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WCC 부산총회 준비에 분열 양상 보이는 까닭은

한국준비위의 ‘불통’ 리더십에 대한 불신감 팽배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본산이라는 WCC 총회를 준비하는 측에서는 의견의 불일치를 넘어 가히 분열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터라 그토록 추구하려던 에큐메니칼 정신이 아이러니칼하게도 무색케 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NCCK 회원 교단장 및 총무들의 긴급 회의에서 나온 결론은 NCCK도 나름의 입지를 갖고, WCC 총회 준비에 뛰어들겠다는 것으로 요약 정리된다. WCC 총회 준비 채널이 두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껏 WCC 총회 준비에 공을 들여왔던 WCC 한국준비위원회측(이하 한국준비위)에 대한 거센 반동이 아닐 수 없다. 우선적으로 한국준비위의 ‘불통’ 리더십에 대한 강한 불신이 그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준비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알려진 상임위원회(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 이하 상임위). 상임위의 정책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는 실행위원회가 없는 이상 이곳에서 내려진 결정은 곧바로 효력을 얻어 집행이 된다. 집행위원회의 결의는 따로 필요 없다. 상임위의 결정을 그대로 받은 사무총장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뿐. 이러한 일방향 리더십에 WCC 회원교단(기장, 성공회, 기감, 통합) 총무들은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으나 상임위는 귀를 막아왔다. 

또 다른 요인으로 한국준비위측 리더들이 에큐메니칼 정신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에큐메니칼 교계 인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한국준비위를 실제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삼환 상임위원장, 조성기 사무총장. 몇몇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김삼환 상임위원장은 "WCC가 뭔지도 모르고 유치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큐메니칼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에큐메니칼에 대한 정체성이 불분명 했기에 신학적 메카시즘을 환기시키는 듯한 ‘WCC 공동선언문’ 사태도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조성기 사무총장 역시 WCC 부산 총회 유치를 전후해 몇몇 교계 언론들과의 기자회견에서 "한줌 밖에 되지 않는 NCCK가 (WCC)총회를 개최할 수 있는가"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에큐메니칼 리더라는 이가 에큐메니칼 정신이 아닌 ‘세’(勢) 논리에 편승한 보수·근본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 ‘나’와 다른 ‘너’를 분리, 배제하고 폭력을 가하는 데 익숙해 있는 인물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지난 2009년 스위스 제나바 에큐메니칼 센터에서의 WCC 중앙위원회 회의 전경 ⓒ베리타스 DB

이처럼 에큐메니칼 정신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WCC 총회를 준비한다고 하니 에큐메니칼 진영의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WCC를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대응 방식도 미숙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다. 먼저  WCC 회원교단으로, 한국준비위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는 예장통합측 WCC제10차총회준비위원회·에큐메니칼위원회가 최근 낸 ‘한국교회에 드리는 호소문’에서는 WCC 방향성과는 전혀 걸맞지 않는 용어들이 사용돼 에큐메니칼 진영 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WCC 반대 세력을 일컬어 "이단들의 악의적인 선전에 현혹되지 말고"라는 표현을 썼으며, "한국준비위에 속한 모든 동역자들과 에큐메니칼 형제자매들에게 호소한다"는 표현을 썼다. 먼저 ‘이단’이란 말은 자신들은 소위 ‘정통’이라는 독선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기에 에큐메니칼 정신에 부합하는 용어가 아니다. 또 ‘속한’이란 표현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으로 역시 안팎의 일치를 말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에 걸맞는 용어가 아니다. 이와 관련, 에큐메니칼 원로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는 "중세도 아니고 21세기 한국에서 ‘이단’이란 말을 공식 교단 선언서에서 말하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 "왜 WCC 총회를 둘러싼 이단 논의가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총회를 준비하는 집단은 ‘정통’이라는 독선이 깔려 있는 것 같아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준비위 자체 대응도 실망을 주는 면에선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준비위는 WCC 반대 운동이 심화·확장되고, 이를 주도하는 그룹이 정부에서 지원키로 한 지원금 20억여원의 예산지급금지가처분 신청을 한 데에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명예 훼손에 해당된다"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예산지급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마당에 명예 훼손죄로 당사자들(서기행 예장합동 전 총회장, 박성기 브니엘신학교 이사장)을 고발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WCC 반대 세력에는 ‘국민의 소리’란 시민 단체와 더불어 국내 보수적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다. (단, 시민 단체 ‘국민의 소리’를 두고는 일부 회원들이 ‘다락방’ 소속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해당 단체는 교회와 관계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여기겠다고 선전한 한국준비위가 생각이 좀 다른 형제들을 상대로 송사를 하는 등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속좁은 대응을 해 나가는 것이 자칫 한국교회를 세계교회의 웃음거리로 만들게 하지는 않을지 에큐메니칼 진영 내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WCC 부산총회가 눈 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한국준비위 리더십에 거세게 반발하는 에큐메니칼 진영의 책임도 무겁지 않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한국준비위 리더십에 때로는 침묵하고, 동조한 책임만큼은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어느 진보 신학자는 에큐메니칼이 맘몬에 무릎을 꿇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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