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메시아가 오실 길 닦기

2012년 12월 16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서본문
  
이사야서 40:1-5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아멘.

로마서 15:8-13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를 받은 사람의 종이 되셨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시고, 이방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합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또 “이방 사람들아,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여라” 하였으며, 또 “모든 이방 사람들은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백성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나서 이방 사람을 다스릴 이가 일어날 것이니, 이방 사람은 그에게 소망을 둘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3;3-9
요한은 요단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 아멘.
 
설교문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늘 두 가지 방향을 생각하면서 삽니다. 하나는 위를 향해서 신앙생활하고, 다른 하나는 밑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 성가대 찬양은 ‘영광의 왕이 들어가신다.’입니다. 1부 그리고 2부 성가대 모두 비슷한 제목을 가지고 성가를 불렀습니다. 성경말씀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옵소서. 영광의 왕,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해 찬양을 드립니다. 이 찬양 없이 우리는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지만, 받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받으시고 또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받으시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 항상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는 그 은혜를 ‘위로’라는 말로 했습니다. 메시아가 가면, 내 사랑하는 백성이 위로 받는다. 우리는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위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경에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이시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은 존귀하시고, 어떤 말로 표현하든지 간에 하나님에 관해서 영광을 표현합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를 베푸시고, 사랑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을 베푸십니다. 말의 표현은 다양합니다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면, 받으신 영광을 혼자 품에 안고 계시지 않습니다. 영광을 위로로 바꾸어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십니다. 쌍방향이 우리 신앙의 양측면이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동전의 양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양면 중에서 영광을 택할 것인지, 위로를 택할 것인지 묻지 않으십니다. 영광과 위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축복입니다. 둘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탁입니다. 진실로 위로 받고 싶은 사람,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는 사람이 위로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위로를 동전의 양면으로 생각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게 있습니다. 동전은 양면이지만, 하늘과 땅, 하나님과 우리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 하나를 제시합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길을 닦아라. 길 닦으면 영광의 위로가 온다. 길을 닦아야 위로함을 받은 사람이 영광을 돌린다. 우리가 길을 닦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소통할 수 가 없습니다.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 길 닦는 이야기는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신약성경에서는 세례요한이 길 닦는 이야기를 합니다.

길 닦는 이야기와 관련된 제 이야기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마카오를 다녀왔습니다. 마카오에 갔더니 신시가지는 온통 호텔, 현대판 건물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곳이 도시인지, 호텔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호텔에 들어갔는데, 호텔 종업원이 2만 명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을 수가 있냐고 물었더니, 카지노, 음식점, 호텔 등이 합쳐진 복합공간이라고 합니다. 이런 건물들로만 쌓여 있어서 마카오는 다 이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시가지를 가봤더니, 우리나라 김대건 신부가 마테오리치(Matteo Ricci)신부를 만나 회심했던 곳, 그곳에 교회를 짓고 신앙생활을 했던 곳에 동상으로 보전되어 있었습니다.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제가 마카오 구시가지의 길을 걸으려고 봤더니 마치 유럽에 와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100년 이상 식민 치하에 있었습니다. 구시가지 광장에 갔는데, 사람이 걸어 다니는 인도가 엄청나게 비싼 대리석과 같은 돌로 만들어진 광장이었습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엄청난 인도 같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부러워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아름다운 돌로 잘 닦아났기 때문에 이 길은 걷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문화재로 알고 그 길 위를 걸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유럽에 가셨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나라는 서울 한복판에서 보도블록을 다 해체 합니다. 그렇게 좋게 깔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이면 시효가 만료가 되나 봐요. 아마도 남은 예산 쓰려고 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몇 년 예산 합쳐서 좋은 보도블륵을 깔고 수백 년 간직 할 수 있는 문화재 도로를 만들 수는 없나요. 왜 매년 해체됩니까. 왜 소비해야 합니까. 왜 이렇게 아름답지 못한 일을 해야 합니까. 제가 평소에 늘 아쉽게 생각했던 것을 마카오에 가서 우리도 변했으면, 다른 길을, 오랜 된 길을 닦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길로 가면 얼마나 아름답고, 문화도 있고, 공기도 좋고, 아름답지 않을까. 길 좀 잘 닦으십시다. 그런 생각을 제가 다시 해봤습니다.

오늘 성경말씀대로 산에도 길이 있어야 하고, 계곡에도 길이 있어야 하고, 사막에도 있어야 합니다. 울퉁불퉁한 길은 평지로 만들어야하고, 꾸부러진 길은 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자연만물도 길을 내어야 하는데, 우리의 정신생활, 영적생활도 길을 내어야 합니다. 우선 자연환경입니다. 여러분도 흔히 경험하셨을 겁니다. 저도 예전에 겨울에 차를 몰고 강원도로 갑니다. 강원도 대관령지역은 험산준령이라서 꼬불꼬불한 길이 많지요. 운전할 때 느끼는 것은 길이 반듯했으면 좋겠다. 겨울철에 운전하려면 힘듭니다. 지금은 가보니까, 터널이 뚫려서 대관령을 관통합니다. 이제는 잘 갈 수 있습니다. 산을 허물어서 계곡을 메꾸어야 평지가 됩니다. 이사야서를 기록한 2500년 전 이야기는 그럴 수 있습니다. 큰 산이 아니고, 낮은 언덕, 작은 계곡이기 때문입니다. 평지를 만들려면 손수레도 다니고, 마차도 다니려면 아마 그렇게 해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큰 산, 계곡 낮은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평지를 만들 수 있을까요? 높은 산 무너뜨리지 말아라. 그대로 놔두고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산허리에 중간에 터널을 뚫어라. 그 터널을 뚫었더니 산을 관통합니다. 밑에 계곡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름다운 계곡을 살려라. 계곡 위로 아름다운 교량을 놓아서 다리로 지나가게 하라. 그런 장면 경기도, 강원도에 가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 마다 느낍니다. 길 닦는 재주를 20세기가 지나고 오늘 21세기에 우리나라에게 아름다운 축복으로 주셨구나. 길은 그렇게 닦는구나. 구부러진 길, 펴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는 터널이 뚫린 다음에 대관령을 달려 봤습니다. 옛날에는 불평하고 길을 갔습니다. 지금은 제가 택한 길입니다. 자연을 보고 싶어서 아름다운 꼬불꼬불한 길을 걷고 싶어서 차를 몰았더니 아름다운 대자연을 찬양하면서 감탄하면서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구부러진 길이 다 나쁜가요?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을 한 번 걸어 봤습니다. 구불구불한 길 나쁜지 않았습니다. 도보를 하는 사람들에게 영광이더라고요. 이게 올레길이다. 남산의 올레길, 우리 주변의 작은 길, 아름다운 도보길을 만들면 꼭 울퉁불퉁한 길을 꼭 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위반되나요. 아니요, 같은 이야기입니다. 구분 길, 진흙탕 길 모두 필요합니다. 자동차 경주 할 때 필요합니다. 모터크로스 경기 보셨죠? 흙탕길,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누가 잘하나? 이런 경기를 위해서 그런 길을 일부러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그것도 스포츠 세계에서 하나의 소통의 방식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사야와 세례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신 내용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도로공사 전문가신가? 아니죠. 자동차 통과할 길만 만들라고 말씀하셨나요? 중요한 것은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오늘 우리 인간사회에 그냥 눈으로 보는 길만이 아니라 정신사회에, 생각사회에, 의식사회에도 길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높은 산 때문에, 다른 말로 교만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다면, 또는 너무 낮은 자존감과 비굴함 때문에, 계곡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안보십니다. 교만의 허리를 끊고 터널을 관통시켜라. 비겁함의 허리를 끊고 교량을 놓더라도 하나님과 소통시켜라. 구부러진 길,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길로 하나님은 못 오신다. 그러니 투명, 양심, 진실의 길을 새로 닦아라. 험하고, 폭력과 전쟁이 있는 길은 하나님이 오시지 않는다. 그 길을 닦아서 평화의 동산으로 만들어라. 이건 도로공사가 아니고, 인간 공사입니다. 세계 공사입니다. 역사공사입니다. 정신사 공사입니다. 이 공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나게 하고 싶구나. 메시아는 오셔야 합니다. 위로를 베풀어야 한다. 세상은 메시아를 맞이해야 한다. 그러니 빨리 길 닦아라.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으면, 그 길은 터널도 좋습니다. 그 길은 교량도 좋습니다. 그 길은 구부러진 길도 괜찮습니다.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으면 메시아는 오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점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내통, 소통, 공감, 손잡고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메시아의 존재는 하늘의 존재가 아닙니다. 메시아는 땅에 오셔서 위로를 베풀 때, 우리는 메시아라고 합니다. 땅에 오시지 않는 메시아는, 하늘에만 계신 메시아는 우리와 상관없는 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메시아는 땅에 오십니다. 혹시 이 땅에 잘 통하지 않는,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골짝이 있으면, 도로 만드는 것으로 메꿉시다.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높은 산이 있으면 터널을 뚫어서라도 하나님과 통하게 하십시다. 요즘 이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요즘에는 다차원 그리고 고차원의 세계가 되어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 땅에서 자동차를 움직일 때 우리는 자동차 선을 따라서 운전합니다. 선을 위반하면 사고가 납니다. 선을 따라서 사는 사회, 그 사회를 우리는 일차원적인 사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선이 아닌 평면입니다. 바다가 온통 평지입니다. 면을 따라서 움직이는 사회가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듭니다만 쉽게 이야기해서 2차원의 세계라고 합니다. 우리는 선과 평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감싸는 높은 공간이 있습니다. 입체적 공간입니다. 공간을 나는 비행기를 타면 선도 면도 아닌 입체적 공간을 따라서 움직이는 소위 3차원의 세계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1차원 세계, 2차원 세계, 3차원 세계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이 세계가 모두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삶, 길 만들기 모든 것이 차원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1차, 2차, 3차가 아니고, 모두 합쳤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가 나와서 시공간을 다 초월해 소통을 시킵니다. 문화도 하나의 문화, 즉 면에 문화, 선의 문화인줄 알았는데, 비행기만 타면 되는 문화인줄 알았는데. 다 합쳐 가지고 복합통신의 문화라는 말로 모든 문화가 다 합쳐져 우리 땅에도 와 있습니다. 종교나, 사회나, 공동체가 너무 다원화되어서, 다원화된 사회를 우리가 끌어안으면서 어떻게 하면 다원화된 사회끼리 소통하며, 공감하며,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도 많이 합니다. 신앙의 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런 가운데서 메시아 오심은 무엇 이냐하면 소위 1차, 2차, 3차를 넘어선다고 가정하며 모든 것이 합한 시간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총괄하고, 공간도 소통되는 4차원의 세계를 우리가 그리고 그 세계에서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어떻게 닦으면 됩니까? 길 닦기, 여전히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선을 따라 움직일 때도, 면을 따라 움직이는 바다도 길이 있습니다. 땅에서는 선도 길입니다. 비행기는 공간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비행기에도 비행길이 있습니다. 아마 SNS가 지배하는 4차원의 세계도 무질서한 소통이 아니라 질서가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질서가 무너지면 파탄이 옵니다. 길 닦는 것은 어느 차원의 세계든 간에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 말씀이 이사야를 통해서, 요한을 통해서 길을 닦아라. 처음과 상관없이 길을 닦아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위로의 복음을 들고 오늘도 오신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위로의 복음이 이 길을 통해서 와야 합니다.

장로님께서도 기도하시면서 간절한 소원을 말씀하셨습니다만 내일모레면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선거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를 찍으라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선거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새로운 지도자가 생길 터인데, 어떤 마음 가지고 우리는 투표를 하며, 투표를 위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오늘 메시아를 맞으면서 이 땅을 살아야 하나요. 이런 신앙고백적인 이야기는 드리려고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대통령으로 뽑는 게 아니라.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닦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려 합니다. 옛날 역사로부터 종교 지도자 중에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교주가 되었고, 이 사람을 따르던 모든 종교는 이단 집단이 되어서.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종교적으로, 종교적 메시아는 예수 말고는 없습니다. 혹시 있으면,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길 닦는 지도자는 필요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사업이 성공했다고, 자칭 경제적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결국 메시아 역할도 못했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서 멸망의 길을 재촉했습니다. 옛날부터 정치적 메시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정치적 메시아는 사람들을 속박했고, 죽였고, 혼란에 빠뜨렸고, 독재자로 굴림을 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옛날 옛적 무식했던 시절에 이런 상황이 있는 것을 보고 오늘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메시아는 없다. 예수 이외에 아무도 메시아가 아니다. 종교인도, 기업인도, 정치인도, 메시아는 오직 한분,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 길을 닦는 사람이 지도자다. 저는 우리가 과거를 지나서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누구를 뽑으시던 간에 우리는 정치적 메시아로 옹립하기 위해서 대통령 뽑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가 오실 길을 성실하고, 겸손하게 마련할 그런 사람을 우리가 지도자로 뽑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모든 길 닦는 사람들의 여건은 다 여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가 오셔서 혹독한 사회 비판을 하셨죠? 예수가 오시기까지 길 닦는 예언은 이랬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은 성전도 더럽히고, 주님의 집도 더럽히고, 그러면서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비판적 예언이었습니다. 그것이 길 닦기의 하나의 모습입니다. 세상 역사 고비마다 그러한 예언자적 사명이 길 닦기라는 이름으로 필요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도, 우리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엄청난 시대적 도전을 받고, 그 도전에 응답했습니다. 비판적 길 닦기, 세상이 변해서 오늘 같은 상황에 오니까, 어떻게 길 닦아야 합니까? 비판하고, 쪼개는 예언자적 모습에서 한 단계 승화하여,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새로운 예언자적 사명으로 무장해라. 그 길로 하나님의 위로를 담아서 가야 하겠다. 옛날 우리나라가 서양에 나가면 백화점에서 좋은 물건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이 모여서 이렇게 말했지요, 물건이 이렇게 좋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물건을 못 만드냐고 분노 섞인 비판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엊그제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가면서 ‘Made in Korea` 좋다. 왜 우리는 못 만드냐 거꾸로 이야기 합니다. 과거는 우리를 비판하면서 살았습니다만, 이제는 모든 세상 사람들 에게 새로운 대안과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서 우리가 보여 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왜 이 세상에 사랑이 없느냐고? 왜 우리는 도울 수 없느냐고? 세상을 비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사랑이 없느냐는 비판이 아니라, 이 사랑을 우리가 만들고 보여줘야겠다. 그래서 10여 년 전 선한이웃클리닉을 시작하지 않으셨습니까? 희망도 보여주자, 믿음도 보여주자. 세상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보여주자. 이런 것이 새로운 길 닦기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대안을 찾아라. 새로운 희망을 찾아라. 믿음을 구체화해라. 그래서 경동교회여, 믿는 사람들이여, 한국 사람들이여 살자. 저는 앞으로 선거가 있고나면 새로 뽑힌 사람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 땅을 이끌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되는 분은 오직 그분, 우리 모두가 정치, 경제, 종교 모든 영역에서 길 닦기에 동참하고, 응원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새로운 도전 앞에 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렇다고 이제는 우리가 울며 불안해하고 떨며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 있게 대처하고 나가야 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앞서면서 자기 세력 굳히려고 난리입니다. 미국과 러시아도 이 땅의 패권을 잡으려고 난리입니다. 비록 나라가 작다고 해서 과거처럼 눈치나 보고, 조공이나 받치고, 아부나 하고, 그렇게 비굴하게 살아갈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작지만 특징이 있게, 우리 나름의 특화되고, 알차고, 4차원의 삶을 함께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 가지고, 멋지고, 맛있게 이 역사를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런 종류의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위로를 받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중심으로 모시고, 우리의 다양한 세계에서 갈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고, 곳곳에 필요한 길을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정치적 해석은 제하십시다. 단, 모든 삶의 영역마다 메시아는 오시는 하나님, 누구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길을 닦는 민족은, 정직하게 길 닦는 공동체는, 그리고 그런 개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오신다. 나를 맞아라. 나는 영광을 받으며 맞는 사람한테 위로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 온 세상이 볼 수 있도록, 만민이 볼 수 있도록 위로의 복음을 전하마.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그런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메시아로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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