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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함석헌의 저항, 우상과의 싸움(2)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3] 함석헌이 지적한 한국 기독교의 5가지 우상숭배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함석헌의 사상 특징을 참과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에서 울어나오는 ‘거룩한 분노’의 표출로서 거짓과 불의와 추함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할 때, 특히 종교영역에서는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는  ‘ 예언자적  질타와 고발과 심판선포’로서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기없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선언보다도 하나님의 심판과 위기경고를 전달해야 할 임무를 운명적으로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미워서가 아니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망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혹시나 개혁하여 살아남기를 바라서, 예언자들은 냉엄한 우상파괴적 언어를 쏟아낸 것이다.
   
해방이후 함석헌의 타계까지 40년동안 그는 한국교회의 다음과 같은 우상숭배적인 대죄  5가지를 지적하면서 고발, 비판, 저항, 파멸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그는 주류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몰리고, 아예 기독교 울타리 밖으로 쫒겨났다. 그는 기독교계 정통신학자들과 목회자들로부터  잊혀졌거나 아예 언급을 회피하려는 기피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의 선포는 역사속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이미 예언대로 이루어저 가고 있는 것이다.

(1) 특정한 정치  〮경제 이념에 예속된 이데올로기 우상화 
 
함석헌이 한국 개신교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첫째 논쟁점은 한국기독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가 말하는바처럼 “날씨는 분별하면서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현대용어로 말하여 깨어있는 역사의식과 시대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때를 분별하는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에, 당대를 풍미하는 특정시대의 정치이데올로가와 경제사회 이데오로기에 자신의 혼을 팔고 충성하고 그 이념에 예속될 뿐아니라, 마침내 그것을 신성시하고 우상화 한다.  
 
해방후 남북 분단이 진행되면서, 남북은 구약성경 창세기 족장설화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 쌍둥이의 장자권 다툼처럼, 북한의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이념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 대결국면으로 나뉘이게 되었다. 그래서 1950년에서 발발한 동족상잔의 한국 동란에서 40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래도 끝장이 아니나서 지금도 대결중이다.  해방정국의 북한 땅에서 ‘체험적 공산주의’의 실상을 경험하고 남하한 대다수 한국 개신교 주류들은 남한의 반공주의 전열의 최강 최후 보류가 되었다. 
  
그러한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 이념가치’를  지지하고 지키기 위해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비리에도 눈감고, 군사정권의 월남파병도 적극 지지하였고, 역대 한국정치계의 보수적 수구정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함석헌은 묻는다. 그의 물음은 저항이고 한국기독의 그동안 행태는 복음의 본질인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계명’을 배반한 특정이념의 우상화 라는 것이다. 저항아 함석헌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논설문에서 그의 독설아닌 진실의 소리를 들어보자.
 
새로 나라를 세우는데 높은 이념을 보여준 것이 없고, 공산주의와 만나서 기독교의 믿음과 사랑을 발휘할 때인데 겁내고 미워만 했지 이긴 것이 없다.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민족적 회개운동도, 깊은 역사적 의미파악의 노력도 보여준 것이 없었으며 전쟁이 지나간 후도 새 건설의 설계도를 내는 것이 없다. 지유당 10년에 반항 하나 한 것 없기 때문에 4.19라는 역사적 운동에 아무 참여를 못했고, 5.16에 대해서도 정당한 책망하나
  
못했다. 한일회담 때는 첨에는 상당히 강한 투쟁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고, 명분없는 월남전쟁에 대해서는 사실상 찬성을 한 셈이니 이제와서 무슨 소감이 있는가, 없는가? 이때껏 남의 나라의 침략속에 사는데 평화운동 하나 일으킨 것이 없지, 젊은이들이 그렇게 고민하는데 강제징병에 대한 양심적 거부 하나 지도해준 것이 없지, 그리고 오직하나 생긴 것이 있다면 교회재벌이다.
 
함석헌은 20세기 애굽의 파라호 우상숭배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할 것 없이 ‘국가주의’라고 본다. 그 국가주의가  전제민중을 몰아가고 온우주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값어치를 하찮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이란 현대판  파라호의 신격화된 정치권력과 이데올로기 절대화라는 우상숭배에서 인간을 건지는 것인데, 그 직무를 수행하기는커녕 충견처럼 그 일에 복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 경전과 교리를 절대화하는 한국개신교의 『성경』우상화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의 힘과 표준이 성경이라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민족이 사실  서양종교라고 일컫는 그리스도교가 한민족에게 전래된지 230년만에(가톨릭1784, 개신교1884) 그리스도교인 숫자가  한국종교인의 절반에 이르고, 개화기 이후 사회와 문화변동에 큰 힘이된 것은 그 일차적 동력이 성경의 한글번역과 보급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개신교 경우는 더욱더 그랬다.  그런데,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이라고 부르짖은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중심의 원리가,  성경속에서 들리는 살아움직이는 생명의 말씀과 영적 역동성을 성실하고 교조화되고 문자적으로 절대화될 때, 한국 기독교에 치명적 족쇄로 작용하는 역기능을 초래했다.
 
사실 개화기에 당시 한민족의 일반적 교양수준보다 앞서는 먼저깬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이, 점차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문명진보의 대열에서 지진아가 되고, 진화론을 무조건 이단이라 단죄하고, 지성인 사회에서 대화소통의 단절을 일으키고, 타종교나 전통문화와 끊임없는 충돌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이 근본주의신학으로 훈련받는 선교사들의 성경관을 금과옥조 처럼 삼는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의 경전문자주의, 정통보수신학교리와 신학체계의 절대화에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종교는 어디까지나 체험의 자리입니다”고 주장한다. 말로서 글로서 표현될 땐,  화산의 마그마가 식어져 하루방 돌이 되듯이, 말이나 문자는 원체험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보통경험에서도 그러할진데 하물며 높고 숭고한 종교체험과 진리체험은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함석헌은 종교가 교리적으로 체계화되고, 『성경』을 구원에 관한 길만을 알려줄 뿐 아니라 세상만사 모든 비밀을 풀어주는  백과사전처럼 생각하는 ‘책 종교’로 변질되는 것을 누누이 경고했다. 
  
신앙이 독실한 정통신앙인들은 『성경』이 표준이라고 곧잘 주장하지만, ‘해석’되지 않는 ‘성경 그 자체’란 없는 법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성경문자 자체가 글자 그대로 진리라고 주장하는 성경관을 전제한 소리이거나, 자기류의 해석이 ‘표준해석’ 이라고 주장하는 해석학적 독단일 뿐이다.  그러한 ‘성경’의 절대화는 놀랍게도 하나님이나 진리를 성경안에 제한하는 만용을 부리게 된다. 『성경』이 기록되고 편집되어 경전으로서 확정되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온 우주속에서 살아있었고, 인류는 하나님을 신앙하고 진선미 거룩을 체험하고 노래하고 있었다.  함석헌의 자신이 쓴 시집 『수평선 너머』발문((跋文)에서 다음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가 영원히 사시기 위하여 자기 깊은 속을 영원히 감추시는 이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의 시(詩)를 밤알 까듯이 완전히 깨쳐버린다면 그 하나님은 벌써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비유 속에 숨으신다. ....... 시가 끊어진 곳에서 시가 살아있다.
   산 시가 있다. 가람(伽藍)의 종교를 버리고 인격의 신앙으로 들어가자. 
 
『성경』만이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종교경전들은  가장 위대한 최고의 시집이다. 하나님이 성인들과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읊게한 하나님의 시들이다. 해인사는 목판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어 세계에서 자랑하는 법보가람(法寶伽藍) 이다. “가람의 종교를 버리고 인격의 신앙으로 들어가자”는 말은 경전의 책종교를 극복하여 인격적 신앙, 영과 진리로서 환하게 꿰뚫린 신앙, 지성과 감성이 함께 동반하는 신앙, 이성적 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종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가고 더 온전케 하는 ‘이성을 넘어선 이성종교’에로 나아가자는 말이다. 
 
한국기독교가 영적으로 살아나려면, 개혁되려면, 21세기에도 의미있는 영적종교로서 한민족에게 영향을 주려면 『성경』책과 정통교리를 절대시하는 우상숭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그자체가 아니며, 진리와 참생명을 증언하는 증언자의 소리이지 ‘진리 그 자체’ 는 아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을 우상화하는 대죄에 빠지게 된다.  
 
(3) 땅을 경시하고 하늘만 중시하는 천국직행 우상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제대로 성서신학을 연구한 학자들은 그리스도교 발생의 원점이요 원동력인 역사적 예수의 절대적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가 가르친 ‘주기도문’의 핵심도 “(하나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대표적 개신교 신학자 폴 틸리히도 위대한 세계종교인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상징할 유형적 특징을 지적하는데, 불교는 ‘니르바나’(涅槃)이고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나라’(神國)라는 총괄적 상징어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불교는 니르바나 안에서 만유와 만인이 그 본래성을 성취하는 것을 궁극목적으로  염원하는 종교이고,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만인과 만유가 하나에로 연합되기를 염원하는 종교라고 그 특징을 비교한바 있다.
  
다시말해서, 모든 종교들은 표현을 달리하지만 결국 본질계와 현상계, 정신계와 물질계, 영원과 시간,  진여계와 생멸계, 공계와 색계를 어떻게 구별하면서도 분리하지 않는 관계라고 설명하며 그 양자의  통전을 이루는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 양자의 두 범주, 혹은 두차원의 실재를 성경은 ‘하늘’과 ‘땅’이라는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그런데 그 통전문제의 해법에 있어서 인류의 대표적 3종교는 각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헬라철학 종교는 ‘땅에서 하늘에로의 상승’을 가르쳤다. 신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가 그 대표였다. 물질계를 초월하여 순수 정신계에로 올라가 ‘일자’(一者)에로 귀환할 것을 가르쳤다. 불교를 비롯한 동양의 지혜종교는 그 양자를 분리시켜 이해하거나 분별하는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참지혜를 통하여, 진여계와 생멸계가 ‘해파관계’(海波關係) 임을 깨달으라고 가르쳤다. 이른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그리스도교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는 두 가지 혈통을 초대기독교 시대때 물려받았기 때문에, 두 혈통간 에는 항상 긴장갈등이 있지만, 그리스도교 본래 원주류는 “하늘이 땅에 임하여, 땅을 변화시켜 땅에 임한 하늘세상”을 이루는 것이라고 고백해 왔다. 이것이 이른바 ‘성육신적 영성’이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임했는데,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요 1:14)는 증언이던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3:16)는 성경구절이 진실로 중요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증언한다면,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과 땅을 소홀히하거나, 기피하거나, 잠시 지나갈 ‘간이역’ 정도로 생각해서는 않되는 종교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 종교사 2000년은 예수의 간절한 염원을 배신한 역사였다. 왜냐하면 땅을 버리고 하늘에로 직행하려는 천국직행 신앙을 정통복음 이라고 주장해왔고, 신도들을 그렇게 세뇌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더 중요한 문제는 상징으로서 땅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제이다.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목적은 하늘에 있으나 일은 땅에 있다. 땅을 박차지 않고 날아오르는 새는 하나도 없다. 이 의미에서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셨지, 땅을 버리고 곧 하늘로 올라가게 해주십사 하시지 않은 것은 깊이 새겨 알아야 할 말씀이다. 현실을 피하고 구원은 없다. 현재의 고통은 문제 아니된다는 소리는 민중을 속여 영워한 압박에 비겁하게 굴복케하면서 그들의 피땀으로 수고한 결과를 짜먹자는 지배자의 앞잡이 종교가만이 하는 소리다....거룩한 하나님의 발이 땅을 디디고 흙이 묻은것, 그것이 곧 민중이다....하나님 섬김은 민중 섬김에 있다. 
 
그 놈의 천당이 나라를 망쳤다. 절대로 하늘나라가 없다는 말 아니요, 하늘나라 찾는 것이 잘못이란 말 아니다. 그렇게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나라 바라는 일 아니라는 말이다...
  
하늘이 허공에, 죽은 후에, 있는 줄 아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다......허공에 있는 것이 햇빛이 아니요 땅에 내려와야 빛이요 열이듯이, 하늘은 무한 막막한 허공에 있지 않고 땅에 와 있다. 땅 중의 땅, 흙중의 흙이 어디냐? 네 가슴이요 내 가슴 아닌가? “하늘나라 너희 안에, 혹은 너희 사이에 있다”는 말은 왜 그렇게 쑥 빼놓는가?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가 역사의 고난현장, 민중의 아픔과 신음, 현실 정치 사회 문화계의 문제를 외면하고, “예수 믿고 천당가시요!”라고 선전하는 것이 정복음(正福音)이라고 오늘도 우겨대는 개신교는 우상숭배에 빠졌다고 본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핵으로 전하는 예수 뜻을 배반하고, 모두 사이비 플라톤제자가 되었거나 이단적 영지주의자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오늘도 명동거리에 나가면 “예수 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복음전도랍시고 행인들 길을 가로막는 열심교인들이 있다. 한국 개신교의 점잖으신 주류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명동거리의 전도자들과 다르다고 발뺌하겠지만, 세계에서 단일교회로서 제일크다고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설교 멧시지 핵심내용이 사실 그것아닌가? 다만 한술 더떠서, 기독교의 본질은 천당가는 것이지만, ‘간이역’같은 이 세상에서 잠간 기차가 머무는 동안에도 쇼핑도 즐기고 ‘삼박자 축복’을 누리는 것이 ‘순복음’ 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러한 기독교를 가지고 새시대, 새문명을 이끌어 갈수 있을가? 천국직행 복음주의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기복적 우상종교로  전락시키고 있다. 
 
(4) 무한성장 축복론과 거인숭배에 빠진 개신교안의 우상화 열풍
 
한국 개신교의 급성장은 한국사회와 국가의 경제산업의 급성장 무드를 타고 특히 1970-80년에 열기를 더해갔다. 개화기 물결을 타고 들어온 초기 장로교와 감리교를 비롯한 복음주의자들과 초기 예수믿는자들은, 비록 당시 신학교육은 보수적이거나 근본주의적 신학을 받았지만, 경건과 절제와 근검청빈의 신앙심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썩어 문드러져가 고루한 동시대의 사회기풍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런 초창기의 한국개신교의 경건성과 근검소박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인물들로서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김약연, 김교신, 이용도, 김용기, 최흥종, 이현필 등이 있었고, 신학사상적으로 본다면 보수라 하는 김익두, 길선주,주기철, 손양원, 박형룡, 장기려,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진솔한 여신도들의 삶도 모두 근검소박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기독교가, 1970-80년대 미국 자본주의적 성장위주 기업경영철학을 교회론과 목회신학에 야합시킨 ‘교회부흥 성장론’을 수입하면서, 교회당은 점점 대형화 되어갔고 신앙집회도 대형화 되어갔다. 소위 ‘성장이 곧 축복의 증거’라는 묻지마식 ‘교회성장론’이 기독교를 잠식해갔다. 그결과 세계 50대 대형교회당 가운데 27개가 한국에 있으며, 규모로말하면 상위랭킨 세계15위 안의 교회들이 모두 한국 개신교들이다. 이런 대형교회당  급증과 교인수 대형교회의 현상을 일컬러, 한국 경제성장에 대하여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들 하듯이, 세계선교사상 유례가 없는 ‘복음선교확장의 기적’이라고 자부하지만, ‘거인숭배 신앙’처럼 크고 힘있는 무조건 좋다는 우상숭배 경지에로 전락하였다. 그 현상에 대하여 함석헌은 날카로운 경고를 퍼붓는다.
 
본래 어느 종교나 전당을 짓는 것은 종교가 먹을 것을 다 먹고 죽는 누에고치 모양으로 제 감옥을 쌓음이요 제묘혈을 팜이다. 내부에 생명이 있어 솟는 때에 종교는 성전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석조 교회당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종교부흥이 아니다, 그 종교는  일부 소수인의 종교지 민중의 종교가 아니다. 지배하자는 종교지 봉사하자는 종교가 아니다. 도취하자는 종교지 수도하고 정진하자는 종교가 아니다....고치 속에 있는 번데기가 죽지 않았다가 변화하려면 찬공기와 일광속에 있어야만 하는 것 같이, 내리누르는 교회당의 무게 밑에서도 생명의 씨가 살려면 역사적 대세의 분위기를 마셔야 할 것이다.
 
함석헌의 예언적 경고는 불과 20년이 못되어, 1990년부터 한국 개신교에 나타나고 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은 줄어들고, 일부대형교회의 교인수 지속이란 기존교인들의 수평이동 이동일 뿐 새로운 교인의 입교(入敎)는 정지상태다.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뜻이고 축복받는 길’이라고 강조하는 목회자는 교회제직회(敎會諸職會)에서나 개인 신도들에게 무리한 자금대출을 독려해서라도 몇백억, 몇천억비용드는 석조건물을 짓느라고 큰 교회들이 대부분 은행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함석헌이 경고한 “역사적 대세의 분위기를 마시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교회당과 기존교인수의 현장관리에 심혈을 쏟는다. 해독과 피해는 그뿐만 아니다. 한국 경제계와 산업계에서 재벌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시장상권을 무자비한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앞세워 무너뜨린다고 비판 받듯이, ‘작지만 내실있는 작은교회들’을 그 근져에서 무너뜨리고 신도들을 흡입해가는 반신앙적 행태가 자의반 타의반 자행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지금 ‘거인숭배 우상신앙’에 빠졌다.
 
(5) 실질적 맘몬숭배로 빠져든 한국개신교 지도자들의 ‘탐욕’의 우상화
 
함석헌과 출생년도가 같고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재야지도자로서 함선생과 함께 일하셨던 장공 김재준목사(1901-1987)는, 그가 양성한 기독교장로교 교단 제자목사들에게 늘상 경고하기를, ‘영적 야심’도 더욱 교묘한 ‘탐심’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란 명분을 내걸고서 실지로는 목사 자신의 ‘영적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늘상 충고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고 말하는 성경의 단도직입적 선언처럼, 마지막 한국종교 특히 한국 기독교의 우상은 지도자들의 탐심에 우상숭배 근원이 자리잡고 있다. 성직자들의탐심은 자신도 속아넘어갈 뿐 아니라, ‘거룩’으로 포장하고 변호하면서 타락과 나락이 끝모르게 진행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의 위력 앞에  대부분 굴복한다. 
 
예수가 광야에서 겪었다는 3가지 치명적 ‘광야시험’의 본질은 황금위력, 권력위력,초능력의 종교기적능력의 유혹이 뜻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항상부딪혀오는 치명적 유혹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기독교가 자본주의 사회안에서 저지르고있는 맘몬숭배의 속내를 듣기 거부할 정도로 함석헌은 직설적으로 파헤친다.
 
사실 언제나 타락은 황금에서 온다. 광야의 교회는 금송아지 숭배로 타락이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믿고 택해 세운 아론, 미리암이 앞장을 서서 그렇게 했다는 데 더 슬픔이 있다..... 황금이 무엇인가? 이미 있는 질서, 제도, 권력의 심볼이다.
 
현대교회 중에 자본주의적인 생활속에 있지 않는 교회는 없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 살면서 덮어놓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으로 믿으므로, 자기네 손에 들어오는 수입이 과연 사회정의에 합한 과정을 밟아오는 것인가 아닌가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 저 은혜(恩惠)라고만 한다. 그러나 성단(聖壇) 위에 놓이는 돈은 피가묻은 돈들이다. 굉장한 교회당는 사실 엄정하게 몰 때 맘몬이 세운 것이요, 맘몬의 힘으로 유지되어 가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함석헌은 막스베버가 지적한 대로 근대자본주의 초창기 발생기에 프로테스탄트정신 특히 청교도정신의 특징들로서 근검절약정신, 합리적 시간사용과 경영정신, 이익으로 창출된 자산을 자기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 청지기 정신, 자본의 창의적 재투자 기업가 정신 등등에서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사회제도의 출현에 공헌한바 있다는 지론을 이해한다. 그러나, 현대자본주의는 초창기 건전한 청교도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돈귀신’에 사로잡힌 병든 자본주의이다.
 
함석헌은 현대교회가 변질된 현대자본주의 문화와 정신적으로 야합하는 자세를, 가까운 친척 남녀사이의 성적관계를 일컫는 토속적 말 "상피(相避)를 붙는 일이다”라고 까지 비유적으로 말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역사적 거리를 두고보면 중세 기독교가 복음의 본래모습을 잃어버리고  귀족과 영주를 중심으로하는 중세봉건주의에 사로잡힌 시대라고 보이듯이, 역사가 흐른뒤 후손들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한국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만몬숭배신앙에 완전히 포로되었던 시대였다고 교회사가들은 평가 할 것이다. 기독교는 지금 입바른 형식적 고백은 ‘하나님 중심신앙, 오직 십자가 신앙’ 운운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탐욕에 젖어 맘몬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셈이라는 위에서 인용한 함석헌의 신랄한 비판은 ‘불편한 진실’인가  사실무근의 ‘기독교 비방’인가?
 
[4] 함석헌이 꿈꾸는 미래의 종교
 
함석헌의 엄정한 현대종교비판 특히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가 망해버리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문둥이의 피부에 새살이 돋듯이, 고목가지 끝에도 봄엔 새순이 돋듯이 새로운 영적 생명으로 소생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함석헌은 현대 한국 기독교가 ‘낡아가는 종교’로 보인다고  진단한다. 그 노쇠증상으로서 5가지 증상을 열거했다. ①  교리를 강조하는 경향성 ② 역동적 생명공동체가 제도화되고 교권강화 경향성 ③ 새로운 시대사조에 대항하는 방어적이고 수세적 성향 ④ 현실문제를 도피하여 피안적 신앙을 강조 ⑤ 세력싸움과 재산싸움으로 내분이 격화되는 경향 등이 그것이다. 듣고보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모습 그대로이다.
 
전래된지 130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기독교가, 초창기의 젊고 싱싱한 기백과 근검절약하고 경건하던 신심을 잃어버리고 노화현상과 망발현상까지는 보이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단체만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비극이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변혁되어야 하고 개혁되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함석헌이 예견하며 동시에 바라는 미래의 종교모습은 다음같이 정리된다.
  
① 인간이 인간인한 영육의 갈등을 항상 겪는 것이지만, “뚫려비취는 체험단계”에서 ‘정신과 육체’, ‘초월과 내재’의 이분법을 극복한 통전적 인격종교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통을 말하고 신비체험을 말하지만 철저한 깨어있는 이성과 인격의 토대위에 자리잡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을 존중하고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성을 넘어서는 종교라야 한다. “이성이 갈 곳까지 간 후에 신앙의 세계가 열린다”고 강조한다.  
 
② 미래의 종교는 점점 더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성숙하고 승화되면서, 생명이란 ‘하나’이라는 동체대비심으로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속의 죄와 선이 개인적인 책임면이 있으면서도 종교적 입장에서보면 사회전체의 책임이요 공동선이라는 자각에 이를 것이다. 종교가 개인주의와 교파주의와 국가주의에 갇혀있는 유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③ 제도와 조직과 규모는 가급적 단순하고 작은 규모의 종교공동체라야 한다. 앎과 믿음과 실천이 하나되는 자리에로 나갈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 한국 대형교회당의 미래는 1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빈좌석 공간채우기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일간신문 사설에서 끼지 공개적으로 질타하는 여의도 모교회나 강남 대형신축 교회 담임목사와 연루된 부정비리가 결국은 종교의 제도와 조직과 규모가 큰데서 발생한 것이다.
 
④ 새시대의 종교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말하는 종교라야 한다. “종교는 구슬이 아니요 씨다. 썩어서 새싹으로 나와 자라서 열매를 맺어 퍼져나가야 한다”. 굳어진 나무둥지와 가지를 붙들고 자기종교는 완전무결하며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종교는 희망이 없다.
 
⑤ 미래종교는 ‘하나’를 지향해갈 것이다. 섣부른 종교혼합이나 인위적 세계종교통합은 어리석은 일이고 불가능하고 시도해도 않될 일이다. 타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우월주의 종교 또한 시대착오적이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하는 “이 산에서도 밀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안에서’ 예배하는 신앙이라야 할 것이다(요4:21-24). 간디가 말한바 처럼 진리가 곧 하나님이고, 사랑이 곧 하나님의 현존임을 생활 속에서 느끼고 살아가는 종교라야 할 것이다. 
 
우상숭배 상태에로 전락해 있다는 경종을 받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치유와 거듭나는 방향도 위에서 언급한 미래종교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철저한 개혁’(the radical reformation)을 단행 할 때,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끝. (2013.3.20)
 
이 글은 씨알의소리 2013년 3,4월호[227호]에 실린 본지 자문위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의 글임을 밝혀둔다.
 
[참고도서]
 
1. 『함석헌 전집』, 제1권,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 1983)
2.  위 같은 전집, 제3권,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한길사,1983)
3.  위 같은 전집, 제4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한길사,1983)
4.  위 같은 전집, 제6권, <시집, 수평선 너머> (한길사,1983)
5.  위 같은 전집, 제14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한길사,1983)
6.  김삼웅, 『저항인 함석헌 평전』, (현암사, 2013)
7.  김경재, 『함석헌의 종교시탐구』,<내게오는자 참으로 오라> (책보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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