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WCC 준비위, 법적대응…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 우려

“용공” “친동성애”라며 WCC 반대운동 ‘국민의소리’ 고소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이하 한국준비위)가 앞서 공언한 대로 WCC 반대 운동을 펴고 있는 시민단체 ‘국민의 소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국준비위측은 (한국준비위 대표들에 대한)명예훼손과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그리고 정보통신만 이용 촉진과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과 업무방해 등 모두 4가지 혐의를 들어 ‘국민의 소리’ 주요 임원 6명을 지난 15일 구미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한국준비위측은 ‘국민의 소리’에 대해 "WCC가 중앙의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중앙집권적 단일 교단인 것처럼 왜곡 묘사했으며, WCC와 가입 교회들이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고 동성애를 지지하며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고소장을 통해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고소 이유로는 "이러한 각종 소문들로 고소인 뿐 아니라 이 사건 WCC 총회를 준비하는 교단 전반에 터무니없는 오해와 분란까지 초래될 지경에 이르렀다"며 "제10차 WCC 부산총회 준비 과정에서 건전한 비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한국 기독교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지만, 동성애나 일부다처제 같은 선정적 단어들로 WCC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 내지 반감을 유발시키는 선동을 지속하고 있어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범죄행위임이 명백하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국민의 소리’측 회원들이 얼마 전 한기총, NCCK 앞에서 궐기대회를 갖는 모습.

금번 한국준비위측의 법적 대응은 ‘국민의 소리’를 중심으로 WCC 반대를 주도하는 그룹에서 제기한 예산지급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에 여세를 몰아 WCC 반대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원칙도 원칙이나 내용도 궁색할 이번 한국준비위측의 법적 소송 결정에 에큐메니칼 인사들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대화의 파트너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에 위배된다는 의견이다. ‘국민의 소리’와 어깨 동무를 하며 WCC 반대 운동을 펴는 이들이 주요 보수 교단의 인사들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생각이 좀 다른’ 형제들을 상대로 송사에 나선 것에 다름 아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빰을 돌리라’는 성서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세속적 대응에 자칫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국민의 소리’측은 차분히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반대운동을 하면서도 최근까지 WCC에 관한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간 ‘모르쇠’로 일관하던 한국준비위측이 법적 대응이란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WCC가 중시하는 대화의 원칙도 무시된 셈이다.

각론으로 보자면 법적 대응의 내용도 거슬린다. WCC를 반대하는 그룹에서는 WCC를 둘러싸고 ‘용공’ ‘친동성애’라며 맹비난을 해왔다. WCC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런 주장들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고소장을 접수시켰으니 이를 둘러싼 변론이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행여나 잘못했다간 부메랑 효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WCC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고 뽑은 칼이 되려 한국준비위측의 목을 겨눌 수 있다는 얘기다. ‘선 아니면 악’ 혹은 ‘흑 아니면 백’ 식의 이원론적 사고가 내재화된 WCC 반대 그룹과의 변론 과정에서 자칫 그들이 원하는 식으로 "공산주의 거부한다" "동성연애 반대한다"란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WCC와는 거리가 먼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WCC는 공산주의를 찬성하지도, 동성연애를 무조건 인정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있었던 WCC 공동선언문 사태 관련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에서 성공회대 김기석 교수는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는 WCC가 공산주의를 비판하듯 자본주의를 비판한 점을 들었고, 동성애 문제가 WCC를 비롯해 세계교회에서 ‘뜨거운 감자’임을 확인하며 동성애 문제가 가볍게 단죄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이처럼 WCC측에서도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주제들이 이번 법적 소송의 내용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명확성을 요구하는 법정 진술에서 모호성을 수반하고 있는 ‘용공’ ‘동성애’ 등에 관한 주제를 한국준비위측이 잘 다룰 수 있을지 에큐메니칼 인사들의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흑백논리 앞에 제대로 된 변론을 못해 오히려 역공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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