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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창조의 첫 아침처럼!

윤응진·한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

(대학교회설교, 2002.8.25.)
대학교회설교                        

창조의 첫 아침처럼!(2002.8.25.)

(창세기 1:1-13)

1. 들어가는 말

홍수로 인하여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를 치렀습니다.

뉴스를 통하여 우리는 수해를 당한 사람들의 처지가 얼마나 처절한지 그리고 얼마나 절망적인지 가슴으로 절절이 느끼게 됩니다. 물에 잠긴 삶의 터전들에는 죽음의 그림자들이 드리웠습니다. 농작물들이 죽어갔고, 가축들이 몰살당하였습니다. 가전제품들도 모두 고물로 되었습니다. 옷가지들은 쓰레기로 되어버렸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이 모두 제 기능을 상실한 채 쓰레기 더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해로 인하여 절망하던 어느 가장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수해는 그의 꿈과 그의 노동의 결실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다시금 새로운 꿈을 꾸고 생명을 가꿀 기력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수재민들의 절망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해현장에는 혼돈과 절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수재민들은 대부분 힘없는 서민들이고, 수해는 천재지변이라기보다는 허술한 행정과 부실공사가 빗어낸 인재로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었던 재앙을 온몸으로 부딪친 수재민들은 상경하여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수재민들의 고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만 일삼고 있는 자들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천재에 인재가 겹친 혼돈으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빼앗긴 서민들의 탄식과 절규, 그리고 그들의 저항에는 오랜 세월동안 고난을 받았던 숱한 서민대중의 공통된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이렇게 홍수로 인한 혼돈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서 생명을 꽃피울 희망과 용기의 토대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선거 때만 되면 큰절까지 올리면서 백성을 섬기겠다던 정치인들은 이권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사회지도층은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그들 스스로가 이 사회에 혼돈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대체 우리는 희망을 지녀야 할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2. 혼돈- 원초적인 위협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을 신앙으로 고백하던 고대 히브리인들도 수재민들처럼 깊은 절망과 좌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에게는 홍수의 위험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지리적으로 홍수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가뭄의 위험이 더 큰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창조이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표준새번역, 1:2) 우리말 성서 번역은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세기 구약성서학의 대가인 게르하르트 폰 라트는 그의 (독어)주석서에서 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땅은 모양을 갖추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으며, 원시바다는 어둠에 뒤덮여 있었는데, 그 물 위에 하느님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여기에서 히브리 신앙인들은 홍수로 인한 혼돈과 죽음의 위협을 하나님의 천지창조이전의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그들이 경험하지도 않은 일을 마치 현실적인 위협처럼 느낄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던 것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결코 가상체험에 빠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기원전 6세기에 실제로 바빌로니아의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전쟁포로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체험하지 못한 홍수체험을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전쟁포로로서 미래가 불투명한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홍수체험은 분명 그들을 더욱 혼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거점으로 근동지방을 장악한 바빌로니아 제국의 막강한 권세는 아무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발굽이 스치고 지나가는 곳마다 살육과 파괴로 인하여 기존질서는 파괴되고 세상은 온통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다윗 왕가의 마지막 왕은 살해당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집으로서 간주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은 전쟁포로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끌려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강제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끌려온 히브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즉 지금까지 그들이 살았던 그 땅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너무나 약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약속을 깨뜨리는 분이었다는 말인가? ....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겨울에는 강이 범람하여 온 국토를 뒤덮고 모든 생명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봄이 되면 대홍수가 물러나고 다시 마른 땅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자연현상을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그들의 수호신인 마르둑이 바닷물의 신인 티아마트를 정복하였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봄이 오면 홍수가 물러난 것을 축하하여 거대한 축제를 개최합니다. 축제행렬에서는 마르둑이 패배한 티아마트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연출되고, 행렬 맨 뒤에는 패배한 민족들이 섬기던 신들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끌려갔습니다. 그 행렬에는 야훼 하나님을 상징하는 가면을 쓴 사람도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승리의 표시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뺏어온 제의 도구들도 함께 끌려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느낀 절망감과 수치심은 어떠했을까요?

이처럼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하던 히브리인들은 홍수 때문에 삶의 토대가 위협받고 있음을 체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의 신앙의 토대 자체가 뒤흔들리는 체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패망한 민족의 일원으로서 철저히 이등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강요당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미래는 불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포자기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준 사람들은 바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마르둑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세계를 창조했는지, 마르둑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물을 땅으로부터 분리시켰는지, 어떻게 인간을 만들었으며, 어떻게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도 보호했는지, 그들을 어떻게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켰고 그들에게 땅을 주었는지 깨닫도록 전쟁포로들을 교육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어떻게 불순종했으며, 그 결과 그들이 받고 있는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깨닫도록 전쟁포로들을 교육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작성된 신앙고백입니다. 히브리 신앙인들은 지금 그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대홍수에 직면해서만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신앙과 존재의미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정치적 혼돈상황에 직면해서 이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바빌로니아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권력의 신인 마르둑이 아니라, 전쟁포로들의 신인 '하나님'께서 혼돈과 어둠을 '물리치고' 생명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창조신앙고백을 통하여 그들은 대홍수의 위협으로부터 만이 아니라, 강대국인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발생한 국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존속위기로부터 그들을 보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이 고백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선언입니다.

폰 라트는 2절의 '혼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2절은 태고 시대 이전에 한 때 있었던 한 현실을 언급할 뿐 아니라, 동시에 항상 주어져 있는 가능성에 관해서도 언급하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 배후에 무형태의 심연이 놓여 있다는 사실, 더욱이 모든 피조물은 항상 무형태의 심연에 빠져들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 즉 혼돈이 단적으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원천적인 경험이며, 인간의 신앙에 대한 항구적 시련이다. 창조신앙은 이런 시련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게르하르트 폰 라트, {창세기}, 한국신학연구소, 1996, 53)

 

3. 창조- 생명의 보전을 위한 은총

하나님께서 행하신 천지창조의 핵심은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혼돈과 어둠을 물리친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신앙 고백을 통하여 히브리 신앙인들은 혼돈과 어둠으로부터 창조세계를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창조세계가 또 다시 혼돈과 어둠에 빠지지 않도록 부단히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활동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함으로써 시작됩니다. 빛이 없이는 생명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태고로부터 태양숭배가 유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빛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신앙은 태양숭배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빛이 세계에 비춤으로써 혼돈은 희미한 어스름한 상태로 뒤바뀌고 맙니다. 하나님은 빛의 요소들과 어둠의 요소들을 낮과 밤으로 나눕니다. 밤은 저 분리되어 나간 혼돈의 흔적이며, 창조세계의 형태를 어둠 속에 가둠으로써 형태를 식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밤마다 혼돈과 어둠이 다시 피조물에 대한 일정한 지배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새벽마다 빛이 어둠을 물리치면서 천지창조의 첫아침이 반복됩니다.

빛을 창조하여 어둠을 물리친 후에, 하나님은 혼돈을 물리치기 위해 창공(궁창)을 창조하십니다.(6-8) 고대인들은 창공을 거대한 반구형의 육중한 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창공이 창조됨으로써 혼돈의 바다를 뒤덮던 물은 상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은 파란 창공을 바라보며 그 위에는 하늘 바다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마침내 물이 없는, 즉 혼돈이 없는 삶의 공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공 아래에 있는 물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육지가 드러나게 하십니다. 육지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원시 바다 위에 떠 있는 원반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로써 세계의 골격이 완성된 것입니다.

물은 혼돈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위협하는 이 혼돈의 세력에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생명의 터전을 마련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에서 비롯된 기적이었습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땅에게 명령하십니다: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땅을 혼돈으로부터 구하신 이유는 바로 생명의 싹을 움트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참여하도록 촉구되고 생명을 꽃피울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이렇게 하여 생명의 최저 단계인 식물계가 형성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들에서는 동물들과 인간들이 차례대로 땅 위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도록 허락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혼돈이 아니라 생명의 질서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른 땅 위에 생명의 싹을 틔웠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파괴하는 잔인한 신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파괴하는 세력을 물리침으로써 생명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혼돈과 어둠에 맞서 투쟁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 신앙인들은 바로 대홍수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생명을 파괴하는 그 막강한 힘에 직면하여 속수무책이던 바로 그 절망 한가운데에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보전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이 고백은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세계의 시작에 대한 한가한 공상의 산물은 더구나 아닙니다. 이 고백은 그들의 역사를 꿰뚫고 계속되었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체험과 깨달음으로부터 우러난 것이었습니다. 이 창조신앙고백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숱한 강대국들의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약소민족인 이스라엘을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부터, 또한 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마침내 강대국 바빌로니아로부터 해방될 날을 기다리는 미래지향적인 신앙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에는 혼돈과 어둠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 그리고 빛과 생명의 질서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창조주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아울러 이 신앙고백에는 어둠을 물리치고 생명의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여야 하는 신앙인의 과제인식과 결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4. 혼돈과 어둠에 저항하는 삶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역사를 혼돈과 어둠으로 몰아 넣고 있는 세력들에 저항하여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창조하라는 요청입니다.

생명을 파괴하고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세력은 홍수만이 아닙니다. 부자들과 강한 자들이 서민 대중의 삶을 파괴하고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장상 총리후보자에 이어 장대환 총리서리의 면모를 훑어보면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민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재산과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외계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결코 근면 성실해서만은 이룰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부귀영화는 하나님의 축복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부정의 결과일 뿐이며, 따라서 스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이 없습니다.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인물들을 정권말기의 총리후보자들로 지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IMF로 인하여 고통 당할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가 그의 정권을 마무리지으면서 내세운 인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절망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정권의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권은 국민의 정부를 만들겠다더니, 재벌과 결탁하고 미국의 비위만 맞추다가 결국 부정부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김대통령 자신이 퇴임 후 거주할 집을 (토지를 제외하고) 8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건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도 초호화판 생활을 꿈꾸고 있으니 총리 후보들의 타락한 모습들이 보일 리 없습니다. 게다가 김대통령은 8·15사면 요구를 묵살함으로써 이 땅의 구속노동자들과 양심세력에게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양심수로서 고난받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대통령이 되어도 정치를 이 모양으로 하는 판이니, 우리는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불행하게도 대안세력이 될 진정한 야당이 없습니다. 자식의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당한 사람이 서울 법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대쪽'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희망을 지닐 근거를 찾지 못합니다.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현실들은 홍수로 인한 혼란과 좌절감 못지 않게 우리들의 판단기준과 도덕적 가치, 그리고 삶의 의미를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부딪치게 되는 숱한 어려움들은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스럽다고 할지라도 저 히브리 신앙인들이 겪었던 기막힌 역사적 현실만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전쟁포로로서 살아가면서 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하고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바로 혼돈과 어둠을 불러일으키는 지배세력이 원하고 바라는 일입니다.

'신앙인'이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저앉을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혼돈과 어둠을 물리치고 빛과 생명의 질서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그래도 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를 실망시키고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자들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 히브리 신앙인들처럼 한 목소리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 강자들의 신 마르둑이 아니라, 약자들의 신인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는 이제 이 신앙고백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재민들이 다시금 생명력과 용기를 얻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우리는 창조신앙 고백을 몸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배자들의 더러운 정치에 대립되는 '하나님의 정치'에 참여하여, 하루하루 우리에게 허락된 일상생활 속에서 빛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있는 곳에서 창조의 새벽이 다시 열려야 할 것입니다. 매일 매일을 창조의 첫 아침처럼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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