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서울주교좌성당] 너희는 지금 작으나 결코 작지 않다

2012년 6월 17일 주일예배 설교자 주임사제 이경호 신부

성서본문

마르 4:26-34

설교문

요즘 너무 가물어서 걱정입니다. 농사는 파종을 해야 할 시기에 파종해야 하는데 너무 가물어서 아직도 파종을 못하고 있는 농부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렵게 파종은 했지만 바싹 바싹 타들어 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속이 탈까?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도시에 살면 비가 오지 않아도, 가물어 저수지가 마르고, 논밭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많은 비가 와서 홍수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아도 무감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물이 잘 나오고 전기만 들어오면 세상이 어떤 난리법석을 떨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시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좀 더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 예민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시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정말 살기 편하게 건축된 아파트에 들어가 있으면 세상 밖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영화를 보듯이 구경만 할 뿐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이런 마음으로 오래 지내다 보면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각박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걱정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요즘은 특히 더 외모나 겉모양을 중요시 여기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어린 아이는 물론 80이 넘은 남자도 “어떤 여자가 좋으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예쁜 여자”라고 대답 한답니다.     

때로 강남지역에 심방을 갈 때 동호대교를 건너서 압구정역을 지나가게 되는데 압구정역에서 다음 사거리 까지 한 구간 안에 성형외과가 정말 많더군요. 한번은 차량이 너무 정체 되어 천천히 가면서 양편에 있는 성형외과가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본 적이 있습니다. 다 세지는 못했지만 25개까지 세었습니다.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도 예뻐지고 싶고 멋있어 지고 싶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잘 가꾸고 돌보아서 더 멋지게 더 예쁘게 만들어가 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이런 외모와 겉모양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이런 외모나 겉모양의 아름다움 이상으로 더 귀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말씀 전체를 읽고 묵상하면 일관된 주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외모나 겉모양이 아니라 속 모양, 즉 중심을 보라고 하십니다. 1독서 사무엘상의 이야기는 사무엘이 사울 왕 다음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왕을 위해 기름을 붓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기름을 부으려 하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마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토 둘째 편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7절)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세속적인 표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16절-17절)

어느 대학교수가 많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던 중 5만 원 짜리 지폐를 보여 주면서 “이 돈을 가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다시 그 돈을 꾸긴 후 “이 돈을 가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강의실 바닥에 그 돈을 던진 후 발로 막 밟았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더니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왜 처음이나 나중이나 똑같이 손을 들었을까요? 그것은 돈의 가치는 새 돈이든 꾸겨진 돈이든 짓밟힌 돈이든 변함이 없기 때문이지요. 교수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때로 꾸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란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가치도 역시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직 젊어서 피부가 팽팽하든.. 나이 들고 늙어  피부가 쭈글쭈글 하든, 우리가 잘 나갈 때든, 아니면 실패하여 넘어지고 쓰러져 있을 때든 여전히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소중하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자녀들입니다.

우리들은 외모나 겉모양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속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 어느 때든 그리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 하느님은 나의 중심 속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과 믿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때로 우리의 실패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두 비유의 이야기는 아주 짧고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 신앙의 핵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비유 말씀은 둘 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비유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요?  잘 와 닿지 않는다구요? 그럼 다시한번 읽어드리지요.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이제 뭔가 잡히나요? 어찌 표정이 그런지요? 

우리가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비유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 두 비유의 청중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시간은 로마 황제의 힘이 작동하는 시간입니다. 로마 황제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아니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은 로마 황제가 가지고 있는 힘을 따르고, 그 힘의 현실적 가치를 추종하며, 그 지배체계와 질서 안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어떻게 그 힘의 부스러기를 주워 모을 것인가?를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살던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 로마 황제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땅에 심은 씨앗과 같습니다. 땅 속에서 어떤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대지를 뚫고 새싹이 돋아납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율법의 위한 노력이나 정치적 혁명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통해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나라는 지금 땅 속에 묻힌 씨앗처럼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나라는 분명히 자라고 있으며, 뿌린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추수의 때를 맞듯이 반듯이 그 때는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한 현재의 불안과 역경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언젠가는 반듯이 올 터이니 그 나라를 가슴에 품고 사는 너희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겨자씨의 비유는 더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너희들은 나무 중에 나무인 백향목이나 송백이 아니라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겨자씨와 같다. 지금 우리가 전하는 이 하느님 나라의 운동은 이제 막 뿌린 겨자씨와 같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씨는 분명히 자란다. 그리고 그 나무 가지에는 공중의 새들도 깃들게 될 것이다.  너희를 통해서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는 이루어질 것이고, 그 나라의 백성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작고 보잘 것 없는 너희 안에 이미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뿌렸고, 이미 너희 안에 그 나라가 자라고 있으니 그것을 잘 가꾸고 키워라.

이 비유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심장이 터질듯 한 전율과 감동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이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이토록 소중한 사람들로 인정해 주시는구나.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고 오히려 죄인 취급받는 우리들에게 이런 꿈과 기대를 가지고 당신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구나.

교우 여러분!  씨앗은 작고 단단합니다. 그 작고 단단함 안에 꽃이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그 작은 씨앗 안에 나무와 숲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미래가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안에 하느님 나라의 씨가 뿌려졌고, 여러분 안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산다면 하느님은 작은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겨자씨가 뿌려진 복음의 밭이며 동시에 복음의 큰 나무로 자라날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당신의 나라를 자라게 하시고 그 나라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더욱 자라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하나가 되어 이 교회가 자라나길 원하십니다. 이 놀라운 하느님의 꿈이 우리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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