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요나의 교훈

2013년 02월 24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요나서 4:5-11
요나는 그 성읍에서 빠져 나와 그 성읍 동쪽으로 가서 머물렀다. 그는 거기에다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다. 그 성읍이 어찌 되는가를 볼 셈이었다. 주 하나님이 박 넝쿨을 마련하셨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자라올라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여, 그를 편안하게 해주셨다. 박 넝쿨 때문에 요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다음날 동이 틀 무렵, 하나님이 벌레를 한 마리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박 넝쿨을 쏠아 버리니, 그 식물이 시들고 말았다. 해가 뜨자, 하나님이 찌는 듯이 뜨거운 동풍을 마련하셨다.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그는 기력을 잃고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가 대답하였다.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아멘.

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12:38-42
그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징을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징 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아멘.
 
설교문  
  
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고난을 통해서 기쁨을 만들어내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고생하시다가 유혹을 이기고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사순절을 아름답게 보내야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사순절 마지막 피날레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죽으신 사건은 부활의 전조(前兆)입니다. 우리가 부활 생명 얻는 방법은 예수께서 죽으신 사건에서 입니다. 예수는 이 수난의 핵심 속에서 일어나는 부활 생명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선포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데, 하나님 나라는 사순절과 같은 극한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생겨난다고 하십니다. 고난 속에서 생명이 싹트고, 죽음 속에서 부활이 싹튼다고요. 하나님 나라는 이 땅 가장 밑바닥 속에서 영광스러운 나라로 다시 창출되는 것이다라고 설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설명 하십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고 감동받고, 교훈도 많이 얻습니다. 지나간 역사가 수만년, 수천 년, 수백 년 된 것이 많습니다. 역사책 읽어보시면, 그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사건은 감동이 드는 사건이고, 어떤 것은 그냥 지나가는 역사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역사를 읽으시면서 감동을 받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설명을 위해서 옛날 역사를 끄집어냈습니다. 그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루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비유하고 싶으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는 지나간 역사 속에 있었던 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보겠다. 이 사건이 고스란히 재현될 수는 없으나, 이 사건의 뜻이 오늘 전혀 다른 상황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나간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반복될 수 없으나, 그 역사 속에 담긴 무한대의 뜻이 오늘 새로운 사건을 만드는 단초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뱃속에서 나와 복음을 전파하고 이듬해 백성이 구원받은 이야기를 통하여 설명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역사적 사실을 끌어내 오늘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십니다.

모든 옛 역사가 다 중요한 건 아닙니다. 역사의 뜻이 오늘 상황과 맞아야 합니다. 옛날 역사가 오늘을 설명할 수 있으면 족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역사적 사건이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자기가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싶은데, 이 설명에 맞는 가장 중요한 표징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표징이란 말은 싸인(sign)입니다. 표징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자체에 담긴 뜻을 표징이라 이름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옛날 옛적의 사건 하나를 오늘을 설명하고, 미래를 설명하는 표징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 표징의 내용은 요나의 고래 뱃속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요나가 엄청난 사람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옛날 훌륭한 사람은 오늘이 만드는 거지, 옛날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살게될 역사가 앞으로도 많겠습니다만, 과거의 역사는 항상 미래에 있는 사람이 다시 끄집어내서 새롭게 해석하는 역사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선지자입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이 명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대국에 둘러 쌓여 약소국으로 항상 불만과 불안에 있지만, 이스라엘을 축복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요나를 불러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 중에 하나인 앗시리아 대국의 수도 니느웨로 파송합니다. 이 당시 앗시리아는 엄청난 대국이었습니다. 이 대국의 수도가 니느웨라는 도시입니다. 현재 니느웨는 흔적만 있고 도시 전체가 없어졌다고 되어있습니다. 오늘 지도를 놓고 보시면 니느웨는 중동의 시리아와 터키, 이라크 3개국이 있는 지역의 중간쯤 됩니다. 이 지역이 현재는 이라크 소속이고 현재 이름은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쿠르드" 지역입니다. BC 626년, 624년 이 두 해 동안에 니느웨라는 도시에 엄청난 병균이 돌았습니다. 염병이라 이름하는 페스트입니다. 페스트로 인해 아마 수십만 명이 죽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 요나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합니다. 강대국 앗시리아의 수도가 염병으로 다 몰살될 지경에 있었다. 이제 겨우 갱생의 길을 지나고 있는데 가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도시 전체를 살려준다고 설교해라!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지자, 존경받는 사람,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지성인, 도덕군자, 말씀을 전파하는 예언자 입니다. 이만한 사람이 하나님 명령에 이렇게 응대합니다. 못 가겠습니다! 저는 니느웨 뿐만 아니라 앗시리아 전체가 망하는 것이 제 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쁜 나라를 저더러 구원하라 하십니까? 요나가 이정도 말했으면 알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민심은 앗시리아는 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민심과 인심은 항상 그렇게 굴러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민심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 나라이지만 그 나라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니느웨로 가려면 북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요나는 북쪽으로 갔다가 반대로 왼쪽, 서쪽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이 중에 누가 신의 뜻을 거역한 사람일까? 요나가 자기라고 이야기하니 뱃사람들이 요나를 바다 속에 집어넣습니다. 요나는 대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요나를 고래로 하여금 삼키게 하고, 3일 동안 고래 뱃속에서 요나를 단련시킵니다. 다시 요나를 고래가 뭍으로 뱉어내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염병에서 구원받는다! 온 니느웨 백성이 다 구원받는다! 아직도 남은 사람이 12만 명인데, 옛날 12만 명이면 거대 도시입니다. 그러고 나서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선포는 했지만, 요나의 마음속에 또 하나 흑심이 생겼습니다. 제발 회개 하지 말아라. 회개하지 말고 망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마음먹고서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초막을 하나 지어놓고 니느웨가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파수를 보고 있습니다. 초막 위에 있는 박넝쿨이 잘 자라서 햇빛을 잘 막아줄 때마다 좋았는데, 밤에 보니 벌레 하나가 박넝쿨을 갉아먹습니다. 그러자 박넝쿨이 마르고 시들어져서 햇빛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자 요나는 하나님께 못 살겠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또 한번 고래 뱃속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박넝쿨이 망가지는 것이 그렇게 서럽냐? 나는 12만이나 되는 이 백성이 지금 염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이 백성들을 살려야 되겠다. 네가 살기를 원하듯이 나도 이들을 살려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지금 옛날예적의 이런 요나 얘기를 하십니다. 물론 당시에 니느웨는 살아났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표징을 요나 이야기에 접목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백성을 위해서 3일 동안 땅 속에서 죽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살아나서 부활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니 요나의 표징에서 이 사실을 배워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잘못된 인간이지만, 저는 아주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본래 그렇습니다. 요나에게 설교를 시켰습니다만, 제가 생각해보니 요나는 억지로 설교했지 진심으로 설교한 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래뱃속에서 나왔지만 설교가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일단 정하셨으면 요나가 진짜로 했던 가짜로 했던 하나님은 요나의 입을 통해서 니느웨 백성에게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메시지의 힘은 요나의 말에 있지 않았고, 요나라는 도구를 통해서 선포하게 하신 하나님 자신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뜻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면 누구를 통해서든지 구원의 메시지는 선포될 수 있다고. 사람이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선포하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악인이라고 해도 악인을 통해서 하나님이 써먹자고 하시면 옳은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시는데, 그 증거는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는 것이었읍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감동을 받는 니느웨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달아라는 메시지 입니다. 혹시 살아가시면서 하늘 뜻을 전하라고 명받으면, 마음에 안 드셔도 미안하지만 전하십시오. 전하시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자기 뜻을 관철하십니다. 선인이 아니고 악인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선포케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나중에 귀향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귀향시켜 구해주었는지 아십니까? 페르시아 임금, 식민지의 왕초, 고레스라는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선지자, 제사장, 지도자 모두는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일 수 있으나, 하나같이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선지자 자신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써먹는 도구이고, 도구는 도구의 역할에 충실하면 됩니다. 요나 사건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바다에 떨어졌을 때, 무슨 바다가 이렇게 깊고 넓으냐! 그 넓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을 겁니다. 고래가 삼켰을 때 아마 요나는 고래 뱃속이 넓기도 하다 생각했을 겁니다. 고래 뱃속에서 요나는 회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결단을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요나처럼 3일 동안 고래 뱃속이 아닌 땅 속에 묻혀있어야 한다. 그 분은 성 금요일부터 주일 아침까지 땅 속에 묻혀있었습니다. 무엇을 하셨을까요?

우리들이 사도신경을 외울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이렇게 되어있는데, 원문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음에 "죽은 자들에게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to the dead) 라는 구절이 있는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국 교회에서 이 부분을 뺐습니다. 그 이유는 감히 어떻게 주님께서 죽은 자들이 있는 지옥에 떨어지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문은 지옥이 아니라 "죽은 자들"입니다. 저는 아무리 인간적인 생각으로 미안하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고백을 해야지 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들에게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십니다.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죽은 자 들에게 가서 나를 믿지 못했던, 나 이전에 와서 나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세계에 가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다, 죽은 자의 세계에서도 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 구원의 메시지를 산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도 전파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내려가셨습니다. 또 하나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셔서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희들 때문에 이 죽임을 당했으나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 승리하게 된다. 너희가 졌다! 하나님이 승리하셨다! 이 승리의 복음을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탄들에게 전파하러, 선포하러 가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사도신경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들에게 내려가셨다"는 구절을 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의 세계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 땅의 모든 갖은 고초에서도 역사하시고, 심지어 죽음의 세계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계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산자들의 하나님, 죽은 자들의 하나님, 이 땅의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 시공을 초월한 어제와 오늘과 내일 역사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 하나님에게 우리가 제한을 둘 수가 없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또 하나의 말씀을 하십니다.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요, 물론 완벽한 인간적 예언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예언자이다. 요나는 니느웨에 갔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축복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는 점입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역사를 보면 잘잘못이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늘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산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이스라엘 혼자만 받고 누리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은 받은 축복을 감사하며 그 축복을 이웃에게 전하는 축복입니다. 받은 축복을 나누어 가지라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가장 큰 행운은 "선택받은 백성", 가장 큰 잘못은 선택받은 "은혜를 독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점하는 은혜는 하나님한테는 없읍니다. 이런 은혜를 독일어가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은혜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우리가 받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죠,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을, 가베(Gabe)라고 말합니다. 주신 것, 베푸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은혜는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얹혀" 주시는 것입니다. 얹힌다는 것을 아우프(auf)라고 합니다. 얹혀주심, 아우프가베(Aufgabe=책임, 과제, 사명) 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나 혼자 즐기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얹혀서 주십니다. 얹힌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해 주셨으면, 선택받은 백성은 선택에 감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백성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의 복음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얹혀 받은 축복입니다. 여러분 재능기부라는 말 많이 아시죠, 왜 기부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받은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가베입니다. 그냥 주신 가베가 없습니다. 함께 구원을 베풀라고, 항상 얹혀 주셨습니다. 가베는 아우프가베로서의 가베입니다. 모든 축복은 얹혀주신 축복입니다. 이 얹혔다는 말을 안 하면, 받은 가베가, 은총이 하나님에게는 무효가 됩니다. 요나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은 니느웨 백성을 구원시키려고 먼저 구원받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행하라.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요나 이야기를 통해서 배워야할 말씀입니다. 이 축복을 받은 자들은 축복을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고백해야 합니다. 저도 잘 못하고 삽니다만, 고백할게 있습니다. 부부간에 평화와 사랑을 원하시면, 남편 여러분 아내를 먼저 사랑하십시오. 아내되신 분들 남편을 먼저 사랑하십시오. 부모님들이 자식을 먼저 사랑해보십시오. 자식들은 부모님을 먼저 사랑해보십시오. 그래야 사랑이 진실 됩니다. 며느리 사랑하시면 아들이 복 받습니다. 사위를 사랑하셔야 딸이 복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며 동시에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이웃사랑 없이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공동체적 실존을 의미합니다. 내가 정말 행복하고 싶으면 나와 함께 사는 공동체적 존재인 이웃을 나만큼 사랑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하려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좋은 관계와 나쁜 관계의 모든 이웃 민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해야 이웃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평화의 상태가 됩니다. 평화는 개개인, 집단, 나라, 공동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데,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얹혀 받은 은혜의 현실입니다. 나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함께 먹으라고 얹혀 받은 것입니다. 혼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가지십시오. 이 사실을 오늘 요나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얹혀 받은 은혜는 반드시 베풀어야하고, 그러면 복 받고, 평화가 있고, 성공하고,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본토를 떠나고, 기득권을 떠나고, 자기의 아집을 떠나고, 살던 곳에서 떠났습니다. 떠나기 어렵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다른 온 민족의 아버지로 숭상 받는 기쁨의 은혜를 베푸마. 이 약속 하나를 믿고 아브라함이 고향과 본토를 떠났습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당신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후손들입니다. 나도 아브라함이 내 선조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이 떠나라면 떠나세요.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얹혀 받았으므로, 받은 이것을 베푸십시오. 그러면 부활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공동체적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함께 누리는 나라이지 독점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함께 누려야 기쁨의 나라가 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부르시는 자를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르면, 서로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 부르셨습니다. 얹혀 주신 은혜, 베풀며 삽시다. 그래서 평화와 기쁨을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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