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부활의 봄

2013년 4월 7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40:26-31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아멘. 
 
골로새서 2:12-15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20:24-29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아멘. 
 
설교문  
 
성가대 찬양 감사드립니다. 제가 아파서 치료 받고 있을 때, 저를 도와주셨던 간호사님들, 의사선생님들의 고마움을 제가 잊을 길이 없습니다. 한 번은 의사선생님과 함께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자기는 두 신(神)을 섬기는데, 한 신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고, 또 다른 한 신은 몸이라고 하더군요. 몸 신(身) 말입니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이 몸의 구조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고,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신비한 몸이기 때문에 몸을 거의 신처럼 존중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달리 설명할 자격이 없다고 의사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몸은 신비합니다. 저도 그 신비한 몸의 진실을 병상에서 깨달았습니다. 몸이 얼마나 귀중한지 여러분 다 아실 겁니다. 죽는 날까지 살고 싶고, 또 죽어서도 다시 살고 싶지요. 이 몸이 비록 늙고 쇠한 것 같지만 그럴수록 몸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한 가지 덧붙이셨습니다. 신비스러운 몸과 이 몸을 만드신 신성한 하나님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요? 둘이 합한 현실은 의사든 아니든 상상을 못할 만큼 감사와 찬양으로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몸을 가진 인간과 이 몸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둘이 마주 보고 있습니까, 위 아래로 되어 있습니까,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아니면 함께 계십니까? 이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간들의 관심입니다. 죽음을 이야기 하든, 부활을 이야기 하든 이 두 가지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전하려고 합니다. 
 
이 두 관계를 살아가는 삶의 깊은 의미를 늘 깨닫고 견지하려고 한다면, 매일 같이 아침이든, 밤이든, 하루 지낸 이야기를 일기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일기를 쓰면서 사랑 경험도 축적하고, 일기를 통해서 후학들에게 인생관을 알려주기도 하고, 아픈 소리를 혹은 기쁜 소리를 글로, 찬양으로, 시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일기를 쓰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일주일 혹은 한 달, 아니 최소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특별한 일기를 쓰시지요. 유언장을 미리 쓰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이렇게 부활하고 싶다, 이렇게 다시 살고 싶다, 내 자손들이 이렇게 살기를 원한다 등, 무엇이 되었던지 유언장을 작성해보십시오. 유언장만큼은 진실 될 것입니다. 거짓으로 쓸 수 는 없잖습니까. 일기는 꾸밀 수 있더라도, 유언장 일기는 있는 모습 그대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유언장을 미리 남기기도 하고, 또 묘소의 비석에 유언 비슷한 글귀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 분이 좋아했던 또는 남기고 싶어 했던 아주 단순 소박한 글귀가 묘비에 새겨진 것을 보면서 그 곳에 누워계신 분의 인생과 신앙관을 습득하면서 경외스럽고, 배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느 묘비에 쓰인 글귀 하나가 재미도 있으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 같아 소개하려고 합니다. 19세기 초반에 살았던 독일사람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유물론적 인간론을 만드신 분,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스승이 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너무 머리가 좋아서 19살 때 하이델베르크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신 이야기만 계속하니까 신학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공부를 그만두고, 베를린으로 가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 헤겔로부터 강의를 들었습니다. 훌륭한 강의이기는 하나, 왜 정신과 의식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몸에 대한, 실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을 의아해합니다. 그래서 이 공부도 그만두고 다른 대학에 가서 공부하며 24살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교수 채용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신, 신학, 형이상학이라 이름 하는 철학은 다 죽었다. 나는 관심이 없다. 실제 주인은 인간 밖에 있는 신도 아니고, 의식이라 하는 그런 학술적인 것도 아니다. 물마시고, 밥 먹고,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매일같이 살아가는 인간이 중요한 것이지, 왜 자꾸 인간 밖에서 인간을 논하느냐. 인간이 주되고, 밖에 있는 것이 종속변수인데, 거꾸로 의식과 사고와 정신이 주고, 우리 인간은 종속변수가 되어버렸다. 이러면 안 된다.” 자기가 살던 시대의 교회 모습을 보니,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자기 성공, 건강,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런 신이 필요할까? 그런 신은 존재하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허깨비 같은 신이다”라고 하여 이 분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되어있지요. 이 말을 완전히 뒤집어서, “인간은 자기 형상에 따라 신을 만들었다. 자기 욕심에 따라서 신을 만들었다. 자기 생각대로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신이라고 이름 한다. 그런 신은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평생 주장합니다. 이 분의 주장을 받아서 마르크스는 그런 신을 못 믿는 종교는 악행이라고 말합니다. 
 
포이에르바하가 우리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을 본다면 “당신들이 믿는 신은 참 신이요? 신이 필요해서 신을 만들어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당신의 욕심으로 신을 만든 것이 아니냐? 무슨 신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지금 먹고, 마시고, 사는 당신들 인간이나 제대로 살아라”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참 고마운 이야기를 이 분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읽어보니, 이 분의 비판은 좋으나, 한 가지 신에 관한 신앙을 가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믿는 신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상상으로 만들어낸 신 말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하늘이지만 땅에 오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 역사의 한복판에, 마음의 한복판에 오시고, 우리 육을 입어서 우리와 똑같은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사시는 인간과 똑같은 몸을 입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포이에르바하와 같은 의문이 많은 사람도 이 세상에 필요하고, 오늘 성경말씀을 보니 더 필요한 사람이 도마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입니다. 몸으로 선생님을 따라갔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은 이 분은 자신과 똑같이 사람이지만 이 분이 하시는 일은 전혀 달랐습니다. 기적도 행하시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이 분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했던 자기 선생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이 제자는 선생님을 등지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도 도망갔습니다. 모든 제자가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선생님이 나타납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에게 제자들이 나중에 말합니다. 우리는 돌아가셨던, 우리가 떠났던 그 선생님을 보았다. 그러자 도마 말이 “나는 보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나는 만져 보아야 믿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마는 찾아오신 선생님을 보고, 못 자국을 손으로 만졌고,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 보았고, 이런 말은 없습니다만 아마 가시관에 찔린 머리도 만져 보았을 것입니다. 만져본 도마가 “이제 믿겠습니다”하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믿었는지 모르지만, 이 분은 유대 땅에서 시작하여 인도 남방까지 걸어와서 도마교회를 세운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만져본 도마의 확신은 세계 선교를 가능케 했습니다. 도마 묘비에 무엇이라고 쓰였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묘비명을 지어보려고 합니다. 바하는 인간은 자기 형상에 따라 신을 만들었다고 말했지요. 도마는 자기 필요에 따라 보았고, 믿었고, 얻었습니다. “내가 따랐던 주님이 부활하여 돌아오신 그 모습을 보았다. 나는 부활한 자가 지녔던 십자가 흔적을 만져 보았다. 그래서 나는 부활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구원을 얻었다. 보았다. 만졌다. 믿었다. 얻었다.” 묘비에 이렇게 쓰면 어떻겠습니까? 
 
만져보는 도마의 신앙을 보고 의심하는 도마라고 비하하지 말고, 만져야지 믿겠다는 신앙을 오늘 회복해봅시다. 그 분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기에, 분명 인간의 몸을 지녔기에 만져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몸인데, 이 몸을 그렇게 간직하다가 이 몸이 마지막 숨이 끊어진다고 버리면 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만드신 모든 것을, 몸도, 마음도, 사상도, 생각도 부활이란 이름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이 분은 오늘 우리에게 “나를 만져라. 나는 몸이 있다. 내 몸을 만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질 수 없는 부활은 허위라고 생각합니다. 만져본 도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이 인간을 만졌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보고 선포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지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나사로야 일어나라”하시며 손목을 잡아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죽은 몸을 만졌더니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를 찾아 온 한 어머니가 아들이 지금 죽게 생겼다고, 아들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진 믿음이 아들을 구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예수를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눈을 떠라” 하시지 않으시고, 침으로 흙을 뭉개서 흙을 눈에 바르시면서, 눈을 만지면서 “나아라” 하셨습니다. 말씀으로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졌습니다. 그래서 통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고쳤지, 통하지 않고 사람을 고친일이 없습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진 것처럼, 하나님도 부활을 원하는 사람들을 손으로 만져 주십니다. 괴로움의 상처도 만져 주시고, 죽을 것도 만져 주시고, 고난도 만지시고, 끌어안아 함께 만지시고, 마지막에는 부활까지 함께 만지는 방식으로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도마가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고, 새로운 믿음의 형태를 준 훌륭한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만지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로만 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을 만져 보시지요. 몸으로 입고 오신 하나님을 만져 보시지요. 스킨십을 하시고, 그분과 동행 해보시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니까요.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당신이 우리의 생명을 일으키시고 부활하신 분이시면, 저희한테 오셔서 부활의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동기는 하나입니다.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친구가 벼락을 맞아 죽습니다. 친구는 죽고 자기는 살아납니다. 성경말씀 가운데 하나님 빛을 받을 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네 행실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빛처럼 주시는 하나님이 감격적 만지심입니다. 하나님이 만지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만져라, 그러면 산다.” 저는 오늘 도마를 통해서, 루터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만질 수 있는 분이시다, 부활은 만지고 경험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지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만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지성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올바른 지성인 되게 하소서. 낡은 지성인이 아닌 새로운 지성인이 되어서 믿고 고백하는 지성을 주옵소서. 하나님, 제가 갖고 있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감성에 오셔서, 낡은 감성이 아닌 부활하는 감성을 주셔서 따뜻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희 영성에 오셔서, 낡은 영이 아닌 새롭게 부활한 신비스러운 하늘 향한 찬송하는 영성을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 육에 오셔서 낡고 병든 육을 건강하게 고쳐 주십시오. 지성과 감성과 영성과 육을 구분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오셔서 새롭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대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도마가 말했던 것처럼 주님 보고 싶습니다. 만지고 싶습니다.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고 싶습니다. 얻고 싶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오늘 간구합시다. 부활은 씨앗과 같아서 봄에 자라지요. 지금이 부활할 봄입니다. 부활 심으시지요. 부활 꽃 피우시지요. 곧 열매가 거두어집니다. 부활하는 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풍성한 봄이 왔습니다. 부활사시죠. 주님이 축복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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