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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예수의 눈높이

윤응진·한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

대학교회설교, 2001.7.29

성서본문

이사야 5:20-24, 누가 13:10-17

설교문

1. 안식일에 허리 굽은 여인을 고쳐준 예수

오늘의 말씀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느 회당에서 한 여인의 질병을 고쳐준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18년 동안이나 질병에 시달렸는데,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펼 수 없었습니다.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징은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직립보행 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직립보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허리가 굽은 이 여인은 동물처럼 땅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이 여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죄 많은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스스로 허리를 펼 수 없다는 신체적 고통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죄의식, 그리고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경멸 섞인 시선들로 인하여 그녀의 삶은 이미 인간의 삶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삶, 그것이 그녀의 삶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께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이미 모든 희망을 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여인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발적으로 행동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손을 얹고', "그대는 병에서 풀려났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 여인의 생애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이 장면에서 좌절과 비애, 환멸과 슬픔이 '갑자기' 새로운 삶의 용기와 희망, 그리고 기쁨과 감사로 뒤바뀌는 극적인 대전환을 묘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환희의 찬가로 그 음악은 끝을 맺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환희의 찬가를 무효화시키려는 아리아가 마치 걸맞지 않는 잡음처럼 끼어 들고 맙니다. 회당장의 분노하는 목소리가 환희에 찬 청중의 귀를 교란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리아는 점점 합창으로 바뀌면서 기쁨과 환희를 원천적으로 무효화시킬 것 같습니다. 회당장의 논리는 동조자들을 얻게 되고, 예수와 여인은 범법자처럼 취급될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회당장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예수의 치유행위가 안식일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이란 회당의 책임자입니다. 그는 그 회당에서 종교지도자로서 권위와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 지역의 유지급 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의 당회장과 같은 위치이지만, 당시에는 아마도 더 큰 존경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는 지금 예수의 행위를 그의 가르침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직접 예수께 도전하지는 못하고 무리들을 향해 '안식일법을 지키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법을 내세워 예수님의 치유행위를 간접적으로 비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누리던 권위와 특권들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노하는 회당장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너희 위선자들아, ..."(15)라고 말문을 여십니다. 예수께서는 아마도 회당장과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 모두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유대교의 안식일법에는 안식일에도 가축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특별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예외조항을 인용하면서 질문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 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16)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그 여인도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즉 비록 희귀한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지만 그 여인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장애인들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서 권리를 지닐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장애인들과 환자들, 고난받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확립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중한 인격을 지닌 이 여인이 18년 간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으니, 그녀를 억압하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 예수님은 고통받는 그녀의 눈높이에서, 즉 그녀의 입장과 처지에서 구경꾼들, 특히 법을 내세워 비방하는 자들을 향해 항변하십니다.

지배자들의 눈높이에서는 법과 질서를 내세워 자신들의 권위와 특권을 지키는 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지배자들의 눈높이에 대해 저항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고통받는 여인의 관점에서, 그녀의 눈높이에서 해방이 긴급히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항변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치유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시급히 요청되므로 그 날이 어떤 날이든 상관없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법을 통해 민중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특권을 강화시키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안식일법의 정신이 인간해방에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무효화시키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마가 2:27). 바로 안식일은 인간을 해방하는 날이므로(!), 이 여인을 병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항변에 회당장은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비방하던 자들이 모두 부끄러워했고, 무리들은 치유기적을 보면서 모두 기뻐했다고 전합니다.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 치유기적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구원행위는 다름아니라 인간들이 모두 허리를 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직립보행하지 못하도록, 허리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악한 세력들은 오늘날도 존재합니다. 정치적 독재자들만이 아니라 종교적 지배자들도 인간들에게 굴종을 강요함으로써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합니다.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것은 반역행위로서 간주되기도 하고, 불경건한 행위로서 간주되기도 합니다. 백성들이 허리를 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지배자들은 무의미한 노동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숱한 법조항을 만들어 허리를 펴는 것을 범법행위로 규정하기도 하고, 아예 각종 이데올로기에 길들여 놓음으로써 허리를 펼 생각조차 막기도 합니다.

2. 오늘의 치유기적을 거부하는 자들

요즈음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을 놓고 각가지 험담들이 난무합니다. 참된 개혁은 국민들이 허리를 펴고 살아가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정부가 실행하려는 각종 개혁정책이 바르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야당이 진실로 야당구실을 바르게 하려면, 여당의 개혁이 중단되지 않도록 촉구하고 개혁의 완성을 위해 협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언론이 진실로 비판적인 언론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진실로 '할말은 하는' 언론이기를 원한다면, 정부의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들의 정체를 폭로해야 할 것이며, 정부가 보수우익단체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개혁정책들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인들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가치관의 혼란과 판단기준의 상실로 인하여 개혁의 방향이 흔들릴 때, 바른 가치와 판단기준을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18년이 아니라 아예 허리를 한 번도 펴본 적이 없는 한국 백성들이 허리를 펴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처럼 개혁정치가 시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회당장과 그를 따르는 기득권층의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개혁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지금 개혁이 진행중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혁을 거부하여서는 안 되는 세력들, 즉 야당과 언론,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이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개탄할 일입니다.

언론개혁의 시기를 놓고 시비를 거는 세력들의 논리는 안식일에는 질병을 치유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언론개혁은 적절한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기가 좋지 않다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시기야말로 언론개혁의 적기인 셈입니다.

소위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면 인간답지 않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반쪽 지식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쉽게 확인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논리에 도취되어 개혁을 거부하는 논객들로 자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기본적인 관심은 진리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세력으로부터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물질적 정치적 이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논리를 내세우지만, 허리를 펴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 환자의 눈높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논리는 추상적이고 허구적입니다. 고난받고 있는 사람, 지금 해방받아야 하는 사람, 지금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개혁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관심사에서 출발하여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므로, 그들의 논리는 비현실적인 자기모순을 은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서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에 대해 '법치'를 구실로 이의를 제기하였다는 것은, 이 땅의 정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변호하고 수호해야 할 변호사들이라면, 마땅히 개혁정책의 강도를 더 높이도록 요청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도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정부의 개혁조처가 목표와 명분을 내세워 법적 절차에 있어서 합법성과 정당성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음을 우려"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함으로써, 변협은 반개혁 노선에 서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개혁노선에 시비를 거는 자들에 대한 비판능력은 상실한 채, 그들이 지켜려는 법이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바로 안식일법을 빙자하여 예수님의 치유행위를 비방하던 무리들의 태도와 다름없지 않습니까? 법을 통해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법을 구실로 내세워 스스로의 특권과 권위를 유지하려 발버둥치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법의 이름으로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예언자 이사야의 탄식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사야는 불의가 정의로 둔갑된 현실에 저항하여, 타락한 지식인들과 지배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 그러면서도 스스로 지혜로운 자로 착각하고 있는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슬기롭다 하는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다!"(사 5:20-21)
또한 이사야는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 (23)재판관들의 죄도 폭로하면서, 그들이 받을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봉사해야 할 변호사들이 이 사회의 특권층이라는 것 자체가 그들이 법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을 얼마나 착취하고 있는지를 명명백백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관이 된 자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이 땅의 사회정의를 짓밟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법관들이야말로 언론인들 못지 않게 개혁되어야할 대상들입니다. 법관출신 야당 총재의 행태는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왕국의 법관들이 법을 내세워 횡포를 부림으로써 "만군의 주의 율법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멸시하였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오늘날 법을 내세워 스스로의 특권과 권위를 유지하려는 자들에게, 스스로가 올바르고 정의롭다고 착각하는 자들에게 이 경고는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안식일법을 빙자하여 인간해방의 사역을 거부하였던 회당장처럼, 법적 절차의 합법성을 내세워 개혁을 방해하려는 모든 세력은 하나님의 일에 저항하는 사악한 세력들입니다. 바로 그 악한 세력들 때문에 한국백성들이 허리를 펴지 못하는 장애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 여성을 치유함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저 회당장이 아니라, 외관상 안식일법을 폐기하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높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고, 이 땅의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이 허리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악한 세력들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팔짱 끼고 중립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은 다만 더 철저히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연대적 비판이 필요할 뿐입니다. 개혁정책을 훼방하는 모든 비난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사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개혁 저지 세력에 저항하여 더 철저한 개혁을 촉구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종교인들과 문인들이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해당 언론사들의 사죄와 개혁 동참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변협의 결의문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과 뜻 있는 지식인들이 개혁저지세력에 대하여 강하게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도록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국백성이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가 현실화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에 싹튼 개혁의 새싹이 개혁정치를 거부하고 모함하는 세력들에 의해 무참히 꺾이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굽은 허리를 펴고 일어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개혁세력을 통해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이 성취되도록 함께 기도하고 애쓰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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