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민효 박사가 기독교사상학교서 불트만의 사상을 조명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베리타스 |
깊은 통찰력을 가진 성서학자로 칼 바르트, 폴 틸리히와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알려진 루돌프 불트만(1984∼1976).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모토 때문인지 실존주의 신학자로 불리기도 하는 그의 사상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현대기독교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기독교사상사과정 제4강에선 황민효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가 강사로 나서 불트만의 신학 사상을 살펴봤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지식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우리가 예수의 삶과 인격성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 당시 유행하던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학풍에 역풍을 일으켰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 대신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로 연구의 방향을 바꿨다. 불트만이 주장하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에 대해 황민효 박사는 “오시는 자로서의 예수, 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예수 자신의 메시지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신앙의 산물이었다”며 “예수는 초대교회의 선포인 캐리그마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예수가 캐리그마의 그리스도이다”라고 했다.
불트만은 케리그마와 함께 선포된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를 완전하게 구분 짓는다. 케리그마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지식을 중재하기 못하기 때문에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로부터 역사적 예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황민효 박사는 “이처럼 불트만은 복음서를 통하여 역사적 예수의 삶을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거함으로서 역사적 예수의 삶을 구성하려고 했던 최초의 역사적 예수운동에 종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불트만은 특히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 만한 타당한 논거로 비신화화와 실존주의적 신앙의 결단에 큰 비중을 두고 활동했다. 비신화화란 청중들이 설교자가 전하는 성경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게 풀이해주는 것 처럼 오늘날의 케리그마를 듣는 청중들에게 이해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행하는 신학적 방법이다.
불트만은 또 설교의 현장에서 신화라는 껍질을 벗겨내어 케리그마의 핵심에 이르려고 했다. 황민효 박사는 “불트만은 신화를 제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즉, 신약성경에 나오는 신화를 신화로서 인정하고 그 신화가 가지고 있는 실존적인 의미를 현대인들에게 전해줄 때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케리그마가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불트만의 신학은 ▲ 성서해석 방법론을 성서신학 연구의 전면에 위치시켰다는 점 ▲ 편협한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극복하고 실존주의적 역사관을 제시함으로서 전달자의 삶의 상황과 해석자의 삶의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 ▲ 마지막으로 신앙의 개인적인 측면과 공동체적인 측면을 동시에 강조했다는 점 등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황 박사는 전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불트만의 신학은 여러가지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황 박사에 따르면 ▲ 너무나 간단하게 초자연적인 계시와 기적들을 신화로 취급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부활신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복음주의 측에서의 비판) ▲ 케리그마와 실증적 역사는 불트만이 말한 것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앙과 역사는 구분될 수는 있으나 분리될 수는 없다(불트만의 제자들의 비판) ▲ 불트만은 현재의 차원만을 강조하는 가운데, 과거나 미래의 차원을 경시하는 것은 아닌가?(철저적 종말론적이나 보편사적 종말론의 입장) 등이 그것이었다.
1884년 독일 북쪽 뷔펠스테데에서 루터교회 목사의 아들로 출생한 루돌프 불트만은 이후 당시 독일의 학업 관습에 따라 튀빙엔, 베를린, 마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1930년대 독일의 고백교회운동에 참여한 그는 1951년 은퇴한 이후에는 미국, 영국 등을 다니면서 강의하거나, 제자들과의 많은 담론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