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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거짓증언하지 말라!

윤응진·한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설교, 2001.2.18

성서본문

출20:16, 마태 7:1-5

설교문

1. 어느 재판 이야기: 사기당한 사기꾼

독일어 교재에 수록된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이 이야기 제목은 "사기당한 사기꾼"입니다. 어느 시골의 한 노파가 사기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이 노파를 고발한 사람은 빵집주인이었습니다. 빵집주인은 몇 년째 매일 이 노파에게서 두 파운드치의 버터를 샀는데, 이 노파는 저울을 속여서 1/4파운드치 버터를 덜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 선 노파는 자신은 늘 정확하게 저울을 달아서 버터를 팔았으므로 결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저울은 거의 새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저울추도 규격품인가요?"하고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러나 손주놈이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 정원에서 잃어버렸습니다"라고 노파가 대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신중하게 버터의 무게를 달았다는 것입니까?"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아주 신중하게 무게를 달았지요." 그리고는 노파는 버터의
무게를 어떻게 달았는지 설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 빵집에서 매일 두 파운드치의 빵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천칭저울 한쪽에 저울추대신에 늘 그 빵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 버터를 올려놓아 무게를 재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버터의 무게는 틀림없이 정확하게 두 파운드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버터의 무게가 두 파운드가 되지 않았다면, 빵 무게가 두 파운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노파가 가방에서 빵을 꺼내어 재판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재판관은 빵의 무게를 달아보도록 했습니다. 노파가 산 빵은 1/4파운드만큼 적었습니다. 실제 사기꾼은 노파가 아니라 빵집 주인이었습니다. 결국 사기꾼이 제 꾀에 넘어가 사기를 당한 셈이지요. 빵집 주인은 자신의 사기행각을 은폐한 채 노파를 사기죄로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노파의 무죄가 증명되었지만, 모든 재판이 억울한 피고들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힘 있는 자의 목소리가 이기고, 거짓증언이 재판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못한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내려주신 열 가지 계명 중 아홉 번째로 제시된 삶의 지침입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열 가지 중요한 지침에 거짓 증언에 대한 금지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귀한 계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계명도 너무나 자주 왜곡되어 경직된 규정처럼 여겨졌습니다. 흔히 이 계명은 '거짓말'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읽은 어느 만화책에는 쫓기는 독립군을 숨겨주기 위해 일본군에게 거짓말을 한 성직자가 하나님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어린 저의 생각에도 성직자의 죄책고백은 너무나 갑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계명을 오해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무의미한 질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의사는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가? 혹은 그가 회복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야 하는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이 계명의 참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이 어떤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계명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법정에서의 거짓증언입니다. 그것도 이웃을 해치기 위하여 의도된 거짓증언, 즉 극단적인 경우의 거짓말을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거짓증언을 통해 억울한 사람들에게 불리한 심판을 내리게 하는 자들은 권력자들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무엇보다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복된 말씀입니다.

히브리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표적인 거짓증언의 사례는 나봇의 포도원을 뺏기 위해 계획되었던 거짓증언입니다. 열왕기상 21장에 기록된 이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그의 궁 근처에 있는 한 포도원을 사서 그의 정원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포도원 주인인 나봇은 조상의 유산을 넘길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러자 아합왕의 왕비인 이세벨이 거짓증인들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임금님을 욕하였다"(왕상21:13)고 증언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나봇을 돌로 쳐죽이게 합니다. 이세벨은 정원을 확장하려는 왕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게 한 것입니다. 살해할 구실로 거짓증언이 활용되었던 것입니다.

신약성서에 기록된 대표적인 거짓증언의 사례는 예수님에 대한 재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의회는 예수를 사형에 처할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소할 증거를 찾았습니다. 많은 거짓증인들이 나와 증언했으나 말이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직접 심문을 시작했고, 그는 결국 예수님의 답변을 문제삼아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구실로 처형을 선동했습니다(마가 14:55-64). 결국 대제사장 자신이 거짓증인이 되어 빌라도에게 예수의 처형을 주문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거짓증언의 피해자로 처형된 예수님의 고난과 함께 거짓증언을 감행한 대제사장의 범죄도 동시에 증언합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거짓증언의 피해자들은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독재자들은 선량한 시민들과 민주인사들을 거짓증언을 통해 박해하고 학살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거짓증언의 피해자로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독재체제 아래에서 법관들은 조작된 증언과 여론을 바탕으로 억울한 피의자들을 "법에 따라" 처형하도록 재가해주곤 했습니다. '대쪽'이라는 현직 야당총재도 군사쿠데타 이후에 발생한 민족일보 사장 처형에 관여했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독재자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은 마치 하나님을 대신하듯이 최후의 심판관처럼 행세했던 것입니다.

이른 바 민주사회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최후의 심판을 행사하는 집단은 언론기관입니다. 신문과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에 의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적인 삶의 무대는 법정으로 되어버립니다. 여기에서는 흔히 기자들이 검사들의 역할을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언론의 심판이 두렵게 되었습니다. 대중매체들은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해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이비 언론기관들에 의한 거짓증언으로 무죄한 사람들이 정죄받을 위험성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언론매체가 생긴 이래 대부분의 언론기관은 늘 권력과 타협하여 자신들의 실속을 챙기는 데에 급급했습니다.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이 억울하게 박해를 받을 때에도, 광주에서 숱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갈 때도 그들은 침묵하거나 거짓된 보도를 통해 독재자들의 하수인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로 언론재벌로 비대해졌습니다. 진실을 보도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수호해야 할 언론기관과 언론인들 자체가 거짓을 보도하고 사회악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였고, 구조악에 편승하여 각종 이익과 특혜를 누렸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사이비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된 것입니다.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못한다." - 이 계명은 오늘날 무엇보다도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이 경청해야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은 사악한 언론기관과 사이비 언론인들이 심판받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3. 사이비 비판을 중단하라.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 오늘 우리가 경청한 주님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판적 통찰력과 판단력을 포기하도록 촉구하는 것일까요? 남이야 어떻게 살든, 현실이야 어떻든 눈 감아버리라는 것일까요? 예수께서는 어떤 예언자보다도 더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경건하다는 자들의 위선을 폭로했고,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고 일종의 중립주의자가 되라고 권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말씀은 본래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에 이어서 예수께서는 남을 심판하는 자는 그 심판의 척도로 스스로도 심판받을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3) 이 문제제기를 통하여 우리는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자기 자신의 행동은 늘 올바른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만을 심판하는 인간의 완악함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흔히 자신은 의롭다는 전제에서 다른 사람, 특히 다른 생각이나 다른 형태의 신앙을 지닌 사람을 정죄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심판행위는 모든 종교에서 특히 열광주의자들의 특징입니다. 스스로 경건하고 의롭다고 여기는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박해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바로 대제사장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 처형에 넘겨졌습니다. 중세에는 종교재판을 통해 숱한 사람들이 이단 및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습니다. 또한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다는 구실로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학살했습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이른 바 '시민도덕'이나 이데올로기들도 그것들을 어긴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가혹한 심판을 내릴 근거가 됩니다. 분단체제 아래에서 숱한 사람들이 양심수가 되어 박해받았고 또한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을 정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은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자신의 불성실과 불신앙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불성실이나 불신앙을 정죄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 그래야 그 때에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에서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5) 여기에서 예수님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위선자들이 스스로의 허물을 은폐하기 위해 그들과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것이 부당함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종교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자기과시욕과 지배욕구를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위선자들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시정하도록 촉구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의 잣대를 먼저 자신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철저히 거듭나라는 것입니다.

4.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거짓말에 저항하라!

이른 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정부정책에 대해 침묵하거나 동조하던 언론인들도 이제는 정부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부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 성숙한 증거로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아무리 '국민의 정부'라지만 국민의 비판과 감시없이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비난을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정부에 비판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시민들이나 언론인들 가운데에는 정부의 정책이 지닌 보수성과 반개혁적 성향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이고 반개혁적인 입장에서 비난을 위한 비난에 몰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이비 비판적 논조들을 쉽게 찾아보게 됩니다. 전직 대통령인 YS는 그가 재임시인 1994년에 시행한 언론사 세무조사 때 언론사 사주의 재산비리를 대거 포착했으나 언론사의 존립을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국세청이 원칙대로 했다면 상당한 세금을 징수했어야 했"으나 "적당한 수준에서 얼마만 받고 끝내라고 딱 잘라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언론사도 영리단체이므로 세무조사를 받을 필요는 있다고 시인합니다. 그러면서도 현재 진행중인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며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합니다. 스스로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조사결과를 은폐함으로써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사람이 현 정권이 실행하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독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을 조작하고 기득권 세력에 야합했던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정부의 세무조사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반발을 도와주고 있는 정치세력이 야당이라니 참으로 갑갑한 일입니다.

야당의 기능은 여당이 한국사회 개혁을 위해 더욱 급진적인 정책을 수행하도록 촉구하고 투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은 수구세력의 대변자가 되어 야당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엘리트 법관 출신의 야당총재가 족벌언론의 탈세와 부조리를 은폐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입니다.

이처럼 거짓증언과 사이비 비판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과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우리는 거짓증언과 사이비 비판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참된 비판세력이 누구인지를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나라당과 족벌언론들이 펼치는 거짓증언과 사이비 비판의 실체를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며,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통찰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들의 범죄적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고 저항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들 자신은 이웃을 해치려는 거짓증언과 사이비 비판에서 자유로운지 겸허하게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이웃의 생명과 인격을 보호하고 변호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수호하려는 열정, 비판적 통찰력과 함께 이웃을 동료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용납하는 관용도 함께 지니도록 스스로를 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비판의 척도로 먼저 스스로를 비판하고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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