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따람 공동체] “사순절(四旬節)의 하나님”

2013년 2월 17일 주일예배 설교자 강석찬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3:22-24, 요한복음 10:30, 빌립보서 2:5-8

설교문

1.

T.V. 신문에서 브라질의 리오 축제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사육제(謝肉祭)입니다.
온 세계인의 구경꺼리이며, 관광행사이기도 하죠.
비키니 차림의 무희(舞姬)들의 현란한 삼바 춤, 화려하게 장식된 거리 축제의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사육제 축제 참석 팀이 되기 위해 1년 동안 치열한 경쟁과정이 있다고 합니다.
사육제(謝肉祭)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교의 교회절기인 사순절(四旬節) 전 3일 간,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으며 가면을 쓰고 놀이를 즐기는 날, 카니발입니다.
왜 이런 날이 있게 되었을까요?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통에 따라 사순절이 시작되면 고기와 술을 먹거나 마시지 못하는 전통 때문입니다.
부활절까지 46일(주일 포함) 동안 절제하는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껏 먹어 두자는 것이 축제로 발전한 것이죠.
우리는 카니발의 화려함 뒤에 이어지고 담긴 사순절을 지키려는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2.

사순절(四旬節)이 무엇일까요?
산수로는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을 말합니다.
2013년 부활주일은, 춘분(3월 20일) 지난 첫 만월(음력 2월 보름, 3월 26일) 지난 첫 주일인 3월 31일입니다.
그래서 2월 13일이 성회수요일(聖灰水曜日)이 되고,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었습니다.
성회수요일에는 전 해의 종려주일에 사용하였던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 재로 남겨두었던 것으로 이마에 성호를 그음으로, 메시아요 왕이신 주님의 능력으로 사탄의 유혹을 뿌리친다고 여깁니다.
교회가 사순절을 정하여 지키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새기는 절기이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하시는 걸음을 뒤따르는 절기죠.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되밟는 절기이니,
자연스럽게 육신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절제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술과 고기를 금한 이유죠.
옷도 화려하게 입지 않고, 생활도 검소하게 절제합니다.
조용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하고, 침묵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향한 향심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이들은 사순절 금식을 하고, 금식하여 절감된 식비를 모아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매일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고, 고난주간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직접 못 박히기도 합니다.
이 기간은, 고난 받으시는 주님을 우러르며, 주님의 고난의 뜻이 무엇인지 새깁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영적 신앙훈련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3.

그러면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은 누구일까요?
빌립보서 2:5-8을 보셔요.
신약성경 최초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낮아지신 그리스도 고백입니다.
최초라니?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의 고백이니
마태복음 16:16의 고백이 최초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의 서신과 복음서의 기록 연대로 비교해 볼 때,
바울의 낮아지신 그리스도 고백을 문서적으로 최초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봅니다.
고백의 내용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을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 했습니다.
이 선언은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반복했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30을 볼까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한복음 10:38에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요 12:44-45)
누가 예수님을 세상에 보냈습니까?
하나님이죠.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임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요 13:20)라 한 것이죠.
그리고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한 빌립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9-11) 했습니다.

4.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고난이란 뜻이죠.
몰트만 교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 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고난 받으시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라 고백합니다.
요한 3:16-17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 얻음과 구원을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복음 중 복음의 말씀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행위의 신(神)은 상상할 수 없는 신입니다.
신이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을 섬기고 복종하는 백성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민족의 신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사건입니다.
모든 신들은 자신을 위해 자신을 섬기는 백성들이 헌신과 희생할 것을 요구하던 시대였던 것을 고려할 때 아주 특별한 신이해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이해가 아주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어떤 것일까요?
성경을 묵상하면서 특별한 해석에 이르게 되었는데 구원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랄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사건들에 대한 한 명상입니다.
창세기 3:22-24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했다”고 합니다.
흙에서 온 사람이 흙을 갈아야 먹을 것을 얻게 됩니다.
근원을 간다는 것은 땅을 파는 행위만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근원을 판다는 것은,
사람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될 것인지,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며 살피라는 말씀이죠.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흔히 이 본문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추방의 이유가 무엇인가요?
“선악을 아는 일에는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선악과를 먹은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게는 되었습니다.
문제는 악을 알면서도 악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죄악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닙니다.
죄악을 우리에게 접착제로 붙여둔 사탄입니다.
선에 속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먹지 못한 열매가 있어요.
생명나무 열매, 영생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영생하게 될까 걱정이 되어 쫒아낸 후에,
에덴의 동쪽 길을 막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제 에덴동산과 에덴의 동쪽 세상의 두 세계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두 세계를 비교해 보면
에덴동산 안에는 생명나무가 있죠.
영생을 얻는 열매입니다.
평안, 평화, 안정된 삶, 소위 충만한 삶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샬롬이라 합니다.
동산 밖의 세상은?
영생이 없죠.
죽음이 있습니다.
불안, 불화, 불평, 모자란 삶입니다.
“그의 근원인 땅을 갈게 했다”는 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땅으로(창 3:17), 평생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소산을 먹게 된 땅이죠.
에덴동산과는 다른 곳입니다.
이 땅을 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자,
아담과 하와는 어디에서 추방된 것일까요?
자신이 태어난 곳입니다.
태어난 곳에서 세상으로 추방된 것입니다.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란 의미입니다.
이때의 아담과 하와의 심리적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불안(不安)입니다.
이 상황은 우리들이 세상에 고고(呱呱)한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어머니의 자궁(子宮)에서의 추방이란 뜻이죠.
“이제 넌 내 안에서 다 자랐다. 세상으로 나가라.” 이지만
생명줄인 탯줄이 끊기고,
이제부터 스스로 목숨을 위한 생존투쟁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떨어지는 불안을
인간의 심층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不安)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안한 존재라는 것이죠.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에덴동산에서 악한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
불안에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5.

왜 불안할까?
에덴동산을 떠난 세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4장에서 11장까지의 세상을 보면,
형제가 살인하는 곳입니다.
라멕의 노래를 봅시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칠십칠 배이로다.”(창 4:22-24)
폭력이 가속도가 붙은 세상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할 정도의 세상이 됩니다.
“사람의 죄악(罪惡)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창 6:5)
죄악이 가득한 세상,
과연 살 만할 곳일까요?
바벨탑도 인간이 자기를 높이는 세상으로 악한 세상입니다.
이것이 추방당한 사람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에덴동산이 그립습니다.
에덴동산의 회복을 꿈꾸며 소망합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의 끝은 죽음입니다.
이런 세상 안에서 사는 인간은 누구나 불안합니다.
불안한 사람은, 평안과 평화를 소망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샬롬이라 했습니다.

6.

사순절의 하나님은
우리의 샬롬을 위해
세상에서 에덴을 회복하는 길을 내기 위하여 사람이 되었고
길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길 위에 누이십니다.
때론 깊은 계곡을 건너가게 하는 십자가 외사다리로,
때론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십자가 사다리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짐으로 생긴
불안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 길을 놓으십니다.
사순절의 하나님은 끊어진 탯줄을 이어주듯 생명줄 이어
우리의 근원적인 불안을 해소합니다.
불안에 묻어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공포, 두려움, 초조, 미움, 분노, 폭력, 끝없는 욕망 등을 해소합니다.
이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를 세웁니다.
십자가는 사랑이죠.
불안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순절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 자신은 불안, 공포, 두려움, 절망, 좌절을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죠.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주는 은총인데,
우리는 아직 불안하고,
자궁에서 추방되는 공포,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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