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따람 공동체] “하나님과의 독대(獨對)”

2013년 2월 24일 주일예배 설교자 강석찬 목사

성경본문

출애굽기 19:3-6, 마태복음 4:1

설교문

1.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감탄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감탄하는 이유는 많지만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성경 기록 연대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죠.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려 때 나라가 편찬했습니다.
김부식이 중국의 사마천의 사기(史記) 방식으로 기록했는데, 그 때가 1145년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중 일연이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일(그래서 남을 유(遺)자, 일 사(事)자)을 기록했는데, 신화, 전설, 종교 이야기입니다.
고려 충렬왕 때로 1276년입니다.
지금부터 868년 전, 737년 전의 기록입니다.
성경은?
히브리 구약성경이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 형태로 편집된 때를 학자들은 주전 400년대로 봅니다.
문서예언서들은 주전 8세기로 더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기록보다 1,600년 이상 오래 되었습니다.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성경을 남김으로서
우리들로 하나님, 창조주요, 생명의 근원이며. 복의 근원이며, 구원주이고, 처음이요 나중이신 하나님을 만나, 믿을 수 있도록 된 일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이 성경이 어떤 것일까요?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며,
하나님과의 독대를 통한 깨달음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지고 산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독대(獨對)하여 하나님을 경험한 것,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깨달음을 문서로 남긴 것이 성경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독대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 사람을 신앙의 사람이라 하죠.
이 기록은 또한,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독대(獨對)입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單獨者)로 서는 것이 신앙입니다.

성경을 봅니다.
아브라함을 보셔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단독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들은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순례기라 부릅니다.
떠나라 했을 때, 떠난 그의 걸음을 믿음의 시작이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의 삶을 신앙의 모델로 삼습니다.
이삭을 바쳐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요구에도 침묵하며 순종한 그의 믿음을, 우리는 높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독대(獨對)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 12지파의 조상입니다.
그의 일생에는 몇 번의 중요한 고비가 있습니다.
야곱도 아브라함처럼 벧엘과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독대(獨對)했습니다.
벧엘에서 꿈에 본 야곱의 사다리 일화나,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말합니다.
이 사건들이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들입니다.
벧엘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얻고, 얍복강 가에서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야곱의 옛사람을 포기하고 신앙의 조상으로 서게 한 사건이,
하나님과의 독대(獨對)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시내산에 혼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모세는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두 돌 판에 쓴 십계명을 받고, 율법과 규례와 법도인 토라를 받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오직 모세만 올라오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독대(獨對)한 것이죠.
모세는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십계명으로 요약되지만, 새기고 새겼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받았던 호렙산에서의 만남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3.

독대(獨對)했다는 표현에는 하나님과 대화(對話)했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일방통로(one way)가 아닙니다.
쌍방통행으로 자기주장을 펴고 나누다가, 합의(合意)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만 했나요?
아닙니다.
소동과 고모라 성의 심판을 두고 치열한 대화를 합니다.
심판의 의지가 굳은 하나님께,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그리고 10명이라도 있으면 멸하겠느냐는 물음(창 18:26-32)은 독대(獨對)를 통하여 얻은 성과입니다.
이렇게 50명에서 10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요구에 선선히 답하는 하나님께 요구하면서,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의인 10명이야 있겠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통로가 아니란 것이죠.

야곱의 경우,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합니다.
새벽녘이 되자 떠나려는 하나님의 사자가 “가게 해다오.”하자,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다.”(창 32:26) 했습니다.
올 때야 마음대로지만, 떠날 때는 내 마음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야곱은 새 이름 이스라엘을 얻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쩔뚝거리게 되었지만 아침 해의 돋음과 같아졌습니다.

모세도 호렙산에서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부름 받은 소명 사건에서
“난 아니요, 난 못해요, 난 능력이 못 되요, 큰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요”
반복해서 버팅겼습니다.
결국 모세의 입을 대신할 아론과,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지팡이를 받고서야 겨우 일어섰습니다.

4.

성경은 하나님과 독대(獨對)한 이들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사들이 하나님과 독대한 이들이며,
사무엘도 어린 나이에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혼자 듣고 선지자가 됩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요나 등 예언자들
모두 하나님과 독대(獨對)한 이들입니다.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된 사건에도 주님과의 독대(獨對)가 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사울의 동행자들은 듣지 못한 음성을 사울만 듣습니다.
“누구십니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주님과의 독대(獨對)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사건으로 사울은 꺼꾸러졌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은 세 가지 시험 사건을
“광야로 성령에게 이끌리어 갔다.”(마 4:1)고 했습니다.
이 장면을 그려보면,
하나님 앞에서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은 것으로 그려집니다.
마귀의 시험이 주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독대(獨對)의 다른 표현입니다.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사람들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의 길을 찾은 것입니다.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도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인지, 자신의 생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처절하게 대결하면서
“아버지 뜻대로” 순종한 것이죠.
이 역시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독대(獨對) 장면입니다.

5.

여기에서 얻는 작은 결론을 얻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는데,
신앙에 하나님과의 독대(獨對)가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인생에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할 때,
반드시 하나님과 대면해서, 그것도 “홀로”,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 홀로 기도하게 하소서”라 했는데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노래한 것이죠.

물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독대(獨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답할까요?
그렇습니다.
분명하게 답하십니다.
때론 직접!
때론 깨달음으로!
때론 침묵으로.
때론 오묘하고 신비로운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독대(獨對)하면서, 하나님의 음성 듣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질문에 “듣지요” 했던 답을 음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답을 듣는 이 길에 성경이 중요한 교과서가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여,
하나님의 뜻을 듣고, 깨달은 이들의 전언(傳言)이기 때문입니다.

6.

최근 뉴스가 된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의 박사논문 표절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오 목사의 사건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한국교회 전체의 신앙문제의 표출이라 할 수 있죠.
왜 처음 담임목사 청빙과정에서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 뒤늦게 표면으로 들어난 것일까요?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고려해 보면,
옛날에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지금에 문제가 된다는 것은 잣대가 변한 것이죠.
잣대라기보다는 마음이겠죠.
사랑의 교회당 건축문제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개인적으로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이 떠올려졌습니다.
한국교회언론회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논평을 통해 “사랑의 교회 문제는 일부 외부 언론의 과도한 개입에 의한 ‘한국교회 죽이기’의 일환임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뒤늦게 문제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직접 다룰 오정현 목사와 사랑의 교회 당회에게 나는 공개적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독대(獨對)하라.”
지난 2월 10일 자 신문에
“오 목사는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유감을 표명했고, 그와 관련한 사안에 대한 처리를 당회에 일임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위험합니다.
목사가 당회에 자신의 문제를 일임하는 것은,
성직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여 상실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성직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잊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7인위원회를 구성되어 전권을 위임 받은 당회는 결국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 뻔합니다. 당회는 어떤 결정이 교회에 이익이 될 지를 따지고 계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나 뜻을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얻은 결말은 사람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이라 포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오정현 목사는 당회에 일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에 순종하면 됩니다.
만약 당회가 목사의 거취를 결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믿고 따랐다는 믿음을 버리는 일이 됩니다.
그 순간 목사는 없고, 주의 종은 사라지게 되고,
소위 월급쟁이 삯꾼 목자만 남습니다.
사랑의 교회 당회는 오정현 목사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 결정하도록 하고 순종할 것으로 풀어가는 것이 바른 신앙적인 당회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직자의 하나님의 관계, 하나님의 소명을 존중하는 것이 장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정현 목사가,
주의 종인 목사였는지, 조직과 제도에 묶인 사람의 종인 목사였는지 지켜 볼 것입니다.

7.

우리의 문제로 풀어봅니다.
우리가 신앙의 사람이라 할 때,
어떤 때 하나님과 독대(獨對)해야 할까요?
이론적으로야 매일, 매 순간마다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인생의 중요한 고비가 될 때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십시오.
하루하루의 삶에서도 어떤 결단을 해야 할 때 마다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생각하십시오.

불교의 스님들은 동안거(冬安居)라는 제도로 수행하면서
자기 자신과 독대(獨對)합니다.
가톨릭의 신부나 신도들은 묵언수행이나 퇴수회 등을 제도화 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정기적으로 세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도적인 수행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매일 묵상하면서,
홀로 기도하면서
자신을 광야로 내몰고, 높은 산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독대(獨對)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묻고, 물으면 됩니다.
그리면 결국
하나님의 깊고, 깊은 사랑에,
“아!” 무릎 치며, “그런 뜻이!” 놀라고 감탄하며,
오묘한 은혜와 하나님의 섭리에
꼬꾸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四旬節)에
하나님과 독대(獨對)하여
그 분의 뜻에 따르는 복(福)있는 사람이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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