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따람 공동체] “믿음은? 하나님 앞에 서기, 하나님 앞에서 살기”

2013년 1월 20일 주일예배 설교자 강석찬 목사

성경본문

시편 25:1-5, 15-22 마태복음 13:52

설교문

1.

지난 주간, 올 해 80이 된 남재희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난 대선에 대하여 “야권은 진 것이 아니라 비긴 것이다.” 했습니다.
20년을 언론인, 20년을 정치인, 20년을 정치관찰자로 산 그는 자신을 일수거사(一水去士)라 했는데, “한 물 간 사람”이라 부르며 한 말은 혜안(慧眼)을 가진 깊은 통찰력이 담겼습니다.
눈길을 끈 말이 있었습니다.
야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를 분석한 것으로
한국정치는 지리학(地理學)인데 여당은 보수인 엄청난 경상도의 배경을 가지고, 둘째로 월남인들과 후손들의 영향력이 강한데 이들이 보수성향이며, 셋째 한국의 프로테스탄트가 보수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남재희 씨가 뽑은 우리나라 3대 보수(保守)세력에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지난주일 W.C.C. 제 10차 총회를 앞두고
한국교회의 진보를 대표하는 KNCC(교회협)와 보수를 대표하는 한기총이
W.C.C. 총회의 성공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합의하여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1)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
2) 우리는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반대한다.
3) 우리는 개종전도 금지주의에 반대하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하나님 의 명령에 따라 세대와 지역과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복음증거 사명을 감당할 것을 천명한다.
4)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한다.
였습니다.
이 공동선언문을 본 목사의 첫 느낌은,
한국교회의 신학이 60년 후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느낌은,
그동안 진보적인 소리를 냈던 교회협(KNCC)이 묵살되고 한국교회를 보수가 장악했음을 드러냈구나 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어떻게 보수가 한국교회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를 진단하다가 물질의 힘이 무섭고 세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창피스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이 감정은 걱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인터뷰 기사에 “한기총은 이번 합의는 교회협이 우리에게 항복한 것이라며 선언문에 만족을 나타냈다.”라 했습니다.
선언문은 “반대한다, 배격한다.”의 격렬한 표현이 세 번, “천명한다.”가 두 번입니다.
반대하고 천명하는 내용들은 표면적으로는 세계교회의 주장과 크게 다른 것이라 할 수 없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문서화된 배경을 읽어 보며 내면으로 이해하면 타 종교를 부정하는 공격적 기독교의 세력 확장을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자의적 복음 해석입니다.
성경무오설의 해묵은 주장에 감추어진 의도는 보수 교단들의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지지한 것으로, 세계의 신학이 놀랄 주장입니다.
신학적인 문제는 문제대로 드러났지만, 보다 더 부끄러운 이유는
이런 합의문이 발표된 배경에 있습니다.

3.

한국교회가 W.C.C. 부산총회를 유치한 후, 보수 진보의 불협화음으로 첨예하게 해묵은 이념 논쟁에 휘말렸었는데, 세계교회를 초청한 손님대접이 아니라 여기어 하나 됨을 우선과제로 여기어 공동선언문을 급조한 것이죠.
포장은 보수와 진보가 하나 되었다는 박수였지만, 내막은 현실적이며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소위 재정적인 힘을 가진 보수의 주장을 그대로 진보가 수용함으로써, 총회를 치르는데 문제가 없게 되었다는 주장이 과연 얼마만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불과 3개월 전에 한기총은 W.C.C.는 “용공단체, 이단, 적 그리스도”라 규정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맞고, 지금은 이것이 맞다.”는 한기총 회장의 말은,
결국 그동안 W.C.C.를 반대했던 이유가 신학이나 신앙이 아니라, 이념이요 정치적 이유였음을 시인한 협의요 선언문임을 증명한 셈이죠.
W.C.C. 제10차 총회는 세계 모든 기독교 종파의 대표가 참석하는 기독교 올림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여기에 보수 교단의 대형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확보한 한기총은
조용기 목사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총회를 잘 치룬다?”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인 반성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 명분과 업적 쌓기를 위한 잘 치룬 W.C.C. 총회가 한국교회에 무엇을 남기게 될까요?
총회를 위한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을 이단세력이라고, 사탄이라고 까지 비난했던 무리들과 손을 잡고 들어준 행위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거래요 타협이죠.
그 타협 공동선언문 안에는 가톨릭이나 동방교회까지도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 천명(天命)이라 하여, 공격적 선교로 타 종교와의 갈등과 대립과 분쟁을 일으킬 일을 지지하고 후원할 근거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한 번의 손님접대를 위한 잔치를 위해,
신념이나 믿음, 심지어 영혼을 팔아 거래해도 되는 것일까?
왜, 가난한 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요?
너무나 낭만적이고 이상에 치우쳐 세상을 모르는 철모르는 생각입니까?
갈등이 있는 것을 세계 교회에 포장해서 감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복음에 충실하며,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보여 줄 용기는 없나요?
세계 교회 대표자들은 대접 받으러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진지하게 복음에 순종하는 교회를 이루며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을 연구하고 합의하여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연구하고 깨달음을 나누기 위해서 참석합니다.
그러므로 회칠한 무덤을 전시적으로 보일 것이 아니라,
속을 감춤 없이 드러낸 W.C.C. 총회를 치르는 것이 보다 더 복음적이고 감동의 총회요 잔치가 아닐까요?
하나 된 한국교회를 보여주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하는 궤변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허울 좋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오히려 W.C.C. 총회 이후에 한국교회는 더 선명하게 나뉠 것입니다.
잔치 때까지야 손님접대 잘하려는 우리 민족의 품성 상 “잘 치룬 총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후 폭풍은 한국교회를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4.

W.C.C. 총회는 신학적으로 교회,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축제를 비(非)신앙적인 행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다가, 도대체 “믿음이 뭔가?” 묻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 서기, 하나님 앞에서 살기”입니다.
하나님은?
전능(全能)하신 하나님,
창조주(創造主)이신 하나님입니다.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이므로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可)합니다.
창조주(創造主)는 모든 것을 있게 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사랑이라 고백합니다.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다 가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죠.
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이 마주 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삼각형 속에 눈으로 상징합니다.
삼각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눈은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보여주는 관계가 됩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머리칼, 발걸음을 하나님은 셉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불꽃같은 눈으로 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구원주이지만 심판주이기도 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복된 것일까요?

5.

시편 25편을 봅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시 25:15)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는, 우리 안에 깃들려고 하는 죄(罪)와 악(惡)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든지, 이미 들어 온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떼어내어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죄(罪)자는 그물 망(?)에 아닐 비(非)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갖춘 우리의 그물(?)을 살펴
아닌(非) 것이 그물을 채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또, 악(惡)자는 버금 아(亞)에 마음 심(心)입니다.
으뜸 다음이 버금(亞)인데, 버금을 마음 위 으뜸의 자리에 두는 것을 악(惡)이라는 것이죠.
신앙이란, 하나님을 으뜸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위에 버금(亞)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둔 셈입니다.
이것이 악(惡)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죄악(罪惡)을 버리는 삶,
들어온 죄악(罪惡)을 떼어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살기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창고를 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살려는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고 열쇠를 줍니다.
베드로에게만이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16)라고 믿음의 고백하는 모든 이에게 천국 창고의 열쇠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신뢰하는 사람에게입니다.
하나님의 창고 안에 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
새것과 옛것은 신약과 구약, 복음과 율법을 의미하죠.
하늘 곳간에 하나님께서 둔 것은 생명의 말씀, 진리, 위로, 소망, 사랑 등으로 하나님의 은혜창고입니다.
이 천국 곳간에 죄악(罪惡)이 보관되었을까요?
하늘 곳간에는 비(非)(아닌 것)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 창고에서 사랑을 꺼내면, 사탄이 슬그머니 미움을 밀어 넣습니다.
시기, 질투, 증오를 멋있고 달콤하게 포장하고 위장시켜 가져오는데,
우리가 이것들을 받아들이면 하늘 곳간에서 가져온 사랑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꺼내어 오면,
사탄은 분쟁, 분열, 모함, 모의, 비난을 접착제로 붙입니다.
우리가 발견하여 떼어내지 못하면 평화는 금이 생기며 깨지고 전쟁(戰爭)이죠.
우리가 행복(幸福)을 꺼내오면,
복(福)이라는 것이 부(富)를 쌓아둔 창고의 지붕(?)이 없는 상태, 곧 곳간을 열어 쌓은 것 나누길 기원(?)하는 글자인데, 나눔으로 가난해지는 청빈(淸貧)의 복을 말합니다.
빈(貧)은 조개(貝)를 나눔(分)으로 얻는 행복이라는 것이며,
탐(貪)은 이제 금(今) 밑에 조개(貝)를 둠으로, 자신의 손에 재물을 담는 욕심, 탐욕으로 불행해 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천국곳간에서 좋은 것을 꺼내 온 우리들은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눈을 항상 직시하며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를 회복시키는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음(福音)을 받았습니다.
지난 고난의 시기에는 믿음으로 받은 것을 잘 자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살기 좋아지며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면서 사탄이 세상적 가치로 덧칠하고,
세속적인 욕심인 명예, 권력, 자기욕망, 자기 의(義), 물질축복을 끼워 넣은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거래하여 수용하여 패망의 길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기,
예따람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서,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따라 사랑으로 삽시다.
그루터기에 새싹을 내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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