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에스겔서 34:11-16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아멘.
베드로전서 2:21-25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이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전에는 여러분은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이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10:14-18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아멘.
설교문
성가대 찬송 감사 드립니다. 세상이 요즘 요란한데, 교회에 와서 기도 드리고, 예배 드리고, 아름다운 찬양을 부르고 들으니 교회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가 영 다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찬양으로 우리를 감동시켜주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요즘 외국에 나가있는 친지들에게 전쟁이 임박했다는데 어떻게 지내냐는 전화 많이 받으시지요. 마침 WCC 국제 대회를 10월 말에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저에게도 이런 전화가 여러 나라에서 옵니다. “전쟁이 곧 일어난다는데 총회 개최할 수 있느냐”, “부산에서 총회를 한다는데 부산 옆에 있는 원전이 곧 터진다는데 괜찮느냐”, 이런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밖에 있는 우리 가족 친지들도 염려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얼굴을 보아도 그렇고, 제 느낌도 그렇고, 모두들 태평하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남들은 위기라고 알고 있는데 서울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만은 태평성대를 누린다, 너무 무감각한 것 아닌가 하는 평가입니다. 또 하나는, 이런 위기 때 시치미 떼고 평온, 강건, 태연한 태도를 한국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평가입니다. 여러분, 어떤 평가가 옳습니까?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물론 후자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대회 때문에 제가 전화를 받을 때 저는 “나를 따르라, follow me”라고 대답합니다. 태평해라, 염려 없다, 전쟁 안 난다, 아니, 못 난다고 제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1988년도 올림픽 직전에도 그랬고, 2002년 월드컵 직전에도, 하여간 우리가 국제대회 할 때쯤 되면 전쟁 소문이 밖에서 납니다. 그러나 한 번도 난 일은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지 우리는 전쟁소문이나 협박의 레토릭 때문에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면서 외교적 대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상대방을 역으로 자극하여 기고만장하게 할 수 있는데, 오히려 태연하게, 굳센 결단을 가지고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어느 경우든 이 땅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전쟁은 파멸이지, 생명을 담보해주지 않습니다. 6.25 전쟁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상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것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이 파괴되었고, 가족이 나뉘어졌는데, 그 슬픔과 억울함이 얼마나 아픕니까. 이런 전쟁을 또 한다니요, 막아야 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불필요하고 현실도 아닙니다만, 백여 년 전 우리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겨서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만약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이겼다면, 우리가 식민지가 안 되었을까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겨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러시아가 이겼다면 우리는 분단이 안 되고 식민지가 안 되었을까요? 어디가 이겼든, 자기네 패권전쟁 속에서 우리는 희생물이 되어서 지금보다 더 나쁜, 아니면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전쟁은 강자들의 놀음이고, 그 속에서 힘 없고 약한 백성만 희생물이 되어 죽어간다는 생각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다 그렇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순박하고, 힘이 없고,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하는 양떼는 죽어갑니다. 그 양떼를 바라보는 사악한 목자들은 양들은 희생시키고, 잡아먹어서 목자가 살찌고, 권력을 웅켜쥐려고 합니다. 나라로 얘기하자면, 일본, 중국이나 러시아는 한국한테는 악한 목자였고, 우리 백성들은 희생당한, 희생당해야만 했던 순박한 어린 양이었습니다. 이런 양과 목자가 고착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좋습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갈라진 남과 북이 전쟁하게 된다면, 북이나 남이나 불쌍한, 힘 없는, 순박한 양떼라 이름하는 백성만 죽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전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선한 목자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 형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런 목자의 비유를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도 말씀하셨고, 오늘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에스겔에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 너무 어두워서, 너무 힘들어서 다 흩어져 사는 내 사랑하는 백성, 나의 양떼들, 내가 구해내겠다. 헤매고 있는 양이 있으면 내가 찾아오고, 길 잃은 양이 있으면 업어서 도로 데려오고,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양이 있으면 싸매주고, 약한 양이 있으면 내가 안고 오겠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이라는 강대국의 속국이 되어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말이 사람이고 백성이지 착취당하고, 폭력에 휘둘리고, 가족이 다 찢어지고, 종처럼 살아갑니다. 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유대 백성들은 외지에 가서 흩어져 살거나, 지하로 잠적해 들어갑니다. 생명만 부지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입니다. 이들의 목자는 바빌론이라 이름하는 흉악무도한 목자입니다. 목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먹거나, 백성을 희생시켜서 목자가 사는 구조 속에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서 “나 하나님이 전혀 다른 새 목자가 되어서 내가 사랑하는 백성을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은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양떼를 기르는 목자는 흉악무도한 제국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런 목자가 아니고, 다치고, 부러지고, 상하고, 피 흘리는 내 양을 위해서, 내가 내 목숨을 담보로 이 어린양들을 보호해주겠다. 나는 내 목숨을 위해서 양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고, 양을 희생시켜서 내가 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내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양들을 구하겠다. 나는 그러한 하나님이다.”
예수님께서도 오셔서 요한복은서에서 다시 양 얘기를 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자기가 스스로 선하다 말합니다.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거는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선한 사람, 인자한 사람은 이웃을 위해서, 양떼를 위해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칩니다. 그 사람만이 선한 목자요, 선한 하나님이요, 선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선한 목자를 구세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목자는 캄캄한 밤, 구름이 낀 날에도, 위기 가운데에서도, 자기 목숨을 담보로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저는 그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계심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영을 지배하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심을 믿습니다. 양이 사는 곳에는 목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오늘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양이 주인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국민이 주인이고, 백성이 주인인 것입니다. 정치에서 말하는 주권재민이 이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어야 합니다. 양떼가 있는 곳에는 양떼가 주인이라는 것이 민주사회의 원형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권재민을 외치고, 국민이 주인이고, 백성이 주인이고, 양떼가 주인인 것은 다 아는데, 그럼 목자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는, 전쟁을 막는 목자는, 양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주인입니까? 자신을 위해서 양떼를, 백성을 희생시키는 목자입니까? 사악한 목자 입니까, 선한 목자입니까?
최근에 보니 외국의 문인들이 공동성명서를 냈더군요. 베트남 작가인 바오닌이 작품인 “전쟁의 슬픔”에서 말한 것을 중심으로 시작한 성명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습니다"라고. 이 성명은 이어서 말합니다. "전쟁이 죽이는 것이라면, 가장 좋게 죽일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보다는 나쁜 평화가 낫습니다. 총 내려놓으세요. 잠수함의 방향을 돌리세요. 험한 말을 중단하세요. 그런 다음, 무조건 한 걸음 물러가서 만나보세요.” 외국에 있는 13개국의 문인 24 작가분들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에게 좋은 충고를 주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이 배출한 UN 사무총장 반기문씨의 말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CNN 인터뷰를 하시면서 한국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님께 진심으로 말씀 드립니다. 민족의 궁극적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대화를 통해 모든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근 일어나고 있는 모든 도발적 행동을 자제하시고, 대화의 장으로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UN 사무총장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 드립니다.” 아주 격조 있는 외교관답게 말씀을 하셨는데, 그 내용을 보니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의 난국을 타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이 사는 곳이 우리 사회라고 한다면, 양이 주인이고 우리가 그 목장을 민주주의라고 얘기한다면, 어떤 목자가 우리에게 와야 합니까? 민주주의에는 종류가 참 많습니다. 많은 형용사가 붙습니다. 오늘 제가 성경말씀 읽으면서, 가장 좋은 민주주의는 목자가 자기 목숨을 바쳐서 백성을 구하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민주주의를 성경에서는 직접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오늘 목자 얘기를 읽으면서 그런 민주주의를 “목양적 민주주의”라고 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혹은 “목자 민주주의”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온갖 명분을 세워서 백성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했지,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지도자 목자가 세계에 몇이나 있었습니까? 오늘 예수님 말씀은 오늘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나는 이 땅에 있는 나의 백성, 양들을 위해서 내 목을 내놓고 구원을 베풀겠다. 당신들이 져야 할 십자가를 내가 지겠다. 내가 창에 찔리고, 내가 가시관 쓰고, 내가 못 박히고, 그대들은 살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죽겠다. 나는 내 목숨을 버릴 권리가 있고 다시 얻을 권리가 있는데, 나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지도자가 되라고, 목자가 되라고 부름 받고 보냄을 받았다. 나의 이름이 예수다. 나 예수는 그런 양들을 위한 목자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민주주의면, 나는 그런 민주주의의 목양자가 되고 싶다.”
목양자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그분이 오늘 저에게 오셔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오셔서, 나는 이렇게 선한 목자이고 싶다고 말씀하시니, 여러분 예수 믿고 싶으시지요. 저는 그분이 저 같은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죽어주셨다니까, 죽으시고 나서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니까, 제는 너무 감사해서 그 분을 구주이신 목자로 믿습니다. 저는 그 분이 저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남북한 전체의 목자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 아래에서 거짓된 목자들이 빨리 자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선한 목자가 이 땅에 몸답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영을, 혼을, 마음을 다스리고 지배해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그렇게 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부활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는 목양 민주주의의 주인이시고,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민주주의는 "십자가 민주주의"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스스로 우리의 죄를 지시고, 피 흘리고 죽으셔서, 온갖 죄악을 박멸하신 다음에 새로운 생명의 나라를 주는 그런 목자. 그 목자가 오늘 "예수"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신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바라고 분부드립니다. 그분을 모시고 싶으신 분은 오늘 그 분을 보여 달라고 고백하고 모시면 됩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싶은 나라는 그 분을 그 나라의 기반으로 삼으면 됩니다. 남과 북이, 우리가 그 분을 주님으로 모셔서 정말 전쟁이 없는 나라, 평화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군사 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전쟁에서의 최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깁시다. 전쟁 않고 전쟁을 이깁시다. 우리는 평화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먹읍시다. 그렇게 결단하고 으연하게 삽시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이신 목자와 함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