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야권의 정치인들에게 뼈를 깎는 반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성하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남이 반성하라고 해서 반성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반성은 스스로 하는 것인데 반성해야 한다는 소리만 무성하고 실제로 반성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의 실패를 정치적으로 철저히 반성하지 않으면 5년 후 10년 후에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아래로부터 국민의 힘이 분출했고 오랜 군사정권을 끝내고 민주정부를 세울 좋은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하여 야권 대통령 후보가 두 사람이 나왔고 노태우는 36.6%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때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이 얻은 표를 합하면 55%나 되었다. 그 때는 군사정권을 끝내고 민주정부를 열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국민이 하나로 일어섰기 때문에 지금보다 야당 정치권의 책임이 더 무겁고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허망하게 야권의 분열로 군사정부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말았다.
만일 1987년에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면 한국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아직 보수기득권 세력이 지금처럼 사회 전반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때 민주정부가 섰다면 우리 사회의 기풍과 성격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1987년의 정치적 실패는 참으로 뼈아픈 실패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야권의 분열에 직접 간접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집단들 가운데 진지하게 반성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참으로 기이할 정도로 반성하는 사람이 없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를 놓고도 야권의 정치인들에게서 뼈를 깎는 반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그 때 철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어이없는 정치적 실패와 패배가 되풀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25년 전에도 4자필승론을 내세우며 주관적 신념과 주장에 파묻혀 대통령 선거를 치르다 역사의 죄인들이 되고 말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야당 후보가 되기만 하면 승리한다는 주관적 신념과 주장에 빠져 선거를 치르다 패하고 말았다. 야당 정치권은 25년 전 패배의 교훈에서 배운 게 없었기 때문에 똑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고 말았다. 뼈아픈 반성을 통해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하면 5년 후 10년 후 똑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용서가 없다. -박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