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박영식 교수 ⓒ개인 페이스북 |
하지만 기독교가 이처럼 종교들 사이에서 무턱대고 ‘절대성’을 포기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곧 바로 다원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또 기독교 신앙의 고유 정체성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의 선교는 가능하기라도 한 것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는 최근 연세 신학논단에 기고한 논문에서 트뢸치, 틸리히, 판넨베르크의 종교사 신학에서 종교들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설정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들 서양 신학자들이 근거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일자중심주의의 대안으로서 다자중심적 종교신학을 제언해 관심을 모은다.
‘기독교의 절대성과 종교사 신학: 트뢸취, 틸리히, 판넨베르크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먼저 "기존의 절대성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도리어 촉진시키는 종교신학적 모델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여기서 형성된 모델은 기존의 종교신학적 삼분법에 귀속되지 않는 대안적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연구 목적을 분명히 했다.
그에 따르면 트뢸취와 틸리히, 판넨베르크의 종교사 신학은 개별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절대성을 비판할 수 있는 종교신학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이들 서구신학자들은 개별종교들을 근본적으로 동일한 차원에서 평가하고 배열하고자 했다.
박 교수는 "물론 트뢸취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종교사를 배열하는 방식에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그를 포함하여 틸리히와 판넨베르크에 이르기까지의 종교사는 신적 실재라는 하나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며 "즉, 다수의 종교들을 하나의 공동 목표 아래 배열하려는 시도들은 다양한 종교들을 하나의 신적 실재와의 연관성 안에 묶어두려는 형이상학적 일자중심주의의 전형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일자중심주의가 아닌, "기독교 신앙의 깊이에서 상호자극하고 경쟁함으로써 고유성과 차이성을 드러내는 다자중심적 모델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성과 다수성을 궁극적 일치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일자중심주의적 종교사 신학은, 이제 환원 불가능한 개별 종교의 독특성을 인정하면서 각자 자기종교의 관점에서 상호 비판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다자중심적 종교신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특히 ‘다자적’(plural)과 ‘다자중심적’(polycentric)을 명확히 구분했다. 그는 "종교 지형을 단순히 다자적으로만 보는 것은 개별 종교의 역동성을 간과하고 제3의 시각에서 종교들을 아무런 상호연관성 없는 상태로 내버려두게 한다"면서 "따라서 개별 종교들이 각자의 종교적 깊이를 중심축으로 삼고 다른 종교들과 비판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자중심적이란 표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자중심적 종교 신학에 기초한 종교 간 대화는 "양자의 차이를 제3의 중립적 또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마름질해버리는 동일성의 해석학이 아니라 서로 고유성과 차이를 드러내는 차이의 해석학과 이에 근거한 상호 비판적 해석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또 "선험적인 판단에 근거해 종교 간의 관계를 설정하기 보다는, 오직 실제적인 대화와 대결 속에서 상호경쟁하며 상생할 수 있는 상호 비판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끝으로 이러한 다자중심적 모델이 한국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종교신학 모델임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다자중심적 종교신학에서는 특정종교가 모든 종교의 중심이 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어떤 종교도 자기 종교의 깊이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며 "여기서는 개별종교의 고유한 차이성에서 출발하는 비판적 대화를 통해 성숙과 풍요의 결실을 거두게 될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미를 추구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