음 받을 왕을 기대합니다. 기름부음 받을 왕을 기다립니다. 그 분을 기다립니다하는 말을 우리는 메시아는 기다립다라고 표현합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특정 임금이 아닙니다. 다윗임금도 아니고, 솔로몬 왕도 아닙니다. 누군가 다윗의 왕좌를 계승할 기름부음 받을 자손을 찾습니다. 그때부터 메시아 대망이 모든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메시아는 옵니다. 제가 722년 이야기 했습니다만, B. C 722년이 우리나라 최초의 나라라고 하는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쯤 건국된 후 108년 한 나라에게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남과 북이 분리되어 남이 망할 때 고조선은 아직 건국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있고, 솔로몬이 있었던 시절 우리는 나라도 없었습니다. “제가 외국에 가서 사람들하고 이야기 할 때 우리 대한민국은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위대한 역사적 민족입니다.”라고 소개 합니다. 그런데 제가 유대 땅에 가서는 이 말을 못하겠습니다. 오늘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이르는 이 모든 말씀은 고조선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문명과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유대 땅 사람들은 대단 합니다. 우리는 나라도 없고, 민족도 없을 때 이 사람들은 이미 다윗도, 솔로몬도, 북 왕국도, 남 왕국도 근동세계에서 경험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한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더 이상 왕으로 옹립할 왕이 없었습니다. 기름 부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언제가 왕으로 맞이할 수 있게 축복 주십시오. 우리는 메시아라고 이름 하는 한 왕이 옹립될 것을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왕이 없어도 식민지배에서 살아가겠습니다. 얼마동안 살았는지 아십니까?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 질 때 까지 정확하게 2000년 동안 왕으로 등극할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희망 하나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대단한 민족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을 것도 없는데 왕으로 등극할 하나님이 기름 부을 메시아 왕, 누군지 모르지만 그 분을 기다리며 우리는 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스라엘의 생존의 이유, 메시야 기대, 메시야 희망 때문에 살아온 민족이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는 사가랴도 그런 희망을 가진 사람으로 유대백성의 제사장입니다. 메시아를 맞을 예언자를 너희를 통해서 내가 이 땅에 내어주마. 그 기쁨이 얼마였을 것 같습니까? 정치적 기쁨,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기쁨, 신앙고백의 기쁨. 모든 것을 합쳐서 세상이 요동칩니다. 세상이 뒤바뀝니다. 메시아가 오신다. 오실 메시아를 내 아들이 가서 맞을 것이다. 나는 그 아들의 아버지요, 어머니다. 제사장을 그만 둬도 괜찮습니다. 나라가 바뀐다는데요, 세상이 바뀐다는데요. 온통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데, 엘리사벳과 사가랴 둘은 모공원에 가서 노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오늘 이 이야기 들으면서 교회가 창립됩니다. 우리도 메시아가 오시길 기다리지요. 혹시 메시아 없이 얼마 동안 견디면 살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한 분 한분이 내가 믿고, 내가 의지하는 메시아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처럼 한 2000년 동안 살 수 있으면 대단한 민족이고, 대단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한테는 오고 계신다. 지금도 오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우리들에게는 그 오신다고 하는 메시아가 이미 왔습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라 이름 하는 사람한테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안 왔지만, 우리에게는 왔습니다. 우리의 메시아는 이미 오신 메시아 이고, 구약의 메시아는 아직도 오고 계신 메시아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신 메시아를 믿기 때문에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기 때문에 그 분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그 분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메시아가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다시 오시는 메시아는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가 승천하셨다가 세상이 모두 끝날 때 다시 재림하시는 메시아입니다. 유대백성에게 이 그리스도 예수가 오실 메시아임을 받아 드리세요. 하는 것이 우리 심정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 분은 아직 안 오셨는데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합니다. 곧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것을 같이 기뻐합니다. 그분이 메시아로 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기름 받으실 분. 똑같은 말이 메시아에서 그리스도로 되었습니다. 언어의 번역만이 중요하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오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왔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아는 왔고,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믿지만, 그리스도이신 메시아를 믿습니다. 다시 오실 메시아를 믿지만 이미 오신 메시아를 믿습니다. 신앙의 확신이 무엇이냐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왔으니까, 그리스도가 오셨으니까. 우리 신앙은 이제 이 땅에서 하나님이 오셨음으로 오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십시다. 완성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이 다시 오실 때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오시는지 아십니까. 구약의 메시아 희망 속에는 메시아가 오시면 다윗 왕이 앉았던 왕좌에 다시 앉을 임금이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라고 이름 하는 메시아는 어떻게 오시는지 아십니까? 왕좌로 오시는 게 아니라 말구유로 오셨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높은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방식으로 옵니다. 저희에게 준 메시지입니다. 인간의 가장 낮은 곳이 하나님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장소입니다. 인간의 가장 천한 곳이 하나님의 가장 귀한 곳에 거할 장소입니다. 가장 밑바닥이 가장 높은 곳이 들어앉을 공간입니다. 인간의 무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 거할 장소입니다.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성공이 꽃피울 장소입니다. 역설적이지요. 이것이 그리스도 메시아의 현존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약속하셨지요. 나는 인간의 가장 무력함의 상징인 죽음 속으로 가마, 인간의 죽음 속에 하나님은 부활을 통해서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최악인 곳에 와서 최선을 만들어 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낮은 곳, 깊은 곳, 무능한 곳 죽음으로까지 내려 가셔서 거기에서부터 하늘나라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야 온 세상이 구원 받지요. 왕좌에만 왔다 왕좌로 갈 수 없잖습니까. 오늘 우리 경동교회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경동교회 성도여러분, 이 사실을 나가서 전합시다. 강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로, 광양에서 외치는 소리로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골고다 골짝에서 부활의 능력을 외칠 때 세상이 절망하는 곳에 가서 희망을 외치세요. 그리스도 예수가 함께 하고, 보증합니다. 확신 있으시지요. 이 사실은 오늘부터 다시 전합시다. 메시아가 오셨고, 오신 메시아가 다시 오십니다. 하나님의 축복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받을 메시아 축복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