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

2012년 12월 30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서본문  
  
이사야서 49:13-16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 아멘.

요한일서 4:1-4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2:25-32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멘.
 
설교문  
  
성서일과에 따른 예배예번에 따라 예배찬송을 함께 부르고 성가대 찬양을 들으면 그 날 예배의 큰 흐름이 잡힙니다. 오늘 1부와 2부 성가대가 부른 찬송은 동일하게 "기쁨으로 찬양을 한다"는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기쁨의 찬송이나 기도는 그저 쓰여있는 글자가 아니고, 우리의 기쁨은 가슴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도 그냥 성경 말씀의 글자를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그 말씀은 읽혀진 말씀이 아니라, 살아가는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똑같은 말이라고 해서 그 작용까지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읽는 사람이, 부르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으니 모두가 기뻐했지만, 그 기쁨의 종류가 다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세상 사람들, 특히 유대 땅 사람들은 천 년, 혹은 천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 가운데 메시아가 나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막상 메시아가 아기가 되어서 베들레헴에 태어났을 때, 그 아기 예수 가 수천 년 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라는 것을 하늘과 자연의 현상을 통해 직접 깨달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밖, 페르시아에서 살던 점성가들, 바로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주 먼 곳에서 별의 움직임을 보고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아기 예수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이 기쁜 소식을 이스라엘보다 먼저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내에서는 어땠을까요?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던 배부른 사람들, 보통 사람들, 별 문제 없이 사는 사람들은 예수가 말구유간에서 태어난 것을 몰랐습니다.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감지한 사람들은 집 없이, 직업상 안식일도 못 지키고 배고파하는,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어딘가에는 종사하며 살아가는 밤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이었죠. 예루살렘 성 안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성 밖의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몰랐습니다. 유대 백성 밖의 페르시아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는 참 외롭게, 힘들게, 작게, 가장 낮은 곳에서 그렇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다음 8일 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건 하나가 생깁니다. 어린 아이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유대 땅 사람이기 때문에 전례에 따라 할례를 받으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할례의 신학적 의미는 우리 기독교로 말하면 세례와 같은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포경 수술을 뜻합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포경 수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뀐다는, 유대교 식으로 말하면 정결 예식에 따른 행사를 합니다. 예수께서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이 우리 달력으로는 1월 1일입니다. 그후 때가 차서 성전에 나가 정결예식에 참여합니다.

오늘 오늘 본문을 보면 할례를 받은 아기 예수는 태어난지 33일이 경과한 후 어느날 성전에 가서 소위 "정결례"에 참석합니다. 이 정결례의 주관자는 형식상으로는 할례를 집행하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는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의 이야기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예식 주재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이 드신 두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시므온>이란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 기록에 보면 시므온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학수고대 해왔습니다. 경건하고, 진지하고, 기쁘게 찬양하고 기도하며 메시아 오심을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희망을 몸에 담고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꿈은 단 한가지, 성령이 일러준 꿈입니다. “시므온아, 네가 죽기 전에 반드시 네 눈으로 메시아를 볼 것이다. 죽기 전에 메시아가 네 앞에 나타날 것이고, 너는 메시아를 볼 것이다.” 이 희망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시므온의 나이는 성경 기록에는 없지만, 굉장히 나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도 없이 살던 여성입니다. 이 여성의 이름이 누가복음 2장 마지막 절에 보면 나와있습니다. 바로 <안나>라고 하는 사람인데, 결혼생활 7년 뒤에 남편이 죽고 그 이후로 홀로 산 과부로 살아왔고 이제 나이가 84세가 되었습니다. 아마 굉장히 장수한 사람일 것입니다. 시므온도 나이가 아주 많았다고 하니 시므온 역시 80대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 계셨던 당시의 평균 수명은 25세였다는 것입니다. 33세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평균 수명을 훨씬 넘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물며 시므온과 안나라는 이 남성과 여성은 80대입니다. 그 동안 이들은 장수하면서 아기도 없고 희망 하나만 가지고 살아왔는데, 오늘 성전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신앙의 중심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하게 읽혀지는 곳, 그 곳에서 말씀을 들으면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새 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태어나시지는 않았지만, 태어나신 예수가 성전에 와서 정결 예식에 동참합니다. 성령의 임함을 받은 시므온은 평생 기다려왔던 메시아를 죽기 전에 보기 위해 오늘 성전으로 갑니다. 시므온은 성전에 가서 마리아와 요셉이 안고 있는 아기를 봅니다. 이 아기가 시므온이 평생 기다려왔던 희망의 빛, 생명의 주인인 메시아입니다. 혹시 결혼해서 10년이 지나도 아기가 없었는데 아기가 생겼고 그 아기를 지금 낳았다면, 그 아기를 안아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요. 엄마가 아기를 안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은 어떻고, 학수고대하던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떻하겠습니까. 아기 예수를 안았다는 것은 하늘을 안았다, 우주 공간을 안았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땅에 임하신 하늘이고 또 온 우주를 구원하실 구세주이시니까요. 그 때의 심정을 기쁨, 찬양, 이 단어 외에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수천 년 동안 유대 백성이 가슴 속에 품어왔던 희망이자 꿈인 메시아, 아기 예수를 시므온이 안고 하는 얘기입니다. “주님,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이제 저를 불러가셔도 좋습니다. 제게 보여준다고 하셨던 메시아가 바로 이 분이군요. 지금 메시아를 안는 이 순간 주님께서 저를 평안하게 하시고 평안 속에 저를 부르시는군요.” ‘지금 여기서’라는 말을 라틴어로 바꿔보면, 지금은 ‘눙크(nunc),’ 여기서는 ‘히크(hic)’라고 하여, ‘히크 엣 눙크(hic et nunc)’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메시아를 안고 있는 지금 편안히 눈 감고 "떠가게 하시는군요"는 말을 라틴어로 ‘디미티스(dimittis)’라고 합니다. 오늘 누가복음 본문이 이 시므온이 부른 인생의 마지막 고별 노래입니다. 주님, "지금 저를 편안하게 보내시는군요”라는 말을 번역한 이 노래의 제목이 라틴어로 ‘눙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라 이름합니다. 이 노래는 고별사가 아니라 사실은 생명 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가실 때 “눙크 디미티스”라고 고백하며 떠날 준비하시면 어떨까요?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 하늘의 평화 속에 저를 불러가십시오”라고.

안나라는 여성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혼자 84세까지 과부로 살았습니다. 안나는 성전에서 봉사직으로, 성전에 오시는 분들을 수발 들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성전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당시 사정상 아마도 아기를 안아보지는 못했지만, 안나는 메시아가 정결례 받는 것을, 그 메시아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현장에 있었고 그것을 경험했던 증인입니다. 이 여성이 나가서 메시아의 탄생을 온 땅에 전파했다는 것이 성경 말씀의 기록입니다. 이를 해석해보면 예수님을 처음 보고 끌어안은 시므온은 첫 남성 선교사요, 예수님을 안지는 못했지만 눈으로 보고 감격하여 온 세상에 전파한 안나는 예수님의 첫 여성 선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끌어안을 수 있고, 눈으로 본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광경을 보며 오늘 현실을 생각해봅니다. 과거에 제가 외국에서 목회하던 시절에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섰다가 밤 늦게 들어오면, 제 아내는 저를 보고 하숙생이냐며 비난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제 집에 살면서 한 때 하숙생처럼 살았습니다. 어떤 분이 외국에서의 오랜 생활 뒤에 귀국했는데, 그 삶의 방식이 잘 맞지 않았다며 쓴 시의 제목이 “나는 고국에서 망명중이다” 입니다. 요즘에 노숙하는 분들이 많은데 노숙자를 홈리스(homeless)라고 합니다. 나는 집에서 살지만 노숙자로 산다, 나는 홈리스인데 내 집이 있는 홈리스이다는 것을 ‘홈리스 인 더 홈(homeless in the home)”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이 한 얘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서로 통하지 않아서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은 홀로 있어서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교실에 공부하고 있는데 외톨이라고 느껴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죽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함께 사는 것 만으로, 서로 눈을 마주보고 산다는 것 만으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꿈, 희망, 사랑, 신뢰, 믿음이라는 그 꿈을 한 번 안아보면서 살아야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꿈을 안고, 안지 못하면 눈으로 라도 느끼고 보라는 메시지를 주는 시므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삶에는 여러 종류의 행복과 꿈이 있는데, 그것을 이렇게 구분해보겠습니다. 먼저 보고, 듣고, 맛 보고, 냄새 맡고, 느끼며 행복을 느끼고 싶은 분들은 한번 요리를 잘 해보십시요. 맛있게 요리해서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맛있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으며 삽시다. 맛있는 음식은 행복을 줍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삶의 관계 안에서 마음의 행복을 찾습니다. 친구가 있어야 하고, 고향에 가면 푸근함을 느낄 수 있고, 좋은 연인과 사랑하고 살며, 자연과 함께 숨쉬고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동물을 보면 나의 동료 같다고 느끼는 삶의 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자식을 뜨거운 가슴으로, 부모님을 따뜻한 공경심으로 안아보세요. 이것 또한 큰 행복입니다. 다음으로 몸과 마음으로만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머리로 느끼는 행복도 있습니다. 인생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세상은 왜 정의롭지 못한가, 세상은 왜 희망을 필요로 하나, 이런 저런 일로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지성과 이성을 최대한 발현시켜서 세상의 아름다운 꿈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은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아름다운 시 한편을 써보시고, 아름다운 찬양을 해보시고, 아름다운 연설을 준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감동을 베플려고 노력하는 속에서 행복이라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행복추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초월적 반성입니다. 사람은 몸으로 감성을 느끼고, 마음으로 고마워하고, 지성으로 행복하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을 떠나서, 불교에서는 템플 스테이로, 기독교에서는 기도원으로, 또는 산에 가서 하늘 하나님을 만나보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잠시 떠나서, 세상을 위에서 감싸는 하늘을 맛보며 사는 기도와 영성의 행복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위대한 화음을 이루어야 우리는 진실로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 원천은 바로 오늘 시므온이 한 노래에 있읍니다. “주님을 안아본 나는 보고, 느꼈고, 머리에서 그리던 희망을 느꼈고, 지성도, 영성도, 감성도 이제 내가 다 맛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안아보았습니다.” 감사의 찬송이 나오겠지요.

이 시므온의 말을 받아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종교 중에 거룩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안아보았다는 종교 있습니까. 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신을 가슴으로 끌어안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습니까. 신이 하늘에 있고 거룩하시지만 그 신이 사람이 됐다고, 그것도 갓난아기가 되어 우리 가슴으로 신을 안아보았다고, 아니면 내 가슴으로 낳았다고, 이런 고백을 가능케 하는 "신"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사람 몸을 입으시고, 말구유간에서 태어나시고, 시므온의 품에 안기시고, 우리와 똑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인생의 결말에서,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 대신, 우리와 함께 죽으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신의 이야기는 성경 말씀에 밖에 없습니다. 이 신은 생명을 만드시고, 장성하여, 골고다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이 신이 시므온이 꿈꿔왔던, 안나가 고백하는 신,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입니다. 그 신을 시므온이 안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당신을, 십자가의 고통을, 당신이 주시는 부활 생명을 내가 가슴으로 안습니다. 그러니 저는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지금 하늘을, 생명을, 기쁨을 제가 끌어안습니다.” 이런 경험은 가히 신비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신비적 경험이 옛날 얘기,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므온은 경건한 유대 사람이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의 사고방식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지배하시는데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모습은 바람으로, 공기로, 예언자의 말씀으로, 제사장의 예배집전속에 나타나시고, 삶의 모든 요소들을 감싸며 주관하심다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은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우리가 끌어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 형상, 디자인, 형태, 그것만 가지면 우리가 살 보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 형상, 디자인, 형태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 말로 ‘쉐키나(shekinah)’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어느 모양이든지 아름답습니다. ‘쉐키나.’

시므온은 마음으로, 가슴으로, 지성으로 하나님을 보았고, 그 하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곧 그 "쉐키나"가 가슴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아기 예수가 되어 오늘, 지금, 여러분에게 희망으로 안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한이 없죠. 디미티스, 떠나도 좋습니다. 오늘 메시지는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의 모습으로 오늘 여러분의 품 안에 안깁니다. 그 희망을 안으세요. 그 생명을 끌어안으세요. 느끼세요. 감사하세요. 고백하세요. 우리 품에 안기셔서 구원의 역사 이루신 하나님, 우리 가정에 안기셔서 새 역사를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이 나라가 함께 끌어안아야 할 평화와 생명의 주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오십니다. 품 안에 안으세요. 주님의 축복이 풍성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