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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율법의 완성

윤응진·한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설교, 2001.2.4

성서본문
 
신명기 30:11-20, 마태 5:17-20

설교문

1.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

요즘 신문을 보면 대체 우리 사회에 법이 존재하는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몇 가지 사건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1) 대우그룹 회장이던 김우중은 1997년이래 회계장부를 조작하도록 지시하여 실제 자산보다 41조원이 넘게 자산을 부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허위 자산을 근거로 금융기관들로부터 1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불법대출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영국 런던에 비밀 금융조직(브리티시 파이낸스, BFC)을 운영하면서 지난 3년간 26조에 이르는 비자금을 빼돌렸다고 합니다. 성공한 기업인이던 김우중은 이제 실패자일뿐만 아니라 단군이래 최대의 도둑으로서 그의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한 때 그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세계경영'의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 책은 제목부터가 기만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의 성공은 결코 성실과 정직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술개발과 합리적인 경영혁신보다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독재자들에게 로비하여 사업을 확장해나간 그가 설마 그 책에서 그의 탈법적인 경영전략을 소개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제 그의 '세계경영'은 결국 '사기경영'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김우중씨가 10년이 넘은 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니면서, 외국 출장길에서도 검소하게 다만 일에만 열중한다는 신문보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받은 좋은 인상 때문에 저 자신도 허탈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저서를 읽고 그를 모델로 삼아 세계경영을 꿈꾸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얼마나 클까요?

이 땅의 경제계를 주름잡던 김우중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우리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 이른 바 '제2의 IMF'를 불러들인 치명타가 되었습니다. 대우그룹을 위해 젊음을 바쳤을 수많은 근로자들의 생계가 위태롭게 되었고,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었습니다. 한국경제 성장의 허구성이 또 다시 전세계에 폭로되고 있습니다.

(2) 최근에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사건은, 한나라당이 지난 선거에서 1000억원이 넘는 안기부 예산을 빼돌려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은 수사에 협조하지도 않은 채 "야당탄압"이라고 펄펄 뜁니다. 제대로 야당구실도 하지 못한 자들이 범법행위를 은폐하고 빠져나가기 위해 야당탄압 운운하는 것은 파렴치하기 그지없습니다. 더군다나 S대 법대 출신 법관으로 법조계의 '대쪽'이라는 평판을 받던 사람을 야당총재로 둔 당에서 삼척동자도 웃을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 한심합니다.

(3) 다른 한편에서는 의사들이 특정 제약회사 의약품을 채택해주는 대가로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금품과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은 의약품 채택 사례금 수수를 막기 위해 실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들의 생존권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시위를 벌이고 파업을 하던 의사들이,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의약분업을 거부해야한다던 그 의사들이 결국에는 환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는 파렴치범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배고파서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자들이 아니라 이 사회의 특권층에 속하는 자들이라는 데에서 우리의 허탈감은 더해갑니다.

이렇게 불법과 탈법이 기승을 부리는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어처구니없는 재판결과가 두 건이나 발생했습니다.

(1) 청와대 과장으로 행세하면서 한국디지탈라인 대주주 정현준(33. 수감중)씨로부터 4억 4천여 만원을 받은 혐의(사기)로 구속 기소된 청와대 청소원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담당 판사는 이 사기범이 직급을 속이고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적극적인 의도를 가진 사기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법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이 일반국민들의 법감정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2) 대법원에서는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을 실정법 위반으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판사들이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 헌법 전문에는 분명히 3.1 운동과 4.19 혁명 정신을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방향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법원 판사들이 바로 그러한 저항 정신의 맥락에서 전개된 낙선운동을 실정법을 구실로 불법 판결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지난 해 전개되었던 낙선운동은 '6월항쟁'이래 최대규모의 거국민적인 참정권 운동이었습니다. 낙선운동은 유권자 80% 이상의 지지를 받았고, 그 결과 낙선 대상자의 76%가 낙마하는 성과를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러한 낙선운동을 유죄로 판정한 대법원의 판결은 부정 부패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짓밟은 행위였습니다. 그 법관들이 3.1 운동이나 4.19 혁명 당시에 법관으로 봉직했다면, 그들이 어떤 판결을 내렸을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입니다. 이 재판결과들을 보면서 우리는, 도대체 한국에는 위에서 열거한 범법자들이 제대로 심판받을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사법부는 새로워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부 자체가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본다는 것이 일반국민들만이 아니라 이제는 청소년들에게도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류대 법대라는 초일류학과에 진학한 학생들 가운데 대체 몇 명이나 진정으로 이 땅에 사법정의를 세울 사명감을 지니고 있을까요? 법의 권위를 빌려서 출세하려는 유혹에서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일류대 법대에서는 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요? 일반시민들도 뻔하게 알 수 있는 판정 기준을 뒤엎는 기술이라도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정의를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불의를 정의로 포장하고 부정을 합법으로 은폐하는 논리를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요?

사법정의가 세워지지 않은 나라에서는 법을 어긴 범법자들의 심판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힘없는 서민들만을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희생시키면서, 힘있는 자들에게는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길을 안내하는 법관들이야말로 법의 심판받아야 마땅합니다.

2. 그리스도인- 율법을 거부하는 율법주의자?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율법에 대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인들의 사회생활을 위해 규정되었던 일반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는 정교분리가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은 종교법만이 아니라 일반사회법의 구실까지 했던 셈입니다.

율법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혐오감은 주로 바울이 남긴 서신들 때문에 발생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선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율법준수보다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습니다. 물론 바울은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이 할례없이 기독교 신앙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서구 기독교는 바울의 말을 오해 혹은 악용하여 율법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겼습니다. 특히 선한 행위보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한 사람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는 당시 로마 카톨릭이 종교적 업적을 강요하는 데에 반발하여 "믿음으로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천없는 믿음은 헛되다고 주장하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처럼 가치없는 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서구교회의 전통에 따라서 율법을 실천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 덕분에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율법을 실천하는 일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약시대에나 필요했고 이제는 복음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믿음' 중독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입술로만 신앙고백을 할 뿐 실천이 없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교회는 수많은 새로운 율법조항들을 만들어 교인들을 속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종교적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서의 율법을 혐오하면서도, 교회전통이 만들어놓은 율법에 사로잡힌 모순된 율법주의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독선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종교인들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3. 율법을 완성하는 메시야

그러나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뜻밖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께서는 뜻밖에도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 즉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 메시야의 사명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무시하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5:18).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우리는 지금 '낯선' 예수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폐기하여야 한다고 여기는 그 율법을 완성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오늘 경청한 히브리성서의 말씀에 따르면,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인간을 생명의 길로, 자유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삶의 지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신 후에 그들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실천은 출애굽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요구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정의롭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요청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율법의 실천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 놓았다. 너희와 너희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라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다."(신명기 30:19-20)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으로 구체화되었고, 그것은 히브리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방향제시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신명기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 자체가 이미 구원의 복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또한 인간을 축복된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가 제도화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경직된 율법체계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려던 생명의 말씀이 인간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규정들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본 뜻은 잊혀지고 경직된 규정들만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경직된 율법규정들이 서민대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도구로 변모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은 지배자들의 위선과 죄악을 정당화하고 서민들에게 죄의식을 강요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평화공존을 위해 기여해야 할 율법이 인간 위에 군림하여 인간을 억압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율법을 해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본뜻을 회복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시 신학자들이던 율법학자들과 경건한 평신도들이던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를 넘어서는 '보다 더 나은 의(정의, Gerechtigkeit)'를 요구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주의를 넘어서서 율법의 본뜻을 실천하도록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규정자체에만 몰두함으로써 그 규정들이 어떤 의미에서 요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은 규정들을 준수하므로 의롭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율법이 최소한의 요구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율법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것은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탐욕과 교만이 가득한 자들도 규정만 지키면 의인행세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자칭 의인행세를 하지만 마음으로는 율법의 정신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독선적이며 냉혹한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여전히 부족한 존재임을, 아직도 더 나은 정의를 그리고 더 큰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주의를 폐기하고 율법의 기본정신을 다시 세우려 하십니다. 이것이 율법을 완성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깃든 계명들을 폐기처분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계명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실천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대에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준수한다던 당대의 지도자 계급들에 맞서서 그들의 위선과 사악함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의 율법주의가 지니는 모순성을 파헤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난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지도자들이 지닌 그 의보다 '더 나은 정의'를 행하라! - 이것이 주님의 요청입니다.

4. '보다 더 나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율법주의에 맞서 싸우다보면 우리는 율법 자체를 거부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이 율법주의의 경직성을 거부한다는 구실로 율법의 본뜻마저 무시한다면 율법주의자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방종과 무책임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율법주의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결코 율법주의자의 의에도 미치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율법주의자들의 의보다 더 나은 정의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기본정신인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 실현되는 정의입니다. 경직화된 규정때문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우리 자신이 구원받은 삶,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함께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계명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법조항들과 규정들이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중독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불법천지에서 법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을 외면하는 것은 신앙인의 사명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저항하여야 하지만, 율법을 무시하고 농락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율법의 해체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보다 앞서서 그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인 성서의 율법과 교회의 전통에서 형성된 율법을 구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전통들은 과감하게 시정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율법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통째로 삼키는 것과 같은 오류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을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외면하는 교회는 결코 예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가 세워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의보다 더 나은 정의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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