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이하 한복협)가 8일(금) 오전 7시 서울 도렴동 종교교회(담임 최이우 목사)에서 ‘순교 신앙을 기리며’라는 주제로 3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다음은 손인웅 목사(한복협 중앙위원, 덕수교회 원로)의 발표 전문.
(요 21: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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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인웅 덕수교회 원로목사 ⓒ베리타스 DB |
초기교회에서부터 시작된 사도들의 사역과 역할이 달랐습니다. 바울은 이방선교에 전념하여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일로 큰 공헌을 하였고, 베드로는 국내외로 순회하면서 주의 양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여 교회를 지키는데 공헌하였으며, 요한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목회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을 실천하는데 생애를 바쳤습니다. 초기교회의 세분 지도자 중에 바울은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다가 돌아와서 핍박을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교회를 지키며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온 제자로서 참된 삶을 보여주는 사명을 감당하다가 자연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요한은 초기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삶의 목격자로서 보고 듣고 만져본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증거하는 자신의 역할과 순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베드로의 사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일반적인 여론으로는 순교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우세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순교하든지 살아남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던지 그것은 사람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죽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든지 살아남아서 증거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확실하게 본받아 살아가는 증인의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고 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박해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특정종교지역에서는 순교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분쟁이나 박해가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해이해짐으로 물질문명이 세계를 지배함으로 교회가 세속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배부를 때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 말씀이 새롭게 들려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한 계시록의 말씀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귀담아 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배부르게 살아가는 현대교회 성도들이 박해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순교적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그 비결을 터득해야만 하겠습니다.
첫째, 베드로와 바울 같은 순교자들의 생명을 바쳐서 신앙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 일을 기억합시다. 성경은 생명을 가장 귀한 가치로 가르치지만 그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바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입니다.
둘째, 살아남아서 주를 위해 온전히 생애를 바쳐 그리스도를 증거한 요한을 본받읍시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받은 바 그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을 가르쳤고 사랑의 삶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도요한이 가르친 새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순교적 삶은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번 죽는 것도 소중한 순교이지만 팔십 평생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이 더 어려울 수도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순교적 삶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으면서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대교회가 순교신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유사시에 영웅적으로 한 번에 죽는 연습을 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쳐서 날마다 죽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고전 15:31).
셋째, 왜곡된 순교신앙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대교회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원인은 순교신앙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노력을 하지 않고 졸지에 영웅적인 인물로 데뷔를 해서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고 살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 잘 죽음으로 순교적 신앙을 증명해보이려는 지도자들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현대교회가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는 삶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순교신앙으로 포장하는 악습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은 존경하면서 살아있는 선지자는 두려워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후손인 스스로를 증명한다(마 23:29-31)고 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께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일본인들의 박해를 받을 때 경남노회시찰회에서도 추방당함으로 목사안수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의 박해를 이겨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보호받아야할 교회로부터 받은 핍박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경남노회가 그렇게 핍박해놓고 해방 후에 비로소 목사안수를 주었고 순교한 이후에는 순교자로 추존하면서 기념관을 건축하고 기념비를 세우고 순교사적지를 조성하는데 열심들입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핍박자들의 후손이 많고 열심히 추모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넷째,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몸된 교회가 세워졌고, 순교자들의 피 위에 한국교회가 성장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은 아벨의 피에서 사가랴의 피까지 피로 물든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본을 보여준 순교적 신앙을 계승해서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교회들을 구출해야만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손양원, 주기철목사와 같은 순교성자들의 신앙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과 같이 한평생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실천한 살아있는 순교자들의 신앙으로 성숙한 교회를 성장해 왔습니다.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불리는 루마니아의 리처드 반블레드 목사의 이야기를 기억합시다. 그는 공산치하에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면서 14년간 옥고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문을 받으며 온몸이 부스러지고, 찢겨져도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심으로 루마니아 공산당이 무너지고 반블레드 목사는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석방 후 서방교회를 순회하면서 간증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나의 당한 고통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서방세계에 와서 내가 옥고를 당할 때보다 정신적으로 더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공산치하의 옥고나 박해 속에서는 미지근한 신앙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서방교회에 와보니 교회인지? 신앙인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루마니아 옥중에서 혹은 지하에서 신앙을 지켰던 성도들의 신앙이 더 그리워집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 단군이래로 가장 부요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날 가난했던 우리는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배부를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교만한 생활을 계속하던 그 백성들을 쫓아내신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해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의 공로로 이러한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다시 한 번 대오 각성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는 요한처럼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베드로처럼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빌 1:20). 우리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적 신앙을 본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생활에 옮기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면서도 동시에 이 땅에 자유와 정의, 평화 그리고 사랑의 기본가치를 존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순교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